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 입학하였다.
민족사 연구회 '한얼'에서 활동하다가 장현구 열사의 명예회복 및 최원영 재단의 퇴진을 외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 96년 김영삼 정권과 최원영 재단 등에 대한 규탄의 글을 남기고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 운명하였다.
2000년 민주화운동 과정의 희생자로 국가유공자가 되었으며, 2001년 명예졸업을 하였고,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경원대는 91년 최원영 재단이 새롭게 들어서면서 고질적인 사학 비리와, 95년 108명 제적 등 무리한 학생 징계, 고발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는 데, 95년 12월 4일 분신 운명한 故 장현구 동지의 명예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이 4달 남짓한 상황에서 벌어진 연속적인 분신자살로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었다.
당시 경원대는 학교당국에 대한 故 장현구 동지 명예회복 요구과정에서 총학생회장, 부학생회장을 비롯한 6명이 제적, 8명이 무기정학, 2명이 유기정학을 당하는 한편 7명의 학우들에 대한 고발 및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이로 인하여 95년 총학생회장이 구속 당하고 나머지 6명의 학우들은 수배상태에 놓여 있었다.
진철원 열사의 고교선배인 故 장현구 열사의 분신운명과 동아리, 학과의 선배동지들이 제적, 고발 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분신하여 죽었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다.
첫댓글 지난 4월 11일 진철원 열사 추모제가 있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