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라고 했다. 스위스의 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가 그의 유작 ‘상실수업’에서 전한 말이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인생수업이라고 하기에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그래서 주인공 찰리 파인먼은 절망의 통로 속에서 좀체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절망이란 비탄에 빠져 있는 동안 신경체계를 닫게 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이 절망의 늪을 통과하면서 영혼은 한층 성숙한 미래로 다가서련만 쉽지 않다.
영화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는 힐링스토리이다. 9·11 테러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 셋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찰리 파인먼을 그의 대학 동창으로서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치과의사 앨런 존슨이 친구를 다시 세상 속으로 복귀시키는 영화이다.
찰리 파인먼(아담 샌들러)은 아내와 딸들을 비행기에 먼저 태워 보냈다가 9∙11 테러 사건으로
가족을 잃는다. 반려견 푸들까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전직 치과의사 찰리는 절망에 빠져 직업도, 만나는 사람도 없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자신만의 세상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충격으로 말미암은 피폐한 정신과 망각의 욕구가 빚어낸 내면으로의 은둔이다. 그의 머리에는 늘 해드셋을 꼈는데 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스쿠터를 타고 뉴욕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절망 속을 유영한다. 9·11 테러의 현장이기도 한 첨단 도시 뉴욕이라는 영화의 배경은 그의 외로움을 더욱 대비하며 아픔을 확장시킨다.
유망한 치과의사 앨런 존슨(돈 치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경제적인 여유를 갖춘 안락한
중산층의 가장이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에서의 중압감으로 이따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상황이 절박하다고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낸다.
예상치 못한 운명적 만남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앨런 존슨이 우연히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찰리 파인맨을 만나게 된 것.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 내면에 갇혀 있는 찰리는 룸메이트까지도 잊고 있어 앨런 존슨은 부단히 과거를 상기시키며 다가서야 했다. 찰리는 절규한다.
“진짜 싫어. 진짜 이런 거 싫어. 기억하는 게, 기억나는 게 싫어.”
첫날은 그럭저럭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밤을 보낸다. 하지만 찰리는 닫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그는 컴퓨터 게임과 음악에 심취해 있다. 망각을 위한 노력이다. 한편, 찰리는 부엌을 리모델링하려고 준비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아내가 부엌 보수작업을 요청했는데 거절했다는 미안함에 때문이다. 그래서 리모델링 작업은 아내를 위한 속죄의 의미가 있다. 찰리는 작업을 위해 수리 도구들과 재료들을 사들였지만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보수작업을 완료해도 함께 사용할 아내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 앨런은 찰리를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 함께 술을 마시고 악기도 연주하며 찰리가
즐기는 게임에 동참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이따금 정신병원을 찾듯 조심스럽게 정신과 치료의를 소개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앨런은 찰리에게 다가서다 크고 작은 충돌과 거절을 경험하지만, 앨런은 친구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It’s not your fault.”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와 같은 상황에서는 나 또한 똑같이 흔들리고 휘청거렸을 거라며 위로한다.
어느 날 찰리는 권총을 들고 거리에 나갔다가 주행자와 시비가 붙는다. 경찰에 체포되고 그는 위험인물로서 치료감호처분을 받는다. 앨런과 정신과 주치의 안젤라는 치료감호 처분이 상처 치료에 해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찰리가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 속으로 들어오는 길은 심리적 치료 못지않게 우정과 사랑이라고 여긴다.
재판장 복도에서 찰리는 치료감호를 받아들이려는 장인과 장모에게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얘기하지 않고도 사진을 쳐다보지 않고도 전 항상 식구들을 보고 있어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들 얼굴 속에서도 식구들을 봐요. 장인어른이 가지고 다니시는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구요. 힘드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두 분은 서로가 있으시잖아요. 두 분은 함께시지만 전 혼자서. 자나깨나 식구들이 눈에 밟혀요. 어디를 가든지요. 하다못해 강아지도 보여요. 그만큼 죽을 지경이에요. 셰퍼드가 지나가도 전 푸들로 보인다구요......"
찰리는 재판에서 사회 복귀처분을 받는다. 앨런과의 우정이 피운 치유의 꽃이다. 찰리는 오랫동안 미뤄오던 부엌 보수작업을 마치고 그 집을 떠난다. 상실감이 함께 하던 집을 떠나 새로운 희망으로의 이주다. 찰리는 새집에서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새 친구들을 맞이한다.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앨런에게도 보상이 따랐다. 친구를 돌보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앨런이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아내에게 전화해 진심 어린 사랑을 표현하고 아내는 이에 담백한 사랑의 메시지로 화답한다. 상처받은 영혼을 서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존재,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으로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이 파괴되었다. 이 대폭발 테러 때문에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세계인권선언의 16조 3항에 따르면,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반인륜적인 테러 앞에 초강대국이라는 미국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가족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때로는 가족과 떨어져 살기도 하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홀로 살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이란 본래 사회적·혈연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에게 치유는 더없이 절실한 재활의 과정이다. 치유란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반이 형성된다. 이 치유에 비유하는 것이 힐링. 힐링은 삭막해진 사회시스템과 황폐해 가는 인간관계 탓에 점점 더 의미가 커지고 있다.
마이크 바인더 감독은 그의 감독 노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우정이라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모두 각각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럴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고 도와줄 친구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다. (중략) 이 영화는 그 누구하고도 대화하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가 만나 서로 알아가고, 그 가운데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우정을 힐링의 핵심 요소로 두고 연출했다는 감독의 메시지이다.
참다운 친구란 어떤 일이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사이를 말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제2의 자아’라고 정의하였다. ‘조르주 장’(Georges Jean)의 저서 ‘문자의 역사’에서는 인류의 최대 발명품인 문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내용 중에는 B.C 3000년 무렵에 사용한 그림 문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또 두 줄의 선을 엇갈려 놓으면 적개심을 의미했고 평행의 두 줄은 우정을 의미했다. 우정은 기원전 3,000년 무렵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떤 고난이나 영광 속에서도 늘 함께 가는 것을 뜻한다.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맬 때가 있고 그런 너를 나는 이해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그런 의미에서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는 "내 곁에 있어줘"라고 해석하면 좋을 듯.
감독은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마이크 바인더(Michael Binder). 연기를 아는 감독이기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찰리 파인맨의 역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주연은 찰리 파인맨 역의 아담 샌들러(Adam Sandler), 그는 주로 코믹연기를 맡아 왔는데 찰리 역으로 개성 강한 연기자로서 지평을 확대했다. 찰리를 다시 세상으로 복귀시킨 앨런 존슨 역의 돈 치들(Don Cheadle), 그는 <크래쉬> <호텔 르완다>에서 진지하고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연기를 무난히 소화해 냈다. 안젤라 역의 리브 타일러(Liv Tyler), 안젤라는 미모가 뛰어난 정신과 치료의로서 찰리 파인먼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를 돕는 상담의 역을 맡았다. 앨런 존슨의 부인 도나 역에는 세프론 버로우스(Saffron Burrows).
2007작품. 미국. 123분. 드라마
남돈우(南敦祐)/영화제작자
(현) 씨드윈 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