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누리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문학사랑
오늘은 33주년 되는 5.18 민주항쟁 기념일 입니다...
우리 역사의 불행한 일이지요...
모든 것이 욕심에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됩니다.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령들을 기억해봅니다.
또한 개인의 부귀영달과 이익을 취하기 위해
같은 국민에게 총뿌리를 겨누었던
국군 최고 명령하달자와 진압 군인과
지휘관놈들은 지금이라도 사죄를 해야 할겁니다.
나쁜놈들...
지휘 계통에 어쩔 수 없는 명령대로 움직인 사병이야 뭐 어절수 없다치더라도.
부정을 하면 3대가 관직에 나가지못하는 그런 법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덧없이 쓰러져간 광주의 영령을 기리며...
<펌>
33돌을 맞는 5.18 당시 문학행사와..그후 <화려한 휴가>...와 그당시 인사동 이야기
예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지요...
롯데시네마에선가 였는데...
저희 가족 모두가 영화를 보러갔는데...
어찌 눈물이 나는지...
눈물을 훔치며...눈물을 참고...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5.18 당시.....
그 당시에 언론에서는 불순 세력이 광주에 침투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둥...
철저한 언론 통제가 있었지요....
헌데...그당시 제가 가끔 들렷던 프랑스문화원에는
영문판 <뉴스위스크지>에는 작제 된 내용이 없이 그대로 보도가 되었지요...
사진/기사를 메직을 지워서 시판되던터라....
<외국에서 오는 간행물까지 검열되어 기사는 물론 사진까지 다 삭제 되었던 시절 이라지요...>
참 나쁜 넘들이라지요....
자신의 부귀영달을 위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몰아 가는...
정치군인들의 반란...
이게 5.18 입니다...
그 후에도 전두환이는 정권을 잡기위해
또한 정치불안을 이유로...세계의 이목을 서울에 집중시키기 위해...
서울 시청으로 젊은 학생들의 데모대를 유도합니다...
그리하여 전세계의 메스컴에....
학생들의 데모가 너무 과도하여....
치안이 불안하고.......
시민생활에 불편이 가중되어 진압한다는 명문을 세우고...
서울역에서부터
종로로부터 포위망을 좁혀오게 되지요...
이른바 신군부가 등장하는 최대의 명맥을 내세우게 되고 <국보위>가 설치되지요...
그리고 전두환이는 스스로 대장 진급하고...
하루만인가 전역하고 국보위 위원장에 취임하지요...
이게 지금의 군부의 핵심이요..
<민정당>이 태동이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고..
그 후손이 <한나라당>이지요...
그런데도 국민은 망각의 동물 인지라...
<80년대 6,10항쟁 서울의 봄> 시절에는
그당시 출판문화 회관에서 <해변시문학회>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보리수문학회 회원으로 있던 필자는 초대받아 시 낭송을 하게 되었고...
이때의 행사가 신완수씨와 왕영은씨가 진행하던 KBS 2 TV <오늘> 이란 프로에 방영이 되었는데...
(방영은 아마 토요일이었을겁니다만...
인사동 모 한옥주점에서 문학도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보리수문학회 회원이던 정모 시인의 노래가 나오면서....
그 당시 시낭송을 하던 필자의 모습이 방영되었지요...)
행사가 끝나고 일행들은 자연스레
그당시 해변시문학회 회원으로 정태승 시인이 운영하던 <시인학교>카페주점에 오게 되었고...
지난번에 한국문입협회 이사장으로 계셨던 신세훈 선생님의 짧은 강연이 있었는데...
뒤에는 전경들이 쭉 둘러쌓고....
<나를 잡아가도 좋다.,.그러나, 나는 할말은 해야겠다...>하시면서 문인의 길에 대한 바른 말씀을 하시던 그런 시절이며...
또 어는 시인 지망생이..(이름을 모른는...아마도 지금쯤은 훌륭한 문사가 되었으리라 보며)...
<도라지> 라는 시를 즉석에서 낭송을 했는데...(아주 좋았슴)
이게 북쪽을 이야기하네 마네 하는... 그런 시절이 수상한 시절이
바로 그 신군부가 등장한 시기에 <민정당>사 근처의 인사동 이야기입니다...
ㅎㅎㅎ~
****************************************
[5.18 아침에]
벌써 또 5.18이 다왔습니다....
필자는 그 당시 서울에 있었는데...
계험군이 시내 곳곳에 골목 어귀마다 통금등으로 검문 검색을 하고있던 때인데...
지금은 어느 시골에 목회할동을 하던 친구와 계험군 검문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겁이 없었던 탓일까...
아니..신 군부에 거부감이었겠지요...
어느 토요일 저녁에 친구집을가서 모여 쉴? 한 잔하러 가는 길에..
계험군 검문에 걸려서...통금이 10시였는데...
반말로 계험군과 말다툼을 하면서
그당시 우리는 사회 초년병이었고...
총부리를 겨눈 9공수 아무개 하사와 다투다가 총을 부여잡고 총을 뺏을려다가 싸움이 일었지요...
그러다가 친구가 개머리판으로 맞고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힘을 합세해서 말리고...
그러다가 일방적으로 당한 우리는 병원에가서 괘 많은 바늘로 머리를 꿰어었던 기억이 새로운 5.18 아침입니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5.18이 북한의 조정에 의한 소행이라는 엉뚱한 괴변론자가 많은데...
이는 정권탈취에 눈이 먼 정치군인들의 변란이지요...
그런 변란이 지금도 자행대고 있는 정권이 한심스럽습니다.
즉 , 선배들로부터 보고 배운바는 도둑질?이었기에 군 무기 도입등등 에도 그런 곳에 눈을 돌리고...
허술한 군장비 수입이라든지...
안그런 정도를 걷는 군인들은 옷을 벗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은 노태우사단에 있을 때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란 명령을 받고...
그를 시행하지 않아 가지 않아 무장해제 당하고..
추후.. 결국에는 예비역소령으로 강제 전역을 당했다지요...
그런 용기있던 선배님도 있지요...
문단에도 이합집산하여 자신의 이익에 ?눈먼이들이 많은 시절이 되었으니...
누가 있어 과연 선비라 자처하리오...
사설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기쁘고 행복하십시오...
[謹弔] 5.18을 추모하며...
꽤 멀게 느껴지는 과거의 아픈 날입니다...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5.18 ! 화합과 단합과 용서라는 미명 아래... 지금도 아픈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위정자들에 의해서... 먼저 가신 그분들의 영령을 추모해보며... 남아 있는 상처받고 위로받지 못한 부상자들의 그분들을 기려봅니다. 오늘!
****************************
5월의 불꽃
이봉래
아침 고요 나라의 불꽃이여 빛나는 5월을 기억하며, 절규의 가슴을 치고, 피 울음의 소리를 듣고 다시는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그리고 사랑으로 타오르라 마라도에서 저 북만주 나의 땅까지 끊임없는 아침 고요 나라의 불 바람아! 불어라.
- 삼가 5.18 영령들을 추모합니다....- |
******************<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國家保衛非常對策委員會, 약칭 국보위)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 , 5·17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가 내각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 기구이다.
목차 |
1980년 5월 초 보안사령부는 전두환의 지시 아래, 시국을 수습한다든 명목 아래 '비상계엄 전국확대'·'국회 해산'·'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집권 시나리오를 기획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시국수습방안'을 재가를 대통령에게 요청했는데, 비상기구 설치안은 대통령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이 후 보안사령관은 전두환은 수 차례 보안사령부 정보처장 권정달과 대공처장 이학봉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 비상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5월 27일 전두환은 대통령 자문기구 형식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자신을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회의 구성은 행정부 각료 10인, 군요직자 14인 등 총24인으로 이루어졌다. 국보위의 위임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위원장 전두환)와 상임위 소속하에 13개(운영·법제사법·외무·내무·재무·경제과학·문교공보·농수산·상공자원·보건사회·교통체신·건설·사회정화) 분과위원회를 설치, 각 분과위는 분야별 소관사항에 대한 기획·조정·통제업무를 관장했다. 상임위원회 위원 30인 가운데 신군부 계열 인물이 18인이었다.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실질적인 실세 기구였으며,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두환은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권력 인수를 명시화했다.
같은해 8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된 뒤, 10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을 통과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 따라 입법권을 가진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됐다.
신군부 세력은 활동 목표로 안보 체제의 강화, 경제난국의 타개, 정치발전 내용의 충실, 사회악 일소를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을 내걸었다.
이는 겉으로 내세운 목표일 뿐, 짧은 기간 동안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탄압과 김대중·김종필 체포, 김영삼 강제 정계 은퇴, 구정치인으로 불리는 세력에 대한 정치 활동 규제, 언론계와 공직자 숙청, 삼청교육대 발족 등을 실현시켜 실제로는 공포정치를 이용한 정·재계 개편으로 신 지배구조를 수립하는 것이 국보위 설립의 목표였다는 분석도 있다.[1]
1997년 4월 대법원은 국보위가 대통령 자문기구의 형식을 빌렸다 하더라도,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전두환이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사실 등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2]
[편집] 당연직 위원 |
[편집] 임명직 위원 |
[편집] 임명직 위원 (16명) |
[편집] 당연직 위원 (분과위원장 등 14명)
|
누리님들~~~
카페에 시간내시어 자주 들리시어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빕니다^^
--------------------------------------------------------------------
★누리문학회 2013년 6월 모임 안내★
---------------------------------------------------
첫댓글 올해 5. 18 추모회는 우리 영령들의 혈루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임을 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확신했다고 생각해요. 대통령도 참석하시고,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바통을 이어 4월 촛불행진으로 이나라를 다시 이르켜 세웠고 국민들로 하여금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했으니까요!
옙...
앞으로 잘 되어야 겠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5. 18 아침에...영화 화려한 휴가와 그 당시 인사동이야기 ...원문보기가 사라졌네요...선생님도 감시대상이군요. 그래도 다행이예요...관리,로그인, 비활성화를 할 수 있으나 말이예요.
나~ 원참...
원문보기가 사라졌네요??? 는
무신말씀 인지요?
@문학사랑 ㅎㅎㅎ
손전화로 봤고요, 화면이 시꺼메서 못봤어요. 쭉~내려가니 보이더군요...
그럼데 이 글은 어디선가 읽었어요.
제목만 달랐던 거같아요...
@채미희 예...
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