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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 오솔길
1.울밑에 선 봉숭아야
2.메밀꽃 필 무렵
3. 오곡백화가 피면 배만 곯는다
4. 촛불이요와닫아주오
5.금슬 좋은 부부는 없다
6.새털보다는 쇠털이 더 많다
7. 창난젓과 명란젓
8.알타리김치가 아닌 총각김치
9. 우리 음식에 된장찌게 란 없다
10. 평양감사는 시켜줘도 못한다
11. 봄의 전령 아지랑이를 기다리며
12.쑥맥은 숙맥들이나 하는 말
13.회집에는 膾가 없다
14.칠칠맞은 사람이 되자
15.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 안나
16.이오뒤엔 마침표, 이요뒤엔 쉼표
17. 잘못 쓰고 있는 한자말
18.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19.알맞은과 알맞는
20. 불필요한 한자어 자제를
1.울밑에 선 봉숭아야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면 도로변이나 화단의 가장자리에 앙증맞게 피어있는 채송화(菜松花)를 볼 수 있다. 이 꽃은 쇠비름과 1년생 풀로 높이 20㎝ 내외로 자란다.
형형색색의 꽃이 무척 아름다워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7월에서 10월에 걸쳐 자주․분홍․노랑․흰색의 꽃이 맑은 날 아침나절에 피었다가 오후 2시쯤 시들기 때문에 좀 애처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꽃은 채송아/채숭아/채숭이나 따꽃/뜸북꽃/앉은뱅이꽃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나 모두 방언이다. 채송화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은 단수 표준어이다.
또 고온성 1년초로 동남아시아 원산의 봉선화(鳳仙花)가 있다. 봉숭아라고도 한다.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꽃이 피며, 우뚝하게 일어선 봉(鳳)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봉선화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4~5월에 파종하면 잘 자라서 6월 이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 꽃은 분홍․빨강․보라․흰색 등의 빛깔을 띠며, 특히 공해에 강한 식물이므로 간혹 도심 화단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봉숭아와 봉선화도 지역에 따라 봉사/봉상/봉새/봉생애/봉송/봉송아/봉송화/봉쇄/봉숭화/봉시애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잘못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의 꽃밭에서란 동요에 채송화와 봉숭아가 노랫말로 제대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이밖에 봉숭아와 발음이 비슷한 낱말의 과일로, 요사이 한창인 복숭아가 있다.
이 역시 복사/복상/복새/복생/복성개/복송아/복솨/복수아/복순/복숭아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이 가운데 복사와 복숭아만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손목이나 발목의 잘록한 부분의 안팎으로 둥글게 나온 뼈는 복숭아뼈가 아닌 복사뼈가 바른말이다.
채송화 봉숭아와 봉선화, 복숭아와 복사 복사뼈가 표준말임을 기억해두자.
2.메밀꽃 필 무렵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들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가산 이효석(李孝石)님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일대에는 요즘 하얀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효석문화마을에선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이효석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메밀을 소재로 한 제4회 효석문화제가 열려 전국에서 30여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특히 이들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를 재현한 1930년대 봉평시장, 물레방아 등과 20여만㎡의 메밀밭에서 펼쳐진 문화축제를 즐겼다.
메밀은 아시아 북중부가 원산지로 줄기는 높이가 60~90㎝이고 대공이 비어 있으며 곧고 붉은 색을 띤다. 잎은 세모꼴의 심장 모양으로 어긋나 있다. 초가을에 흰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모여 피고 열매는 검은 빛의 세모진 모양이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메밀 식물체를 청엽(靑葉), 백화(白花), 홍경(紅莖), 흑실(黑實), 황근(黃根)의 오색을 갖춘 오방지령물(五方之靈物)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했다.
메밀을 한자어로 교맥(蕎麥)이라고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메밀은 위(胃)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五臟)의 노폐물을 훑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최근 실험 결과 메밀 추출물은 당뇨합병증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 메밀을 일부에서 모밀이나 메물이라고 잘못 부르는 데 있다. 메밀은 그 생김새가 모(角)가 졌기 때문에 모밀로 불려온 듯하며, 옛말도 모밀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도 작품이 나올 당시에는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그러나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 모밀/메물 대신 메밀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한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다.
메밀이 들어간 복합어로는 메밀가루/ 메밀국수/ 메밀꽃/ 메밀나깨(메밀가루를 체에 치고 난 뒤에 남은 찌끼)/ 메밀나물/ 메밀누룩/ 메밀당수(교맥당수․메밀가루를 물에 풀고 삶은 파의 대가리와 술찌꺼기, 막걸리를 넣고 끓인 뒤 설탕을 타서 미음같이 만든 음식. 감기약으로 쓰임)/ 메밀떡/ 메밀만두/ 메밀묵/ 메밀밥/ 메밀부침/ 메밀산자/ 메밀소주/ 메밀수제비/ 메밀쌀/ 메밀응이(메밀가루를 국수물보다 좀 되게 쑨 다음에 소금을 탄 것) 등 다양하다.
이제부터 모밀/메물이 아닌 표준어 메밀만 쓰도록 해야겠다
3. 오곡백화가 피면 배만 곯는다
결실의 계절,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이맘 때면 온 들녘에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많은 나무들에 열매가 맺힌다. 이처럼 풍요함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이는 게 오곡백화다. 오곡백화가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거나 가을 들녘에선 오곡백화가 익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중학교 때인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라는 구절의 외국 민요를 배운 기억도 있다.
한데, 오곡백화(五穀百花)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오곡백화라 하면 말 그대로 다섯 가지 곡식에 100가지 꽃이다. 곡식은 가을의 풍요로움이나 수확과 어울릴 수 있지만, 꽃은 그러하지 못하다. 즉 오곡백화는 짝을 잘못 이룬 말이다. 곡식과 어울리고 풍요한 수확을 나타내려면, 그것은 꽃이 아니라 과실이어야 한다. 오곡백화가 아니라 오곡백과(五穀百果)여야 한다는 소리다.
결론적으로 가을의 풍성함을 얘기할 때는 온갖 곡식과 과실을 뜻하는 오곡백과라 해야지 오곡백화라고 해서는 안된다. 가을 들녘에 꽃만 만발하면 배곯기 십상이며, 사실 가을에 피는 꽃은 그다지 많지도 않다.
가을을 넉넉하게 해주는 과실 중 하나인 호두는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한데 이 호두를 호도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천안의 명물로 이름난 호두과자도 그 포장지에는 대부분 호도과자라고 쓰여 있다. 사실 호두는 원래 호도가 맞는 말이었다. 이 나무의 원산지가 중국인 까닭에 예전에는 오랑캐의 복숭아라는 뜻에서 호도(胡桃)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말 중 일부에서 모음조화의 규칙성이 무너지며 호도보다는 호두가 더 큰 세력을 갖게 됐고, 결국 사투리였던 호두가 원말 호도를 밀어내고 당당하게 국어사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여기서 재미난 질문을 하나 한다. 호도는 과일일까? 여러 사전들의 뜻풀이를 살펴보면 분명 과일이다. 밤도 도토리도 잣도 나무나 채소 따위에서 얻는, 사람이 먹는 열매이니 과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모든 열매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과일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언중 가운데 열에 아홉은 포도술․사과술․살구술 등을 일컬어 과일주라고 하는데, 국어사전들은 그렇게 쓰면 안돼요. 과실주라고 해야지요 하고 가르친다.
사전들의 이런 생뚱한 고집이 북한에서 포도술․사과술․살구술 따위를 과일술로 부르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이다. 과일과 과실이 같은 말이라고 하면서, 과실주만 바른 말이고 과일주는 틀린 말이라고 하니…. 허, 그것 참….
4.촛불이요와닫아주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김동명(金東鳴)님의 내마음은이란 시에서 요와 오가 한글 맞춤법에 따라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말 가운데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잘못 적는 말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요와 오이다. 각종 서비스 업체 입구에 들어서면 어서 오십시요. 안녕히 가십시요라고 쓴 문구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들은 표기가 잘못된 것으로, 바른 표기는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이다.
이처럼 오와 요의 오용 사례가 우리 주변에서 눈에 자주 띈다. 항상 쓰면서도 발음이 비슷해 꽤 헷갈리는 말이다. 이들의 차이점과 그 용례를 살펴보자.
▲~오: 종결형에서 쓰이는 어미는 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오로 적는다. 또한 모음으로 끝나는 어간에 붙어, 하오할 상대에게 의문․명령․설명․베풂을 나타내거나 높임의 ~시 밑에 쓰이어, 현재의 동작이나 상태에 대한 서술이나 의문 또는 어찌하라고 시키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이다(받침 밑에서는 반드시 매개모음 으가 들어간다). 복많이 받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날씨가 얼마나 따뜻하오 이것은 책이오 무얼 먹으오 빨리 집으로 돌아가오 따님이 참 예쁘오 곧 돌아올 것이오 등이 그 예다.
▲~요: ①이다/아니다의 어간에 붙어, 사물이나 사실을 나열할 때의 연결어미이다. 이것은 감이요(이고), 저것은 사과이다. ②용언(동사․형용사)의 어미나 부사어 등에 붙어, 말하는 사람이 듣는 이에게 존대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우리가 이겼어요 빨리요, 빨리. ③모음으로 끝난 체언 밑에 쓰이는 하오체의 종결형, 서술격 조사이며 무엇을 단정하여 일러주는 것과 묻는 뜻을 나타낸다. 요게 바로 다람쥐요. ④서술어의 어미에 붙어, 존칭이나 주의를 끌게 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벌써 갔는 걸요. ⑤맺음 끝 뒤나 어미 뒤에 덧붙어, 듣는 이를 높이는 뜻을 나타낸다. 좋지요 새싹이 돋는군요 그만둡시다요 어서 일어나요. ⑥낱말의 이은 말이나 문장 끝에 붙어, 듣는 이를 높이면서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는 조사이다. 마음은요, 더없이 좋대요
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책이/오 먹으/오 따뜻하/오 등에서 어미 오를 빼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빨리/요 좋지/요 그만둡시다/요 어서 일어나/요 등에서는 조사 요를 빼도 말이 통한다. 이는 요가 첨삭적 성격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나 요를 안 붙인 상태에서 말이 성립하면 조사 요를, 안 되면 어미 오를 붙이면 되겠다.
5.금슬 좋은 부부는 없다
부부간의 화목한 즐거움을 뜻하는 말은 琴瑟之樂이고, 이의 준말이 琴瑟이다. 이때의 琴은 거문고 금이고, 瑟은 큰 거문고(비파) 슬이다. 즉 琴瑟은 거문고와 비파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알근달근하게 사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한데 이 琴瑟을 한글로 쓸 때는 금슬이 아니라 금실로 적어야 한다. 琴瑟之樂도 금실지락이지 금슬지락이 아님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는 우리말법 중 하나인 전설모음화의 영향으로, 금슬보다는 금실로 발음하기가 편해 대부분의 언중이 금실로 소리내고 있음을 살펴 금실을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한자말을 한글로 적을 때 한자말의 원래 소리가 변하는 것이 더러 있다. 初生달도 그중 하나다. 어두운 밤길에 초생달만 을씨년스럽게 떠 있다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초생달은 뜨지 않는다. 오직 초승달만 뜰 뿐이다. 한자말 生은 우리말에서 승으로 소리가 변하는 예가 더러 있다. 이 生이 변한 말 이승이 그러하고, 저 生이 변한 말 저승도 그러하다. 이 또한 전설모음화의 영향이다.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에 전설모음화의 문법적 논리까지 담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음력으로 그 달 첫머리의 며칠 동안을 이르는 말은 초승이고, 그때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바른말이라는 것쯤을 알고 살자.
이밖에 陰달을 응달로 쓰는 것이나, (사람들을) 전쟁이나 난리통에 마구 죽이는 것을 일컫는 殺戮을 살육으로 적는 것, 국악에 쓰이는 타악기인 杖鼓를 장구로 쓰는 것, 술을 마신 뒤 속을 푸는 일을 뜻하는 解●을 해장으로 쓰는 것도 한자의 본음과 한글 적기가 다른 말들의 예이다.
한편 어떤 낱말은 상황에 따라 한자말의 원래 소리로 적거나 달리 적기도 한다.
怒는 성낼 노자다. 분노(憤怒)․격노(激怒) 등이 怒자의 쓰임이다. 한데, 이 怒자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뜻하는 喜怒哀樂에서는 희로애락
으로, 한글 적기가 달라진다. 이는 활음조(滑音調)에 의한 것인데, 희노애락보다는 희로애락이 말하기 쉽고 듣기에도 좋아 그렇게 적도록 한 것이다. 크게 성내는 것을 일컫는 大怒도 대노가 아니라 대로로 써야 한다. 결국 怒는 받침이 없는 말 뒤에서는 로로 적고, 받침이 있는 말 뒤에서는 노로 적는다.
諾도 마찬가지다. 諾은 허락할 낙자다. 한데 이 한자 역시 받침이 없는 말 뒤에서는 락으로, 한글 적기가 달라진다. 허락(許諾)․수락(受諾) 등이 그 예이다. 이 허락․수락 등 때문에 應諾과 承諾을 응락․승락으로 쓰는 일이 흔한데, 이는 응낙․승낙이 바른말이다.
6.새털보다는 쇠털이 더 많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함부로 갈겨 써 놓은 것을 얘기할 때 게발새발 개발새발 개발쇠발 게발소발 따위의 말을 쓰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아무리 국어 사전을 뒤져보아도 이들 낱말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죄다 표준어가 아니기 때문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다면 ○○○○로 써 놓아 무슨 글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의 문장에서 ○○○○에 들어갈 바른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괴발개발이다. 한데 사실 이 낱말은 무척 낯설다. 개야 진돗개․삽살개․풍산개 따위의 그 개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괴가 무엇을 뜻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괴는 고양이다. 괴는 고양이의 옛말이며, 강원․경상도 지방의 사투리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괴발개발은 고양이 발자국과 개의 발자국이 아무렇게나 찍혀 있는 것처럼 어지럽게 써 놓은 글씨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 게나 새는 땅바닥에 발자국을 남길 일이 드물고, 쇠(소․牛)는 띄엄띄엄 큼직하게 발자국을 남기는 동물인데,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엉뚱한 데에서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는 셈이다.
새나 소와 관련해 잘못 쓰는 말이 또 하나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을 비유적으로 일러 새털같이 하고 많은 날이라고 할 때의 새털이 바로 그것이다. 새털같이 많은 게 시간이다. 쉬엄쉬엄 일하렴 따위의 문장에서 새털같이 많은…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사실 새에게는 털이 그리 많지 않다. 머리 부위에 털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 독수리도 있다.
하고 많음을 나타내려면 새보다는 좀더 털이 많은 짐승을 갖다대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쇠(소)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쇠털을 뽑아서 다시 제자리에 꽂
아 넣는다는 뜻으로, 융통성이 전혀 없고 고지식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쇠털을 뽑아 제 구멍에 박는다는 속담에서 보듯 하고 많음을 나타낼 때에는 쇠털이 적격이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이 아니라 쇠털같이 많은 나날이라는 얘기다.
한편 소의 가슴에 붙은 살과 뼈를 총칭하여 양지머리라고 하는데, 이 양지머리 복판에 붙은 희고 단단하며 기름진 고기는 그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이 고기를 파는 집들의 차림표를 보면 차돌바기 차돌배기 차돌박이 등 그 표기가 엿장수 마음대로다. 하지만 이들 중 차돌박이만 바른말이다. 몸에 점이 박혀 있는 점박이, 오이에 소(통김치 등의 속에 넣는 고명)를 박아 넣은 오이소박이에서 보듯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것이 박혀 있는 고기는 차돌박이다. 또 식육으로 쓰이는 소의 혀는 소혀 쇠혀가 아니라 소서 쇠서이다.
7. 창난젓과 명란젓
젓갈은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다. 김장철로 접어든 요즘 포구에 나가 보면 각종 젓갈이 풍부하다. 종류도 다양하여 꼴뚜기젓․멸치젓․명란젓․밴댕이젓․새우젓․어리굴젓․조개젓․조기젓․창난젓․황석어젓 등이 있다.
생선의 살․알․창자 따위를 소금에 절여 삭힌 젓갈은 오랫동안 저장해도 변할 염려가 없어 한번에 다량으로 구입해 두고두고 먹는 가정이 많다. 김장할 때 주부들이 제일 많이 찾는 젓갈은 새우젓․멸치젓․황석어젓이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새우젓은 대개 표준말 그대로 쓰이고 있으나, 멸치젓과 황석어젓은 지방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멸치는 몸이 늘씬하고 조금 둥글며, 등은 검푸르고 배는 은백색이며 길이는 13㎝쯤 된다. 멸치로 담근 젓을 멸치젓이라고 한다. 멸치를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는 멸치수제비, 멸치조림 등이 있다. 멸치는 지역에 따라 메루치(경기지방), 메리치(경상․충청․강원지방), 며루치 며르치(함경도지방), 멜치(전라․황해․함경도지방) 등으로 쓰이나 이는 모두 방언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황석어(黃石魚)는 참조기와 같은 말이다. 몸 길이가 30㎝ 가량으로 꼬리는 가늘고 길며, 입술은 불그스름하고, 몸빛은 엷은 회색을 띤 민어과의 바닷물고기이다. 황석어를 황석수어(黃石首魚)라고도 부르며, 특히 말린 것은 굴비라고 한다. 황석어도 지방에 따라 황새기(전북․충남지방), 황세기(충남지방) 등으로 불리나 방언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황석어를 소금에 절여 맛을 낸 것을 황석어젓 또는 황석어해(黃石魚●)라고 한다. 이들도 황새기젓 황세기젓 등으로 불리나 표준말이 아니다. 특히 주의할 것은 황석어와 참조기는 같은 말이지만, 황석어젓을 참조기젓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밖에 창난젓과 명란(明卵)젓이 있다. 이 둘도 언중들이 표기할 때에 헷갈리는 듯하다. 창난젓은 명태의 창자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쳐서 만든 것으로, 태장해(太腸●) 또는 태장젓이라고도 부른다. 이 창난젓을 창란젓으로 잘못 표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언중들이 창난젓이 알(卵)을 원료로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한데, 창난젓은 알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명태의 창자로만 만든 것이다.
명란젓은 명태알을 소금에 절여 담근 것을 이르는 말로, 이는 한자어 명란(明卵)에 젓이 연결된 복합어이다. 따라서 표기도 명란젓으로 해야 맞다. 이로 미뤄볼 때 멸치(젓) 황석어(젓)=참조기=황석수어=굴비(말린 것) 창난젓=태장해 명란젓이 표준어임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바다에서 나는 미물일지라도 이름만은 제대로 불러주자.
8.알타리김치가 아닌 총각김치
올해는 여느 해보다 겨울이 한달 일찍 찾아왔다고 한다. 요즘 월동 준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장김치 담그기로 주부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김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얼마 전에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2002 김치엑스포가 성황리에 열려 국제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김치는 종류도 40여가지나 되며, 크게 보통김치와 김장김치로 나눈다. 보통김치는 오래 저장하지 않고 비교적 손쉽게 담가 먹는 것으로 갓김치․나박김치․양배추김치․열무김치․오이소박이․파김치 등이고, 김장김치는 겨우내 저장해 두고 먹으며 고들빼기김치․깍두기․동치미․보쌈김치․통배추김치․총각김치 등이다.
계절에 따라서도 여러가지 김치를 담가 먹는데, 봄철에는 나박김치․봄배추김치․짠지, 여름에는 열무김치․오이소박이, 가을에는 햇배추김치, 겨울에는 김장김치가 주류를 이룬다. 요사이는 언제나 채소를 구할 수 있어 이와 같은 계절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김치냉장고가 나와 항상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시장에 가보면 상인들이 알타리무 한 단에 ○○○원이라고 써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나는 배추김치보다 알타리김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언중들도 있다. 앞에 쓰인 알타리무 알타리김치는 비표준어로, 총각(總角)무 총각김치가 맞는 말이다. 이 총각무를 지방에 따라 고달무 달랑무 알무라고도 하는데 이들 역시 표준어가 아니다. 총각무는 뿌리가 잘고 무청이 연한 무를 말하는데, 무청이 달린 채로 담근 것을 총각김치라고 한다.
예부터 써오던 알타리무 알타리김치가 총각무 총각김치로 바뀐 것은 표준어규정 제22항의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력을 잃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바뀐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개다리-밥상이 개다리-소반(小盤)으로, 맞상이 겸상(兼床)으로, 높은-밥이 고봉(高捧)-밥으로, 홑-벌이 단(單)-벌로, 마바릿-집이 마방(馬房)-집으로, 민주-스럽다가 민망(憫●)-스럽다로, 구들-고래가 방(房)-고래로, 뜸-단지가 부항(附缸)-단지로, 멧-누에가 산(山)-누에로, 무삼이 수삼(水蔘)으로, 불-돋우개가 심(心)-돋우개로, 둥근-파가 양(洋)-파로, 어질-머리가 어질-병(病)으로, 군-달이 윤(閏)-달로, 잇-솔이 칫(齒)-솔로 바뀐 것 등이다.
아울러 아직도 무를 무우라고 잘못 쓰고 있는 언중들이 있으나 무가 표준어이다
9. 우리 음식에 된장찌게 란 없다
우리 국민은 예로부터 찌개를 즐겨 먹는다. 찌개는 종류도 다양해 김치찌개, 동태찌개, 된장찌개, 버섯찌개, 부대찌개, 생선찌개, 생태찌개, 순두부찌개, 섞음찌개, 참치찌개 등이 있지만 그 가운데 어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가 단연 으뜸일 것이다. 고기나 채소에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끓인 된장찌개는 우리의 대표적인 고유 음식이다. 된장찌개는 콩이 주원료로 단백질이 풍부하며 항암 효과도 있다는 학계의 의견에 따라 현대인들에게 건강음식으로 각광을 받는다. 직장인들이 점심때 가장 많이 찾는 음식 또한 된장찌개가 아닌가 한다.
식당에 걸려 있는 차림표를 보면, 김치찌게/김치찌개 동태찌게/동태찌개 된장찌게/된장찌개 버섯찌게/버섯찌개 부대찌게/부대찌개 생선찌게/생선찌개 생태찌게/생태찌개 순두부찌게/순두부찌개 섞음찌게/섞음찌개 참치찌게/참치찌개 등으로 마구 혼란스럽게 적혀 있다.
이렇게 찌게와 찌개가 마구 섞여 쓰이는 것은 접미사 -개와 -게의 정확한 발음이 선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 예시어의 바른 말은 김치찌개 동태찌개 된장찌개 버섯찌개 부대찌개 생선찌개 생태찌개 순두부찌개 섞음찌개 참치찌개이다.
찌개는 고기나 채소에 간장․된장․고추장․젓국 등을 치고 뚝배기나 작은 냄비에 담아 온갖 양념을 하여 밥솥에 쪄 내거나 끓인 것을 말한다. 찌개의 어원은 찌다의 어간 찌에 접미사 개가 붙어 된 말로서, 옛날에는 끓이는 것보다 찌는 것을 더 중요시한 듯하다.
또 소의 살코기를 푹 고아 찢어 고춧가루․파․마늘․간장․후춧가루로 양념하여 국물에 넣고 끓인 탕으로 육개장이 있다. 일부 언중들이 육개장을 닭고기를 원료로 해서 만든 음식으로 착각하여 육계(肉鷄)장으로 부르는 듯하나, 이는 쇠고기를 주 원료로 해서 만든 음식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육개장을 육게장이라고도 부르나 방언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찌개 종류는 모두 -개가 붙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개와 -게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할지를 놓고 혼동을 일으키는 말들이 많다. 동사의 어근에 접미사 -개가 붙어 명사가 된 말로는 가리개 깔개 꽂개 꾸미개 날개 노리개 뜨개 덮개 마개 밑씻개 발감개 베개 빗치개 싸개 쓰개 얼개 지우개 짜개 등이 있으며, -게가 붙은 것으로는 뜯게 지게 집게 등이 있다. 집게의 합성어로는 무집게 방울집게 부집게 족집게 집게발 집게손가락 집게발톱 집게벌레 등이 있다
10. 평양감사는 시켜줘도 못한다
이맘때면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구랍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 즈음에 쓰이는 구랍은 바른 쓰임에서 벗어난 말이다.
구랍은 오랠 구(舊)와 납향 랍(臘)으로 이뤄진 한자말이다. 이때의 납향(臘享)은 납일에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형편과 그 밖의 일들을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일컫는다. 납일(臘日)은 처음에는 동지 뒤의 셋째 술일(戌日)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후에는 동지 뒤 셋째 미일(未日)로 삼았다. 동지 뒤의 셋째 미일은 섣달에 속한다. 이런 까닭에 랍은 섣달 랍으로도 쓰이는데, 구랍이라고 하면 지난해의 섣달(음력 12월)이다. 오늘(6일) 현재를 기준으로 지난 2일까지는 동짓달이었고, 3일부터 31일까지는 섣달(납월․臘月)이 된다. 결국 다음달 1일, 즉 설날을 기점으로 하여 이달 3일부터 31일까지를 구랍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냥 지난해 12월이라고 하면 편할 것을, 굳이 읽기도 힘들고 뜻도 맞지 않는 구랍을 고집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구랍을 잘못 쓰는 것은 臘자가 섣달을 뜻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자말 중에서 잘못 쓰는 말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평양감사다.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을 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평양감사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다. 왜? 평양에는 예부터 감사라는 벼슬을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종2품의 벼슬인 감사(監司)는 오늘날 도지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평양은 도(道)가 아니라 전국 5곳의 도호부(都護府) 중 하나였고, 그곳의 수장은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였다. 즉 평양 관아의 수장은 도호부사이지 감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평양감사의 바른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평안감사(平安監司)다.
오늘날 경기도의 도청 소재지는 수원시이고, 조선시대 8도 가운데 하나인 평안도의 감영(監營․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이 있던 곳은 평양이다. 경기도 도지사가 수원시에 있는 경기도청에서 직무를 본다고 해도 그를 수원지사로 부를 수 없듯이, 평안도의 감사가 평양에 머무르며 백성을 보살핀다고 해도 그를 평양감사로 부를 수는 없다.
이밖에 장기에서 두 말이 한꺼번에 장군을 부르는 일을 뜻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을 양수겹장으로, 남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달아남을 뜻하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야밤도주로 잘못 쓰는 것도 한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탓이다.
11. 봄의 전령 아지랑이를 기다리며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가는 길목의 강추위 속에서도 봄날 들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상상하면 추위가 한층 덜 느껴지고 멀지 않아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시인 윤곤강님의 시 아지랑이를 감상해보자.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문제는 일부 언중들이 아지랑이를 비표준어인 아지랭이로 부르거나 쓰는 데 있다. 앞에 인용한 시도 당시에는 아지랭이로 표기됐다. 표준어규정 제9항 붙임1은 다음 단어는 ㅣ 모음 역행 동화(어떤 음운이 뒤에 오는 음운의 영향을 받아서 그와 비슷하거나 또는 그와 같게 소리가 나는 것)가 일어나지 아니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하면서 아지랭이가 아닌 아지랑이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또 연말이면 길거리에서 불우이웃돕기 행사로 펼쳐지는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자선남비로 잘못 알고 있는 언중들이 많다. 이같이 냄비로 표기하는 것은 같은 항의 ㅣ
모음 역행 동화 현상에 의한 발음은 원칙적으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되, 다만 다음 단어들은 그러한 동화가 적용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데 따른 것이다. 내기 냄비 동댕이치다가 그 예로, 서울내기 시골내기 신출내기 풋내기 자선냄비 등은 그에 따른 말들이다.
어린이를 돌보는 시설인 놀이방의 이름도 개구장이 놀이방이라고 하나, 이는 개구쟁이 놀이방으로 써야 올바른 표기가 된다. 이같은 현상은 같은 항 붙임2에서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쟁이가 붙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규정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즉 간판장이 기와장이 대장장이 도배장이 땜장이 미장이 옹기장이 유기장이 토기장이와 같이 공장(工匠) 등 기술자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장이를 붙인다.
이에 비해 개구쟁이 거짓말쟁이 겁쟁이 고집쟁이 골목쟁이 관상쟁이 난쟁이 담쟁이 덩굴 떼쟁이 멋쟁이 무식쟁이 발목쟁이 빚쟁이 소금쟁이 심술쟁이 요술쟁이 욕심쟁이 월급쟁이 점쟁이 중매쟁이 허풍쟁이 등 사람의 직업․성질․습관․행동․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나, 갈고쟁이 고쟁이 곤쟁이 모쟁이 쑥부쟁이 등 무정물과 곤충․식물의 이름에는 쟁이를 붙인다.
따라서 안경을 만드는 사람은 안경장이, 안경을 쓴 사람은 안경쟁이, 갓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갓장이, 갓을 멋있게 쓴 사람은 갓쟁이로 각각 의미에 따라 구별해 쓴다
12.쑥맥은 숙맥들이나 하는 말
얼마 전 얻은 속병 하나가 쉬 낫지를 않는다. 까닭 모르게 언뜻언뜻 울화가 치민다. 한 신문의 신출내기 기자가 쓴 글을 보고서 얻은 병이다. 그는 자신이 우리 시대의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쓰는 말이 지금의 표준어규정과 갈등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먼 훗날 우리 시대의 다른 용법으로 다시 사전에 오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과연 그런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사전이 만들어지고, 일기장에나 담길 표현법을 모범으로 삼을 한심한 사전이 있겠는가 말이다. 어느 대통령이 경제를 갱제로 소리냈다고 해서 갱제가 또 다른 용법으로 사전에 오를 수 있을까. 다른 대통령은 우리말 감색을 왜(倭)말 곤색으로 말했는데, 훌륭한 나라님이 한 말이니 못난 백성은 그냥 따라야 하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말과 글의 주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이다. 그들을 언중이라고 한다. 이런 언중의 표준적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한때의 대중적 신뢰를 악용해 내 말이 바른말이요, 앞으로 이 말이 바른말이 될 것이오라고 못박는 것은 언중에게서 말과 글을 빼앗아 가는 지식의 독재다.
사실 나도 그 신출내기 기자의 글을 자주 읽는다. 그의 글에는 나름의 통쾌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자 자체만 보면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기 힘들다. 그의 글에서 외래어표기법은 지켜서는 큰일 날 죄악으로 비친다.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규정은 엿장수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약속쯤으로 보인다. 군데군데 왜말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 신출내기 기자처럼 어떠한 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지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쑥맥이 널리 쓰인다. 길동이 녀석, 알고 보니 연애 한번 못한 쑥맥이더구먼 따위가 그 예이다. 하지만 이때의 쑥맥은 바른말이 아니다. 순우리말로 생각되는 쑥맥의 바른말은 한자말 숙맥이다.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인데, 숙맥불변은 글자 그대로 콩(菽)과 보리(麥)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콩인지 보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과, 중국의 수도가 베이징인지 뻬이징인지 모르고 탓이 좋은 의미의 말인지 나쁜 의미의 말인지 모르는 신출내기 기자 중에서 누가 더 숙맥일까? 도 긴 개 긴이다.
재원(才媛)도 자주 틀리는 한자말이다. 홍길동 선수는 한국 남자 배구의 세계 정상 정복을 이끌 재원이다 따위로 쓰는 일이 흔한데, 재원은 뛰어난 능력이나 재주가 있는 젊은 여자를 뜻한다. 남자를 가리킬 때는 재원이 아니라 재자(才子)라고 해야 한다. 남자에게 재원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성폭행이다.
13.회집에는 膾가 없다
해안가를 거닐다 보면 주변에 횟집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간판을 보면 거의가 ○○회집으로 표기되어 있다. 단언컨대 ○○회집은 회(膾)를 팔 자격이 없다. 그 이유는, 잘못된 우리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횟집으로 당장 간판을 바꿔달아야 한다. 또 수도물 아껴쓰기라는 표어를 자주 본다. 한자어 水道와 우리말 물의 합성어를 수도물과 수돗물로 일부 언중들이 넘나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글맞춤법은 한자어+우리말이거나 우리말+한자어로 된 합성어에 사이시옷(ㅅ)을 붙일 때는 다음 세 가지 방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앞말이 받침이 없는,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합성어에 ㅅ을 붙이는 첫번째는 두 말 사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로 나는 경우로, 귀+병(病)을 귓병, 배+병(病)을 뱃병, 전세(傳貰)+집을 전셋집, 새+강(江)을 샛강, 태(胎)+줄을 탯줄, 터+세(勢)를 텃세, 해+수(數)를 햇수, 회(灰)+가루를 횟가루, 회(膾)+집을 횟집으로 적는 것이 그 예이다.
두번째는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로, 계(契)+날을 곗날, 제사(祭祀)+날을 제삿날, 퇴(退)+마루를 툇마루, 양치(養齒)+물을 양칫물 등으로 적는다.
세번째는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것으로, 가외(加外)+일을 가욋일, 예사(例事)+일을 예삿일, 후(後)+일을 훗일 등으로 적는 것이 그 예이다.
횟집은 사이시옷 규정 첫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회+집은 회찝으로 발음되므로 횟집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도(水道)+물은 두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앞말에 받침이 없고, 뒷말의 첫소리가 ㅁ으로 시작된다. 물론 이 말은 사람에 따라 수도물이나 수돈물로 다르게 발음할 수도 있다. 이 두 발음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따라 ㅅ 받침을 붙일 수도 있고, 안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합성어 수도+물은 ㄴ 소리가 덧나는, 즉 수돈물을 표준발음으로 보고 수돗물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므로 앞의 예문은 수돗물 아껴쓰기로 해야 어법에 맞다.
이외에도 자주 틀리는 말들이 있다. 초점(焦點)을 촛점으로, 대가(代價)를 댓가로, 시가(時價)를 싯가로, 이점(利點)을 잇점으로 잘못 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래 두 음절로 된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곳간(庫間)․셋방(貰房)․숫자(數字)․찻간(車間)․툇간(退間)․횟수(回數) 여섯 단어만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그 외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
14.칠칠맞은 사람이 되자
신문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일 처리가 늘 깔끔했던 전산실 직원에게 아무 생각 없이 참, 일을 칠칠맞게 한다고 말했다가 온갖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옆 사람들도 끼어들어 당신은 얼마나 똑똑해서 그러느냐며 가시돋친 말들을 쏟아놓는 통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한동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국어 사전을 펼쳐 보이며 칠칠하다의 제 뜻을 설명한 후에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사실 주변에서, 남의 꼼꼼하지 못한 일 처리를 탓하면서 너는 왜 그리 칠칠하냐거나 칠칠맞게 어디에서 잃어버린 거야 따위로 말하는 것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
은 야단치려는 의도와 달리 되레 칭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칠칠하다는 푸성귀가 길차다 (하는 품이) 막힘이 없고 민첩하다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다 등의 뜻을 지닌 말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빈정거리거나, 남의 잘못을 야단칠 때에는 칠칠하지 못하다 칠칠찮다(칠칠하지 않다) 따위로 표현해야 한다.
칠칠하다와는 사례가 좀 다르지만, 꼭 써야 할 -못하다를 생략함으로써 불구(不具)의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이 있다. 안절부절이다 안절부절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표준어규정 제25항은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고 규정하면서 안절부절하다와 안절부절못하다 중 안절부절못하다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했다. 따라서 안절부절하지 말고 좀 진득하게 기다리거라 따위 말은 안절부절못해하지 말고 좀 진득이 기다리거라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특히 아버지는 집을 나간 철수 때문에 안절부절이다 따위 문장에서 안절부절이다는 자동사인 안절부절못하다의 허리를 싹둑 자른 뒤 체언에나 붙는 조사 -이다를 갖다 붙인 불구의 말이다.
표준어규정 제25항은 또 일정한 주견이나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다의 뜻을 지닌 말로는 주책없다만 표준어로 삼고, 주책이다는 버리도록 했다. 따라서 박영감은 참 주책이다는 박영감은 참 주책없다로 쓰고 말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빙그르 돌았다거나 겉모양만 번지르하다란 문장의 빙그르 번지르하다도 안절부절과 매한가지로, 조금 심한 표현이지만 병신 말이다. 미끄러지듯 한바퀴 도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은 빙그르르가 바른말이고, 말 따위를 실속없이 겉만 그럴 듯하게 하는 모양 또는 미끄럽고 윤이 나는 모양을 뜻하는 바른말은 번지르르하다이기 때문이다. 즉 빙그르 번지르는 마치 꼬리를 떼어내고 달아나는 도마뱀의 우스운 꼴만큼이나 볼썽사나운 말이다.
15.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 안나
고요하여라/ 어린 초목(草木)들 위에/ 엉기는 이슬,/ 만상(萬象)에 향유 입히는 햇빛,/ 안개와 아지랑이,/ 비단실 솔솔 푸는/ 바람도/ 아무 말 없어라// 다만 고요하여라/ 천둥소리도 하나 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영혼과 영혼 사이/ 왕래의 길을 트느니
시인 김남조(金南祚)님의 시 화답(和答)의 1․2연이다. 인용된 시 가운데 천둥이 시어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천둥을 우레라고도 한다. 우레와 천둥은 뇌
성(雷聲)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현상(放電現象)을 의미한다. 문제는 일부 언중들이 우레를 한자어로 착각해 우뢰(雨雷)로 표기하는 데 있다.
우레의 변천과정을 보면, 울다(鳴)의 어간 울-에 접사 -게가 붙은 울게가 ㄹ음 아래에서 ㄱ이 탈락하여 울에가 된 것이다. 이 울에가 우레로 변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우렛소리를 하늘이 우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같은 현상은 벌레의 어원에서도 볼 수 있다. 벌레도 원래는 벌게로, ㄱ음을 갖고 있던 것이 ㄹ음 아래에서 ㄱ이 탈락한 것이다. 이것이 연철되지 아니한 벌에가 되고 여기에 ㄹ음이 첨가해 벌레가 된 것이다. 앞에서 보듯이 우레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레는 한자어 비 우(雨) 우뢰 뢰(雷)자에 힘입어 조선어 표준어 모음에서 우뢰를 표준어로 삼았다. 아직도 일부 언중들이 우뢰나 우래로 쓰고 있다. 그러나 표준어 규정에서는 우뢰를 버리고 고유어인 우레를 표준어로 정했다. 이때 천둥도 함께 복수 표준어로 쓰도록 했다. 한자 천동(天動)은 천둥의 원말로, 천동이라고 쓰거나 발음하면 안된다. 우레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천둥이 바른말이다.
이처럼 한자음에서 모음 ㅗ가 ㅜ로 바뀐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자도(紫桃)가 자두로, 호도(胡桃)가 호두로, 거동(擧動)이 거둥(임금의 나들이)으로, 통소(洞簫)가 퉁소로, 장고(杖鼓)가 장구로, 호초(胡椒)가 후추로, 고초(苦椒)가 고추로, 수종(水腫)다리가 수중다리로, 포주(●廚)가 푸주로, 주초(柱礎)가 주추로 변한 것 등이다.
천둥의 합성어로는 천둥바라기(=천둥지기: 오직 빗물에 의해서만 경작할 수 있는 논), 천둥벌거숭이(철없이 함부로 덤벙거리는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가 있으며 우레의 합성어로는 우렛소리가 있다. 우레가 쓰인 예문으로는 그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청중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의 훌륭한 연기는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등이 있다. 우뢰 우래 천동은 비표준어이니, 표준어인 우레와 천둥만 쓰도록 해야겠다.
16.이오뒤엔 마침표, 이요뒤엔 쉼표
출입문에 큼직하게 어서 오십시요 안녕히 가십시요라고 써 놓은 음식점들이 많다. 이런 문구는 도․시․군의 경계 지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오십시요나 가십시요는 참 우스운 꼴의 말이다. 오다나 가다에, 모
음으로 끝나는 용언이나 이다의 어간에 붙어 화자가 행동․상태 및 주체를 존경함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여 오시 가시를 이룬 뒤, 다시 여기에 모음으로 끝나는 동사의 어간에 붙어 합쇼할 상대(존대할 상대)에게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형 어미 -ㅂ시오를 더하면서, 오 자리에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요를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소 헷갈리는 이 내용을 쉽게 정리하면, 존대를 나타내는 말 시에다 존대할 사람에게 명령식으로 하는 말 -ㅂ시오를 더하면서, 우리말법에 벗어난 -요를 잘못 썼다는 얘기다. 즉 존대+명령+존대 꼴의 말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오십시요 가십시요는 어떻게 써야 바른말이 될까. 이때는 오다 가다의 어간에 -ㅂ시오(준말은 -ㅂ쇼) 시오 세요를 더해 옵시오(옵쇼) 오시오 오세요 따위로 쓰면 된다. 이때 -ㅂ시오와 시오에서는 시가 존대의 뜻을 나타내고 세요에서는 요가 존대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시요는 존대를 의미하는 형태소가 마치 아첨하듯 쓸데없이 2개나 들어간 말이다.
아첨을 잘 하는 사람 치고 인간성 좋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출입문에 이렇듯 아첨해 놓은 집에서는 밥도 술도 팔아주지 말자. 그래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고 우리 말글이 산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보조사 요는 우선 존대를 나타낼 때 쓰이며, 의문이나 물음을 나타낼 때도 쓰인다. 한데 이러한 요를 잘못 쓰는 일이 흔하다. 이집 주인이 누구요? 내가 주인이요와 너, 내 책 봤니? 책이요?에서 주인이요와 책이요가 그런 예 가운데 하나다. 이때는 주인이오 책요?가 바른말이다.
보조사 요를 잘못 쓰는 것은 -이오와 -이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오와 -이요를 구분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이오는 종결형 어미이고 -이요는 연결형 어미이다. 즉 -이오 뒤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만 -이요 뒤에는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공책이오라는 문장만 외우고 있으면 고민 끝이다.
한편 -요 뒤에 마침표가 찍힐 때는 그 요를 빼도 문장이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 좋지요 → 그러면 좋지 천만에요 → 천만에 우리 집에 가세요 → 우리 집에 가세 따위가 그 예이다.
17. 잘못 쓰고 있는 한자말
말글생활을 하면서 한자의 의미를 몰라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이 의외로 많다.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음을 표현할 때, 흔히 사사를 받다라고 하는데, 이는 사사하다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사사(師事)라는 한자의 뜻은 스승으로 섬김.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이다. ○○ 선생에게 거문고를 사사하다 또는 ○○○ 박사를 사사했다 등과 같이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전수를 받다라는 말도 자주 쓴다. 전수(傳受)는 전하여 받음의 의미이므로, 기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웠다라는 것을 나타낼 때는 ○○○로부터 기술을 전수했다로 해야 맞는 문장이 된다. 물론 전수(傳授)라는 동음 이의어도 있지만 이도 (기술이나 지식을) 전하여 주다라는 뜻이므로, ○○○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다가 아닌 ○○○에게 기술을 전수하다로 써야 한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절반이 넘었을 때 흔히 과반수를 넘었다라고 쓴다. 여기서 과반수(過半數)는 절반이 넘는 수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미 넘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과반수만으로도 의미가 통한다. 예를 들어 투표자의 반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을 경우,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졌다라고 하면 된다.
현안 문제라는 말도 자주 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이날 회의에서는 북핵 현안 문제들이 쟁점으로 떠올랐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는 이날 회의에서는 북핵 현안들이 쟁점으로 떠올랐다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현안(懸案)이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은 문제, 또는 의안이므로 문제라는 의미를 그 단어 안에 포함하고 있다. 현안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기 때문에 문제는 필요없는 군더더기이다.
뇌의 급격한 혈액순환 장애로 발병하는 뇌졸중을 뇌졸증이라고 한다. 뇌졸증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합병증(合倂症)이나 통증(痛症)이라는 말에서처럼 병의 증세를 나타내는 말인 증(症)이라는 글자에 힘입어 뇌졸증이라고 쓰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증세 증(症)자가 아닌, 가운데 중(中)자를 써서 뇌졸중(腦卒中)이라고 한다.
사열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 부대장이 부대원들의 사열을 받았다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부대장은 부대원들을 사열했다라고 써야 맞다. 사열(査閱)이란 검열이나 조사를 위하여 실지로 하나 하나 살펴봄, 또는 군에서 사열관이나 지휘관 등이 장병을 정렬시켜놓고 군사교육의 성과 및 장비 유지 상태 등을 실지로 살펴봄을 뜻한다. 그러므로 부대장이 부대원들의 사열을 받았다는 거꾸로 부대장이 부대원들에게 살펴봄을 당하는 꼴이다. 대통령이 부대를 사열했다 등으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18.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별빛이 엷게 사위어 가고 있다.// 새롭게 탄생하는 새벽의 보석./ 보석 속에 날으는 새, 새, 새…// (중략)// 새벽의 창은 온통 열어 젖혀져 있다/ 여울져 싱싱한 햇살의 내음-/ 거기 비껴 날으는 고운 깃털의 주인들.// 서로 사랑하고 때론 서로 다투어도/ 새들은 야심도 권리도 모른다.// 신(神)이 주신 것으로 부족하기 때문-/ 없으면 없는 그대로 족하기 때문-// 새들의 해돋이는 눈부신 보석/ 보석 속은 하나의 커다란 정토(淨土).
김양식(金良植)님의 새들의 해돋이란 시다. 인용된 시에 날으는 새가 시어로 쓰였다. 날으는 새의 올바른 표기는 나는 새이다. 새나 곤충이 날개를 움직이거나, 비행기가 동력 또는 부력을 이용하여 공중을 달리다의 뜻을 이르는 날다(飛)의 관형형(활용형)은 나는이 바른말임에도, 매개모음 으가 들어간 날으는으로 일부 언중들이 잘못 알고 있다.
날다는 활용할 때 어간 끝의 ㄹ이 -ㄴ, -ㅂ니다, -오- 또는 존경의 -시- 앞에서 탈락한다. 이런 현상을 ㄹ불규칙 활용이라고 한다. 즉 날다는 ㄹ을 가진 용언으로 날다/날고/날지/날면에서는 ㄹ을 유지한 형태로, 나니/나는/납니다/나오/나시오에서는 ㄹ이 탈락한 형태로 적는다. 즉 날으는은 날에 는이 연결되므로 ㄹ 받침이 탈락한 나는으로 적어야 맞는 것이다.
이같이 ㄹ이 탈락하는 현상은 갈다/놀다/달다/살다/울다/줄다와 같이 어간의 끝에 ㄹ 받침을 가진 말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이들은 가니․가오/노니․노오/다니․다오/사니․사오/우니․우오/주니․주오로 변형된다. 날다가 나는으로 변하는 현상은 살다/놀다가 살으는/놀으는이 아닌 사는/노는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찻길에서 놀으는 아이들 서울에 살으는 사람이 아닌 찻길에서 노는 아이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고 적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날다의 관형형 나는을 나르는이나 날으는으로 쓰는 것은 기본형을 나르다 또는 날으다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의 뜻인 나르다의 활용에 미루어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나르다는 르 불규칙 동사로 나르니/날라로 변하며, 관형사형 -는이 올 때는 나르는이 된다. 이에 힘입어 날다도 ㄹ 받침이 줄지 않고, 발음이 같은 날으는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을 날으는 원더우먼은 하늘을 나는 원더우먼으로, 갈은 배로 만든 음료수는 간 배로 만든 음료수로, 날으는 돈가스는 나는 돈가스로, 달은 음식은 단 음식으로 써야 바른 표기가 된다. 나는이 들어간 속담으로는 나는 놈 위에 타는 놈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나는 새도 움직여야 난다 등이 있다.
19.알맞은과 알맞는
몇해 전,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 박광덕씨가 모델로 나선 TV 광고가 있었다. 우리 국민의 헤픈 씀씀이를 꼬집는 공익 광고였다. 하지만 그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입맛이 쓰다못해 마치 소태를 씹는 듯했다. 국민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공익 광고에 대문짝만한 오자가 튀어나와 우리말글을 병들게 하는 현실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 광고의 끄트머리에는 필요한 곳에 알맞는 소비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러나 알맞는은 오자다. 우리말법의 기본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부끄러움 그 자체다. 알맞다는 모든 사전에 형용사로 올라 있는데, 형용사는 그 어간에 ㄴ(는)다고 ㄴ(는)다는 ㄴ(는)다며 등의 어미가 붙을 수 없는 게 우리말법의 기본이다. 또 어떠한 경우든 관형사형 어미로 는을 취할 수 없다.
이러한 말법은 형용사 젊다를 활용해 보면 명확해진다. 젊는다고 젊는다는 젊는다며 젊는 등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와 달리 동사 늙다는 늙는다고 늙는다는 늙는다며 늙는 등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ㄴ(는)다 따위 어미나 관형사형 어미 는은 동사에만 붙는다(단 있다와 없다는 형용사이나 예외적으로 일부에서 동사로 활용한다).
따라서 알맞다의 관형형은 알맞는이 아니라 알맞은이 바른말이다. 걸맞다도 마찬가지다. 이 말 역시 형용사이므로 걸맞는이 아니라 걸맞은으로 써야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덮어두기에 급급하는 검찰을…이나 정권 재창출에만 급급한다는 인상을… 따위 문장의 급급하는과 급급한다는도 우리말법에 벗어난 말이다. 급급하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 문장의 급급하는 급급한다는은 어떻게 써야 할까. 그것은 바로 형용사를 동사로 바꾼 뒤 활용하면 된다. 형용사를 동사로 바꾸려면 형용사 어간에 -어(아)하다를 덧붙이면 된다. 형용사 좋다가 좋아하다라는 동사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급급하다를 급급해하다로 만든 뒤 활용해 급급해하는으로 쓰거나, 급급하다의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 -ㄴ을 붙여 급급한으로 써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행복하거라 씩씩하거라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등도 우리말법에 벗어난 표현이다. 행복하다 씩씩하다 건강하다는 모두 형용사인데, 형용사는 명령형이나 청유형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도 역시 형용사를 동사로 만든 뒤(형용사 어간에 -어(아)지다를 붙이면 됨) 활용하거나 낱말을 덧대 표현해야 한다. 행복하게 살거라(사세요) 건강해지세요(건강하게 지내세요) 씩씩해지거라
(씩씩하게 자라거라) 따위로 써야 한다는 소리다. 내용이 좀 어렵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법이다.
20. 불필요한 한자어 자제를
언론정보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다. 언론 문장은 간결해야 하며 딱딱한 문어체를 가능한 한 피하라는 말이 있다. 독자를 어느 특정 계층에 국한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 하나는 기사의 가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 하더라도 표현에 문제가 있으면 읽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15일자 신문을 보면 기사들에서 한자어가 발견되어 두세 번 곱씹어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사용되는 한자어는 모르겠지만 굳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 거슬린 한자어를 보면 2면 사설 나라빚, 정말 괜찮나에서 불요불급한 지출, 4면 여권 집안다툼 되는 게 없다에서 이전투구하는 인상이 짙다, 5면 힘받는 高총리 목소리 높아질듯에서 착근이 이뤄질지, 11면 힘의 과시가 불안 촉발에서 요원해질 것이다 등이다. 불요불급 이전투구 착근 요원 등의 한자어는 국어 사전을 찾아봐야 그 의미가 확실해지는 단어들이다.
우리말로 쉽게 풀이해서 써도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데 불필요하게 한자어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경향신문이 연재하고 있는 말글 오솔길이란 기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독자로서 그것이 단지 기사에만 그치지 않고 경향신문 스스로도 지키려고 노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