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연 재앙이 많은 나라로 일본갈때마다 마음 한칸에는 두려움으로 가득찬다고 한다.
저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일본여행 목표는 원폭지 그날의 참상을 보려고, 원폭이 떨어진 그 날짜에 초점을 맞추고 계획을 세웠는데
6일날 히로시마를 다녀오고 9일날 나가사키 원폭지를 가려고 했는데 ...
7일 새벽 4시경 리우 올림픽 중개 중 자막에 4.2 地震,..... 지진? 문구가 떠 불안함에 부랴부랴 하카타역으로 가서 나가사키행 기차를 탔다..
숙소 카운터에서는 "이곳은 安全 하다"라고 문구를 보여주었지만, 쓰나미가 휩쓸었던 장면이 떠올라 도저히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와는 달리 도로변 민가 속에 형무소가 있다.
이곳에서 해방 前까지 한국의 무고한 사람이 얼마나 죽어 갔을까!!!!
나는 원폭지를 모두 답사 하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윤동주(尹東柱)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명동학교 교원이었던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이다.
그가 태어나기 석 달 전이었던 9월
28일, 친정에서 살던 고모 윤신영이 아들 송몽규를 낳았다.
고종사촌 관계인 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렇듯 한집에서 태어나 후일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윤동주는 간도 이주민 3세였다
. 19세기 말 청나라의
봉금정책이 풀리고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기아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너도 나도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터전을 옮겼다.
1886년
함경북도 종성에 살던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도 간도의 자동으로 이사했고,
1900년에는 기독교 장로였던 할아버지 윤하현에 의해 명동촌으로 재차
이사했다.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달라즈[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송몽규와 함께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9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인왕산 오를때마다 들려보는 윤동주 문학관은 옥중 생활을 착안한 것 같은 공간이 있다
윤동주(1917~1945 2,16)는 중국에사 태어났고 백두산 등정길에 그가 다녔던 중국 용정중학교 교실도 들어가 보았다.
지도속에 바닷물을 생체실험중 어디에 사용했을까?.....
바닷물을 인간에게 주입해 생리식염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해변가에는 NHK방송에서 뉴스에 내보낼 자료를 제작중이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카메라 맨이 "안녕 하세요? 저도 한국에 여러번 갔어요"하며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홀로 간 여행길에 이국땅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받으니 저역시 기분이 ...
첫댓글 자료 올리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