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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 환인현은 현재 인구 30만 명 중 절반 정도가 만주족으로 구성된 만주족자치구로 지정돼 있으며 조선족은 약 1만7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 길림성 집안시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유리왕부터 장수왕까지 425년간의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있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우리 고대사 연구의 핵심이 되는 광개토대왕비가 있고,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장군총,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인정되는 태왕릉, 수렵도로 알려진 무용총, 각저총, 사신총 등의 고분이 남아 있다. ▲▼ 오녀산성 (五女山城)/홀본서성(忽本西城)
홀본서성은 환인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8.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오녀산성(五女山城) 또는 흘승골성(紇升骨城) 또는졸본성(卒本城)은 중국 요녕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현(桓仁縣) 오녀산(五女山)에 위치한 산성(山城)이다. 해발 800미터 높이에 이르는 절벽의 천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쌓아 고구려 특유의 축성 양식을 보여준다. 오녀산성은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테뫼식으로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홀본서성은 오늘날 중국에서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처음 언급되었다. 고구려인이 만든 『광개토왕릉비』에는 홀본성(忽本城)이라고 하고 있고, 삼국 시대에는 환도성(丸都城), 졸본성(卒本城)으로 불렸으며, 《고려사》 공민왕조에는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고 나타나 있다. 오녀산성은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남북 길이 1,500m, 동서 너비 300m이고, 전체 약 8km이다. 성 안에는 천지(天池)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는데, 2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른일이 없다고 하며, 깨끗하여 음료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 산성은 200m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왔다. 동쪽과 남쪽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성벽을 설치하였다. 고구려 멸망 이전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다. 홀본서성은 200m 높이에 이르는 험준한 오녀산 절벽을 천연의 성벽으로 그대로 이용하고 산세가 완만한 동쪽과 남쪽에만 인공적으로 성벽을 쌓아서 축성한 천연의 요새다. 게다가 홀본서성의 산 정상부에는 남북길이 600m, 동서너비 130~300m의 평평한 대지가 펼쳐져 있고, 그 꼭대기에 우물이 있어 유사시 백성들이 거주하면서 농성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홀본서성(忽本西城)입구 표지석 중국측이 1996~1999년과 2003년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고구려 시대 유물 2천여 점이 발굴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3개 성문지, 건물지, 저수지, 장대, 병영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또한 청동기시대 말기와 기원전후시기의 유적, 그리고 고구려 중기 유적도 대거 발굴되었는데 이는 오녀산이 신석기시대 이래 오랜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과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천도 이후에도 홀본서성이 비중있게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녀산이란 이름은 아주 오랜 옛적에 5명의 여성호걸이 이 산에 살면서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고구려의 성스러운 도읍지가 중국측 설화에 따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중국 요령성 환인현은 소서노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도읍지를 삼은 곳이다. 즉 고구려의 출발지이다.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은 삼면이 절벽으로 돼 있는 천혜의 요새인 오녀산에 '졸본성'을 쌓고 이곳에서 고구려의 기틀을 세웠다. 당시 고구려는 전쟁을 대비해 돌로 쌓은 산성과 평상시 왕이 기거하는 토성인 평지성을 함께 만들었다. 평지성이었던 '하고성자성'의 흔적은 지금 찾아보기 어렵고 산성인 오녀산성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탓에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녀산성 앞을 흐르는 강은 혼강의 하류인 동가강이다. 길림성 통화지역에서 발원해 요령성을 거쳐 압록강과 만나는 혼강은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구려가 주변국들과 교역을 할 때 주요 교통로로 이용됐다. 이 넓은 산의 정상에는 건물 터임을 알게 해 주는 주춧돌이 보존돼 있다. 또 산꼭대기에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제법 큰 연못인 '천지'가 있다. 이곳의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산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주몽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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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구려사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가보지 못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