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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의 기원 5
Origin Of Millenarianism
ㅡGreat Peace For 100 Million Years
이상주의(理想主義)의 기원(起源)
ㅡ일억년(一億年) 동안의 큰 평화(平和)
이홍범 선생님의 아시아 이상주의
Asian Millenarianism 중에서
(이홍범, 아시아 이상주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역사 교재)
Asian Millenarianism, An interdisciplinary Study of the Taiping and Tonghak Rebellions in a global context, Hong Beom RHEE, cambria press, youngstown, new york, 2007, p.115-122
New Geo-Physics’ View Of The End Of The World-The Axis
Theory of Spin of the Earth
There are instances of scientific arguments that are similar to the Cho'ng-yok. Kirtley F. Mather, professor of geology emeritus, at Harvard University, explains that the geologic records of the past are replete with items that suggest significant differences between the latitude and longitude of many places in earlier epochs and those of the present time. Albert Einstein expressed his opinion of the earth’s surface:
A great many empirical data indicate that at each point on earth’s surface that has been carefully studied, many climatic changes have taken place, apparently quite suddenly. ... “In a polar region there is continual deposition of ice, which is not symmetrically distributed about the pole. The earth's rotation acts on these unsymmetrically deposited masses, and produces centrifugal momentum that is transmitted to the rigid crust of the earth. The constantly increasing centrifugal momentum produced in this way will, when it has reached a certain point, produce a movement of the earth’s crust over the rest of the earth’s body, and this will displace the polar Regions toward the equator. Without a doubt the earth's crust is strong enough not to give way proportionately as the ice is deposited.
Charles H. Hapgood argues:
new knowledge of geomagnetism, ... has led to the discovery that the poles have changed their places on the surface of the earth at least 200 times since geological history began. ... I have found evidence of three different positions of the Pole in recent time. During the last glaciations in North America the pole appears to have stood in Hudson Bay, approximately in Latitude 60 degree North and Longitude 83 degree west. It seems to have shifted to its present site in the middle of the Arctic Ocean in a gradual motion that began 18,000 or 17,000 years ago and was completed by about 12,000 years ago. The radioactive dating methods further suggest that the pole came to Hudson Bay about 50,000 years ago, having been located before that time in the Greenland Sea, approximately in Latitude 73 degree North and Longitude 10 degree east.
Albert Einstein wrote in his letter to Charles H. Hapgood in German:
One can hardly doubt that significant shifts of the crust of the earth have taken place repeatedly and within a short time. ... It is certainly true, too, that ice is continually deposited in the Polar Regions. These deposits must lead to instability of the crust when it is not sufficiently weak to constantly keep in balance by the adjustment of the Polar Regions.
According to Charles Hapgood’s research, there were many changes of weather and temperature of the earth as well as physical changes of geographical locations. Down to 50,000 years ago, the western Arctic Ocean was cold because of an earlier location of the pole. From 50,000 to 45,000 years ago, the western Arctic was warm because the pole had shifted to Hudson Bay, and warm waters from the eastern Arctic Ocean moved westward. The Soviet publication Sputnik in its November 1968 issue, reported the discovery of evidence of human occupation of the New Siberian Island as well as of Spitzbergen, during the Ice Age. Sputnik gives the source of the information as the newspaper Kommunist Tajikistana, and says:
Archaeologists have discovered traces of a Stone Age settlement on the Novosibirsk Island. ...Archaeologists have discovered traces of a Stone Age settlement on the Novosibirsk Island. ...They have found bone implements and arrowheads, as well as needles and axes skillfully fashioned from mammoth tusks. Spitzbergen was once inhabited, too. Proof of this can be seen in the fragments of prehistoric chiff drawings found near the present day settlement of Ny Alesund. On the rock face are well-preserved incised outlines of whales and deer. ...The presence of primitive man on this island is good evidence of warm climate in the Arctic Ocean in the Pleistocene Epoch.
Antonin Kopecky, a geologist from Czechoslovakia, states:
The structures are fairly frequent in the Bohemian Massif and indicate here a relatively high horizontal stress during Pleistocene times. The highest amplitude of Quaternary tectonic movements in the Bohemian Massif is 400-500 meters, at that time the Massif rose by about 150 meters.
Jan Holubec, Geological Institute, Czechoslovak Academy Science, also states:
The megacycles of the West Bohemian unit diminish in thickness and the sediments become finer grained. Interruptions in sedimentation are supposed to be in a succession. In this area the thickness of the uncovered assemblage is established at about 5 km.
The continuous build-up of the materials of the earth, from its core to its present surface, suggests a cycle of time for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the earth. It is built up in a series of stratifications, one superimposed on the other. The number of these layers is estimated to be about one million.
Scientists contend some similar opinions to Kim Il-bu's Chong-yok theory, including the slanted degree of the earth and cosmic cycle theory:
The true axis of the earth is called the Axis of Spin, it can be considered as a line in space moving sideways in celestial space with the whole solar system. It coincides approximately with a line drawn from the North Star of the northern hemisphere to the Southern Cross in the skies of the southern hemisphere. The axis of spin of the earth is inclined 23 degrees 27’, with a 5 percent variation, to the plane of the orbit of the earth. It has motions, and the motion includes travel through space, with the whole solar system, and precession-a slow motion of the axis of Spin in a cycle of time of about 26,000 years.
신(新) 지구물리학(地球物理學)의 견해(見解) 또는 세계(世界)의 종말(終末) - 축(軸)
지구(地球)의 회전(回轉) 이론(理論)
정역(正易)에 유사(類似)한 과학적(科學的) 논의(論議)의 예(例)들이 있다. 하바드 대학(大學)의 지질학과(地質學科) 명예교수(名譽敎授)인 커틀리 마터 씨(氏)는 과거(過去)의 지질학적(地質學的) 기록(記錄)들이 선시대(先時代)들과 현재(現在) 시간(時間)의 시대(時代)들에서 많은 장소(場所)들의 위도(緯度)와 경도(經度) 사이에 심각(深刻)한 차이(差異)들을 시사(示唆)하는 항목(項目)들로 가득하다 라고 설명(說明)한다.
알버트 아인쉬타인 씨(氏)는 그의 지구(地球) 표면(表面)의 의견(意見)을 표현(表現)했다:
세심(細心)하게 연구(硏究)되어왔던 지구(地球) 표면(表面)의 각 점(點)에서, 대단히 많은 실증적(實證的) 통계(統計)가 많은 기후(氣候) 변화(變化)들이 명확(明確)히 꽤 갑자기 발생(發生)하여 왔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극지방(極地方)에서 균등(均等)하게 극주위(極周圍)에 분배(分配)되어지지 않은 얼음의 계속적(繼續的)인 퇴적(堆積)이 있다. 지구(地球)의 회전(回轉)이 이들 비대칭적(非對稱的) 퇴적(堆積)된 질량(質量)들에 작용(作用)하고, 그리고 견고(堅固)한 지각(地殼)에 전달(傳達)되어지는 원심력(遠心力) 운동량(運動量)을 생산(生産)한다. 이 방식(方式)으로 생산(生産)된 일정(一定)하게 증가(增加)하는 원심력(遠心力) 운동량(運動量)은 어떤 점(點)에 도달(到達)했을 때, 지구(地球) 본체(本體)의 나머지 부분(部分)을 지나서 지각(地殼)의 운동(運動)을 생성(生成)하고, 그리고 이것은 극지역(極地域)을 적도(赤道)로 향(向)하게 이동(移動)시킬 것이다. 의심(疑心)할 여지(餘地)없이 지각(地殼)은 충분(充分)히 강(强)해서 얼음이 침전(沈澱)되어지듯이 비례(比例)하여 부러지지 않는다.
찰스 해굿 씨(氏)는 논(論)한다:
지자기장(地磁氣場)의 새로운 지식(知識)은 극(極)들은 지구(地球) 표면(表面)에 지질학적(地質學的) 역사(歷史)가 시작(始作)한 이래(以來)로 최소(最小)한 200번 그들의 위치(位置)를 바꾸어 왔던 발견(發見)을 하게 되었다. 나는 최근(最近)에 극(極)의 세 번의 다른 위치(位置)들에 증거(證據)를 발견(發見)해 왔다. 북미(北美)에 마지막 빙하기(氷河期) 동안 극(極)은 북위(北緯) 60도, 서경(西經) 83도인 허드슨 만(灣)에 서있어 왔던 것처럼 보인다. 17,000 또는 18,000 년 전(前)에 시작(始作)하여 12,000년 전(前)에 끝나고 점진적(漸進的)으로 움직여서 북극해(北極海) 중간(中間)인 현재(現在)의 장소(場所)로 움직여 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사능(放射能) 연대(年代)측정(測定) 방법(方法)들은 극(極)이 약 오천년(五千年) 전(前)에 허드슨 만(灣)으로 왔다라고 더 제안(提案)한다. 그 전(前)에는 대략(大略) 위도(緯度) 북위(北緯) 73도 그리고 경도(經度) 동경(東經) 10도인 그린랜드 해(海)에 위치(位置)되어져 왔다.
알버트 아인쉬타인 씨는 찰스 햅굿 씨에게 독일어(獨逸語)로 쓴 그의 편지(片紙)에서 썼다:
어떤 이는 지각(地殼)의 중요(重要)한 움직임들은 반복적(反復的)으로 그리고 짧은 시간(時間) 이내(以內)에 발생(發生)했다는 것을 거의 의심(疑心)할 수 없다. 얼음이 계속적(繼續的)으로 극지방(極地方)에 퇴적(堆積)되었다는 것이 또한 확실(確實)히 맞다. 지속적(持續的)으로 극지방(極地方)들의 정합(整合)에 의하여 균형(均衡)을 유지(維持)하는 것이 충분(充分)히 약(弱)하지 아니할 때 이들 침전(沈澱)들이 지각(地殼)의 불안정(不安定)으로 이끄는 것이 확실(確實)하다. 찰스 햅굿 씨의 연구(硏究)에 따르면, 지구(地球)의 기후(氣候)와 온도(溫度)의 많은 변화(變化)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地質學的) 위치(位置)들의 물리적(物理的) 변화(變化)들도 있었다. 오만년(五萬年) 전(前)으로 내려가면, 서(西)쪽의 북극해(北極海)는 극(極)의 이전(以前) 위치(位置) 때문에 추웠다. 오만년(五萬年)에서 사만오천년(四萬五千年) 전(前)에는, 서(西)쪽 북극해(北極海)는 따뜻했다. 왜냐하면 극(極)은 허드슨 만(灣)으로 이동(移動)했고, 따뜻한 물이 동(東)쪽 북극해(北極海)로부터 서(西)쪽으로 이동(移動)했기 때문이었다. 소련(蘇聯)의 스푸트닉 잡지(雜誌)는 1968년(年) 11월호(月號)에서 새로운 시베리아 섬뿐만 아니라 스피츠베르겐에서 인간(人間)의 점유(占有) 증거(證據)의 발견(發見)을 발표(發表)했다. 스푸트닉은 그 정보원(情報員)을 공산주의(共産主義) 신문(新聞) 타지키스타나 라고 밝히고, 그리고 말한다: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은 노보시비르스크 섬에서 석기시대(石器時代) 정착지(定着地)의 흔적(痕迹)들을 발견(發見)했다. ...그들은 뼈 도구(道具)들과 화살 머리들뿐만 아니라 솜씨 좋게 맘모스의 어금니들로부터 만든 바늘들과 도끼들을 발견(發見)했다. 스피츠베르겐은 역시 한때 사람이 살았었다. 이것의 증거(證據)는 니 알레순드의 현재(現在)의 거주지(居住地) 가까이에서 발견(發見)되어진 선사시대(先史時代) 그림들의 파편(破片)들 속에서 보여질 수 있다. 바위 표면(表面) 위에 새겨진 고래들과 사슴의 윤곽(輪廓)들이 잘 보존(保存)되어 있다. 이 섬에서 원시인(原始人)의 존재(存在)는 홍적세(洪績世) 동안 북극해(北極海)에서 따뜻한 기후(氣候)의 좋은 증거(證據)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出身)인 지질학자(地質學者) 안토닌 코페키 씨(氏)는 말한다:
그 구조(構造)는 보헤미아의 단층지괴(斷層地塊)에서 상당(相當)히 빈번(頻繁)하고 그리고 홍적세(洪績世) 시간(時間) 동안 여기서 상대적(相對的)으로 높은 수평적(水平的) 압박(壓迫)을 가리킨다. 보헤미안 단층지괴(斷層地塊)에서 제 4기(紀) 지반운동(地盤運動)의 최고(最高) 진폭(振幅)은 400-500 미터이고, 그 당시(當時) 그 단층지괴(斷層地塊)는 약 150미터 정도 상승(上昇)했다. 체코슬로바키아 학술과학원(學術科學院) 지질학(地質學) 연구소(硏究所) 얀 호루벡 씨(氏)는 말한다:
서(西) 보헤미아 단위(單位)의 거대(巨大) 주기(週期)들은 두께가 감소(減少)하고 그리고 퇴적물(堆積物)들이 고운 입자(粒子)가 되었다. 퇴적(堆積)의 차단(遮斷)은 연속적(連續的)으로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역(地域)에서 발굴(發掘)된 집적(集積)의 뚜께는 약 5Km에 달(達)했다. 지구핵(地球核)으로부터 현재(現在)의 표면(表面)까지 계속적(繼續的)인 지구(地球) 물질(物質)들의 형성(形成)은 지구(地球)의 성장(成長)과 발전(發展)을 위하여 시간(時間)의 주기(週期)를 시사(示唆)한다. 하나가 다른 것 위에 중첩(重疊)되어지는 층화(層化)가 연속(連續)으로 형성(形成)되어진다. 이들 층(層)들의 수(數)가 약 백만(百萬) 정도(程度)일 것으로 추산(推算)되어진다. 과학자(科學者)들은 지구(地球)의 경사(傾斜)진 각도(角度)와 우주적(宇宙的) 주기이론(週期理論)을 포함(包含)한 김일부(金一夫)의 정역(正易) 이론(理論)과 비슷한 의견(意見)에 대해 논란(論難)한다. 지구(地球)의 진정(眞正)한 축(軸)은 회전(回轉)의 축(軸)이라 불린다, 그것은 성간(星間)에서 전체(全體) 태양계(太陽系)를 동반(同伴)하고 횡보(橫步)하면서 움직이는 공간(空間) 속에서 한 선(線)으로 여겨질 수 있다. 북반구(北半球)에서 북극성(北極星)으로부터 남반구(南半球)의 하늘에서 남십자성(南十字星)까지 그은 선(線)과 대략(大略) 일치(一致)한다. 지구(地球)의 회전축(回轉軸)은 지구(地球)의 궤도면(軌道面)에서 5 퍼센트의 변이(變異)를 가지고 23도(度) 27분(分) 기울어져 있다. 그것은 움직임을 가지고, 그리고 그 움직임은 우주공간(宇宙空間)을 통(通)하여 전체(全體) 태양계(太陽系)를 동반(同伴)한 여행(旅行)과, 약 26,000년(年)의 시간(時間)의 주기(週期) 속에서 회전축(回轉軸)의 느린 운동(運動)인 세차운동(歲差運動)을 포함(包含)한다.
Cosmologists’ Views of the End of the World
Cosmologists usually study cosmology and do not study the end of the earth in depth. However, two cosmologists’ views are introduced here, Stephen Hawking’s and Carl Sagan’s. Stephen Hawking contends:
According to a number of early cosmologies, and the Jewish/Christian/Muslim tradition, the universe started at a finite, and not very distant, time in the past. St. Augustine accepted a date of about 5,000 B.C. for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according to the book of Genesis. (It is interesting that this is not so far from the end of the last Ice Age, about 10,000 B.C., which is when archaeologists tell us that civilization really began.)
Aristotle and most of the other Greek philosophers, on the other hand, did not like the idea of a creation because it smacked too much of divine intervention. They believed, therefore that the human race and the world around it had existed, and would exist forever. The ancients had already considered the argument about progress described above, and answered it by saying that there had been periodic floods and disasters that repeatedly set the human race right back to the beginning of civilization. Hawking mainly wrote his arguments with his concern about this universe expanding from the time of the Big-Bang, and “the discussion of the question of why it is that we and the universe exist.” But he did not mention the apocalyptic, catastrophic end of the earth.
Carl Sagan asserts:
On Venus, on Earth and elsewhere in the solar system, there is evidence for catastrophic destruction, tempered or overwhelmed by slower, more uniform processes: on the Earth, for example, rainfall, coursing into rivulets, streams and rivers of running water, creating huge alluvial basins; on Mars, the remnants of ancient rivers, perhaps arising from beneath the grounds; ...More precisely, an impact crater of 10 kilometers produced on the Earth about once every 500,000 years; It would survive erosion for about 300 million years in areas that are geologically stable, such as Europe and North America.
Billions of years from now, there will be a last perfect day on Earth. The Arctic and Antarctic ice caps will melt, flooding the coasts of the world. The high oceanic temperatures will release more water vapor into the air, increasing cloudiness, shielding the Earth from sunlight and delaying the end a little. But solar evolution is inexorable. Eventually the oceans will boil, the atmosphere will evaporate away to space and a catastrophe of the most immense proportions imaginable will overtake our planet.
세계(世界)의 종말(終末)의 우주론자(宇宙論者)의 견해(見解)들
우주론자(宇宙論者)들은 보통(普通) 우주론(宇宙論)을 연구(硏究)하고 그리고 깊이 지구(地球)의 종말(終末)을 연구(硏究)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명의 우주론자(宇宙論者)들의 견해(見解)들이 여기 소개(紹介) 되어졌다, 스테픈 호킹과 칼 세이건. 스테판 호킹은 주장(主張)한다:
이른 시기(時期)의 우주론(宇宙論)들의 다수(多數)와, 그리고 유대/그리스도교(敎)/무슬림의 전통(傳統)에 따르면, 우주(宇宙)는 과거(過去)의 유한(有限) 시간(時間)에서 그리고 아주 멀지 않은 과거(過去)의 시간(時間)에서 시작(始作)되었다. 성(聖) 오거스틴은 창세기(創世記)를 따라서 우주(宇宙) 창조(創造)를 위한 약(若) 기원전(紀元前) 5,000년(年)의 시간(時間)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약 일만년전(一萬年前),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이 문명(文明)이 실제(實際)로 시작(始作)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마지막 빙하기(氷河期)의 끝으로부터 멀지 않은 것이 재미있다.)
아리스텔레스와 대부분의 다른 그리이스 철학자(哲學者)들은 반면(反面)에 창조(創造) 사상(思想)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많은 신(神)의 간섭(干涉)의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人間) 종족(種族)과 그것 주위(周圍)의 세계(世界)는 존재(存在)했었고, 그리고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한다라고 믿었다. 고대인(古代人)들은 벌써 위에 기술(記述)한 진행(進行)에 대한 논의(論議)를 고려(考慮)했다 그리고 반복적(反復的)으로 인류(人類)를 문명(文明)의 시작(始作)에로 되돌리는 주기적(週期的)인 홍수(洪水)들과 재난(災難)들이 있었다라고 말함에 의해 그것에 대답(對答)을 했다.
호킹은 주로 빅뱅의 시간(時間)으로부터 팽창(膨脹)하는 이 우주(宇宙)에 대해 우려(憂慮)하면서 그의 논의(論議)를 썼고 그리고 왜 우리와 우주(宇宙)는 존재(存在)하는가에 대한 질문(質問)에 대한 토론(討論)을 썼다. 그러나 그는 지구(地球)의 개벽적(開闢的), 파국적(破局的) 종말(終末)은 설명(說明)하지 않았다.
칼 세이건은 주장(主張)한다:
태양계(太陽系)의 금성(金星)에, 지구(地球)에 그리고 도처(到處)에, 더 느린, 더 균일(均一)한 과정(過程)에 의해 완화(緩和)된 또는 압도(壓倒)된 파국(破局)에 대한 증거(證據)가 있다.
예(例)를 들어, 지상(地上)에, 시내로 흐르는 강우(降雨), 큰 범람(氾濫) 유역(流域)을 만드는, 흘러가는 홍수(洪水)들 그리고 강(江)들; 화성(火星)에, 아마도 땅 밑으로 부터 솟아오른 고대(古代) 강(江)들의 잔재(殘在), ...더 정확(正確)하게, 10Km의 충격(衝擊) 분화구(噴火口)는 약 50만년(萬年)에 한 번씩 지구(地球)에 생성(生成)된다; 유럽과 북미(北美) 같은 지질학적(地質學的)으로 안정(安定)된 지역(地域)들에서 약 삼억년(三億年) 동안의 침식(浸蝕)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지금(只今)으로부터 수십억년(數十億年), 지구(地球)에 마지막 완전(完全)한 날이 있을 것이다. 북극(北極)과 남극(南極)의 얼음 덮개들이 세계(世界)의 해안(海岸)들에 홍수(洪水)가 나면서 녹을 것이다. 높은 대양(大洋)의 온도(溫度)는 구름낌을 증가(增加)시키면서, 태양광(太陽光)으로부터 지구(地球)를 차폐(遮蔽)하면서 그리고 종말(終末)을 조금 늦추면서 대기(大氣) 중(中)으로 더 많은 수증기(水蒸氣)를 방출(放出)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太陽)의 진화(進化)는 멈출 수 없다. 드디어 대양(大洋)들은 끓어오르고, 대기(大氣)는 우주(宇宙)로 끓어오르면서 날아가 버리고 그리고 상상(想像) 가능(可能)한 가장 엄청난 비례(比例)의 참극(慘劇)이 우리 행성(行星)으로 불시(不時)에 닥칠 것이다.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Doctrine And Confucianism
According to Confucius (551-479 B.C.) himself, his teachings were not his own but were mainly retrieved from past teachings. Confucius said: “I did not make the teachings, but the teachings came from the ancient.” Confucius also said: “I succeeded Yao’s and Shun’s ways (teachings).” Both Yao and Shun were known as legendary sage monarchs in ancient China. Yao was a Tan’gun, or bright leader, who was dispatched from Korea, and worked to civilize the barbarian Chinese in ancient times. Yao’s main doctrine was the principle of Ch’onbugyong, which was that God was in each individual and took the middle way, which meant the way transcending speculation of right or wrong, the Way of Truth or God. Yao passed on this doctrine to Shun, his successor. This doctrine was transferred to Confucius. They were the Tung-i People. (Tung means Eastern, and i means the bright people who have wisdom and skills in the use of the bow. The Koreans were called Tung-i in China). Mencius (372-289 B.C.), who was Conficius's major disciple and whose rank was next to Confucius, said: "As Shun was born in Tsuma, lived in the land called Puhu, and died in Mingchao, he was really a Tung-i.” Mencius also stated that Shun was descended from Tung-i and gave details of his place of birth, residence, and death. He declared also that not only Shun but also his descendants were Tung-i. Mencius even explained the location of Tung-i, saying that it was located on the extremely far east side of the Chinese midland. Some Chinese scholars such as Lin Huishang and Su Riangqi recognized that Yao and Shun were of Korean origin. Traditional sources say Shun learned the original doctrine of Confucianism from Yao.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know about Yao. According to Sima Qian's Shiji, "Yao was the fifth direct generation from Hwangdi and his honorific title was Tangyo.” Huangdi, the Yellow Emperor whose descendant was Yao, was a paekmin (Baimin in Chinese), which meant a man who wears white clothes, or a Korean, and he was a Tung-i. Hwangdi learned from Chabu So'nin (a man who had divine power and wisdom) at Mt. Paekdu in Korea. (T’aebeak’ilsa). The term So'nin, or Sin-son, in Korean was also the origin of Shenxian in Chinese, Taoism’s hermit with supernatural powers. Confucianism not only originated in the ancient Korean doctrines, but Confucius was also a Korean. Confucius affirmed that he was from the Yin people. The Yin people were Korean. Confucius indirectly expressed, in his many writings, that he was proud of his Korean origin. Confucius, in chapter 30, Zhongyong said that he followed Yao's and Shun‘s teachings, and he also said, in Chapter 28, that he learned Yin's(dynasty's) morals, which were based on Chonbugyong, or the ancient Korean origins. According to 禮記(“Liji", Records of Etiquette), Confucius told his disciple that he was a Yin man(丘也卽殷人), whose origin was Korean, approximately one week before he died. Sima Quian's shiji also states that "the Yin is Tung-i(殷曰夷),” and Confucius was a Tung-i.“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 교리(敎理) 그리고 유교(儒敎)
공자(孔子) 자신(自身)에 따르면, 그의 가르침들은 그 자신(自身)의 것이 아니라 과거(過去)의 가르침으로부터 주(主)로 되찾아졌다. 공자(孔子)는 말했다: 나는 그 가르침들 만들지 않았고, 그 가르침은 고대(古代)로부터 왔다. 공자(孔子)는 또한 말했다: 나는 요(堯)와 순(舜)의 도(道)(가르침들)들을 이어 받았다. 요(堯)와 순(舜)은 두 분 다 고대(古代) 지나(支那)에 전설적(傳說的) 현자(賢者) 군주(君主)로 알려져 있다. 요(堯)는 한국(韓國)으로부터 파견(派遣)된 단군(檀君) 또는 밝은 지도자(指導者)였고 그리고 고대(古代) 시대(時代)에 야만적(野蠻的) 지나(支那)를 교화(敎化)시키기 위하여 일했다. 요(堯)의 주요(主要) 교리(敎理)는 천부경(天符經)이었다. 천부경(天符經)에서 신(神)은 각자(各自) 내(內)에 있고 그리고 옳음 또는 틀림을 초월(超越)하는 방법(方法)인, 진리(眞理)의 도(道) 또는 신(神)의 도(道)를 의미(意味)하는 중도(中道)를 취(取)하라는 것이다. 요(堯)는 그의 후계자(後繼者)인 순(舜)에게 이 교리(敎理)를 넘겨주었다. 이 교리(敎理)는 공자(孔子)에게 전달(傳達)되어졌다. 그들은 동이(東夷) 사람이었다. (동(東)은 동쪽을 의미(意味)하고, 그리고 이(夷)는 지혜(知慧)를 가진 그리고 활을 사용(使用)하는 기예(技藝)를 가진 밝은 사람을 의미(意味)한다. 한국(韓國) 사람들은 지나(支那)에서 동이(東夷)라 불려졌다). 공자(孔子)의 주(主) 제자(弟子)였고 그의 급(級)이 공자(孔子) 다음이었던 맹자(孟子)는 말했다: "순(舜)은 추마에 태어난 것처럼, 푸후라고 불리는 땅에서 살았고, 그리고 밍차오에서 죽었다, 그는 진정(眞正)하게 동이(東夷)였다." 맹자(孟子)는 또한 순(舜)은 동이(東夷)로부터 직계(直系)자손(子孫)이고 그의 출생(出生)장소(場所), 거처(居處),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해 상세(詳細)한 사항(事項)들을 주었다 라고 기술(記述)했다. 그는 또한 순(舜)뿐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後孫)들도 동이(東夷)라고 선언(宣言)했다. 맹자(孟子)는 지나(支那) 중심부(中心部)의 아주 극동(極東)에 위치(位置)해 있다고 말하면서 동이(東夷)의 위치(位置)를 설명(說明)했다. 린 휘샹 그리고 수 리양지 같은 지나(支那) 학자(學者)들은 요(堯)와 순(舜)은 한국(韓國) 출신(出身)이란 것을 인정(認定)했다. 전통적(傳統的) 자료(資料)들은 순(舜)은 요(堯)로부터 유교(儒敎)의 원래(元來) 교리(敎理)를 배웠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요(堯)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요(堯)는 황제(黃帝)로부터 직접적(直接的) 오세대(五世代)였고 그리고 끝의 명예(名譽) 칭호(稱號)는 단교였다. 황제의 자손(子孫)인 요(堯)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지나서로는 바이민)이었다(백민(白民)은 백의(白衣)를 입은 사람, 또는 한국(韓國) 사람, 그리고 그는 동이(東夷)였다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황제(黃帝)는 자부선인(紫府仙人)(신적(神的)인 힘과 지혜(知慧)를 가졌던 사람)으로부터 한국(韓國)에 백두산(白頭山)에서 배웠다.[태백일사(太白逸史)] 한국어(韓國語)로 선인(仙人), 또는 신선(神仙)이라는 용어(用語)는 또한 초자연적(超自然的)인 힘들을 가진 도교(道敎)의 은자(隱者)인 지나어 쉔지안의 어원(語原)이었다. “유교(儒敎)는 고조선(古朝鮮) 교리(敎理) 속에서 시작(始作)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공자(孔子)님 또한 한국(韓國) 사람이었다. 공자(孔子)님은 자신이 은(殷)나라 사람이라고 확언(確言)하였다. 은(殷)나라 사람은 한국(韓國) 사람이었다. 공자(孔子)님은 자신(自身)의 많은 글들 중에서 자신(自身)이 한국인(韓國人)임을 자랑스럽다고 간접적(間接的)으로 표현(表現)하였다. 공자(孔子)님은 중용(中庸) 30장에서 자신(自身)은 요순(堯舜)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한 28장에서는 자신(自身)이 고조선(古朝鮮)에서 유래(由來)된 천부경(天符經)에 기초(基礎)를 둔 은(殷)나라의 도덕(道德)을 배웠다고 말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공자(孔子)님은 죽기 약 일주일(一週日) 전(前)에, 제자(弟子)에게 자신(自身)은 한국(韓國) 사람의 조상(祖上)인 은(殷)나라 출신(出身)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또한 은(殷)나라는 동이(東夷)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은 동이(東夷)이다.
Ancient Korean And Buddhism Millenarianism Doctrine
Sakka Buddha claimed that there was Buddhism in Korea before he was born. Sakka Buddha has asserted that there were many Bodhisattvas (Buddhist Saints) near Mt. Kumkang in Korea, before where there are many lakes like seas on the mountains. Even now, the Bodhisattva, whose name is Popgi, takes 1,200 followers to preach to them. According to Chajangjon or the Biography of Chajang Buddhist priest, who was the Silla royal priest, there was a Budda's stone seat on the east side of Wolsong (Kyongju City), Silla(Dynasty). It was a buddhist temple. Today’s Punhwangsa Temple in Kyongju was one of seven temples in Kasop Buddha’s era before Sakka Buddha. Archaeological evidence for some of these temples has been discovered in Korea. In every Korean Buddhist temple, there is the main house, where the Buddha statue is placed. The name of the main house is Tae-ung-jon (Tae is big, ung is great, jon is palace). This kind of name was not taken from the Indian tradition but from the ancient Korean millenarian tradition. Han’ung, the Heavenly King was called Tae-ung-ch'on (ch’on means Heaven). He was symbolized as the Heavenly Master of enlightenment and truth. The Korean Buddhist temples followed the Heavenly King’s name, Tae-ung-chon. The Korean Buddhists seem to have changed only the name of ch’on to jon. In these Taeungjon, the ancient Korean millenarian doctrine of Ch ’onbugyong, that one came from nothing but one, one contains all, seems to have been preached to the People. The doctrine is the same as the belief in “emptiness is thing and thing is emptiness” that is found in Buddhism.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Doctrine, Taoism, Taiping, And Tonghak, Taoism was originally called Hwangno gyo (Huang means Yellow, no means old, gyo means doctrine) because Hwangdi, the Yellow emperor, taught the doctrine. According to an ancient source, the T'aebaek'ilsa, Hwangdi went to Chabu's sacred doctrine and wisdom. Chabu was Palgiri’s descendant. Palgirl was a Korean who had supernatural power and the wisdom of the City of God in the ancient Korean millenarian era. If there is reason why the distortion of history on East Asia continues, it is because many scholars have used traditional sources such as Sima Qian's Shiji and Arnold Toynbee’s study of history, (which used Sima Qian's source), without using Korean sources and without careful reexamination of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surveys.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and Taoism. The Korean belief concentrated on spiritual and moral training, but Taoism encouraged using amulets against evils. Sangje, Shangdi, or God is only one but has three functions for chohwa, kyohwa, and ch'ihwa. God’s State- Hanin’s state: The ancient Korean state made an earthly paradise where there was no disease, no poverty, no crime, but only long life in peace and happiness. Suun Ch’oe Che-u highly praised Ch’oe Ch’i-won as his greatest ancestor scholar, and Suun was influenced by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Ch’oe Ch’i-won was the greatest scholar in the Silla Dynasty and the ancestor of the Tonghak founder Ch’oe Che-u. Suun was proud of Ch’oe Ch’i-won, his ancestor. Ch’oe Ch’i-won wrote 81 words of Ch’o'nbugyong, which was taken from ancient Korea, on the wall of a tunnel in Mt. Myohyang, Korea. He also wrote the ancient Korean doctrines “hyonmyojido or profound and mysterious doctrine,” on his famous Nanrangbi, or Nanrang monument. Ch’oe Ch’i-won praised the ancient Korean millenarian doctrines, including Ch’onbugyong, because he thought the doctrine had religious wisdom. Hanin, or God, came from heaven and created the State of God for great peace, or T’aep’yong in the world. This story is the first in human history that tells of God’s creating the State of God in 7198 B.C. There was no sickness but only long life in the city and the state of God. The terms “Shangdi,” “Heavenly King,” “Heavenly Way,“ “Taiping” that the Taipings used were already used in ancient Korea. The Heavenly Way also had similarities with the doctrine of good conduct.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states that humans have God or humans are fundamentally God. This idea was also transferred to Tonghak. Sich’onju, that humans have God. One of the Tonghak’s main doctrine, muwiwihwa, which means “for all life to evolve toward a social oneness,” came from the ancient Korean millenarian.” The need for discipline to do well and to purify the human mind for love has been stressed for muwiwihwa. Suun’s Tonghak, Hong’s Taiping were influenced by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which was itself a source for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고대(古代) 한국(韓國) 그리고 불교(佛敎) 이상주의(理想主義) 교리(敎理)
석가(釋迦) 붓다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한국(韓國)에서 불교(佛敎)가 있었다라고 주장(主張)했다. 석가(釋迦) 붓다는 산(山)에 있는 바다 같은 많은 호수(湖水)들이 있기 전에, 한국(韓國)의 금강산(金剛山) 근처(近處)에 많은 보살(菩薩)(불교(佛敎)의 성자(聖者)들)들이 있었다라고 주장(主張)했다. 지금(只今)도, 법기(法起)라는 이름인 보살(菩薩)이 일천이백(一千二百)제자(弟子)들에게 법(法)을 전(傳)하기 위하여 그들을 받아들인다. 자장전(慈藏傳) 또는 신라(新羅) 왕실(王室)의 승려(僧侶)였던 자장(慈藏) 불교(佛敎) 스님의 자서전(自敍傳)에 따르면, 신라(新羅)[왕조(王朝)] 월성(月城)[(경주시(慶州市)] 동(東)쪽에 붓다의 석좌(石座)가 있었다. 그것은 불교(佛敎) 사원(寺院)이었다. 경주(慶州)에 있는 오늘날의 분황사(芬皇寺)는 석가(釋迦) 붓다 이전(以前)에 가섭(迦葉) 붓다 다음 시대(時代)에 일곱 사원(寺院) 중(中)의 하나였다. 이들 사원(寺院)의 몇몇에 대한 고고학적(考古學的) 증거(證據)가 한국(韓國)에서 발견(發見)되어졌다. 모든 한국(韓國)의 불교(佛敎) 사원(寺院) 내(內)에, 붓다의 조각상(彫刻像)이 위치(位置)되어진 중심(中心) 가옥(家屋)이 있다. 중심(中心) 가옥(家屋)의 명칭(名稱)이 대웅전(大雄殿)이다(대(大)는 크다, 웅(雄)은 크다, 전(殿)은 왕궁(王宮)이다). 이 같은 명칭(名稱)은 인도(印度)의 전통(傳統)으로부터가 아니라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의 전통(傳統)으로부터 취(取)해진 것이다. 환웅(桓雄), 천왕(天王)은 태웅(太雄)-천(天)(천(天)은 하늘을 의미(意味)한다)이라고 불려졌다. 그는 깨달음을 진리(眞理)의 하늘적 주인(主人)으로 상징화(象徵化) 되어졌다. 한국(韓國)의 불교(佛敎) 사원(寺院)들은 천황(天皇)의 이름인 대웅전(大雄殿)을 따랐다. 한국(韓國)의 불교(佛敎)신자(信者)들은 단지 천(天)의 명칭(名稱)을 전(殿)으로 바꿔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웅전(大雄殿)에서, 일(一)은 무(無)로부터 왔지만 일(一)로부터 왔다, 일(一)은 모두를 포함(包含)한다는 천부경(天符經)의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 교리(敎理)가 사람들에게 설(說)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교리(敎理)는 불교(佛敎)에서 발견(發見)되어지는 공(空)이 사물(事物)이고 그리고 사물(事物)이 공(空)이다라는 믿음으로서 동일(同一)하다.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 교리(敎理), 도교(道敎), 타이핑(太平), 그리고 동학(東學)은 원래(元來) 황노교(黃老敎)로 불려졌다.(황(黃)은 황색(黃色), 노(老)는 늙음을, 교(敎)는 교리(敎理)를 의미(意味)한다) 왜냐하면 황제(黃帝)가 그 교리(敎理)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고대(古代) 자료(資料),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따르면, 황제(黃帝)는 자부(紫府)의 신성(神聖)한 교리(敎理)와 지혜(知慧)에로 갔다. 자부(紫府)는 발귀리(發貴理)의 자손(子孫)이었다. 발귀리(發貴理)는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 시대(時代)에 초자연적(超自然的) 힘과 신(神)의 도시(都市)의 지혜(知慧)를 가졌던 한국(韓國) 사람이었다. 왜 동(東)아시아에서의 역사(歷史) 왜곡(歪曲)이 계속(繼續)되는 이유(理由)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歷史的)이고 고고학적(考古學的)인 조사(調査)들의 세심(細心)한 재검토(再檢討)없이 그리고 한국(韓國)의 자료(資料)를 사용(使用)하는 것 없이, 많은 학자(學者)들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자료(資料)로 사용(使用)한]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역사(歷史)의 연구(硏究)를 전통적(傳統的)인 자료(資料)로 사용(使用)해 왔기 때문이다.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와 도교(道敎) 사이에는 몇몇 다른 점(點)들이 있다. 한국(韓國)의 신앙(信仰)은 영적(靈的)인 도덕적(道德的) 수련(修鍊)에 촛점을 두었다, 그러나 도교(道敎)는 악(惡)에 대항(對抗)하여 부적(符籍)들을 사용(使用)하는 것을 장려(獎勵)했다. 상제(上帝), 샹디, 또는 신(神)은 일(一)이나 조화(造化), 교화(敎化), 그리고 치화(治化) 삼기능(三機能)을 가진다. 신(神)의 나라-환인(桓因)의 나라: 고대(古代) 한국(韓國) 나라는 질병(疾病), 빈곤(貧困), 범죄(犯罪)가 없고, 평화(平和)와 행복(幸福) 속에 오직 장수(長壽)만 있는 지상(地上)의 낙원(樂園)을 만들었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최치원(崔致遠) 선생(先生)을 그의 위대(偉大)한 선조(先祖) 학자(學者)로 높이 칭송(稱頌)했다 그리고 수운(水雲)은 고대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에 의해 영향(影響)을 받았다. 최치원(崔致遠) 선생(先生)은 신라(新羅) 왕조(王朝)에 가장 위대(偉大)한 학자(學者)였고 그리고 동학(東學)의 창시자(創始者)인 최제우(崔濟愚) 선생(先生)의 조상(祖上)이었다. 수운(水雲)은 그의 조상(祖上)인 최치원(崔致遠) 선생(先生)을 자랑스러워했다. 최치원(崔致遠)은 한국(韓國)의 묘향산 (妙香山)에 있는 동굴(洞窟) 벽(壁)에 있는 고대(古代) 한국(韓國)으로부터 취(取)한 천부경(天符經) 81자(字)들을 썼다. 그는 또한 그의 유명(有名)한 난랑비문(鸞郞碑文) 또는 난랑비석(鸞郞碑石) 위에 현묘지도(玄妙之道) 또는 심오(深奧)하고 신비(神秘)한 교리(敎理)인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교리(敎理)들을 썼다. 최치원(崔致遠)은 천부경(天符經)을 포함(包含)하는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를 찬양(讚揚)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교리(敎理)가 종교적(宗敎的) 지혜(知慧)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생각했다. 환인(桓因), 또는 신(神)은 하늘로부터 왔고 그리고 세계(世界)에서 큰 평화(平和) 또는 태평(太平)을 위(爲)하여 신(神)의 나라를 창조(創造)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紀元前) 7198년(年)에 신(神)의 나라를 창조(倉曹)함을 말해 주는 인간(人間)의 역사(歷史) 속에서 첫 번째이다. 질병(疾病)도 없고 신(神)의 도시(都市) 그리고 나라 내에는 오직 장수(長壽)만이 있었다. 태평천국(太平天國)교도(敎徒)들이 사용(使用)했던 상제(上帝), 천왕(天王), 천도(天道), 태평(太平) 같은 용어(用語)들은 벌써 고대(古代) 한국(韓國) 내(內)에서 사용(使用)되어졌다. 천도(天道)는 또한 선행(善行)의 교리(敎理)와 유사점(類似點)들을 가졌다.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는 사람들은 신(神)을 가지고 있다 또는 사람들이 근본적(根本的)으로 신(神)이다 라고 기술(記述)한다. 이 사상(思想)은 또한 동학(東學)에 전달(傳達)되어졌다. 사람은 신(神)을 가진다는 시천주(侍天主). 동학(東學)의 주(主) 교리(敎理)의 하나인 사회적(社會的) 하나를 향하여 진화(進化)하기 위한 모든 생명(生命)을 위하여를 의미(意味)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는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로부터 왔다. 선행(善行)을 위(爲)한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사람의 마음을 정화(淨化)하기 위한 규율(規律)의 필요(必要)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강조(强調)되어져 왔다. 수운(水雲)의 동학(東學), 홍(洪)의 타이핑(太平)은 그 자체(自體)로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와 그리고 도교(道敎)의 근원(根源)인 고대(古代) 한국(韓國)의 이상주의(理想主義)에 의해 영향(影響)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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