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는 그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그 지방 나름의 풍토와 생업과 사회와 역사가 있어서 이러한 것을 배경으로 향토의 민요가 형성된다. 향토에서 형성된 민요는 그 향토의 특성을 지니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수도 있고, 향토를 벗어나 민중의 공감을 얻어 모두의 민요로 확대될 수도 있다.
제주는 한국문화권 속에서, 자연환경, 역사, 사회적 상황의 특이성으로 그 나름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형성된 제주민요 또한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제주땅의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대응해 왔던 제주여성들은 어떻게 독자적인 자기 삶을 확보해 나갔는가를 민요를 통해 추고하고자 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에 수록된 민요는 김영돈의 '제주도민요연구 상'에서 뽑았음을 밝힌다.
'한'을 소설미학으로 수용하고 있는 소설가들은 한을 슬픔의 정서로, 혹은 극복의 의지로, 역사의 아픈 매듭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비극으로 해석하고 있다.
체념으로 끝나 무력으로 빠지지 않고, 억제로 인한 불안의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복수의 의지인 폭력으로 유발되지 않는 최선의 해한의 길은 예술로서의 승화이다. 이는 가면극, 민요, 무가, 산조와 판소리 등으로 푸는 것을 말하는데 한의 일차적 풀음은 바로 소리이다.
문학의 기교를 특별히 배우지 못했던 서민들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언어의 표현인 민요를 통해 순간적 해한을 한다. 민요는 오랜 세월동안 민중 속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노래이기 때문에 특별한 수련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 소재 또한 다양하고 감정의 표현도 구상적이다.
1. 노동을 통한 해한
(1) 제주 여성노동요에 나타난 삶의 절박성
거센 바람과 사면이 둘러싸인 척박한 돌무더기 땅에서 화산회토를 일구고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며, 거친 바다에 의존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생존을 영위해야만 하는 제주여성들의 깊은 한과 서로움이 절해의 고도인 제주도 구석구석에 배어있지 않은 데가 없다.
제주를 곧잘 '변방'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중앙과 지방이라는 단순한 지리적 종속관계 이전에 역사적으로 제주도가 정치, 문화, 경제, 교육, 행정의 모든 면에서 유달리 중아에 의해 소외되고 버림받아온 외톨박이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면으로부터의 자연적 악조건과 종속적 역사의 흔적은 제주여성의 아픈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시킨 한 요인이었으며, 이 때 제주여성의 내면의 세계는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 왔다.
제주여성의 노동은 바로 제주역사와 현실의 밑거름으로서 그들의 한맺힘까지 수용할 수 있는 터전이었다.
고레골앙 역들젠(품팔이) 호난
족삼 앞이 전주리 난다 (닳아 헤어진다)
방에 지엉 얻어먹젠 호난
치메 앞이 전주리 난다
좁쏠만이 살을메 (살 도리) 시민
놈의 역을 사름이 들랴
<맷돌노래 중에서)
이 민요는 생존을 위해서 맷돌을 갈아주고 품팔이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염없이 맷돌을 돌리다 보니 치마 적삼이 다 닳아 헤어지고 결국은 좁쌀 만큼도 살 도리가 없는 자신의 신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 때 이 노래를 부르는 창자는 자기의 정서를 작품 속의 품팔이하는 자아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다.
이 민요는 과거 제주도민의 주식이 좁쌀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가장 괴로운 것 중의 하나를 조밥이라고 묘사했는데 이 거칠거칠한 조밥을 통해 제주도의 가난했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산듸(밭벼)는 제주도에서도 경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손에 잡을 수 없는 귀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쌀과 좁쌀을 대비시키면서도 결국 작품 속의 자아는 좁쌀을 인격화시키면서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하여 가난의 아픔을 호소한다.
어떤 사름 복도 좋앙
앚아 살리 우리네는
보름이랑 밥으로 먹곡
구름으로 똥을 싸곡
물절이랑 집안 삼앙
부모 동생 떼여두곡
오놀날도 물에 든다
<해녀노래 중에서>
이 민요는 삶의 현장에 대한 애정과 노동의 반복선상에서 그 고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집안처럼 물질현장의 해도를 샅샅이 외우고 있으며 어느 순간 목숨을 앗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천적인 바람과 물결까지 그들 속에 포괄시키면서 현실의 아픔을 호소한다. 이러한 현장 경험 속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 생각되어진다.
때분때분혼 (쨍쨍한) 요름(여름) 벳(볕)듸
이 등어리 다 벳겨졈져
집의 가민 물 혼적 엇고
어린 새낀 어떵햄신고
이초록 허멍 혼싀상 살앙
무신것을 호쿠게나
<김매는 노래 중에서>
오뉴월 땡볕에서 등거죽이 훌훌 벗겨지면서도 자신보다 어린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요 김과 날 낳은 날은 없어져도 좋으련만"이라는 팔자의 탄식 속에서 기박한 자신의 삶을 원망하는 자학하는 모습까지 비치고 있다.
이상의 민요에서는 각 노동현장에서 불려진 노동요를 통해 아픈 현실의 흔적을 찾아본 것이다. 철저한 자연과 역사의 보복을 받으면서 제주여성들은 '언제면 죽어서 이 고생을 면할까'하는 한탄이 민요 곳곳에서 숱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현실 앞에서 자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진지한 모습이 또한 나타나고 있다.
(2) 제주 여성노동요에 나타난 삶의 건강성
노동이란 인간 생존에 불가결한 것으로 외부적 자연에 작용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획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한 노동은 인간이 자기와 자연 사이의 물질 대사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요는 노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땅과의 일체감에서 흥겹게 부르는 인간의 삶의 소리인 동시에 땅의 소리이며 노동의 소리인 것이다. 노동요는 개인에게 일의 의욕을 북돋아 주고 삶의 즐거움을 일깨울 뿐더러 집단에게도 더 큰 용기와 질서있는 노동의 능률을 가져오고 인화로의 길을 열어주어 공동체 의식을 고무한다. 민중들의 가슴 속에 안겨져 인간의 본질을 노래하는 정직한 문학인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노동요의 성격과 부응하여 제주여성이 노동을 통한 건강함을 민요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민요에서는 노동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것들을 이것저것 상상하면서 노동과정의 고달픔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식욕을 통해 기쁨의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제비나 호박잎이나 좁쌀죽은 진수성찬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좋고 나쁨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 현실을 풍부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태산같이 쌓인 일거리에도 불구하고 매우 생동감 있게 노동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구리같은 주먹과 사슴뿔 같은 어깨는 군살이 박힐대로 박힌 모습으로, 일 속에서 단련된 건강함과 아픈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 민요 또한 앞에서처럼 자연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끈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요거여 저거여
펠롱펠롱 질기긴 질기다
욜로여 절로여
질긴체 호여봤자
나 도깨에 떨어진다
한 도깨에 혼 뒈썩은
떨어진다 떨어도진다.
<타작노래 중에서>
이 민요는 타작하는 실상을 아주 활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때 타작하는 곡식을 대상화시킴으로써 곡식을 타작하는 사람과 대립하는 상대로 등장시킨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을 도깨라는 매개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타작하는 사람의 분신이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무뚝뚝하지 않고 흥겹게 일을 하는 긍정적인 모습이 보인다. 노동요가 민중의 기쁨과 흥취와 신명을 바탕으로 절정을 이루는가 하면 삶의 고달픔과 한맺힌 설움을 토로하는 회비의 이중성을 함께 지닌다면 여기에서는 제주여성의 생활력과 창조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 내적 갈등의 해소
(1) 탄식을 통한 갈등 해소
한은 자학에서, 원은 가학으로부터 발생한다. 자학에서는 별리의 슬픔이나 기다림이 싹트고, 이것은 자탄,자학, 정한으로 발전한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끝에 들려 온 고음의 아픈 숨비소리의 근원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소리의 역사 속에 온갖 인내의 끝에 제주여성의 탄식이 깊게 배어 나온다. 이 이름없는 탄식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도 땅속에 묻히길 거부하며 제주여성들에게 희망과 인내를 전파하고 있다.
문학의 본질 중의 하나가 정서의 카타르시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입각하여 볼 때 민요에서도 보편적으로 정서의 카타르시스라는 기능면이 있다. 특히 체념에서 비극성은 강조되어 나타나고, 극화시킴으로써 비극성이 제시되고, 여기에 창자는 자기의 감정을 작품 속의 자아와 동질화시킴으로써 창자의 갈등도 해소되기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비극성을 동질화시키기도 하지만 우월성을 제시하며 상대적 비교를 함으로써 자기의 비극성을 과장하고 서러움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다음 민요를 통해서 보면 알 수 있게 한다.
*1 낭기랑 지겅 가시낭 지라
굴궤기광(굴러리나무) 나 안은 고땅(같아)
우으로 넙은 잎 나멍
소곱으로(속으로는) 피 골라서라
*2 나 설룬 말 들을 이 시민
돋아오는 돌을 만낭
고단고단 다 골아두엉
저 산 고지 얼음석고찌
소르릉이 다 녹아가마
나 가심이 얼음과 셍피
어느 벳듸 녹아나지리
*1 민요의 작중의 자아는 자신의 속타는 심상을 표한함에 가시나무를 제시한다. 가시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속끓는 마음을 하소연하고 있다.
*2 역시 얼음속을 제시하면서 그 절박성을 읊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처지의 인물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달이라는 무생물에게 자신의 인생역정을 하소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자탄의 와중에서 작중자아는 얼음이 녹듯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고자 다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얼음은 볕에 녹지만 내 가슴속에 맺힌 한은 풀 도리가 없다는 절망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 두 민요에서도 가시나무나 얼음석과 같은 사물을 등장시키고 자신의 심상과 동일시 시키면서 작중 자아의 아픔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1 민요에서는 닭이 우는 것과 자신이 우는 것은 질적으로 다름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서러움을 심화시킨다. 한갖 미물인 닭은 날개를 힘차게 푸드덕거리며 항상 조선팔도에 울리건만 자신은 그렇게 당당하기는 커녕, 숨죽이면서 밤새워 울어도 부족하다는 내용으로 짙은 자탄이 이 민요속에는 흐르고 있다.
*2 역시 청룡 황룡이라는 상징적 동물과 팔도의 선비들의 유유낙낙하는 삶을 묘사하고, 그와는 어처구니 없이 동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자탄하고 있다. 이처럼 *2에서는 자신과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더욱 짙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울언 새여린 (새더란) 밤의
벤 베개가 조물암서라
벤 베개가 용수가 되곡
자리 아래 물절도 논다
이 민요는 앞의 민요처럼 동질적이거나 이질적인 사물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작중자아의 심중을 묘사함으로써 처절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민요의 제재는 눈물이다. 제주여성요에서 숱하게 보이는 이 눈물은 단순한 감동의 소산이라기보다 제주여성의 인생역정을 깊숙이 내포하고 있다. 밤새 흐르는 눈물 속에는 말 못하는 복잡한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 벤 베개가 잠기고 물결일 정도로 쏟아지는 눈물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애절한 서러움이 배어 있다.
이상 대부분의 내용에서 보면, 지극히 자족적이고 자탄적인 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삶에 대한 패배주의적 체념에 빠질 위험성도 다분히 내포하고 있으나 탄식을 통해 응어리를 내뱉음으로써 새로운 내일을 열었던 것이다.
(2) 대립, 항거를 통한 갈등 해소
다음 살펴볼 것은 남존여비 사상에서 비롯된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횡포와 일종으 미덕을 강요당한 데서 오는 여한이다.
한국의 여인은 인격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남성들의 성의 대상이요, 대를 이어줄 후손을 생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봉건유교사회에 있어서는 칠거지악과 삼종지도의 유교 도덕으로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대하여 절대적인 것으로 되었으며. 여성은 정치적 권력에서도 배제되었다. 시가는 물론 빈곤, 양반, 관가 등도 여성의 적이 아닐 수 없었고, 시집을 가는 것은 부계를 계승하기 위한 자녀의 생산과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제주여성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는 결혼과 함께 분가하는 가족제도로 인해 대가족이 함께 사는 육지에 비해 시집 식구와의 갈등이 적은 반면 여다남소(여성은 많고 남성은 적음)와 함께 본처와 첩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오히려 첩과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이러한 갈등 양상은 <맷돌방아노래>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 내용의 치열성은 제주여성이 처한 현실을 역력히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시집 삼년 놈의 첩 삼년
연삼년을 살앗져마는
들은 말도 본말도 읏언
박에 밥을 손으로 먹으난
개나 숭을 보안가 혼다
시집살이요에서 특히 '말모른 듯 삼년, 귀막은 듯 삼년, 눈막은 듯 삼년'이라는 표현이 자꾸 나오는데 이 민요에서도 시집살이에 첩살이까지 6년을 굴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살아온 여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뿐더러 밥상을 받아앉은 것은 고사하고 개가 흉을 볼 정도로 바가지 속의 밥을 손으로 먹는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현실의 가난과 함께 여서의 아픔을 눈물겹게 보여주고 있다.
성님 성님 소춘 성님
씨집살이 어떱디가
아이고 얘야 말도 마라
씨아방은 구쟁기 넋이여
나를 보닌 세돌각(혀 쩟쩟)허곡
씨어멍은 암톡으 넋이여
나를 보민 모지직 혼다(매몰스럽다)
씨누인 종조리 넋이여
나를 보민 오조조 오조조
서방님은 장돍으 넋이여
나를 보민 후리젠 호난
살젠 호여도 못살키여
성님 성님 기영호여도 또 한번만 살아봅서
이 민요는 '나'라는 작중자아가 외부나 객체(시집 식구 전반, 남편)의 성격 묘사를 통해 친정식구에게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하소연하고 있다. 여기서는 객체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고 주체를 긍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객체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부당한 요소(구젱기, 암닭, 종소리, 장닭)을 등장시키고, 각 객체와 연관시키면서 성격묘사를 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장닭으로 많이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소리로 비유하면서 무게있게 감싸주지 못하고 툭툭 잔소리하는 모습이다. 시어머니는 이것저것 매몰스럽게 몰아세우는 암탉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시집식구에게 가장 적대적인 갈등의 상대로 나타나고 있다. 시누이는 머지 않아 같은 며느리 입장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얌체같은 행동으로 시집간 여자를 공경에 빠뜨리는 힘든 상대로 여기서는 재빠른 종조리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남편은 여기서는 거칠게 구는 장닭으로 비유하는데 일반적으로 팔을 벌려 달려드는 문어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체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에게 노골적인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어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억눌린 감정들을 해소하고 있다.
이 민요는 첩과의 갈등을 노래하고 있다.
현실적인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 채 살기는 하지만 남편을 빼앗아간 시앗을 보면서 가슴속으로는 애간장이 타는 모습을 본처의 입장에서 호소하고 있다.
안 짛은 보리를 거죽채 먹는 고통까지는 감수할 수 있지만 시앗과 얼굴을 맞대고 살 수는 없다는 강한 결단을 보임으로써 첩과 융화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첩노래인데 여기서는 섬뜩할 정도로 시앗에 대한 깊은 증오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남편을 빼앗기고 여러가지 부당함이 겹겹이 쌓이면서 작중의 자아는 고기에도 밥맛이 없다가 시앗이 죽었다고 하니 소금에도 밥맛이 좋다는 승리의 쾌감과 함께 첩의 죽음에 그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시밭에 묻고 거기에서 열매가 열어도 건드리지 말라는 처절한 분노 또한 내뱉고 있다.
이 민요는 작중의 자아가 첩뿐만 아니라 남편에게까지 증오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가슴 속에 맺혔으면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지옥도 지옥 나름이니 산딸기 나무에 걸려서 가라는 서릿발 맺힌 매서운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남편에 대한 배신당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이상의 민요의 내용에서 보면 현실생활에서 구체적인 갈등 해소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작중 자아는 시집 식구의 차별대우, 노동의 고달픔, 애정 상실로 인한 갈등이 겹쳐지면서 불안과 시기, 저주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갈등이 진실하게 표백되어지면서 탄식이나 대립 항거뿐만 아니라 해학, 풍자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한국 여성들의 노동요의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눈물과 고독을 비롯하여 부자유를 호소하는 슬프고 우울한 부정적인 면이 농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주 여성요에서도 어떻게 보면 근원적인 운명론으로 귀착되기도 하지만 슬프고 우울한 소리 이면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밝은 희망이 있으며 이 희망은 제주 여성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헌신성을 낳게 한 요인이었다.
<참고문헌>
1) 문순태, '한이란 무엇인가' <민족과 문학> 창간호, 세종출판사, 1983
2) 김무헌, <한국노동민요론>, 집문당, 1986
3) 문순태, 앞의 논문
4) 양영자, <제주도 시집살이 노래 고찰> , 제주대 국문학보 제9집,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