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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리포터 / 양은진
취재일 : 2002. 5. 6.
앙징맞은 인형 같다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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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방송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면서요? 요즘 어떤 방송에 출연하고 있나요? SBS 월드컵 특집 신바람 월드컵에 고정 출연하고 있어요. 월드컵 기간동안 매일 낮 12시 35분부터 1시20분까지 방송되는 건데요, '웰컴 투 코리아'라는 코너를 보시면 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SBS 아침 방송 모닝 와이드에 고정 출연하고 있어요. 또 특집 '물은 생명이다'에도 매월 출연하고 있구요. 모닝 와이드에서 가끔씩 양은진씨를 본 것이 생각납니다. 주로 기행을 다니면서 지역의 특징이나 정보를 전해주었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그렇게 지방을 쫓아다니느라 힘들지 않으세요? 물론 육체적으론 많이 피곤하고 힘들 때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요. 제가 맡은 코너가 주로 기행코너이거든요. 혼자서 여행을 하면서 볼거리, 먹거리, 알거리를 전해주는 역할이죠. 화면으로 비춰지는 것은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접하고, 또 새로운 문화를 알고 전해주는 역할이죠. 그래서 시청자들께서는 저의 일이 즐기면서 쉽게 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사실은 몇 분 안에 모든 것을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는지 몰라요. 왜 이런 말 있잖아요? 백조가 유유자적 물 위를 떠다니며 아름답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 물 속에 있는 발은 쉬임없이 움직인다구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한 장면 한 장면 화면에 담기 위해 스텝들은 긴장하고 끊임없이 강행군을 하는 것이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전문 리포터라고 했는데, 요즘 사실은 방송에서 전문 리포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전문 리포터'라는 직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말 그대로 전문적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죠. 리포터는 연예인이 아닌 전문 방송인입니다. 자신의 분야에 확신을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거죠. 시청자들은 '리포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요.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전문 리포터와 리포터의 차이는 잘 모르고 있는 편이죠. 요즘 방송에는 인기 있는 가수나 탤런트 그리고 개그맨 등 연예인들을 리포터로 많이 기용을 하고 있어요. 시청률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시청률 자체가 방송의 질을 평가하지는 못하거든요. 전문 방송인으로서 리포터만이 가지는 색깔이 분명 있는데도 현실적으로는 전문 MC나 전문 리포터라는 말을 요즘은 많이 들을 수가 없어요. 전문 리포터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저는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리포터'라는 직종을 하나의 가교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방송의 한 코너의 리포터를 하면서 인기를 얻으면 다른 역할로 옮겨간다든지, 리포터를 단순한 전달자 역할로 생각한다든지 말이죠. 그런 경향도 없지 않아 있어요. 리포터를 발판 삼아 방송계로 진출해 인기를 얻겠다는 이들도 있죠. 저는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 리포터 경력만 해도 6-7년 되거든요. 제가 리포터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전문 리포터' 의식이 없는 사람은 자기 역할에 만족을 하지 못해 늘 불만족스럽게 일을 하거나 도태되거나 해요. 리포터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난 김에 리포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우선 수입적 측면에서도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 리포터가 프리랜서인 만큼 그야말로 수입도 천차만별입니다. 보통 저희는 출연료를 1회당으로 지급 받거든요. 초보자의 경우 한 회 출연료는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 받고요. 경력이 좀 있고 나름대로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리포터라면 편당 3-4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어요. 사실 리포터들이 많은 것 같지만 경력이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 리포터는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리고 고정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서도 수입은 달라지지요. 저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편당 50만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죠. 그때쯤이면 고정 프로그램도 많을 것이구요. 리포터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지출도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예요. 물론 소비라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가미되긴 하지만 방송 출연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 해결된다면 크게 지출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리포터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지식을 갖게 돼죠. 그런 것들인 삶의 경험으로 내 안에서 되살아날 때 개인적인 삶도 풍요로와 질 수 있거든요. 활동적이고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들, 특히 방송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전문 리포터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리포터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촬영을 할 때나 방송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하나요? 전문 리포터로서 특별히 지향하는 바는 어떤 겁니까? 제가 일을 하면서 지켜온 철칙이랄까, 제 직업관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교양방송 리포터로서 내가 전하는 정보가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고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느니, 예쁘다느니 이렇게 기억되기보다 나는 잊더라도 그 정보만은 필요할 때 기억해 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그래서 정보를 전하는데 충실했고,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색깔을 지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욕심을 말하자면 교양 정보 PD가 "양은진씨와 한번 일해보고 싶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더 많이 노력하고 공부해야겠죠.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전문 리포터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런데 리포터는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대학 때 방송반 활동을 했어요. 그때는 아나운서였죠. 말하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대학 4학년 때 EBS에서 아나운서 겸 MC 공채가 있었어요. 저희
학교에서 4명이 응시했는데 제가 합격했어요. 10명을 채용하는 시험에 수백명이 도전을 했는데 운이 좋았던 편이죠. 그때가 94년도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전문 MC와 리포터 공채가 많았어요. 시험도 굉장히 엄하게 치뤘구요.
저도 한달간 매주 일요일마다 실기 시험을 쳤으니까요. 얘기를 하다보면 지난 일들도 생각나고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그리고 힘들었던 일들이 더 생각나겠죠. 리포터를 하면서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전문 방송인의 길을 걷겠다고 방송국 공채에 입사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어요. 진정으로 방송인의 길을 접으려 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어요. 또 얘기할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인복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함께
일을 한 분들이 제가 입사한 다음 해에 딩동댕 유치원의 MC를 참신한 이미지로 교체하기로 했다는군요. 그래서 신인 MC 채용시험이 있었는데 시험에 응시하라는 권유를 받았죠. 그래서 EBS의 간판 프로라 할 수 있는 딩동댕 유치원 MC를 하게 됐어요. 별다른 준비도 못했는데 급작스레 고정 MC로 기용돼 고생도 많이 했죠. 스튜디오 녹화는 처음이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개편을 한달 앞두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고 도망을 갔어요. 도망이라니, 현실 도피였습니까? 아니면 방송계를 떠날 작정이었습니까? 사실은 방송을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이런 게 방송판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거든요. 꿈과 이상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경륜이 좀 있고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땐 모든 게 다 싫었거든요. 그래서 진로를 바꿀 심산으로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딩동댕 유치원에서 제가 동희언니 겸 애칭 깨송이 언니였거든요. 엄마들이 깨송이 언니 왜 그만두느냐고..... 다시 MC제의가 왔고 거절하고 하는 과정이 한달이나 계속됐어요. 지금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 당시 한창 케이블 방송국이 개국할 때였거든요. EBS에 계시던 분들이 케이블 방송 쪽으로 자리 이동을 많이 하셨고, 고맙게도 저에게 방송 제의를 많이 해오셨어요. 그래서 저는 공중파 방송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케이블 방송 쪽에서 리포터 활동을 다시 시작했죠. 하지만 지금은 공중파에서 활동하시잖아요. KBS, SBS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리포터가 양은진씨 아닙니까? 그렇게 됐어요. 케이블에서 일하면서 저는 리포터의 참 맛을 알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96년에 또 한번의 기회가 왔어요. 친구가 KBS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를 하고 있었는데 리포터가 펑크났다고 구원을 요청해 왔어요. 대타로 기용된 셈이죠. 새벽 2시에 방송국에 불려 들어갔어요. 대학 축제와 우리 주변의 축제들을 취재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축제의 밝은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스텝들과 즐겁게 촬영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 그 후 일주일에 두 번 생방송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아침 생방송의 험난한 길로 접어든 셈이죠.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하셨으며 기억에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지금 얘기한 KBS 좋은 아침입니다, 6시 내고향, SBS 모닝 와이드 등에 고정 출연했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특집 방송이 잡히면 투입되기도 하구요. 리포터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어요. 기억나는 사건이 몇 개 있긴 합니다. 우선 우리끼리 2000년 6.8 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얘기해 드릴게요, 아마 보신 분도 계실 거예요. 강원도 고성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촬영을 했는데요, 그 때 파고가 높아 고기잡이를 하느니 마느니 실갱이도 많았어요. 암튼 배를 타고 나갔다가 항구에 들어와 멘트를 하게 됐어요. 좀 더 실감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복어를
한 마리 잡고 얼굴 가까이 대고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복어가 제 얼굴을 물었어요. 복어의 이빨은 여간 단단하지 않대요. 결국은 얼굴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저는 11바늘을 꿰매야 하는 사건이었죠. 그래요, 그 방송은 저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 같아요. 또 다른 일은요? 참 황당한 촬영이 하나 있었어요. 5백년 묵은 산삼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확인한 후 촬영을 갔거든요. 화악산이었을 거예요. 원래 '악'자가 들어가는 산이 산세가 험하잖아요. 사실 산을 10시간 넘게 탔어요. 촬영이었으니 그 산길을 그렇게 걸었지 아님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장소에 갔는데 산삼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허탕을 치고 또다시 7시간을 걸어서 하산한 기억... 그 일은 생각만 해도 실소를 금치 못하겠어요. 보람도 많았을텐데요? 어떤 때 리포터로서 보람을 느낍니까?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사실 전문 리포터는 교양과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전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가 행복해요. 아침 생방에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도 많거든요. 저는 맛있으면 맛있다, 그리고 행여 제 입맛에 맞지 않을 때는 음식의 특징을 얘기하거든요. 사람의 입맛이 다 다른데 무조건 맛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바닐라 향이 나는 냉면을 취재했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바닐라 향이 거슬리더라구요. 그래서 국물도 시원하고, 양도 많다고 소개하면서 바닐라 향이 독특하다고 했어요. 그러면 바닐라 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안 먹을거 아니예요? 그런데 정말 맛있는 집은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다시 가요. 한번은 어떤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옆자리에 앉으신 분들이 이 집이 TV에 나왔는데 리포터 아가씨가 이렇게 먹으라고 했다면서 그렇게 먹으니 참 맛있다고
하면서 정말 맛있게 먹더라구요. 그럴 때, 제가 전해 준 정보로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때 저도 행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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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진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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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생활이 정말 즐겁고 보람된다고 행복해 하는 양은진씨는 1972년 4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혜원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성신여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학과를 공부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고 활동적인 일을 찾아 대학 방송국에 들어갔고 지금은 전문 방송인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