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跋文>
가자, 고향으로 !
저의 고향은 고흥이지만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보성입니다. 그런데 고흥작가회 소속이 되어 10여년 여러 사람과 함께 활동을 하며 시집을 내고 있습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를지라도 佛家에서 얘기하는 것처럼「我心自由佛」이라 생각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부처, 라 하듯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곧 고향이나 다름없는데, 고향의 어린 날을 그리면 이런 생각들이 다 달아나버립니다. 농사일을 하며 낫이나 호미 삽 곡괭이 등 農具들을 쓸 때면 어렸을 적 뽄새가 나오고 때가 되어 찾아든 새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고향집 뒤안을 감싼 대밭 쪽에서 울었던 새인데, 생각하며 그 때의 사람들과 산과 들과 꽃과 나무들이 등짝을 떠밀어 심을 불끈 실어주곤 합니다. 못내 각별하고 간절힌 그리움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한번 가자고 꼰지 발광으로 보챌 때가 많습니다.
간혹 고향으로 갈 때면 여기와는 전혀 다른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보성읍을 출발하여 예당 조성을 지나 벌기(벌교)에 들어서면 생활에서 오는 이 생각 저 고민들이 허울의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역 주변이냐 시장 근처를 오가며 사십년이 훌쩍 지난 곳들로만 눈이 가고 마음이 쏠려 물짠 들뜨다가 벌교발 고흥행 완행버스를 타고 옛길로 가노라면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할매 하내들(장날이 아닌 날은 주로 병원 가는 분들) 뿐인데 더러는 동광장이나 과역장이라도 되는 날이면 왁자지껄한 고향 사투리가 왜 그다지도 가슴 깊이 요동치는지 혼자 웃다 웃다 끝내는 눈물이 왜 맺혀오는 것일까. 동강 지나 대서쯤에 무슨 미사일처럼 하늘을 겨눈 인공위성 그림도 보고 해피 고흥, 하이 고흥 해쌓는 커다란 광고판을 보며 “ 이 땅의 자연을 다 파괴해가며 우주라는 환상 열차에 희희낙락 몸을 실어보라는 것인가!” 혼자 씨부렁대며 속이 부글부글 끓다 남양 어디쯤에서는 어떤 간네집이 저그 어디였는디, 옛일에 촉촉이 젖어보다 과역 정류장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고 옛적 마음눈만 뜨여서 그때 만났던 사람들( 많이 돌아가셨음)이 되새겨지고 어렸을적 후줄구레한 입간판들의 그만 그만한 가게들을 헤아려보다 끝내는 시장 안에 옛건물 그대로인 막걸리집으로 발길이 뻗혀 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을 헤매다 아련해지다 짐다리와 배바구와 딴또집 점빵을 지나 물감나무(다 사라짐)가 있는 사장을 지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걷다보면 보이는 쪽 쪽 그 북받쳐 오른 감정들을 더 무엇으로 말하랴. 줄기줄기 싹터 오른 추억과 아옹다옹하며 오갔던 정들과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녔던 동심을 넘어 속 깊이서 솟구친 뭔가가 벌떡거려 나를 뒤흔드는,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다시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시인은「 옛날은 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주 오는 것이다」라고 읊지 않았던가.
저는 고흥에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지금도 고향땅에 뿌리를 내린 듯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고 있고 엄니의 따뜻한 품안 같은 고향의 젖줄에 마음이 닿아 글을 쓰고 있구나, 생각하며 고향의 들과 산과 사람들에게 늘 겸허해지고 잘 살아야겠구나, 속다짐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시 쓰기로 보답해야지, 하고 늘 나를 다잡아 글을 쓰곤 합니다 .
고흥이란 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뿐이겠습니까. 시로 말하는 여기 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고향이 서울이지만 고흥에 더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인도 있음). 어린 날의 삶들이 더 뼈저려 눈물겨움과 슬픔과 기쁨과 절망과 설레는 희망으로 더 간절하고 절실하게 시로 노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이든 설령 고향의 애기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마음 저 밑자리, 근원적인 젖줄은 나고 자란 고향에 잇닿아 있을 것입니다.
게 고동 바지락 망둥어 짱뚱이가 튀는 바닷가 고흥만이 그립고 마르지 않는 강처럼 어머니가 늘 사무쳐 새들과 풀벌레가 우짖는 초가삼간 허름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을 노래하기도 하고, 고향에 들렀다가 폐가만 늘어가고 노인들만 남은 쓸쓸하고 비참한 마을에서 누구에게서든 질펀한 욕지거리라도 듣고 싶다는 마음이 도시 한 귀퉁이 텃밭을 일궈 아련한 세월의 고향을 심어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어머니 그 품 안에서 오래 오래 감꽃으로 피어 있고 싶다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물결무늬로 보며 이 암울한 시대에 길 없는 길에 맘껏 날 수 있는 정신의 무늬를 새겨보려 시로 마음을 추스리기도 하고, 녹동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사람살이의 기쁨과 고달픔과 눈물까지도 초연한 듯 삶을 관조하며 구르는 한 잎 낙엽을 통해 팔만대장경을 보고 무엇이든 마음 깊이 사무치는 그리움에 눈을 뜨면 홀연히 보인다는 깨달음의 짧은 시편들이 있고, 시골마을에서 비오는 날 찾아온 이웃과 마주앉아 술잔을 거푸 기울여 취한들 어디 음풍농월만 있겠는가 사람살이의 애틋한 반가움과 눈물겨운 정과 가눌 수 없는 마음의 애탐과 개차반된 세상을 곱씹다 속으로 울컥대는 분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탯말이나 다름없는 간절한 바다의 정서를 노래하며 오래된 포구와 폐선과 바지락 등의 시를 통해 눈물겨운 인간사 인생사를 간결하게 시로 표현해내며 작은 온기지만 함께 나누고 싶은 시인도 있고, 홀로 외로이 먹는 밥상에 손수 땀으로 거둬들인 갓김치를 먹으며 그리운 맛 눈물겨웠던 따뜻했던 날들의 맛에 겨워서 진정한 세계를 꿈꾸며 스쳐가는 바람도 그려보다 새의 울음소리도 그림으로 그려보다 더 애틋하여 유기농 얘기를 통해 인간이 가진 물질적 속성을 몇 줄의 시에서 명쾌하게 까발려버리기도 하고,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엄니 엄니 부르며 훌쩍거라가도 하고, 주변에 널려있는 자연스런 돌끼리 아귀가 맞춰져 한 세상을 이룬 돌담을 보며 마을 공동체의 든든한 지킴이로 노래하고 공장을 떠돌다 식모살이도 하며 당당히 삶을 일궜던 고흥아가씨들을 말하기도 하고, 쓰러저가는 돌담에 찔레꽃 피었다져도 그리움은 남아 실려가는 황소의 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 적삼 자락이 수숫대 울타리에 어른거리지만 이제는 나이는 들어가면서 고향을 눈물겹도록 그리워하고, 한 시인의 첫사랑 얘기가 신화처럼 다가와 그대에게 닿지 못한 편지거나 자기의 무력해진 한숨을 한탄하며 어머니 품 속 같은 모성母性의 고향이 그리워 손톱에 초승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현실 시간의 바같을 떠돌기도 하고, 바닷가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20여년 넘게 자음 모음과 우리말은 생생한 농업에서 생겨났다고 연구하고 말하고 시와 시조로도 표현하며 마지막 이웃마저 떠나버린 바닷가 마을에서 자망으로 건져 올린 참숭어에 술 한 잔도 나눠보고, 산을 품은 옹달샘이 그렁그렁하다며 마을 입구에 버티고 있는 사장나무보다 저 산중에 노루며 고라니 토끼까지 말없이 품어 안은 동백과 다복솔에 마음이 더 쏠려 물 내음 물씬한 북해바다의 북어를 통해 비판의 시각은 무조건 종복좌파로 내모는 갈 데까지 가버린 세상을 직시하고 오늘도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야 하는 어두운 현실을 시로 꿰뚫어보기도 하고, 농어촌교육 현장에서 삶의 문제를 바라보며 꽃이 필 때와 맺힐 때의 자연의 이치나 순리를 알아차려 자기의 실존문제를 질문하고 또 질문하여 좋은 시 좋은 세상을 모색해가는 시인도 있고, 가을은 깊은 침묵으로 가는 길이다며 길을 건너는 달팽이를 보고 길 없는 길을 가야하는 피폐한 현실에 눈 부릅떠서 고향에 뿌리를 두고 그래도 가는 길이 길이다며 흔들리지 않을 뚝심을 다져서 이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생생한 말의 시로 걸어가고 또 걸어갈 시인들입니다.
또 초대시를 주신 두 분, 이 땅 고흥에 「송수권 문학상」이 생겼으니 새로운 문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여기에 사는 사람들, 논 밭 하늘 바다 존재하는 모든 생들에게도 신선한 예술의 기운이 감돌아 시흥詩興으로 高興이 어디나 되살아나 사라져버린 세계, 잃어버린 세계를 불러들여 사람만이 살길이 아닌 뭇 생명들과 더불어 타고난 대로 서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평평등한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멀고도 먼 나라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려 침몰한 오룡호에 죽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뼈아픈게 새긴 시를 보며 세월호가 생각났고 지금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언제 어떻게 좌초되고 침몰해버릴지 모를 현대 문명과 자본의 위태로운 배에 실려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해봅니다.
시 시 시가
이 것 뿐이겠습니까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탐욕스런 세상에 가차 없는 칼을 겨누든, 정치와 권력에 똥바가지를 여지없이 퍼찌끌어불든, 산업화 기계화로 고유한 인간 심성들이 온데간데 없어진 것을 비감하게 한탄하든, 문명화 될수록 자연은 파괴되고 수많은 생명들은 사라지고 결국 인간도 사라질 위기가 지구 곳곳에 일어나는 불길한 일들에 온몸으로 울부짖는 시이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혼자서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져 내면의 고향을 찾아 방황하든, 이것 또한 우리들이 나고 자란 고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 릴케는 「나는 영원히 귀향길에 있다」고 했을 테고, 작가 바슐라르는「유년은 존재의 고향이자 상상력의 창고다」라고 했지 않았을까요. 또한 민중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 김남주도 손목이 사슬에 묶인 수인囚人으로 호송차에 실려가며 「이 가을에」나는 논둑길 밭둑길 내달리고 싶고 일하고 놀고 싶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 마을로 가고 싶다, 는 시골 고향의 어린 정서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 전사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논밭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앞산 뒷산 냇가 구름 하늘 나락꽃 무시꽃 들국화 개새끼 돼지 대바람아 순심아 덕팔아 들판을 휩쓸어가던 태풍아 팔영산에 얹힌 하늘아 해바라기야 검부적불에 냉갈 가득한 정재에 엄니야 샘아 감나무야 돌담아 밤새 깜박대던 별들아 누이야 성가야 방앗간아
하늘이 내린 땅, 하늘을 열어가는 고흥, 우주 우주 어쩌고저쩌고 관광화 시장화 국제화 하는 고흥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땅의 사람들, 더불어 뭇 생명들이 살고 살아 천지만물의 신선한 기운들이 한 물 가버린 들판과 산과 바다가 푸르른 생명세상으로 다시 살아나 이 땅을 넘어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도 오래 오래 살려버릴, 지금 여기 고흥이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지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맑고 맑은 땅이 있어야 사람이 살고 하늘, 우주도 살 수 있으므로
시여 시여, 사람들이여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고향으로 갈 수 뿐이 없어라
그러나, 그러나
처절함이 없이 어찌 고향에 이르겠는가
치열함이 없이 어찌 고향에 이르겠는가 ˚ ˚
˚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되어」에서
˚ ˚ 청화 스님 글에서
추분 무렵에 오서마을에서
송만철(농부, 시인)合掌
첫댓글 고향을 떠난 좋은 시편들도 많았는데
고향으로 한정 시켜버려서 못내......
또 시들을 잘못 읽고 얽혀대며 큰 뜻을 곡해하지는 않았는지........
내일이 추석이네요
어디서든 잘들 보내시길
달은 지고 뒷산의 밤들이 후두둑 떨어저쌓는데....,
형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아하니 또 밤을 새셨군요.^^ 이런 절절함이 우리 고흥작가회의 본색입니다.두루 추석 행복하게 보내시고요 건강히 뵙지요. - 월출산 녹향월촌에서 아우 드림
다들 건승 건필을 빕니다. ^^
송만철 시인님! 추석명절 잘 쇠셨지요? 발문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술렁술렁 넘어간 것 처럼 하면서도 뼈가 있는 글월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건강하세요.
애쓰셨습니다. 모든 회원님들 건녕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