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기후 조건으로 천지를 보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라서 우리는 다시 발해를 찾아서 돈화시로 떠나기로 했다. 돈화시의 성자산 산성(동모산 산성)에는 발해국의 첫 도읍지인 국국의 유적지들이 있다.
아침에 백두산국제관광호텔을 출발하여 차를 달렸으나, 백두산 관내를 벗어 나지를 못하고 차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반복을하는 것이었다. 아직 백두산 산문에도 도착을 하지 못했는데, 벌써 차는 제자리에서 맴돌듯이 계속 가다가 서곤 하였다. 정말로 짜증이 났다. 가다가 서고 하는 방법을 반복을 하여 겨우 백두산 산문에 도착을 하였다. 미리 이도백하에 전화로 연락을 하여 운전사의 6촌되는 사람이 우리가 탄 찦차를 끌어가기 위해서 트럭을 갖고 왔었다.
[발해의 첫 도읍지(구국) 동모산(東牟山)의 성산자산성의 표지석]
[발해국의 도읍지였던 동모산성인 성산자산성의 표지석의 안내문에 당조시기 발해국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의도적으로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부로 왜곡 표기를 하고 있다]
드디어 우리는 찦차에 탄체로 트럭에 끌려서 이도백하로 가는 신세가 되었다. 상상을 해 보라! 백두산에서 찦차를 타고 트럭에 견인이 되어 가는 모습을 ㅎㅎㅎ. 트럭에 견인이 되어 가는 상황이면 당연히 가이드나 운전사가 다른 차를 불러서 여행을 계속 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도, 이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제부터 이 차가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견인이 되어 가는 상황이면, 당연히 다른 차를 이용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객의 불편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차는 이도백하에 도착을 하여 정비공장에서 우리가 지적을 하였던 연료휠터와 기화기를 분해를 하여 수리에 들어 갔다. 분해한 연료 휠터를 우리의 WD같은 것으로 내부를 청소 하는데, 연료휠터로부터 이물질과 녹물이 엄청 나왔다. 다시
휘발유로 힐터 내부를 완전히 씻어 내는데, 엄청난 이물질과 녹물이 쏟아져 나왔다. 연료 휠터가 이렇게 이물질로 막혀 연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를 않아서 차는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정도로 연료 휠터가 이물질로 막힐 정도면, 한번도 이 차의 연료 휠터를 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모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목단강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성들은 강을 자연적인 해자로 하여 만들어져 있음을 알수가 있다]
운전사는 어제 우리에게 작년에 연료 휠터를 교체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였다면 당연히 우리가 연길에 오기 전에도 똑 같은 문제를 일으켰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내만 다니면서 가끔 이런 문제를 일으키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 갔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기 전에 정비를 하였다는 것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동모산성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옛 발해국의 도읍지였던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침 일찍 백두산을 내려 왔는데, 점심 식사 시간이 넘어서야 자동차 수리가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이 찦차는 문제가 잔존해 있었다. 일단은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고 연길로 갈 것을 요구를 했다. 연길에 가서 차를 바꿀 것을 이사장과 이야기가 되었었다. 같이 간 이 사장도 속으로 엄청 화가 치밀어 올랐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하루의 반나절이 차의 고장으로 인하여 낭비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안 하다는 사과도 한마디 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은 이해 하기도 힘들었고 정말로 화를 나게 했었다.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나 과오를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셈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차가 문제를 일으키면 당연히 다른 차로 바꾸어서 손님의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동모산성 주위에 펼쳐진 농토]
오늘부터의 일정 수정이 불가피 하였다. 가이드나 운전사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차가 수리가 되는 것에 일정을 맞추려고 하기만 하고, 미안하다는 그런 표정은 전혀없었다. 모든 것이 그들의 조건에 우리가 맞추는 식이었다. 난 이것이 너무 화가 나서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를 않았다. 연길로 되돌아 가려고 해도 이들은 막무가내식으로 일정을 강행을 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조건에 끼워 맞추어진 하나의 요소와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이 사장과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돈화로 가기로 했다.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서 이때 연길로 가서 차를 바꾸었어야 했었다.
[발해의 첫 도읍지(구국) 동모산(東牟山)에 성산자 산성의 토성 흔적이 남아 있다.]
돈화시에 도착하여 발해국의 동모산성으로 알려진 성산자산성에 올라갔다. 여전히 운전사는 차가 퍼질 것이 겁이 나서 이제는 사륜구동 찦차인데도 농로길을 가는 것도 기피를 하였다. 우리가 돈을 더 많이 주고 찦차를 이용을 하는 것이 바로 일반차가 들어 가지 못하는 험한 길에도 가려고 하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길이 험하면 이 운전사는 안 가려고 하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화가 났어나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우리는 산성자산성으로 갔다. 성산자 산성은 발해가 처음으로 도읍을 한 구국으로 동모산성이다. 산에 오르니, 토성의흔적만 남아 있고 다른 어떤 유적이나 기와 조각 같은 파편도 하나 남아 있지를 않았다. 산성은 강을 끼고 낮은 산 정상에 있었고 주위로 넓은 들판이 둘러 싸고 있는 지형이었다.
성산자 산성을 둘러 보고 내려 오니, 차를 세워둔 밭의 주인이 올라와서 밭에 심은 나무를 차가 깔아 버린 것을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무 묘묙 몇 그루를 차가 깔아 버렸었다. 우리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가져간 한국산 담배를 선물로 주고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산과 그리고 주위의 밭을 정부로 부터 자기가 인민폐 만원(한화로 약 150만원)을 내고 돈화시 정부로부터 임대를 하여 사용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 가이드가 이 이야기를 듣고 발해국의 첫 도읍지인 동모산성을 단돈 만원으로 개인이 임대를 하여 사용을 하다니, 말도 안되는 한족정부의 짓거리라고 한탄을 하였다.
이 주인의 얘기로는 몇년 전에 연변일보에서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 와서 자기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이 산성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갔다고 하였다. 그 기자가 이 농부에게 책이 발간이 되면 보내주겠다고 농부의 주소를 적어 갔지만, 아직까지 책이 오지를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