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도혜숙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하에 헬스장이 생겼다. ‘인간 백체의 근육과 긴장을 풀어주며 체중을 조절하고 키를 늘일 수 있는 운동효과!’ 가망 없는 일이긴 했지만 키를 늘일 수 있다는 광고문구가 내 마음에 그럴싸했다.
헬스장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달음질하듯 귓속을 파고들었다. 낯선 운동기구들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음악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몸짱이 되고 싶은 사람, 미스터코리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땀을 둘러쓴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는 코치가 설명하는 기구사용법을 들으며 사뭇 망설였다. 하나같이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슬슬 몸을 풀어보자고 했다. 무리 없이 며칠이 갔다.
키가 큰다는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코치가 일러준 대로 발목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버튼을 눌렀다. 서 있던 거꾸리가 차츰 기울어졌다. 머리가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몸이 물구나무를 선다. 빙그르르 세상이 돌아가는 순간, 아찔했다. 눈이 저절로 감겨져 버렸다. 피가 거꾸로 흐르면서 의식이 멎을 뻔한다.
“눈 떠요. 눈!” 코치가 소릴 질렀다. 세모와 네모를 분명하게 구별하던 내 시각이 거꾸로 볼 때는 그것이 세모인지 네모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내 뇌리에 고정되어 있던 물체들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내가 딛고 서는 바닥이 머리끝에 매달려있는 낯섦, 정수리 쪽으로 사납게 찢어진 눈, 입술이 일그러지도록 앙다문 입이, 내 얼굴이 그렇게나 용심궂게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대로 입을 다물어보려고 용을 써 봐도 허사였다. 참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더듬더듬 제자리로 돌기버튼을 눌렀다.
이 운동을 하면서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방향과 평형감각에 혼란이 생겨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며 코치는 눈을 못 감게 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인데, 시작하자 말자 못 하겠다고 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눈을 감은 채 할 수도 없고, 난감한 노릇이었다.
“한쪽 눈이라도 뜨는 연습을 해보입시더” 코치가 망설이는 내 등을 밀었다. ‘그래 한 번 더 해보자’ 스스로를 부추기며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버튼을 눌렀다. 머리가 세시에서 네 시로 내려가다가 거꾸리가 수직으로 섰다. 양쪽에 있는 기둥을 꽉 붙잡고는 겨우 눈을 떴다.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되풀이 하고서야 시선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었다. 하나 둘, 열을 세는 동안 그것만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물도 보면서 스물을 세고, 그러던 어느 날 한 변을 깔고 앉아있던 꼭지 삼각형이 역삼각형으로 보였다.
눈뜨기보다 더 어려운 게 기둥 잡은 손을 놓는 일이었다. 손을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거꾸로 선 채 바닥에 곤두박힌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두려웠다. 손 놓기는 한 손 놓고, 두 손 놓고 그런 성질이 아니었다. 한 손은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지 않았다. 손을 놓는다는 것, 정말 어려웠다. 벼르고 벼르기를 거듭 해보건만 실행하려면 손이 놔지지 않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말을 떠올리며 딱 눈을 감았다. 기둥을 놓았다. 등받이에서 몸이 한 뼘이나 떨어져 나오면서 요동을 쳤다. 번개가 번쩍 하면서 등줄기에 진땀이 났다. 꽉, 나도 모르게 기둥을 도로 움켜잡았다. ‘눈 뜨세요. 눈!’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걸 깜빡 했다. 실눈을 떴다. 저쪽 거울에 정지된 덩어리가 보였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죄다 머리 쪽으로 쏠려서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흐트러져버린 그 모양새가 뜻밖에도 나와는 별개인 것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물체처럼 보이는 것이, 흡사 박쥐였다. 동굴 천장에 붙어 있는 박쥐를 처음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이 되살아났다.
이랬다. 저랬다. 하다가 뭇 무리에게 쫓겨났다는 박쥐. 그건 누가 샘나서 지어낸 거짓말인지 모른다. 그가 남과는 좀 다르게 살고 싶어서 갖가지로 애를 쓰다가 그런 폄하를 입었지 싶다. 평범한 쥐로 태어나서 기지 않고 날아다니는 박쥐가 될 때까지 그가 겪었을 헛손질이 어디 수천 번에 그쳤을까? 부실한 운명을 타고 난 몸으로, 많이도 엎치다 뒤치다 뒤뚱뒤뚱 나뒹굴어지다, 높은 데로 기어 올라가 몸을 던져 날아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 올라간 기둥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오금이 먼저 저렸을 것이다. 몇 번이나 포기를 하다가, 그 어느 날 죽을 각오로 기둥을 붙잡고자 하는 손아귀를 놓았으리라. 아, 그때 앞발은 공중을 나는 나래가 되고 뒷발은 허공을 붙잡을 수 있는 손이 되었을 것이다. 무심을 만나 거꾸로 매달려서도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떠졌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 쥐의 세상이 아닌 박쥐의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매달려 무엇으로 사는가? 언제 허공에 머물 꿈 한번 꿔 본적이 있었던가. 나를 비추는 거울을 외면하면서 한사코 이 기둥에나 매달리는 세상살이다. 새로운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 지금 잡고 있는 기둥을 놓아야 하는데도, 어찌된 셈인지 막상 기둥을 놓으려고만 하면 내 오장은 절로 오그라든다.
세상 바로보기가 그리 쉽겠는가. 꽉 움켜잡았던 거꾸리의 기둥을 스르르 놓았다. 몸의 무게가 땅에 박힐 듯이 머리로 내려왔다. 두려움이 등골을 스멀거리다가 접지된 전기처럼 바닥으로 들어가 버린다. 온 몸의 힘을 놓아버린다. 디룽디룽, 아둥거리던 세상을 다 내려놓은 듯이 편안히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내가 아닌 양 한가로워 보인다.
“손 놓고 거꾸로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 코치가 웃는다.
나는 오늘도 박쥐가 되어본다. 땅을 딛고 사는 게 아니라 거머잡는 손 없이 하늘에 매달려 사는, 거꾸로 서서도 무심히 세상을 바로 보는 눈뜨기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 막둥이가 꾸벅 축하인사 드립니다. ^^* ^^*^^*
한번씩 거꾸로 서는 것도 해봐야겠어요. 역지사지라고....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