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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르스
홍원기작
사람들
연개소문 :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을 왕으로 앉히고 대막리지가 된다. 24년간 전권을 휘두르며 당의 침략에서 고구려를 지킨다. 죽은 지 3년 만에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한다.
연남생 : 장남. 아비를 이어 대막리지가 되지만 아우 남건에게 밀려나고 당에 붙어 고구려 공략의 앞잡이가 되어 아비의 나라를 멸망시킨다.
연남건 : 차남. 형 남생을 제치고 대권을 차지해 끝까지 당군에 항전한다.
연남산 : 삼남. 두 형제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당군에 투항한다.
연헌충 : 남생의 맏아들. 남건에게 주살 당한다.
보장제 : 고구려의 마지막 28대 제왕. 멸망 후 당으로 끌려간다.
안승 : 보장의 서왕자. 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투항하여 <보덕왕>이란 칭호를 받고 김씨 성을 하사 받는다.
약광 : 고구려 왕손으로 전해지는데, 고구려 멸망 후 왜국으로 건너가 무사시노 벌녘(무세. 지금의 동경지방)을 개척하고 지금까지 고려왕이라 추앙받는다. 일본에서는 고마(고구려)왕 “잣코”로 불려지고 있다.
검돌 : 연개소문 별동대 출신의 병사. 평양성 남문을 지키는 수비병.
검돌네 : 검돌의 아내.
먹돌 : 검돌의 친동생. 남생군의 기수.
약돌 : 검돌과 성문을 지키는 초병.
버들아기 : 연개소문에게 살해당한 27대 영류제의 공주. 고구려 시조 주몽과 그 어미 유화부인의 혼을 모시는 신궁의 무녀.
류황후 : 27대 영류제의 정비. 버들아기의 어미.
백록공주 : 보장제의 딸.
이세적 : 나이 팔십에 평양성을 함락한 당의 대장군.
에미들 : 수당과의 전쟁에서 서방과 자식을 잃은 아낙들.
언제
연개소문이 죽는 666년에서 당군에게 평양성을 함락 당하는 668년까지.
어디서
평양성 : 역사학계는 지금의 평양인지 다른 곳인지 정설이 정해지지 않았다. 연극에서는 우리들 마음의 그 평양성이다.
1장 신궁
유화부인과 고주몽을 모시는 곳. 평양성에 있는 동굴. 나무로 깍은 유화부인과 주몽의 신상을 모신 제단이 있다.
류황후 : 너희가 고구려를 아느냐!
에미들 : 아이고!
류황후 : 고구려가 무엇이냐.
에미들 : 아이고!
류황후 : 고구려. 누구의 나라더냐!
에미들 : 아이고!
곡소리 드높아지면서
버들아기 : 유화부인 유화부인 강물의 딸 유화부인. 하늘 아들 해모수 맞아드려 햇빛같은 주몽을 낳으시고.
에미들 :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
버들아기 : 동명성왕 동명성왕 하늘의 아들 주몽대왕. 햇님같은 알을 깨치고 억센 말고삐 움켜쥐시다.
에미들 : 아바이 아바이 우리 아바이.
버들 : 갖은 핏박 온갖 역정 한 시위 화살로 날려보내시고 높은 산 타고 넘고 너른 들 건너뛰고 큰 강물 헤쳐건너 천년사직 만세불변 나라 나라 우리 나라 고구려를 여셨다.
에미들 : 나라 나라 우리나라.
버들 : 주몽은 유리를 낳고 유리는 대무신을 낳고 낳으니 어허라 민중원왕 모본왕으로 이어진 유화의 자손들 태조대왕 부여에 행차하여 유화부인 묘소에 참배하고 어미의 혼령 모시고 받들어 왔으니 고구려의 넋밭이라 넋이야 넋이로다. 땅이 없는 씨알없고 에미없는 자손없다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 산상왕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 봉상왕 미천왕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 양원왕 평원왕 양양왕 영류왕으로 잇고 이어질 고구려의 핏줄이요 유화부인의 탯줄이라.
에미들 :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
류황후 : 아! 그 핏줄 그 탯줄 잘렸다. 우리 임금 죽였다.
에미들 : 연개소문!
류황후 : 주몽의 후손, 하늘의 아들 만백성의 아비를 죽였다.
버들 : 고구려의 하늘을 가리고 태양을 갈아치운 자.
에미들 : 연개소문!
류황후 : 다섯 개의 칼을 차고 고구려의 땅을 휘젓는 놈.
에미들 : 연개소문!
류황후 : 나는 보리라. 그 놈 아가리에서 피가 터져 고꾸라지고 대대손손 손에손, 피에 피를 묻히고 싸우고 싸우다 꺼꾸러질 꼴을. 아가애 빌어라! 저주의 칼바람이 그놈 집 구석구석에 자손만대에 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어라.
버들 : 그만하세요, 어머니. 그도 역시 나라의 충신이요.
류황후 : 니 애비 죽인 놈을 두둔해!
버들 : 그가 세운 임금도 주몽의 자손이요.
류황후 : 니 아비가 진정한 고구려의 왕이였다. 대를 이를 네 오래비도 죽였다.
에미들 : 연개소문!
류황후 : 온나라 사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이는 놈.
에미들 : 아이고!
버들 : 싸우지 않고는 고구려를 지킬 순 없지요.
류황후 : 칼을 앞세워 고구려 황실을 농락하는 놈.
에미들 : 허수아비 임금은 먹고 똥만 싼다.
류황후 : 먹을 게 없는 백성들 똥깐을 뒤진다.
에미들 : 그래도 전쟁준비! 막강대국 고구려!
버들 : 적들의 노예가 되느니 굶어 죽으리.
류황후 : 하늘의 아들 주몽의 자손들을 노예로 삼을 자 그 누구.
버들 : 당나라의 천자! 서라벌의 화랑들!
백제를 멸하였고 우리 땅 엿본다.
고구려를 지키는 다섯자루 칼!
에미들 : 연개소문!
류황후 : 그 칼 찬 도적놈 아니면 고구려 지킬 힘이 없겠는가.
에미들 : 유화부인!
버들 : (흐느껴 울며) 지키소사 지키소사 오마니의 땅 지키소사!
저 백성들 주린 창자를 채워주시고
우리네 맺힌 한 풀어주소서.
오마니 자손들, 영원토록 세상 가운데 있게 하시오.
검돌네 : 땀이다. 우리 오마니가 딴을 흘리셔요!
모두 : 오호!
유화부인의 신상에서 땀이 솟는다.
유화부인을 둘러싼 에미들의 흐느낌과 통성기도 소리 드높아진다.
제2장 막부
연개소문의 집무실 겸 침소
휘장이 쳐있는 침상에 칼 다섯 개를 찬 연개소문이 앉아 있고
남생, 남건, 남산과 남생의 아들 헌충 자리한다.
개소문 : 고구려가 무엇이냐?
남생 : 고주몽과 그 자손들의 나라입니다.
남산 : 고구려, 높고 큰 고을, 넓고 “큰우리”란 뜻이지요.
개소문 : 넌? (사이) 무엇이냐.
남건 : (사이) 아버님의 나라입니다.
개소문 : 하하하 (사이) 너희들 말이 모두 옳다. 고구려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내야 할 울타리이요 하늘이다. 만약 우리가 백제마냥 당한테 망할 지경이 된다면 어찌하겠느냐?
남생 : 그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개소문 : 있다. 어찌하겠는고?
남생 : (잠시) 많이 늙으셨소 어째 그런 망령된 말씀을.
남산 : (울며) 부디 그 말씀 거둬 주소서!
개소문 : 어쩌겠는고?
남산 : 형님?
남생 : 당과 타협하면서 시간을 벌어야지요.
남건 : 끝까지 싸우다 죽겠습니다.
남산 : 먼저 형님들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겠습니다.
개소문 : 니가 정답이다. 따라해, 우린 하나다.
삼형제 : 우린 하나다!
개소문 : 그렇다. 하나가 되면 우린 망하지 않는다. 내 어찌 선왕을 주살하고 그 신하들 백여명을 몰살시켰겠느냐. 분열을 막고 하나된 국론을 얻기 위함이였다. 난 당장 죽어도 할말이 있으니 고주몽 광개토대제 장수대제 내가 죽인 영류제한테도! 국론의 분열을 막아 고구려를 지켰노라고!
삼형제 : 우린 하나다!
개소문 :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연못 연(淵) 물이다 물, 우리 가문의 근본은. 물이 합해질 때 높낮이가 있더냐. 물과 같이 하나가 되어라! 그리하면 고구려는 망하지 않는다. 물에서 난 유화부인이 하늘의 아들 고주몽을 낳았고 길러냈으니 너희가 할 일이 그러하다. 물과 같이 하나가 되어 고구려의 하늘을 지켜라! (사이) 아이고 소릴 질렀더니. (뒷골을 잡으며) 가거라 쉬어야겠다.
보장왕과 안승 그리고 몇몇 귀족들이 든다.
남생 : 웬일이시오. 막리지께선 주무셔야 하는데.
안승 : 대왕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데.
남건 : 나중에 하시지요, 곤하신데.
보장 : 그럴가 그러지뭐.
개소문 : 모셔라!
왕이 침상에 앉고 개소문이 부복한다.
보장 : 내가 막리지 어르신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된지도 이십여년! 내가 보건대 사방 우리 백성들의 살림살이 참 어렵고 곤란하오. 끝없이 이어진 당과의 전쟁때문이지 이제 이 지겨운 전쟁을 그만둘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니. (땀을 훔친다)
개소문 : 여부가 이겠소이까. 전력을 다해 당군을 막고 있소이다.
보장 : 내말은 (사이) 네가 말해라!
안승 : 보다 근본적인 방책이 (사이) 신라와 연합한다면 당나라도 함부로 우리 땅을 넘보지못 할 것이요.
남생 :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하고 연합한다고!
안승 : 다 같은 단군의 겨레가 아니겠소. 내가 김유신한테 가서 담판을 짓고 오겠소. 개소문 : 언제부터 안승왕자가 나랏일에 껴들으셨나. 태자는 어디 가셨소?
보장 : 그게 그러니깐, 말해라 니가.
안승 : (불만에 차서) 당천자가 거행하는 봉선에 참여하러 갔소이다.
개소문 : 봉선이라면?
남산 : 당나라 임금만이 세상에 하나뿐인 하늘의 아들이라는걸 선포하는 행사입니다.
개소문 : (버럭) 누가 보냈나 내 허락도 없이! 이 세상에 저 하늘의 아들은 오직 해모수 고주몽을 이은 고구려의 제왕뿐이다. 장차 이 나라 제왕이 될 태자가 당 떼놈들 하늘아래 고개를 숙여!
보장 : 한 번 숙여주면 저 백성들 살길이 있다하여.
개소문 : 어떻게 지켜내린 고구려의 하늘인데. 그걸 지키고자 얼마나 많은 피를 이 칼에 묻치며 그댈 임금으로 만들었는데 (칼을 뽑으며) 누구야 누가 그 따위 짓거리를 획책했어. 내 그 비굴의 싹을 뽑지 않고는 죽지도 못하리니.
남생 : (막아선다) 아베님께서 세운 임금을 또 베려하시오.
남건 : 감히 아버님 앞을 가로막아.
남생 : 아버님을 제 임금 두 번 죽인 역적으로 말든 순 없다.
남건 : 역적! 아버님의 대업을 함부로 입에 담지마.
남생 : 아버님의 대업은 내가 잇는다.
남건 : 그건 그렇다치구 아버님의 뜻을 거스르는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것.
개소문 : 누가 태자를 당에 보냈나!
보장 : 그야 물론 고구려의 제왕으로서 나 나지요... 아니 실은 남생장군이.
개소문 : 니가! (칼을 놓친다)
남생 : 다 뜻한바 있어서 (사이) 아버님께선 그만 쉬시지요.
남건 : 뜻이라고! 아버님 뜻 말고 다른 뜻이 어디있어. (칼을 주워 든다)
헌충 : 그 칼 내려놔요.
남건 : 니가 감히 어디라고 나서.
남생 : 너야말로 건방 떨지마.
남건 : 에이!
남산 : 그만들 둬. (칼을 뽑는다)
삼형제 칼부림을 주고받으며 사방을 휘젓는다.
개소문 : 이놈들아! (뒷골 잡고 쓰러진다)
안승 : 들리시오 저 백성들의 신음소리! 장군의 통치에 남은 건 굶주려 울부짖는 아이들의 울음과 풀뿌리 찾아 헤매는 어미들의 한숨 뿐! 이제 칼을 거두시고 저 백성들 먹여 살릴 궁리를 해주시오. 고구려는 칼 찬 장군들이 아니라 저 백성들이 지키는 것이요. (사이) 막리지 어르신!
모두 : 어르신!
헌충 : 할아버님!
개소문 : 물! 물! 물과 같이……. 하나……. (운명한다)
안승 : 대막리지 연개소문, 고구려의 하늘로 향하셨다!
삼형제 : 아버님!
보장 : 고인의 연남생으로 대막리지의 대권을 잇게 하라!
모두 : 대막리지 어르신!
제3장 성문
남생의 대막리지 취임을 경축하는 행렬이 벌어진다. 성벽에 휘날리는 흑기들. (흑색은 고구려의 상징이다) 고구려 다섯 족속의 병권을 하나로 통일한 연개소문의 권세를 뜻하는 오검기를 들고 보무당당하게 걸어오는 먹돌
검돌네 : 저기 오네, 우리 도련님.
먹돌 : 아 비키라우 형!
검돌 : 야 이거이 우리 아우레 출세했구만. 막리지 깃발을 든 기수가 됐어야.
검네: 멋들어지누만. 긴데 수레바퀴 모냥같이 생긴 이거이 뭐야요?
검돌 : 원래 우리 고구려는 다섯 족속이 연맹해서리 하나의 조국이 되지 않았니. 보라우 이 다섯자루 칼들이 하나의 동굴뱅이 안으로 뭉쳐졌지.
검네 : 아 기래서 연개소문 어르신이 다섯자루 칼을 차고 댕겨댓구만.
먹돌 : 그 칼들, 연남생장군이 물려받앗디. 어흠.
검네 : 그 다섯자루 칼, 혼자 차기엔 드럽게 무거울거구만.
검돌 : 어울리지두 않다야 기럼.
먹돌 : 그딴 소리 말라우, 누가 이 깃발 휘두른데 보라 마!
검돌 : 어쭈구레……. 뻐기지마라 이 자랑스런 동생놈아 하하하. 기런데 이 길로 떠난다며?
먹돌 : 말하자면 초도순시디. 댕겨올 동안 몸조심이나 하라마.
검돌 : 니나 잘해 이 하나밖에 없는 동생놈아.
검네 : 아고야 저기 온다. 빨라당 저리!
먹돌 : 갔다 와서 봐. 긴데 토갱이 같은 조카는 언제 보여줄거야?
검네: 갖을 시간이 있어야디. 맨날 창 잡구서리 보초만 서는데.
먹돌 : 짬좀 내보라마. (나간다)
검돌 : 야이 잘 휘둘러라. 넌 고구려의 깃발이야.
먹돌 : 문 잘 지키라우. 형은 고구려의 방패야. (나간다)
북소리
고구려가 천손족임을 뜻하는 삼조오(三足烏) 깃발을 에워싼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병사들.
먹돌이 든 오검기를 앞세운 남생과 그 아들 헌충 그리고 남건 남산이 들어온다.
성문 위. 삼족오 깃발 아래 선 보장왕이 다섯자루 칼을 하나씩 던진다. 성문 아래에서 남생이 칼을 받아 허리에 차며 아버지를 이어 대막리지가 됨을 선포한다. 함성을 지르며 날뛰는 군사들.
남생 : 우린 하나다!
모두 : (따라한다)
남산 : 우린 하나다!
병사들 : 우린 하나다!
남생 : 건아! 뭐하냐.
남건 : 우린 하나다!
남생 : 우리는 수양제의 백만대군을 물리쳤고, 당태종과의 30년 전쟁에서도 이기고 이겼다. 세상 어느 나라도 우리를 넘볼 수 없다. 왜? 우린 하나이기 때문이다. 태대막리지 연개소문! 내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엔 하나의 태양, 땅에는 한 분의 임금, 고구려는 세상의 중심, 너희는 이것을 지켜라. 하나된 마음으로!
모두 : 우린 하나다! (깃발을 휘날리며 환호한다)
남건 : 잘 댕겨오우, 형.
남산 : 대막리지 어르신이라해야디. 어르신 경하드립니다.
남생 : 난 이길로 국내성 부여성 남소성 신성 개모성 백암성 요동성 안시성 건안성 오골성을 순시한다. 당에서 돌아오는 복남태자를 국내성에서 만나 동행한다. 나 없는동안 두 아우들이 잘 해줄 걸로 믿는다. 헌충아! 두 숙부님을 이 애비처럼 따라라. (남건의 손을 잡고) 니가 업어서 키운 조카다. 잘 지켜다오.
남건 : 대막리지께서 너무 오래 왕성을 비우는 거 아니요?
남생 : 태자가 가서 아양을 떨어놨으니 당분간 당군의 침범은 없을 거다. 그동안 전열을 가다듬는다. 잠시만 쉬게 하는 거지. 너무 오래 쉬게 하면 아랫것들은 딴전을 피거든.
남산 : 신라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데요.
남생 : 아버님 장례식에 조문도 안 온 놈들, 두고보자!
남건 : 당장 쳐내려가서 깡그리 불질러버려!
남산 : 명령은 막리지께서 내리셔야지. 안 그래요?
충헌 : 당연하지요.
남생 : 신라 (사이) 언젠가는 씹어먹을 밥이다. 지금은 내정이 문제. 내가 막리지가 된 걸 시기하는 성주들이 있어. 이번에 가서 구슬러 꽉 움켜잡아야해. 그래야 우리가 대를 이어 고구려의 하늘을 지킬 수 있다. (헌충에게 차고 있던 다섯 개 칼 중에 두 개를 건네준다) 나머지 세 자루는 나 죽은 담에 차거라. 하하하 자 가자!
헌충 : 문을 열어라!
북소리와 함께 검돌이 성문을 연다.
막리지 깃발을 앞세운 남생과 병사들이 나간다.
성문 위에서 왕과 안승 신하들 아낙네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헌충 : (성문을 닫는 검돌에게 외친다) 좀 더 놔둬. 오래도록 보고싶다. 자랑스런 아버님의 깃발을!
남건 : (사이) 문 닫아! 꽉 걸어 잠궈!
성문 위에서 류황후와 아낙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제4장 신궁
어둠.
쑥불이 타고 횃불이 일렁인다.
아낙들이 속삭이듯 수군거리며 노래한다.
류황후 : 보았나.
아낙들 : 보았지.
류황후 : 누구의 문이냐.
아낙들 : 대왕의 문.
류황후 : 누구의 깃발이냐.
아낙들 : 막되먹는 막리지.
류황후 : 어드메 군사냐.
아낙들 : 우리네 애비들 아들들 논밭은 아니 갈고 고달픈 지어미 홀로 두고 깃발만 휘날린다. 굶주린 아이들 버려두고 흙먼지 헤메인다.
류황후 : 대를 이어 충성하란다.
아낙들 : 누구를 위해!
류황후 : 더 이상 못 견딘다.
아낙들 : 끝장낸다! 우리가.
류황후 : 아가야 맘 단단히 먹어라!
버들아기 : 형제가 다투면 집안이 망하고, 백성이 굶주리면 나라가 망하느니, 어헐시구 고구려의 앞날을 누구에게 맏길꼬!
류황후 : 나라에는 올바른 충신과 영민한 왕족들이 많고 많다. 그 중에서 고른다. 아들 주몽에게 천리마를 골라준 어미, 유화부인의 마음으로, 우리가 고른다. 구백년 고구려, 새 천년 향해 이끌 영도자들!
아낙들 : 쉬이!
류황후 : 온다!
남건과 안승이 들어온다.
류황후와 아낙들이 숨는다.
남건 : 성안에 이런 데가 있었나, 몰랐네.
안승 : 보시오. 땀을 흘리신다는 유화부인이 여기!
남건 : 하하하 어미의 눈물이라 꽤 괜찮은 설정이군. 누구냐 이 따위 장난으로 민심을 현혹시키는 게?
안승 : 장난은 아닌 것 같소. 요즘 밤하늘 별자리가 심상치 않아요.
버들 : 오셨구려 이제야! (돌아 앉는다)
남건 : 버들공주, 그대였나! 유화의 넋이 내렸다는 왕실의 무녀가?
버들 : 한 남자를 제대로 섬기지 못 하였으니, 만 백성의 어미가 되라더이다.
남건 : (괴로운 듯 신음하며) 그건 아버님의 뜻이었소. 니가 어찌 애비가 죽인 임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려느냐. 그게 벌써 아득한 십 년.
버들 : (약건의 흐느낌) 오호호 쏟아진 물 퍼담아 무엇하리. 다라야지요 아버님 뜻. 고구려의 하늘을 지켜야지요. 안 그렇소, 대막리지 어르신!
남건 : 대막리지? 그건 형님이야. 난 난 그저…….(외마디) 나 일뿐이야.
버들 : 호호호 아하! (몸을 비틀며 울다가 웃다가 문득) 성격도 생김새도 아버님을 빼다 박았으니 그 자리 또한 물려받으리라. 고구려의 앞날을 짊어질 대막리지가 되리라!
안승 : 말씀 똑바로 하시오! 대막리지 연남생은 지금 국내성을 순시 중이오.
버들 : (휘파람) 태자는 남생을 고구려의 대막리지로 인정하시는가?
남건 : 태자라니, 고구려의 황태자는 지금 당나라에 가 있는데.
버들 : 막리지는 당천자에게 고개를 숙인 그자를 고구려의 황태자로 인정하는가?
남건 : 못하지. 아버님의 뜻을 어겼어. 난 못해.
안승 : 아니오 이럼 안돼. 태자도 대왕께서도 눈 새퍼렇게 살아 계시는데. 장군, 못 들은 걸로 하고 갑시다!
남건 : 아니 이거 놔. 누구의 말이요. 살아있는 그대인가 아니면 땀 흘리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는, 이 나무토막의 말씀인가? (사이 신상을 보고) 아니 눈물을 흘리고 있어.
버들 : 오마니!
아낙들 : (뛰쳐 나오며) 오마니! 오마니가 우신다. 아이고!
안승 : 눈물이라니 누구를 위해?
남건 : (칼을 뽑으며) 물렀거라. 이 무슨 망칙한 흉계며 소란이냐. 이런다고 흔들릴 나 남건이 아니다. 고구려는 지금 이대로!
류황후 : 거두시게! 오마니께서 눈물로 응답하셨소, 막리지 어르신!
아낙들 : 막리지 어르신!
남건 : 아니야 난 아니야. (나간다) 하하하 난 아니래두 아니지 내가 어떻게……. 내가 막리지라구…?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안승 : 왜 이러십니까. 대왕께서 인정한 막리지가 다로 있거늘. 할마마마! 아직도 저의 아버님을 고구려의 왕으로 인정 못하십니까?
류황후 : 눈물로 인정하셨다 자네를. (신상을 가리키며) 당신의 아들, 고주몽의 진정한 후계자로.
아낙들 : 태자마마, 왕이 되소서.
안승 : 태자라니 말도 안 돼. 난 빼도 막도 못하는 서출왕자일 뿐, 적자로 태어난 왕자가 둘이나 있어. 내 어찌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태자가 되고 왕이 될 수 있겠나. 아니오 태생이 그리한데…. 보시오, 이 손금을! 밤하늘 별이나 바라보며 한숨짓는 숙명인 것을.
류황후 : 그 손으로 움켜 잡어. 저 막리지의 칼!
아낙들 : 되찾으시오, 제왕의 권능!
버들 : 아 누가 지키리, 저 주몽의 하늘!
안승 : (손을 내보이며 신상 아래로 무너진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손금을 바꿔주시오. 당신의 나라, 내가 지키리 하하하.
아낙들 : 오마니!
버들 : (사이) 바람 분다. 피냄새!
제5장 성문
달밤. 성문 아래 차일과 포장이 쳐있다.
차일 아래, 왕과 어린 왕자들 몇몇 신하들 그리고 안승 헌충 남산이 있고
포장 안에서 백록공주가 궁녀들을 데리고 ‘꼭두놀이’를 논다.
‘주몽의 개국신화’를 보여주는데, 공주가 해설하고 궁녀들이 꼭두를 놀린다.
백록공주: 어머니 저는 하늘의 자손인데 남을 위해 말을 기르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울지말고 에미가 시키는 데로 하거라. 마구간으로 달려가 채찍을 휘두르니 붉은 빛 얼룩진 말 하나, 천하의 준마가 분명타.
보장왕 : 안다 알어. 그래서 그 말 혀에 바늘을 꽂아 배싹 마르게 했다. 볼품없는 말처럼 보일려고 그래 결국 그 말을 얻어서 잘 먹이니 (사이) 뭐하니 잘 먹이는 거 해봐. 그렇지 아니 (나름대로 연출을 한다) 그리하여 그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되었것다. 하루는 오마니께서 불러 앉히시고 떠나거라. 가서 너의 나라를 열어라. 아이고 오마니, 언제 다시 뵈오리까. (사이 울먹이며) 오마니, 저는 이 나라를 어찌 다스려야한단 말이오. 말씀 좀 해주세요!
백록 : 아이 아바이, 구경만 하시랬잖아요. 그리하여 오이 마리 협부, 어진 벗 셋과 금와왕의 부여국을 떠난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별을 보고 잠을 자고 동터오는 벌판을 달리고 달려 남으로 남으로 가는데 떡하니 가로막는 강물 하나. 어허라 뒤를 보니 쫓아오는 금와의 군사들. 어쩔거나 망설일 틈도 없이 채찍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외친다.
보장왕 : 내가 한다, 내가 해. 난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들이요. 강물의 신 하백의 외손자이다. 이제 내가 이 강을 건너 새 나라를 열고자하노니 천하의 신령들은 배와 다리를 내어서 나의 길을 가게 하라! 다리를 놔 어서!
궁녀들이 자라와 물고리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 주몽이 건너게 한다.
금와의 군사들이 오르자 무너지는 다리.
주몽이 말 위에 올라 칼과 활을 치켜든다.
넋을 빼고 보던 왕이 엉엉 운다.
안승 : 그만해라!
왕 : 언제봐도 이 대목에선 꼭 눈물이 나.
백록 : 재미있는데 눈물이라니, 왜요?
왕 : 넌 모른다 몰라. 아이고 오마니!
백록 : 아바이도 주몽할아비처럼 되고 싶은거죠, 다 알아요 나두. (헌충에게) 어땠어요?
헌충 : 감동적입니다. 지켜야죠, 제가 합니다. (왕에게) 헌데 저희들 혼례는 언제 올려주실겁니까?
백록 : (헌충의 팔에 안기며) 빨리요.
안승 : 때가 되면 하든지 말든지 할테니 그만 들어 가봐!
남산 : 하든지 말든지라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정하신 일이오.
안승 : 어허 그렇든가요. (사이 방백) 죽은 연개소문이 아직도 이 나라를 다스린단 말인가. 나 혼자 힘으론 어찌할 수 없다. 대를 물린 저 형제들의 권세는 철옹성. 고구려는 저들의 나라인가, 언제까지?
다급하게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
소리 : 파발이요! 열어 문!
검돌과 병사들이 급히 문을 연다.
파발병이 숨이 턱에 차서 들어온다.
안승 : 무엇이냐!
파발 : 남건장군은 어디에?
안승 : 대왕께서 여기 계시다. 아뢰어라!
파발 : 장군께 전하라는 분부요.
처음부터 성벽 위에서 서성이던 남건이 모습을 그러낸다.
남건 : 나 여기 있다. 고하라.
파발 : (망설이다가) 태자마마께서 죽음을…… 피살당하셨소.
남건 :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파발 : 사흘 전. 압록강을 넘어 오시다가 (사이) 여기 돌아가신 태자께서 움켜쥐고 계셨던 깃발 조각이.
왕 : 아이고 태자야! 죽다니 니가 왜!
남산 : (받아들고) 이건 대막리지 깃발인데.
왕 : 어느 놈이 죽였어, 우리 아들!
안승 : 아 운명인가 아니면 누구의 장난인가.(막리지 깃발을 내던진다)
헌충 : 모함이요 이건. 대막리지와 왕실을 이간질하려는 자들의 음모요.
남건 : 헌충아, 넌 알고 있었더냐. (내려오며) 바로 말하여라.
헌충 : 모르는 일이요. 이 길로 아버님께 달려가 알아봐야겠습니다.
남건 : 가긴 어딜 가. 언제부터 꾸민 되도않는 흉계냐. 태자마마를 죽이고 백록공주와 혼인하면 장차 니가 왕이 될 줄 알았더냐. 고구려의 왕은 하늘의 자손 고주몽의 후손만이 되어야하는 걸 몰랐더냐, 네 애비는! 올커니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태자님을 당에 보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폐하, 제가 미련했나이다. 이 놈과 그 애비를 용서치마소서.
헌충 : 폐하, 아니오니다. 숙부, 믿어주세요. 난 도통 모르는 일이요.
남건 : 몰라. 모르면 가서 알아봐! 가라! (헌충을 베어 죽인다) 보아라! 고구려의 하늘을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베히고 말 연개소문의 칼이다. (헌충이 차고 있던 칼 두개를 뺏어차며) 아버님, 아버님의 뜻을 어긴다면 저 자신도 용서치 않으리라! (사이) 사방 성문을 걸어 잠그고 폐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성안에 남아있는 반역의 끄나풀들을 색출해 모조리 처단한다! (파발에게) 사서 전하라. 이제야 고구려의 대막리지가 제대로 대를 잇게 되었다구. 바로 나 연남건이다.
남산 : 형님, 도대체 이게 뭔 일이오.
남건 : 따라와 임마! (나간다)
질려있던 백록공주의 비명이 터진다.
안승이 주몽의 꼭두를 두 손에 받쳐들고 하늘을 우러른다.
안승 : 당신의 하늘에 잔별들은 흩어지고, 영원한 겨레의 별, 북두칠성만이 빛나도록 하소서!
뇌성 번개가 치면서…….
제6장 광야
광풍이 몰아치는 밤.
남생 : 바람아 불어라. 번개야 내려쳐라 멍청한 내 뒤통수를! 우레야 울어라 더 더 크게! 이 가슴 터지도록, 땅덩이 뒤흔들어라! 뇌성벽력아 마른 하늘만 때려대지말고 온누리 뒤덮을 장대비를 쏟아 부어. 아들 잃은 이 애비의 눈물을 감추어라!
먹돌 : (막리지 깃발을 뛰어오며) 어르신 그만하시오. 군졸들이 저러구 서 있은지가 꼭박 사흘째요, 벌써. 아쿠 저 시커먼 구름……. 빗방울이오.
남생 : 휘둘러 더 쎄게! 더 더! 그 누구도 대적 못할 대고구려 대막리지 깃발. 북풍한설 걷어내고 천군만마 잠재운 연개소문의 깃발. 어서! 그래 휘둘러, 천지가 뒤집어지도록! 이 세상이 멈출지라도 끝없이 휘날릴 나와 내 아들의 깃발이다. 하하하.
먹돌 : (깃발을 휘두르며) 이런다고 돌아가신 아드님이 살아오지 않습니다.
남생 : 휘둘러! 멈추면 네 놈의 팔을 베겠다. 옳지 그렇게. (사이) 아니다 이리줘. (깃발을 휘두르며) 헌충아! 이리 오너라! 넌 죽을 수 없다. 비다 비. 그래 , 비조차 오고야마는 대막리지의 명령을 넌 어이해 거역하느냐. 살아나라 살아나, 훠이훠이! (사이) 보이느냐 저기 온다. 헌충이가 살아있어! 이런제기 아버님도 오시네! 여태 살아 계셨소! 제가 그리도 못미더우신가. 에이, 사라져 꺼져버려! 이것은 이제 나의 깃발이오! (휘두른다)
비바람! 함성과 말발굽소리 울려든다.
먹돌 : 어르신, 저길 보시오! 평양성의 별동대가 시커멓게 몰려오고 있소.
남생 : 오냐! 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이렇게 컴컴절벽에서 만나는 것이다. 말을 내라! 돌격! 하나도 남김없이 까부숴라! 남건이 이놈! 거기 섰가라! 내 너를 찢어 죽여 간을 씹어 먹고 머리통을 바숴 뇌수를 짓이겨 놓으리라! 죽여라 죽여!
먹돌 : 정신을 챙기시우! 남건장군은 저기 없고 평양성에 있소. 또 죽이라니, 누굴 죽이란 말이요. 저들도 모두 우리의 형제들이란 말이오.
남생 : 믿음이 깨진 형제는 적보다 못한 원수가 되는 것. 죽여라! 더러운 핏줄 끊어버리면 그뿐! 피는 피로서 씻는 것! 죽여! 죽이라면 죽이는 것이 너희 쫄다구들이 할 일이다.
먹돌 : 어르신 제발! 형제지간 싸움 때문에 조국의 하늘이 위태롭소.
남생 : 조국! 하하하. 무엇이 너의 조국이냐?
먹돌 : 우리 땅, 고구려!
남생 : 치워라. 네 한 몸 살아갈 땅이 고구려뿐이더냐. 조국이라면 이가 갈린다. 이날 이때꺼정 내 얼마나 조국을 위해 몸부림쳤는지 아느냐. 아버님의 뜻 받들어! 그 조국이 날 버리고 내 아들도 죽였다. 이제 내가 그 조국을 때려 엎겠다. 차라리 저 대당천자의 신하가 되어 그 드넓고 풍요로운 중화문명을 맛보다 가리라!
먹돌 : (깃발을 휘두르며) 멈춰! 우린 하나다. 싸우지마라!
남생 : (깃발을 뺏어 패대기친다) 찢어버려! 새로운 깃발이 우리를 기다린다. 가자, 당나라로!
먹돌 : 아이구 형님, 나 어쩌우! (하염없이 운다)
제7장 성문
다음 해, 2월.
밤하늘을 뒤덮은 별빛들. 그믐달이 외롭다.
검돌과 약돌이 성문을 지키고 있다.
검돌 : 아 추워, 봄이 오다말다 하누먼.
약돌 : 아 고프다 고퍼. 따끈한 괴기국 한 사발만 마셔본다면 죽어도 좋갔다.
검돌 : 야 아들도 없는 놈아, 죽으면 제삿밥은 누구한테 얻어 먹을테냐.
약돌 : 제삿밥, 밥! 지미럴 밥이란 소리 들으니 정말 환장하갔구만.
검돌 : 그럼 한바퀴 돌고 오라우.
약돌 : 허구헌 날 돌구 오라니, 너 돌았니? 너 살 궁리나 해 이놈아.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장군이 신라에 투항했단 소리 못 들었니?
검돌 : 조카들 쌈박질에 뿔따구가 확 돋아서리, 홧김에 서방질한기야.
약돌 : 우리도 가자마. 남녘에 가면 굶지는 않는댄다.
검돌 : 배씨대기 조금 고픈 것 땜에 조국을 배반하갔다! 에라 썩을 놈아.
약돌 : 조국이 밥 멕여주네? 이 문드러질 놈아.
검돌 : 내레 가고파도 못 가. 동생이 남생이 편 기수아이가.
약돌 : 형은 성문을 지키구 아우는 쳐들어오구. 아래위로 콩가루 집안되누만.
검돌 : 위대한 우리 조국이 어째 이 지경됐누, 썅! 동생 남건이는 조카를 죽이고 대막리지가 되서리 깡깡되구, 형 남생이는 당나라군대 이끌고 쳐들어오니, 누구를 위해 싸워야하는기야 우린?
약돌 : 희망없어야 (사이) 내레 간다.
검돌 : 빨리 돌구 와, 교대해 줄께.
약돌 : (가다가 혼잣말로) 먼저 간다. 살아있으믄 만나갔지 언젠간!
몰아치는 바람결. 검은 그림자 하나.
검돌 : 뉘기야?
검돌네 : (까마귀 소리낸다)
검돌 : 꼼짝마!
검네 : 아 내요.
검돌 : 난 또. 야밤에 까마귀 소리가 뭬야.
검네 : 그래라 해놓구선.
검돌 : 밤에는 두꺼비지. 해보라우! (두꺼비 소리낸다)
검네 : 시끄럽소, 들기요.
검돌 : 웬 떡이가.
검네 : 유화부인 신궁서 굿 안 했간.
검돌 : 지미랄 넘들은 굶어 디지는데 굿판에 떡판이야.
검네 : 그 덕에 먹지 않소. 어이 먹소.
검돌 : 나눠 먹어야디. 야이 떡이다 떡! (병사를 부른다 잠시) 갔니 아주? 갈테면 가라!
검네 : 또 빠져나갔소? 우리도 갈까부다.
검돌 : 쓸데없는 소리. 떡이나 먹구레. (먹다가 목이 메여) 이놈은 굶지나 않는지 모르갔다. 전쟁을 할라면 화다닥 붙든지, 동생놈 얼굴이나 보게.
검네 : (따라 울면서) 오늘은 오나가나 눈물바다야.
검돌 : 뭣이라구?
검네 : 오늘 굿판에 임금이 오셔갖구서리 펑펑 울어대드라마. 압록강서 죽은 태자 혼이라도, 넋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구.
검돌 : 볼만했갖네. 기래서?
검네 : 다 울었디. 우는 일 빼고 뭐 있간! 아고 세상에, 이건 혼자만 알고 있으라마. 글쎄 유화부인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대어.
검돌 : 설마 나무로 깍아맨든게.
검네 :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소. 뭔일나도 크게 날 징조야. 거저 하늘이 확 뒤바뀌는거 아니요?
검돌 : 하늘이 판자대기야, 뒤집어지게.
검네 : 연개소문이 영류왕 죽일 때도 그랬다잖소.
검돌 :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말구, 우린 그저 대를 이어 충성만 하면 돼. 그래 누굴 태자로 정하란 말씀은 없었나?
검네 : 네미랄, 허구많은 왕자들 중에 누가 허든 뭔 상관이갔소. 아들들은 참 드럽게 많이 났소. 허수아비 임금 주제에. 우린 하나도 없는데. 맨날 쌀밥에 괴기국에 잘들 쳐잡수시니 쑥쑥 잘 낳갔지 뭐.
검돌 : 그 중에 그래도 안승왕자가 떡 버러졌디. 고구려의 유일한 희망이디 기럼.
검네 : 얼핏보니 잘도 생겼더만.
검돌 : 일리 오라우. 우리도 희망 하나 낳아 보자우.
검네 : 뭐이?
검돌 : 아들 하나 보자구.
검네 : 금무 중인데 큰일날라구.
검돌 : 큰일? 아들만큼 더 큰일이 뭐이가.
둘이 부엉이 소리내며 성벽 사이로 사라진다.
술 한잔 걸친 약광과 안승이 성벽 위에서 어슬렁대며 나온다.
약광 : 아 별빛 참 좋소이다. 그냥 막 쏟아질 것 같네.
안승 : 그렇군, 좋구 좋다. 아, 고구려의 별밤이다. 아하하하. (더덩실 춤을 춘다)
약광 : 달에는 두꺼비가 산다더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안승 : 해에는 세발 까마귀가 살지. 까막아, 까막아! 날개 접고 땅을 집어라!
약광 : 개소문 개소문 연개소문아. 다섯자루 칼을 녹여 한 자루 쟁기를 만들어라. (사이) 이 노래가 불려질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는데, 틀렸소 이젠. 죽은 연개소문이 상상이나 했겠소. 대를 물린 맏아들이 원쑤놈 군대 앞잡이 돼서 애비의 나라에 쳐들어오다니. (사이) 우리 뜹시다! 바다 건너 왜나라는 신천지 기회의 땅!
안승 : 아버님의 나라를 버리다니, 저 백성들은 어이하구?
약광 : 왕자께서 가시면 모두 다라 나설 겁니다. (주위를 살피고) 포구에 배 세 척을 마련해뒀습니다.
안승 : 저 광활한 영토를 내버리고 쪽배에 올라탄다. 못하네.
약광 : 이미 신성을 비롯한 16개성이 항복하였고, 남은 건 부여성과 안시성 여기 평양성 뿐. 더 이상 땅도 희망도 없소이다.
안승 : 부여성을 구하려고 5만 군사가 출동하였고, 사방각지에서 당차게 투쟁하고 있는 장수들이 많아. 희망이 있어 우린. (하늘을 가리키며) 저길 보게. 구백 년을 지켜 내린 고구려의 하늘일세. 동북방 필(畢)과 묘(昴)사이를 봐! 저기에 우리 고구려의 운명이 새겨져 있지. 헌데 요사이 영롱한 혜성 하나가 들어오고 있어. 저기! 저 별은 분명코 어떤 희망을 주는 빛일 것이야.
검돌이 바지를 추기며 나온다.
검돌 : 누구냐? 암호! 을지!
안승 : 문덕! (내려다 보고) 바람이 매서운데, 옷을 벗고 뭔 일인가.
검돌 : 아고 왕자님! 별빛이 하두 밝아서 빈대 좀 잡느라구.
검네 : (나오며) 에이그 먹은 게 없으니 힘이 써지가 (사이) 에그머니나.
검돌 : 굽어살피소서!
안승 : (술병을 던져주며) 마시게! 힘이 솟구치리. 가세!
약광 : 언제 그렇게 별공부를 하셨소?
안승 : 별볼 일 없는 서출왕자가 드러누워 별이나 봐야지, 하하하.
엎드려 절하던 검네와 검돌, 고개들어 하늘을 본다.
검돌 : 아들이면 ;칠성;이다.
검네 : 딸이면?
검돌 : 칠칠이.
제8장 신궁
제단에 둘러앉아 있는 아낙들.
남건이 들어와 칼집을 벗어 제단에 놓는다.
버들아기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남건.
버들 : 별 하나 똑 따 동문 걸고, 별 하나 똑 따 서문 걸고, 별 하나 똑 따 남문 걸고, 별 하나 똑 따 북문 걸고, 별 하나 똑 따 님의 창가에 걸어 (사이) 그만 가세요.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요.
남건 : 쉬이! 그냥 이대로.
버들 : 당신도 위험하오.
남건 : 저 칼을 차고부터 제대로 잠이 든 날이 없소. 꿈마다 부르짖으며 나타나시는 아버님 으...... 자고 싶다. 영원히 이렇게 따뜻해 아득해. 꼭 어머님 품 속 같아...... 아! 아버님. (흐느끼며 잠든다)
버들 : 아가 아가 우지마라. 네가 울면 햇님 울고 달님도 울어. 아가 아가 방긋웃어. 네가 웃으면 햇님 웃고 달님도 웃어. (사이) 잠들지 말아요, 제발!
노래하는 사이 안승이 제단 뒤에서 나타난다.
여인들 둘러서서 남건 쪽에서 보이지 않게 장막을 친다.
안승이 제단에 절을 하고 칼을 든다.
아낙들 : 어서!
류황후 : (그대로 남건을 안고 있는 버들에게) 비켜라!
버들 : (그대로 노래한다)
남건 : (가위에 눌려 뒤척이며) 아버님, 제가 지키겠나이다. 아버님의 나라...!
류황후 : 죽여!
안승 : (칼을 거둔다)
아낙들 : 오마니!
류황후 : 하늘이 준 기회다.
안승 : 사사로운 욕심으로 산목숨을 끊을 순 없소.
버들 : (남건을 감싼다)
류황후 : 불알 두 쪽 찬 놈이 그도 하나 못해. 우리가 한다!
여인들이 칼을 모아 쥐고 다가간다.
제단 뒤편에 연개소문의 혼령이 나타난다.
피투성이로 죽은 헌충의 모습도 보인다.
남건 : 아버지!
버들 : 안돼! 저리가. (몸부림치며 몸을 뺀다) 거기 있어, 오지마!
아낙들이 급히 몸을 숨긴다.
연개소문의 혼령, 버들에게 다가들며 애원한다.
둘의 모습은 무녀인 버들만이 볼 수 있다.
버들 : 연개소문! 내가 어찌 너같이 하찮은 피의 넋을 받겠는가. 이 몸은 왕실의 어미, 유화를 뫼시는 넋반이다. 물럿거라. 사라져!
남건 : 아버님? 오셨소, 어디? 그대 눈 속에 계신가 아버님의 넋이? 그렇담 어서 모셔주오.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리니 아하하하 나도 꼭 여쭤야 할 것이 있어. 어서! 내게 말을 해줘. 아버님의 넋으로.
버들 : 못해. 저리가! 훠이 훠이!
남건 : 예! 제가 했소이다. 조카를 죽이고 형의 지위를 뺏고 다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자 그리 하였소. 헌데 왜 이토록 큰 시련을 주는 거요. 말씀을 내리시오. 여기 당신의 아들이 있소!
버들 : 못 온다. 넌 여기 못 와. 연개소문 니가 무슨 낯짝으로 고구려의 하늘을 떠도느냐. 니 아들놈들 싸움으로 나라가 절단나고 있다. 사라져라! 꺼져라! 고구려 망친 칼 찬 망령아. 에이 퉤퉤!
남건 : 에이 한 칼에 버히리라!
버들 : (오열하며) 차라리 이 몸을 죽여!
남건 : 아니요, 내 어찌 그대를!
남산 : (들어오며) 막리지 여기 계신가? (사이) 나라가 개판인데 뭔 살판났다고 굿판이오.
남건 : 칼을 벗어라! 어머니의 품이다.
남산 : 칼을 차시오! 부여성이 함락됐소.
남건 : 뭣이. 그럼 구원병 5만은?
남산 : 몰살!
아낙들 : 오마니!
남산 : 시끄러! 뭐, 오마니의 권능과 조화? 웃기는 개소리다 이젠. 부여성에 있는 이 오마니 무덤도 몽땅 파헤쳐졌다.
남건 : 에이, 진작에 이걸 불질러야했으니. (칼을 뽑는다)
아낙들 : 오마니!
검네 : 피다. 눈에서 핏물이 흘러요.
아낙들의 통곡소리 드높아진다.
제9장 성문 밖
밤. 일렁이는 횃불.
이세적의 당군과 남생의 반군이 진을 치고 있다.
‘요동도행군대총관념안무대사’, ‘대당팔십장군 이적’의 깃발이 휘날리는 이세적의 군막.
‘요동도독겸평안도안무대사’, ‘대당장군 연남생’의 깃발을 앞세운 남생이 이세적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팔십세 이세적이 남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적 : 하하하 이거 보게. 부여성의 유화부인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이야. 청동과 금부치라 하나도 녹슬지 않았어. (사이) 걱정마, 자네 아비 연개소문의 무덤에는 손대지 말라 엄명을 내려놨다. 이건 자네가 갖게.
남생 : 저보다 저 성안의 보장왕을 주시지요. 아주 감격할 겁니다.
이적 : 그 양보심 참 맘에 든다. 지난 날 모셨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인가?
남생 : 저의 충성심은 각도를 완전히 바꿔 대당 천자께 향해 있습니다.
이적 : 놀라운 변신이다. 중원 천지를 벌벌 떨게 하던 연개소문의 장남, 고구려의 대막리지가 하루 아침에 획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남생 : 장부로 태어나 일국의 제왕이 될 수 없을 바에야 대당천자의 충신이 되어 높은 문명을 호흡하며 살고자 하나이다.
이적 : 오호 대장부 호연지기! 자네 아비는 왜 몰랐을까 그걸.
남생 : 어리석고 쓸모 없는 왕을 내치고 왕위에 오르시라고 몇 번 권했습니다만 듣지 않으시고 그저 구백 년 지켜내린 저 고구려의 하늘을 지키라 하셨지요.
이적 : 고구려의 하늘? 끝났어. 저기 동북방을 보게. 필방과 묘방 사이에 고구려 별들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보이나? 헌데 저기 혜성이 하나 들어와 번쩍대지. 저게 바로 나야. 하하하 몰랐지. 이제 하늘의 권세는 대당천자만 가질 수 있다. 헌데 저 안의 무리들은 왜 여태 개기고 뻐대는가. 항복하면 살려주고 벼슬도 준다는데. 벌써 한 달이 넘었어. 나 이러면 장담 못해. 다 죽여 버릴 수도 있다.
남생 : 제 막내 동생이 와 있습니다. 좀더 너그러우신 항복조건을 내려주시지요. 나와라!
남생의 깃발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산이 나온다.
이적 : 뭘 그렇게 빤히 째려보나, 꿇어!
남생 : 안으로 드시지요.
이적 : 내가 팔십먹은 대장군이야. 나만큼 살고 싶으면 잘해. (안으로 든다)
남산 : (품에서 칼을 뽑는다)
남생 : (제지하며) 어짜피 망할 나라 빠를수록 좋다.
남산 : 진정코 하나가 되긴 틀린거요, 우리? (사이) 좋소. 백성들이나 살리고 봅시다.
둘이 이적의 군막에 든다.
병사들의 노래소리 들린다.
병사들 : 구백년 고구려 천년을 못 가서 흉년 거푸들어 두더지 문을 뚫고, 팔십대장 나타나 망하고 망하리.
군막 안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움직거린다.
제10장 막부
칼을 움켜진 남건이 움크리고 있다.
왕과 일행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왕 : 어찌할꼬 내 이를 어찌할꼬 내일 아침까지 성문을 열지 않으면 성안 백성들을 모두 죽이겠다니 막리지! 어쩌면 좋겠소? 응? 응? 말들좀 해봐 공주야! 이럴땐 누구한테 빌어야 해답을 얻겠니
백록공주 : (정신이 반쯤 나갔다) 빌어요? 알아요 내가 빌어요 주몽아바이 한테 빌면 말과 활을 주실테고 오마니 한테 빌면 먹을 곡식을 주시겠죠 맨날 싸우고 쳐 먹는 건 난 싫더라 별한테 빌테야 직녀성께 빌면 사랑을 주실테고 칠성님께 빌면 새생명을 주실께야
남건 : 모시고 나가!
백록 : 저기 내 견우님 별이 안보여 없어 졌어 찾아내 내 별(남건을 할켜 보며 끌려 나간다)
남건 : 버티자고 버텨 조금 있으면 첫눈 내리고 엄동설한 제깐놈들이 얼어죽지 않으려면 물러 날테지
남산 : 그전에 우리가 굶어 죽고 말거요 식량이 바닥났소
남건 : 성안엔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고 유화 분인 신궁엔 비장된 곡식이 있다
남산 : 병사들이 뭉탱이로 매일 빠져 나가고 있소
왕 : 내 호위 군사들도 안보여 열자고 문! 살려 준대자나 저 죄없는 백성들 살려 야지 저들을 다 죽이고 내 어찌 선영들 혼을 대하리
안승 : 백성들을 살리려면 문을 열어야 하오 열더라도 당나라 한테는 안돼요 남문 밖에 신라군 오만이 진을 치고 있소 그들에게 문을 열고 연합하여 북문밖의 당군을 치면 승산이 있소
남산 : 우리가 신라한테 망하잔 말인가 백제처럼!
안승 : 망하는게 아니라 공생하는 거요 당군은 우리를 친 연후에 신라 정벌을 계획하고 있소 김유신도 그걸 알고 있지 내 이미 약관을 보내 우리의 뜻을 전했소 좀더 버티며 기다려 봅시다.
왕 : 신라한테 문을 열면 (사이) 나는, 우리 왕실은 어찌 되는가
안승 : 그것은 우리 당군의 겨레가 하나로 된 연후에 저 하늘 같은 백성들의 뜻으로 전해 질 겁니다
남산 : 옛말에 남의 집 종이 되더라도 대갓집 종이 되라 했소
안승 : 그러면 당천자의 종이 되잔 소린가
남산 : 종이 아니라 신하가 되는 거요 대왕가 왕족들의 모든 권한도 그대로 보장한다 했으니 고개 숙여 절 몇 번 하면
안승 : 당에게 항복하면 우리의 하늘이 영원히 저들의 것이 되지만 신라와 합하면 저 영원히 하나된 겨레 하늘로 지켜 낼수 있소
왕 : 다른건 다 해도 우리 강토에 당군을 끌여 들인 서라벌 놈들하고는 손 못잡는다 안그렇소? 장군 차라리 당군한테 문을 열도록 하지
창잡고 위병을 서던 검돌이 나선다
검돌 : 아니되요 미천한 문지기 감히 한 말씀 아룁니다 성안엔 아직도 일당 백이 장정들이 두 주먹 불끈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 자식놈에게 멸망한 조국을 물려 줄 순 없습니다
왕 : 뜻은 장하다만 니가 살아나야 자손도 있다 물러가!
검돌 : 끝까지 싸우다 죽게 하시오!
남건 : 그렇다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투항하는 자는 그 누구든 이 칼로 버히리라
아낙들의 노래 소리 들린다
백록 : (들어오며) 빌어요 모두 나와 빌어요 별이 떨어져요 성안 가득히!
제 11장 성문안
성문앞 광장에 별빛같은 불빛이 반짝인다
호롱불든 여인들이 유화와 주몽상을 가마처럼 메고 노래하며 시위한다
아낙들 : 살리소 살리소 우리어미 되살리소 (후렴) 유화부인 피 눈물이 강물되어 흐른다 주몽대왕철궁으로 대문 빗장 걸어라 유리명왕 사랑으로 어깨잡고 붙어라 광개토와 천리마로 땅구르며 버텨라 장수대왕 수명으로 죽기살기 싸워라 연개소문 다섯칼로 하나되어 막아라
왕 : (성벽위에서) 어리석다 너희가 그런다고 역사의 거센 물결을 어찌 되돌릴까 보냐 달도 차면 기울고 화무도 십일홍 천년의 영화도 하룻밤 풍상에 쑥대밭되고 인생사 꿈속에 꿈이니 안달재날 울고 불고 버티고 비벼 봐야 부처님 손바닥을 못 벗어 나니 다 버려라 버려! 기록하라 짐의 이름을! 고구려의 마지막 제왕으로 (눈물을 쏟으며) 흩어져라! 돌아가 살아날 궁리나 해라 기록하라 마지막 임금의 마지막 어명이다
류황후 : 오마니의 땅을 두고 어디로 가란 말이냐 갈테면 너나 물러나! 우리가 언제 너같은 것을 왕으로 섬겻더냐!
아낙들 : 물러나라
남산이 화살을 메겨 류황후를 쏜다 류황후 가슴에 화살을 맞고 절명한다 여인들의 외침소리 드높다 남산이 왕을 이끌고 사라진다
남건 : (성벽에 나타나며) 바위를 불리고 불기름 쏟아 부어라 화살을 아끼지 마라 팔이 잘리면 팔을 던지고 목이 잘리면 목을 던져라 싸우다 죽어라 조국의 하늘이 우리의 넋을 기다린다 우린 죽어도 돌아갈 하늘이 있으니 하늘은 지키는 자의 것 자 덤벼라 그 어떤 외적도 반역자도 나의 하늘을 범치 못하리니 나 오늘 돌아가련다 나의 하늘로 자 다죽자
병사들의 함성소리 성벽으로 오르는 검돌, 아낙들 사이에서 만삭이 된 검네가 검돌을 발견한다
검네 : (배를지고) 아이고 여보 나 어떻게 해!
검돌 : 아고 하필 이럴 때 나오네? 누구 좀 도와주!
소용돌이 치며 울부짖는 무리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안승 : (무리들 속에서 외친다) 지켜야 한다 막아야 한다 조금만 견대내면 희망이 있다(약광을 발견한다) 약광! 어찌됬나 신라군은?
약광 : 당의 방해 공작으로 이미 ......신라에도 친당파가 더 많더이다
안승 : 싸우다 죽을 수 밖에, 조국의 하늘아래 몸을 묻자!
약광 : 안되오 죽기 보다 살기가 어려운걸 이리로!
검네 : 아고 막 쏟아 지네!
검돌 : (구석으로 이끌며) 나 없더라도 잘 키우라오 샹 간다.
검네 : (비명을 지르며 성벽을 움켜진다)
성벽위에 수많은 백기(항복의 표시)가 내걸린다 남산과 왕이 성벽위에서 백기를 흔든다. 굉음을 내며 부서지듯 열리는 성문 깃발을 앞세운 당군과 남생군이 쏟아져 들어 온다.
아낙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다.
이적 : 어렵다 어려워 이렇게 열기힘든 성문은 팔십평생처음이다.
백록 : 까막아 까막아 세발까막아 나에게 쳐서 똥파리 날려라
이적 : 뭐냐 요건 참 곱다 너 접수해라
당군이 백록공주를 잡아 챈다.
왕이 내려오며 소리 친다.
왕 : 그에는 손대지 마라 내 딸이다
이적 : 넌 뭐냐!
남건 : 하늘의 아들 고주몽의 직계후손. 고구려 제 28대 임금으로 이름은 보정.
이적 : 족보 그만 팔고 꿇어
왕이 이적에게 항복의 예를 올린다.
모두 피눈물을 흘린다.
백록이 남생에게 침을 뱉는다.
남건 : (성벽위에 나타나서) 나 연개 소문의 진정한 후계자, 대막리지연남건, 내가 살아 있는 한 고구려는 망한게 아니다 몰랐는가 내가 고구려다! 누가 나를 죽이겠는가?
남생 : 내가 죽인다.
남건 : 내가 널 죽인다. 아버님의 이름으로
남생 : 저기 서! 저놈한테 아무도 손대지마 내손으로 저놈을 갈갈이 찢어 발겨 더러운 핏줄의 운명을 마무리 한다. (성벽으로 뛰어 오른다)
남건 : 좋지! 와 이리 우리 형제끼리 죽이고 죽여 보자 하하하 (사라진다)
왕 : 싸운들 무엇하리 다 끝났다
이적 : 하하하 흥미진진 형제간의 싸움은 언제나 봐도 볼만 한 것 그것이 역사를 만드느니 살아남은 자가 오늘의 일을 기록하리라. 배고프다 먼저 먹고 보자 먹어라 들 저항하는 것들은 죽여도 좋다 단 왕실재산과 연개소문의 족속들은 손대지마 그 아들들이 여기 계시다
남산 : 안으로 드시지요
이적과 왕 일행 나간다
아낙들 : 구백년 고구려 왜적에게 내 줄수 없다 불질러 사그리 불불불!!! (몰려 나간다)
불길이 솟는다 화염에 휩싸인 성벽위에서 연개소문의 혼령이 울부짖는다 핏덩이를 안고 기어 나오는 검네의 모습보인다
제 12장 신궁
흩어진 재단 유화와 주몽의 신상이 바닥에 나뒹군다.
버들이 재단을 두드리며 울부 짖는다
버들 : 오마니 오마니 어이 해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어이하리 어이하리 아들나라 어이 하이
오마니 어이해 못 오시고 피 눈물만 내비치오 사대 귀신 가로 막고 산천 정기 맥이 끊겨 못 오시나 칼 찬 귀신 에워 싸고 높은 담장 앞을 막아 못 옷시나 오시오 오시오 한걸음에 다가와 우리를 구하시오 오마니 오마니 아들나라 이대로 버리지 마시오
버들 스스로 재단에 올라 춤을 춘다
연개소문의 혼령이 나타 난다
비명지르며 기함하는 버들
버들에게 연개소문의 혼령이 스며 든다
남건 : (뛰어 들며) 어디 있소 버들 불이요 불 고구려 9백년이 불속으로 잠겨들고 있소 장엄하다 아름답다 기막히다 후련하다 하하하 아느냐 나로 하여 비롯된 불잔치다 모두 나와 구경하라
온몸에 피뚜겁을 뒤집어 쓴 검돌이 뛰어 든다
검돌 : 어디 있소 우리 군사
남건 : 다 죽었다 그쪽은?
검돌 : 나 혼자요 간나들이 몰려 오오 먼저 피하시구레
남건 : 여기서 죽을라네 자네나 가게
남생과 먹돌이 뛰어 든다
먹돌 : 꼼짝 마라!
검돌 : 야 이놈아 살아 있었구나
먹돌 : 형!(끌어안는다)
남생 : 칼을 들어! 날 죽이면 니가 산다
남건 : 잠깐 저 형제들 상봉을 구경좀 하지 (잠시) 가라 가서 의좋게 살아라
검돌 : 내레 끝까지 싸우다 죽갔다 야이 당나라 똥간나들아 여가 누구땅이라고 넘보는냐
(창 꼬나 쥐고 나간다)
먹돌 : 형 나도 간다
같이 : 조국을 위해
남건 : (사이) 부럽지 형!
남생 : 저 동생은 조카를 죽이고 형의 자리를 뺏지 않았어.
남건 : 저 형은 아버님의 뜻을 저버리고 적에게 조국을 팔아 넘기지 않았지. 덤벼봐! 아버님을 대신하여 형의 죄값을 치르겠다.
남생 : 오냐 누구의 죄값이 큰지 알아 보자.
둘의 칼부림에 살기가 뻗치고 피가 튄다.
연개소문의 혼이 든 버들이 공수를 내린다.
버들 : 남생아! 남건아! 아들아 내 아들들아. 멈춰라 그만둬라. 칼일랑 내려 놓고 날 보거라.
물과 같이 하나과 되어 지켜 내라 하였다. 무너졌다. 고구려의 하늘 너희들의 쌈박질로 우리겨레 넋이 깃들 저 하늘이 사라졌다. 너희들 넋은 어디로 돌아 갈테냐. 너희는 죽지도 못하리라. 나의 넋도 갈 곳 없어 구천을 해메리라.
남건 : 왜 저따위 형에게 대권을 물려 줬어. 당신의 거룩한 뜻, 내가 받들어 저 하늘 지키려했는데. 아버님!
버들 : 시간이 없다. 구백년 고구려 예서 끝날 수는 없다. 남생아 너의 군사를 되돌려 당군을 내쳐라. 선영들 응답하고 백성들 화답하여 흩어진 민심 하나되면 저 하늘 되찾을 길 있으니.
남건 : 아버님 그리 하겠나이다. 형 어서 (사이) 내가 잘못 했어 내 죽음으로 사죄하겠으니 제발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의 하늘 되살려 주오.
남생 : 때는 늦으리. 내 하늘은 내가 정했다. 아버님이라니.. 요망한 계집의 넋두리 (허리에 차고 있던 칼 세자루를 차례로 뽑아 버들을 베고 내던진다) 다 가져라 그토록 원했다면 입에 물고 죽던지 저 불길 쑤석거리는 부지갱이 삼든지 마음대로 (나가며) 잘탄다. 깡그리 불태워라. 구백년 고구려,하하하 참으로 지겨운 역사 였다.
남건이 칼들을 주워 허리에 찬다.
다섯자루 칼을 찬 남건이 연개소문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남건 : 아버님 당신의 칼 다섯자루 차고보니 참으로 무겁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나이다. 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을! 아버님! 당신의 아들들은 물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기름처럼 나뉘어 당신의 나라에 불을 질렀나이다. 고구려의 하늘, 불바다 속으로 가라 앉고 있습니다. 저의 넋은 저 불길속에서 끝없이 타오르는 형벌을 몇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님 저를 용서치 마옵시오! (칼을 들어 배를 가르려다가 버들을 본다) 그대 품속으로 죽을려 했는데. 그대한테만은 용서 받고 싶었는데. 그대 한 숨 그대 눈물 속에 내 미련한 넋을 씻기자고 했는데.아 죽지도 못하리라.내 무슨 낯으로 죽어 당신의 넋을 대하리오 죽지 않으리. 끝까지 살아남으리.살아 이 무거운 죄값을 치루겠소 허리 꼬부라져 죽을 때까지. 나라 잃은 백성의 고통을 온몸 온 맘으로 겪고야 말겠소. 그리하고 나 죽게되면, 그대 저 하늘에서 날 받아주오!
유화의 신상을 가슴에 품고 일어난다.
불길이 솟구친다.
제 13장 성문
줄줄이 선 왕의 일행과 포로들.
이세적이 명단을 확인하며 포로들을 분류한다.
이적 : 보장! 남생! 장안에 가면 왠만한 벼슬은 할거다. 대당천자께 잘만 보이면. 남건! 넌 좀 힘들어. 살고 싶으면 잘들어 내말. 해봐 절!
남건 : (비굴스럽게 절한다)
이적 : 하하하 사천성으로 귀양 보내주마. 왕자들은 다 있으렷다. 기록해라! 당과 고구려의 100년 전쟁. 오늘 나 이세적이가 끝냈다. 출발! (사이) 아니 뭐냐 저건!
책 가득 싫은 수레가 보인다.
보장 : 구백년 고구려역사를 적은 서적들이오. 후세에 전하여 오늘로 끝난 고구려문명의 발자취 되새김질하게 해주시오.
이적 : 가소로운 발상. 역사는 승리자의 것. 한글자도 남기지 말고 불싸질러!
보장 : 아이고 하늘이여!
이적 : (남건에게) 넌 무릎으로 기어가!
모두 성문을 빠져 나간다. 불에 타 끄슬린 성벽 위에서 안승과 약광이 몸을 드러낸다.
약광 : 바람이 좋습니다. 배를 타시지오. 수천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승 : 난 신라로 가겠네. 거기가면, 힘을 합쳐 겨레의 하늘 되찾고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야.
약광 : 어딜 간 들, 조국의 하늘이 아니리오.
포대기에 싼 간난쟁이를 안은 검네의 모습 보인다.
안승 : 어디로 가는 백성인가?
검네 : (아기를 어른다)
안승 : 이름이 뭔고? 날따라 가겠느냐?
검네 : 내 새끼 내 땅에서 키우겠소.
구슬픈 아낙들의 호곡소리 메아리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