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Kagoshima, Kagoshima Little Asia Guesthouse (오늘의 경비 US $56: 숙박료 2,800, 점심 580, 식품 260, 250, 680, 입장료 300, 400, 입술로션 350, 환율 US $1 = 97 yen) Kumamoto가 Kato Kyomasa의 (加藤淸正) 도시라면 Kagoshima는 Saigo Takamori의 (西鄕隆盛) 도시다. 오늘 Kagoshima 시내 구경을 했는데 대부분 Saigo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Saigo가 태어난 집터, Seinan 전쟁에 (西南戰爭) 패하고 자결을 한 장소, 그의 동상 등이다. Museum of the Meiji Restoration 박물관 역시 그에 관한 것이 제일 많았다. Saigo는 메이지 유신을 (明治維新) 이끌어 낸 3걸 중에 한 사람이란다. 신장이 180cm이었던 그는 Tokugawa 정부군을 무찌른 반군의 사령관이었다. 메이지 유신의 제일 공신이었던 그가 한국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주장하다가 다른 정부 지도자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정부 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Kagoshima로 은퇴했다. 그러다가 Kagoshima 지역 무사들이 중심이 되어서 일으킨 Seinan 전쟁의 반군 사령관으로 추대되어 반란을 이끌었으나 정부군에게 패한 후에 Kagoshima 뒷산에서 자결했다. 패장에다가 천황에 반기를 든 역장이었지만 민중영웅으로 남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가 왜 정한론을 주장했고 그 주장이 왜 안 받아들였는지도 궁금하다.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수년 전에 일본 TV 드라마를 즐겨 봤을 때 Kagoshima가 수도인 Satsuma 번 (薩摩 藩) 출신으로 Tokugawa 쇼군의 정비가 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그 TV 드라마에 Saigo도 많이 나왔다. 같은 Satsuma 번 출신이며 메이지 유신 3걸의 다른 한명이었던 Okubo Toshimichi도 (大久保利通) 많이 나왔다. Satsuma 번에서 메이지 유신의 3걸 중에 두 명이 나온 것은 특이하다. 메이지 유신 3걸의 나머지 한 명 Gido Takayoshi는 (木戶孝允) Joshu 번 (長州 藩) 출신이다. 메이지 유신은 Satsuma 번과 (薩摩 藩) Joshu 번이 (長州 藩) 주도하였다. Museum of the Meiji Restoration 박물관에는 일본해군의 아버지로 알려진 메이지 유신의 또 다른 영웅이었던 Sakamoto Ryoma에 (板本龍馬) 관한 자료도 많았다. 그가 Saigo의 초대를 받아서 갓 결혼한 부인과 함께 Kagoshima에 와서 몇 달을 묵다가 떠났는데 그 여행은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으로 알려져 있다. Sakamoto의 일생을 그린 료마전이란 일본 TV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다. 나중에 한가할 때 일본 TV 드라마를 좀 더 볼 생각이다. Toyotomi Hideyoshi와 (豊臣秀吉) Tokugawa Ieyasu가 (德川家康) 나오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 제일 마지막으로 간 Sengan-en (仙巖園) 정원은 1998년에 봤을 때만큼 즐기지 못한 것 같다. 국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오히려 국화 구경을 즐겼다. 오늘 시내 구경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했는데 모두 15km 정도 달렸다. 오늘 오후 1시 45분에 갤럭시노트 배터리를 체크하니 34% 남았다. 어제보다는 양호한 것이지만 역시 배터리 소모가 지나치다. 오늘은 하루 종일 WiFi도 끄고 다녔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를 찾아내서 해결해야 한다. 배터리 문제와 함께 근래에 생긴 또 하나의 문제는 갤럭시노트 내장 메모리가 거의 소진된 것이다. 내장 메모리가 부족하면 별 이상한 일이 다 일어난다. 예를 들면 어제 사진 사이즈를 줄이는데 줄여진 사진을 저장할 수가 없었다. 저장하는 장소가 내장 메모리가 아니고 외장 SD 카드인데도 그렇다. 갤럭시노트 업데이트도 안 된다. 내장 메모리에 저장된 파일을 몇 개 삭제한 다음에야 문제가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데이터가 내장 메모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 역시 해결을 해야 한다. 해결을 못하면 갤럭시노트를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오늘 배낭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뉴질랜드 배낭분실의 재판이 되는 줄 알았다. Museum of the Meiji Restoration 박물관을 나와서 막 떠나려 하는데 배낭끈에 걸어놓고 다니는 선글라스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선글라스 덕분에 등에 지고 있어야 할 배낭이 없다는 것도 발견한 것이다. 선글라스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뉴질랜드에서처럼 한 30분 자전거를 달린 다음에나 배낭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배낭을 박물관 라커에 놓고 나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박물관 여직원이 뛰어나오면서 배낭을 가지고 가라고 한다. 박물관 입장을 할 때 배낭을 의무적으로 라커에 넣게 되어있어서 넣고 라커 열쇠를 받아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커에 가서 배낭을 꺼내가지고 나왔다. 배낭을 잃어버리지는 않았겠지만 잠깐 동안 깜짝 놀랐다. 이제는 뉴질랜드-호주 여행 때와는 달리 배낭 안에는 옷 밖에는 없다. 중요한 물건은 모두 전대나 항상 허리에 매고 다니는 fanny pack 안에 있다. 어제 Kagoshima 기차역을 찾으면서 어느 젊은 여자 두 명에게 기차역 위치를 물어봤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물어보니 미국에 유학을 했단다. 그리고 내가 길가에 아무데나 자전거를 주차하는 것을 보고 운수가 나쁘면 불법주차로 자전거를 수거당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그런 일을 당하면 큰일이다. 벌금을 물고 자전거를 찾으면 된다지만 나에게는 언어소통이 잘 안되니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인사성이 밝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목을 약간 숙이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로는 미소를 띠우기도 한다. 미국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을 보고 간단한 인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이웃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는 우리네와는 너무나 다르다. 일본에는 어떻게 해서 그런 풍습이 생겼을까? 부러운 일이다. 내일은 Sakurajima 화산 주위 구경을 갈 것이다. 오후 5시까지 Okinawa 페리선을 타러 페리선 터미널로 가야 되니 아침에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모두 가지고 나와야 한다. 오늘 아침에 기차역 앞 광장에서 Sakurajima 관광버스가 떠나는 것을 발견했다. 오전 9시에 떠나서 12시 반에 돌아오는 Sakurajima 단체관광이다. Sakurajima는 자전거로 다녀오기는 너무 힘이 들어서 버스 단체관광을 이용할 생각이다. 자전거는 기차역 앞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에 두면 된다, Sakurajima 관광에서 돌아와서 오후 5시 페리선 터미널에 갈 때까지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아직 모른다.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기차역 여행안내소에 알아볼 생각이다. Kagoshima "역사의 길" 메이지 유신의 (明治維新) 길 메이지 유신 3걸의 한 사람인 Okubo Toshimichi의 (大久保利通) 동상 Museum of the Meiji Restoration 박물관 Satsma 번 출신으로 마지막 쇼군의 부인이 되었던 여자가 Satsma에서 Tokyo까지 행차하는 그림 역시 메이지 유신 3걸의 한 사람인 Saigo Takamori의 (西鄕隆盛) 초상화 일본해군의 아버지로 알려진 Sakamoto Ryoma (板本龍馬) 초상화 Saigo Takamori의 탄생지 Kagoshima 성인 Tsurumaru-jo는 성벽밖에 남은 것이 없다 Saigo Takamori의 동상 옛 Kagoshima 성의 유적인 Reimekan (黎明館) 박물관 매년 여름 홍수로 Satsuma 농토의 유실을 막기 위한 제방공사를 하느라고 목숨을 잃은 84명의 Satsuma 가신들의 기념비 Saigo Takamori가 Seinan 전쟁에서 패한 다음에 자결한 장소 일본바둑의 쇠퇴를 상징하듯 초라한 일본기원 지부 건물 Kagoshima 제일의 볼거리 Sengan-en 정원 입구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화전시 소나무 정원 길 계단 길 정원 개천 대나무 숲 아름다운 Nishidabashi 다리 멀리 내일 갈 Sakurajima 화산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