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우정이 가능할까?
나의 뛰어남은 상대에게 열등감이 되고, 반대로 상대의 우수함은 나에게 굴욕감을 안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정이 가능할까? <출처: Gettyimages>
‘가족 같은 분위기’란 알고 속는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경쟁 사회에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기는 어렵다. 아무리 화기애애하면 뭐하겠는가. 동료란 결국 밀쳐내야 할 경쟁 상대이다. 상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할 때 내가 일터에서 밀려나게 되는 탓이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성적표를 나오는 날 교실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떠올려 보라. 급우들끼리 재잘댈 때의 살가움은 사라지고 없다. 우월감과 질투심, 자부심과 동정심이 묘하게 엇갈린다. 친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잔인한 소망이 꿈틀거리기까지 한다. 나보다 나은 아이가 없어지면 그만큼 내 성적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와 친구에 대한 마음은 늘 복잡하다. 나는 저 사람이 좋다. 그러나 불편하다. 서로가 경쟁하는 상황, 나의 뛰어남은 상대에게 열등감이 될 것이다. 상대의 우수함은 나에게 굴욕감을 안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따뜻한 우정이 과연 가능할까?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생각은 착잡한 이유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본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부터 ‘타인 지향형’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출처: (cc) Robert Goddyn at en.wikipedia.org>
이런 생각에 마음 복잡하다면,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sis Fukuyama, 1952~)의 충고를 들어볼 일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뿌리에서부터 ‘타인 지향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 혼자서는 나 자신을 알 수 없다. 나의 가치는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살펴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하게 되는 이유다.
인간의 역사는 먹고 사는 문제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인정받고자 하는 경쟁(Struggle for Recognition)’은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다. 사람들은 훈장이나 자리를 놓고 다투곤 한다. 번쩍이는 훈장 배지가 별 이익이 없을 때도 그렇다. 이름뿐인 감투를 놓고도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흔하다. 왜 그럴까?
후쿠야마에 따르면, “남들도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그토록 치열한 경쟁도 일어나지 않을 테다.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 경쟁으로 얻어야 할 것의 가치는 급하게 올라간다.
남들이 모두 바라는 것을 내가 차지한다고 해보라. 그만큼 나는 남보다 더 뛰어난 인간으로 ‘인정’받는 셈이 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남보다 더 뛰어나기를, 그래서 더 인정받기를 바라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다. 우리는 일단 이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해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열리기 때문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쟁 속에서도 따뜻한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후쿠야마는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며 다툰다. 그런데 경쟁 끝에 상대가 죽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 나는 인정받을 길이 없다. 왕 노릇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나의 승리를 알아줄 상대방이 없다면 그 승리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을 ‘노예’로 삼는다. 상대가 나에게 복종할 때, 나의 가치는 두드러지며 그만큼 나는 인정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예에게 우러름 받는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편함이 꾸물거릴 테다.
노예에게 인정받을 때와 나와 똑같은 자유인에게 인정받을 때를 견주어보라. 어느 때 나의 가치가 더 높다고 여겨지겠는가? 당연히 자유인들이 나를 알아줄 때이다. 따라서 역사는 자유인이 점점 늘어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내 주변이 노예들로 가득 차 있는 한, 나의 가치도 덩달아 낮아지는 까닭이다. 자유인들, 그것도 뛰어난 인품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을 때, 나는 수준 높은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떤 사회에 있는지에 따라 나의 가치 또한 달라지곤 한다.
진정한 우정은 상대를 존경할 때 열린다
진정한 우정은 상대를 동정할 때가 아니라 존경할 때 가능한 법이다. 주변의 뛰어난 경쟁자들에게 감사와 우정을 품어보자.
이제 처음의 물음으로 되돌아 가보자. 경쟁자들과도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경쟁자들이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수록 나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엘리트가 모인 곳에서 경쟁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스펙’이 되곤 하지 않던가. 설사 경쟁에서 밀려난다 해도, 함께 어깨를 맞대며 자웅을 겨루었다는 사실이 자부심이 될 만큼 경쟁자들을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우정은 상대를 동정할 때가 아니라 존경할 때 열린다. 주변에 뛰어난 경쟁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따뜻한 우정을 품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