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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어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매일 빚쟁이에 쫓기며 벼랑 끝 삶을 살아가던 연희는 어느 날 한 청소업체의 취업 면접을 보게 된다. 겉보기엔 ‘미래클리닝’ 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청소회사의 본 모습은 범죄 현장의 시체 청소업체. 연희는 끔찍한 현장을 목도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그 일이 주는 막대한 돈에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취업하게 된다. 불법 시체 청소를 하는 회사이지만 그들 나름의 원칙이 있다. 다른 시체 청소 회사들과는 달리 여성과 아이의 시체는 절대 처리하지 않고, 오직 ‘흉악범’ 들의 시체만을 처리한다는 것. 하루하루 일을 하며 연희는 점점 사회 이면에 있는 범죄 세계에 빠져 들어가게 되고 점차 자신의 윤리가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에서 탈출해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만…….
그녀는 과연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범죄 현장의 시체들을 청소하는 회사, 그곳에 취업한 청춘들의 생존 투쟁기!
저자소개
저자 : 해원
작가 정보 관심작가 등록
현대문학가>소설가/수필가 영화인>시나리오작가
2017 소설 〈슬픈열대〉 출간
2018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NEW 크리에이터상 수상
2022 소설 〈굿잡〉 출간
외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 집필 중
목차
1장. 인턴
2장. 이방인
3장. 아들의 손가락
4장. 시시비비
5장. 정직원
6장. 빈자리
7장. 우연과 필연
8장. 증거
9장. 논현동
10장. 기회
11장. 선택지
12장. 프락치
13장. 재회
14장. 떠도는 개들처럼
15장. 함정
16장. 퇴사
17장. 작별
18장. 폐허 위에 내리는 눈
추천사
김희재(시나리오 작가, ㈜올댓스토리 대표)
작가, 해원의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사회 환경적 이유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을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외부적 상황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리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담담한 처절함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무게는 어떤 남성 서사보다 강렬하고 묵직합니다.
김봉석(문화평론가)
은밀하게 시체 처리를 하는 불법 청소업. 〈굿잡〉의 세계에는 시체 처리를 하는 청소업체들이 모인 청소협회가 있고, 망나니라 불리는 킬러들의 협동조합도 있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아주는 노숙자 단체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과 닮았지만, 이면에 있을 법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굿잡〉은 마치 영화 〈존 윅〉의 설정을 한국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조민욱(투유드림 IP개발사업부 IP개발총괄)
〈굿잡〉의 가장 큰 묘미는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막 개봉한 직소 퍼즐 조각처럼 이야기가 흩뿌려졌다가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누아르, 로맨스, 블랙 코미디, 성장 드라마 등 다양한 이야기의 맛을 고르게 즐길 수 있다. 그 덕분에 여러 시대와 인생을 유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박정희 스위스 비밀계좌 등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이 절묘하게 등장할 때는 한국 현대사의 상흔들을 되짚어 볼 기회를 얻기도 한다.
책 속으로
오늘 있었던 두 번의 면접은 실패로 끝났다. 올 초 취업전선에 뛰어든 후 줄곧 반복되어 온 일이다. 이제 거절당하는 일에는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업은 쉬운 일이었다. 널린 게 일자리였으니까.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보, 대우 같은 대기업도 무너지는데, 그보다 덩치가 작은 회사들은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떠내려가 버렸다. 이 판국에 신입사원 뽑겠다고 나서는 간 큰 회사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는 명문대 출신들에게 돌아갔다. 어중간한 대학교, 그것도 중퇴자인 연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직원을 뽑는 곳이면 어디든 지원했다. 면접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에, 한 번도 면접을 거른 적 없다. 눈앞의 계단을 오르면 세 번째 면접이 시작될 터였다. 연희는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설였다. 면접을 주선한 사람이 사채업자이기 때문이다.
- 10쪽
외환위기가 아버지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일감이 뚝 떨어지면서 공장은 문을 닫았고, 아버지는 큰 빚을 지고 줄소송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연희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가 물었다.
“요새 그런 게 어딨어요.”
연희가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체면 타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세상이 다 망했는데 체면은 개뿔. 뭔 짓을 하든 돈만 벌면 장땡이지. 안그래요?”
연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꿈이 뭐니?”
담배를 피우던 중년 여자가 대뜸 물었다.
꿈. 흔한 말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커리어 우먼. 지금은 꿈은 커녕, 내일도 없다.
남자도 궁금한 눈치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때 아파트가 떠올랐다. 영등포에 있는 스무 평짜리 주공아파트. 연희와 동생이 나고 자란, 가족의 보금자리. 은행이 죽은 아버지의 빚 대신 빼앗아간 집.
“내 집 마련…….”
연희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5년이면 되겠네요.”
“네?”
“여기서 5년만 일하면 빚 갚고 집 사겠다고.”
- 14쪽
-
연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교동은 눈길도 주지 않고 열쇠로 자물쇠를 땄다.
문이 열렸다. 콩 볶는 요란한 소리가 여인숙 안으로 뛰어 들었다. 부슬비는 어느새 장대비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연희는 멍청하게 교동을 따라온 자신을 탓했다.
“연희 씨가 본 시체는 기술자였어요. 요샛말로 하면 킬러라고 할까. 저 녀석 칼질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 트럭은 될 겁니다. 우리는 죽어도 싼 놈만 치워요. 여자, 어린애,
무고한 민간인 시체는 건들지 않고.”
양심적인 척해 봤자 범죄잖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못 하겠으면 그냥 가도 돼요. 물론 오늘 본 건 잊어야겠죠. 혹시라도 말실수라도 했다간 연희 씨는 물론이고 남양주에 계신 어머니도 위험해집니다.”
어머니라는 말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 25쪽
출판사 서평
붕괴, 살인, 화재, 칼부림…. 이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들.
아무리 외면해도 끝내 마음 한 켠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 있다.
실업률 최고치, 국가 최악의 부도상황에 처해있었던 1998년대 IMF 시절, 25살 연희는 꿈도, 돈도 없이 빚쟁이들을 피해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 외엔 다른 생각은 할 수조차 없는 상황. 빚쟁이 중 한 명은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명함 하나를 건넨다. 명함에 적힌 회사의 이름은 ‘미래 클리닝’. 겉보기엔 평범한 청소업체이지만, 사실 그 실상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경찰이 알아챌 수 없도록 범죄 흔적을 지우는 집단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연희가 ‘미래 클리닝’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연희는 폭력과 살인, 마약과 방화 등 사회의 온갖 범죄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주검들을 마주한다. 점차 생활은 나아지고 돈이 모여가지만 그럴수록 연희는 범죄세계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눈앞에서,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반복을 끝내 외면 할 수 없게 된다.
〈굿잡〉은 이야기 내내 대한민국에 있었던 크고 작은 비극들을 은유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이야기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사회의 비극들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그 비극들과 맞서 싸운다. 타인과 세계의 비극이 마침내 자신의 비극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올 때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벌어지는 비극과 우리 자신을 분리시킨다.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 사회면 어딘가에 기록되어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을 쉽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끔찍한 비극의 얼굴들을 외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해도 어느 순간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도대체 이 세상에선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참사들이 발생하는걸까. 왜 이렇게 사람들은 죽어나가는걸까.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잘 들리지 않는걸까.
작가 해원은 소설 〈굿잡〉을 통해 이 사회에 벌어진 비극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극악의 상황,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
그녀들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모습은 강렬하고 묵직하다.
강렬한 여성 서사로 장르계 주목을 받았던 해원 작가가 두 번째 소설을 출간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남미 마약 카르텔의 한복판에서 사건을 겪는 해원 작가의 전작 〈슬픈 열대〉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 소재, 그런 배경에서 여성 주인공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는 데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두 번 째 소설 〈굿잡〉 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 현장을 청소하는 독특한 직업 설정으로 장르적 성격이 매우 강렬한 기획임에도 작가 해원은 다시 한번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그려낸다. 남성 주인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편안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 해원의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사회 환경적 이유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다. 주인공다운 격렬한 딜레마 속에서 그녀들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녀들을 도와주는 왕자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을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외부적 상황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리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더 나아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담담한 처절함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무게는 어떤 남성 서사보다 강렬하고 묵직하다.
작품은 작가 해원이 자신의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을 향해 살아가라고, 틀리지 않았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지지선언처럼 힘있게 펼쳐진다.
독특한 설정, 정밀한 묘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허구적 이야기지만 매일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로하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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