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서, 또는 예정없이 기차를 타고 지인이 사는 경남 밀양을 찾아 갈 때에 차창으로 보이던 밀양 강변의 풍경속에 내가 있었다. 장마에 세를 불린 강물이 보는 이의 마음도 넉넉하게 하면서 흐르고 잘 다듬어진 둔치의 잔디밭은 발바닥까지 씻기어 싱그러운데 물에 잠겼던 흔적 거뭇거뭇 남은 강둑에 살랑살랑 하얀 망초꽃들 춤추고, 양손에 생수병을 들고 팔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을 따라서 걷는다. 강을 배경으로 셀프사진도 찍고 길섶의 조각공원 돌들도 찍어대는 나를 더러는 돌아보기도 하면서 황토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쩐 하듯 허리를 편 다음 돌아서서 오던 길을 가다가, 마주 오는 이에게 손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사람들. 언제부터 있었는지, 햇살 좋은 남쪽이 아닌 강이 보이는 동쪽을 향해 서 있는 강변의 아파트가 가격상승 중이라고 퇴근길에 운동 삼아 돌아서 간다는 그 아파트 주민이 나와 함께 걸으면서 말해 주었다. 2차 공사중에 부도가 나서 서울의 대기업 건설사가 인수하여 완성한 그 아파트에게 조망권을 뺏긴 그 뒷편의, 먼저 지어진 아파트는 되려 하락세라고도 말했다. 그 시행사는 Imf 이후 몇 번이나 부도로 휘청거릴 때 '향토기업살리기'도 전개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 내 고장 대구의 대표 건설사여서 짐짓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창가에 서서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를, 닿을 듯 가까운 산의 푸름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까마득 높은 유리창을 올려다 보는 나. 산업단지 같은 공해시설 하나도 없는 천혜의 강마을이라 정년퇴직 하고 돌아와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 고장의 청정함이 오랫동안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둑에서 아파트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내려오는 사람들 집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강물이 돌면서 방향을 바꾸는 굽이에 산책로 보다 넓고 둥근 터가 있었는데 간이 테이블에서 할아버지라 불려도 좋을 남자들이 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 그 옆으로 순대랑 소주 과자며 오징어를 구워 파는 작은 손수례가 보였다 진작부터 바람에 실려오던 맛있는 냄새의 정체가 드러나자 잠시, 물소리 들으며 정자에 앉아 밀양사람들 자랑하는 밀양막걸리랑 구운 오징어를 함께 먹을 동행이 없음이 아쉬워 지기도...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세 개의 시멘트 보 위를 장마의 여운 남은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간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쯤 보를 막아 아이들 물놀이장을 운영한다는 시청의 안내판도 보였다. 조금씩 배여 나던 땀방울은 강바람이 날려 버리고 고적한 나그네의 애상에 젖어 들 즈음에 맞은 편 검은 대리석 디딤돌 위에 세워진 이재금 시비라고 적힌 바위가 눈에 들어 왔다 밀양문협의 추모사업회에서 세운 비라고도 적혀 있다 식견이 짧은 나에겐 알 수없는 이름이지만 고인이 된 것 같은 시인이 밀양 문협회원이었고 밀양에도 문협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닳으면서 시비앞에 섰다.
도래제/이재금
" 언양땅 넘어 가면
석남재 고개
밀양땅 넘어 오면
도래재 고개
일흔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실안개 피는 골에
눈물 맺힌다
돌아서서 가신 님
돌아오실 도래재 고개 "
제대로의 강이라곤 왜관 낙동강 밖에 모르는 나는, 공사로 인해 피폐해 졌던 그 곳의 강도 지금은 파혜쳐진 상처가 수몰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리란 생각도 해 보면서, 이재금의 시를 중얼중얼 외우면서 휴식을 취한 발걸음을 옮겼다. 만개한 한련화 분들이 줄지어서 배웅하는 다리를 지나 밀양을 세계로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만든 "밀양" 주 촬영지 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할 밀양역을 향해 잰 걸을을 걸었다
( 경남 유일 ktx가 선다는 밀양역이 나에겐 약간의 쓰라린 추억이 있는 곳이다 대구에서 왜관으로 기차통근을 하던 때, 회식 등으로 늦은 시간에 차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불현듯 깨어서 보면 경산을 지나고 청도도 지나고 있던 황망함! 밤 늦게 밀양역에 내려서 상행 열차가 올 동안을 혼자 넓은 광장을 서성이면서 영남루라든가 표충사 같은 안내판이나 읽고 있었던 내 모습...)
첫댓글감했습니다.
아깝다. 文人이 되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