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에는 뱀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을 둘러싸고 10가구가 채 안되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 마을에 고립돼 오가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두메산골을 향해 꽁꽁 언 동강 주위로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을 따라 느릿느릿한 걸음을 옮겨 본다.
정선 오지 마을 여행은 영동선 기차를 타고 예미역에 내리면서 시작된다. 아침 8시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11시 반이 넘어서야 예미역에 도착했다. 간밤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기찻길 옆 마을의 정취가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번 정선 오지 마을 트레킹의 코스는 예미역에서 출발해 소사, 연포, 거북이 마을을 들러 칠족령으로 넘어가 제장 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역에서 마을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빼더라도 2~3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다. 게다가 눈까지 쌓였으니 마을로 들어가는 고개를 넘지 못할까 걱정돼 발길을 재촉했다.
큰 봉우리, ‘뼝대’가 위용을 자랑하는 연포 마을의 입구. 나그네의 방문에 신이 난 강아지가 연방 꼬리를 흔들어 댄다.
예미역에 내려 운치리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동강관리소를 지나 연포길과 동강로가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면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 덕천리 원덕천 마을이 나오고, 마을의 작은 언덕인 물레재를 넘으면 소사(所沙) 마을이 나온다.
소사 마을은 동강이 휘돌며 빚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여름 캠프장으로 인기가 좋다. 5가구 1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일터로 떠났는지 한적했다. 외양간 송아지만이 ‘음머’ 하고 울며 나그네를 반겼다. 소사 마을에서 연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한다. 예전에는 줄배나 섶 다리로 건넜는데 지금은 시멘트 다리가 놓였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기차 경적 소리가 작은 예미역을 요란스럽게 울린다.
소사 마을에서 출발해 10분 정도 걸었을까. 강을 끼고 돌아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꽁꽁 언 동강 뒤로 거대한 절벽이 버티고 서 있는 것. 하늘의 해도 가릴 만큼 커다란 절벽이 시선을 압도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거대한 절벽을 ‘뼝대’라 불렀다. 칼 봉, 둥근 봉, 큰 봉 등 거대한 봉우리에는 강물로 깎여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시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연포 마을에는 예부터 달이 세 번 뜬다고 하는데, 휘영청 뜬 달이 세 개의 큰 봉우리에 가려 나타났다 숨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란다. 연포 마을은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지로 유명하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인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는 1969년 개교해 16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9년 폐교됐다. 지금은 생태체험학교와 민박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지인 연포분교.
거북이 마을은 연포에서 40여 분 더 들어가야 있다. 예전 8가구가 모여 살았던 이 마을은 이제 단 한 가구가 남았다. 이곳에서 47년째 살고 있는 이재화 할머니의 거북이 민박이 유일한 집이다.
거북이 마을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20여 분 오르면 절벽과 절벽 사이 강화유리로 만든 ‘하늘벽유리다리’를 지나 칠족령에 닿는다. 칠족령 전망대에 오르니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과 거대한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꽁꽁 언 강 위로 뗏목이 외로이 서 있고 마을의 굴뚝에서는 저녁밥을 준비하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침 지는 해가 절벽을 붉게 물들여 황홀경을 연출했다.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짧은 겨울 해가 금세 봉우리에 숨어 버린다. 오후 4시가 지났을 뿐인데 주위는 어두컴컴하다. 칠족령에서 제장 마을로 내려오는 산길, 하늘에 뜬 달빛만이 나그네의 갈 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예미 마을에서 동강 관리소로 향하는 길.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다란 터널에서는 맞은편에 차가 있는지 살펴보고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