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속리산하 백두대간에서 시산제 겸 애국충절의 고장, 충북 괴산과 증평을 찾았다. 200년차이를 두고 목숨을 바쳐싸우다 돌아가신 배극렴 장군과 김시민 장군의 묘소를 찾았다. 배극렴장군은 이성계 휘하에서 고려말 수없이 많은 외구의 침략을 물리치고 위화도 회군후 1등공신 조선의 개국을 도왔으나 병이 들어 1392년 병사했고, 200년뒤 1592년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로 진주하려는 왜군을 진주성에서 물리치고 크게 승리하였으나 반복되는 왜구와 전투에서 3800명의 병력으로 2만의 조총무장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장군이셨다. 배극렴장군의 증평읍 송산리 묘소는 봉분이 사각형의 고구려, 양식이다. 좌향을 살펴보니 계좌정향에 병파되어 황천살에 걸려있다. 후손이 있다해도 폐절( 망 )했을 것이다. 묘소는 성산배씨 가문에서 돌보고 있는듯 직계후손은 없는듯했다. 한편 김시민 장군은 사당과 묘소가 괴산군 능촌리에 함께 모셔져 있었는데, 명당이었다. 그러나 음택과 사당을 함께 조성하면서 음택의 위치가 너무 뒤로가 좋지않은 곳에 자리하여 안타까운 마음 어찌하오리까? 제대로만 제혈했더라면 후손들이 큰 인재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동행한 일행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후손들을 찾아서 얘기를 들었는데, 1977년 이장하면서 묘소조성 당시 풍수는 모르고 자신들이 무조건 땅을 파내고 조성한 것이라고 했단다. 참 좋은 명당을 허당으로 만든 후손들이 한심해 무엇하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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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시민장군 영정을 모신 충민사와 영정 38세에 전사하셨다. 현재위치로 이장
2016년 통일기원 시산제 입니다.
김시민장군을 모신 충민사 전경. 괴산읍 능촌리 61번지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