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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이력이 적지 않는 제가 나주시 산악회와 첫 인연은 참으로 인상적인 기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산면이 고향인 저는 가끔 공산면 산악회 산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6월 27일) 공산면 원정산행에서 황인선 대장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공산면에 산행대장이 따로 있으니 황대장님이 따로 나서서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춘천 청평사 배후를 에둘러 장관을 이루며 펼쳐져 있는 오봉을 오르며 들려주신 얘기에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게 깊은 호의를 보이시며 백운산 산행에 초대하였고 저는 흔쾌히 응하였습니다.
당일 세종문회회관 뒤편에서 7시에 떠나는 차편을 놓치지 않으려고 5시 조금 넘어 기상하였습니다.
최근 근교산행만 하다 보니 이처럼 이른 기상은 익숙치 않습니다.
더구나 전날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동창의 개업식에 참석했다가 새벽 1시까지 축하주를 나누었으니 삭신이 성할 리 없습니다.
황대장님과 약속이 아니라면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당 효자촌에서 광화문행 버스에 올라 6시 40분 경에 출발지에 당도하니 벌써 많은 나주 향우회 산우분들이 계셨습니다.
마침 김용석 선배님이 계셔서 향우 선배님들께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당시 소개받은 선배님들의 함자를 기억하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여름이고 장마철이라 우천의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주 향우회의 산행은 우천도 어떤 불순한 일기도 꺼리지 않는다는 전통을 말씀해 주십니다.
두 대의 버스에 80여분의 향우들이 나눠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저는 전날의 술기운과 부족한 잠 때문에 머리가 개운치 않았습니다.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자 향우회장님의 인상적인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향우들이 지켜야 할 규범과 원칙에 대한 것이고 함께하는 산행의 미덕을 언급하셨습니다.
배기운 국회의원님 등 나주 출신의 명사들에 대한 소개가 잠깐 이어졌습니다
이제 황대장님이 산행에 대한 안내시간입니다.
나주 향우회의 산행이 남다른 것을 여러 부문에서 말할 수 있지만 황대장님의 길안내가 그 압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의 산행 안내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의 발 닿는 곳의 역사와 풍류와 사연을 이처럼 생생하고 소상하게 들어본 산행은 없었습니다.
산행에 동참하신 분들은 다 아시는 얘기이지만 혼자만 알기에는 참 아까운 내용들입니다.
영 평 정을 구비구비 흐르는 동강을 끼고 우뚝 솟아 있는 백운산을 오르기에 그 지역의 역사와 사연과 풍류를 곁들인다면 더할 수 없이 뜻깊은 산행이 될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황대장님이 풀어놓은 얘기 보따리를 제 식으로 정리해봅니다.
영월하면 가장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은 단종이오, 다른 한 분은 김삿갓입니다. 두 분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랄 수 있습니다
단종의 사연이 제게 특별한 것은 청렴포에 유폐되어 수양에게 죽음을 당한 그의 시신이 청렴포 강물에 수십일 동안 떠돌다가 엄홍도에 의해 수습되어 암장되었다가 그후 100여 년 뒤 낙촌 박충원에 의해 제대로 수습이 되어 묘소에 안치되었는데 그 낙촌이라는 인물이 제 직계 할아버지입니다.
제 가문과 관련된 일이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있지만 단종의 비극은 시간을 달리하여 오늘도 재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양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배경은 역모 조작사건입니다.
부당한 권력 찬탈자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참혹한 짓을 자행하는지 목격할 수 있는 역사의 사건입니다.
제1차 단종복위 사건도 실상은 조작사건입니다. 불의한 권력 찬탈자의 불안감 때문에 단종의 측근을 역모 사건으로 조작하여 참살한 짓이 단종 복위 역모 사건입니다.
더구나 수양(세조)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는 2차 역모 조작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종에게 호의를 보인 유일한 종친 금성대군을 역모의 주역으로 조작한 사건입니다.
당시 순흥지역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과 친분이 있던 사람의 씨를 말리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무고한 순흥지역 사람들을 참살한 사건은 불의한 권력 찬탈자가 어떤 참혹한 짓을 저지르는지 보여주는 역사의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진짜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역모 조작사건입니다.
오지의 순흥지역에 유배되어 낯선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역모행위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군사반란행위로 조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런 사건을 목격합니다.
김대중 내란음모도 그런 조작사건의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최근 벌어진 천안함 침몰도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조작의 징후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두가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한 권력이 자행한 불행한 조작입니다.
단종의 비극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현실이기에 관심이 큽니다.
단종의 비극을 들을 때 그 개인적인 비극이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 모함과 조작으로 참혹한 일을 당한 무수한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져 눈물이 납니다.
김삿갓의 사연 또한 시대와 체제를 잘못 만난 불우한 천재가 세상과 타협하지도 세상을 버리지도 못하며 떠돌며 인생을 관조하기도 풍자하기도 부당한 사람과 세상을 은유로 풍자하고 조롱하는 얘기입니다.
황대장님이 생생하고 세세한 사연을 모아 부지런하게도 인쇄물까지 만들어 소개해 주심에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한자의 뜻과 새김을 참으로 기막히게 활용하여 풍자하는 시를 보노라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대장님이 소개한 시 몇 개를 아래와 같이 옮겨 놓습니다.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내 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二十樹下 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자의 훈(새김)을 기발하게 활용하여 표현.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此 이 차, 竹 대나무 죽: 이대로
彼 저 피, 竹: 저대로
化 화할 화(되다), 去 갈 거, 竹: 되어 가는 대로
風 바람 풍, 打 칠 타, 竹: 바람치는 대로
浪 물결 랑, 打 竹: 물결치는 대로
*상기의 두 시는 한자의 훈(訓: 새김)을 빌어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 인물의 사연이 깃든 영월 동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백운산
그 밑자락 점재나루터에 드디어 당도하였습니다.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한 몇 분 향우님들을 빼고 한 분 한 분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행에 앞서 간단한 몸풀기를 하며 마음을 가담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 조금은 아쉬운 점입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전날 내린 비에 젖은 산길이 미끄럽고 가파르게 형성된 오르막 길은 힘들고 위험했습니다.
물에 젖은 흙과 미끄럽고 날카로운 바위가 편안한 산행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길도 좁아 한 줄로 설 수밖에 없어 진행도 더뎠습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후텁한 공기에 숨이 편치 않았고 비대신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였습니다.
산중턱에 이르니 먼저 와 휴식을 취하시는 재성남 향우회장님의 시원한 수박 샤베트에 피로와 갈증이 사라집니다.
전날 부족한 잠과 술기운에 불편한 몸이 조금씩 풀리고 있어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드디어 백운산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출발한 지 1시간 10여분, 그러나 정상까지는 산행코스의 3분의 1정도밖에 아닙니다.
정상을 조금 지나 점심을 먹자고 했으니 기다리며 휴식을 취합니다.
조금 기다리니 황대장님 사모님의 친구분이 아는 체를 하십니다. 저는 미처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버스에서 소개인사드릴 때 기억하시고 아는 체를 해주시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우회 산우님들이 차근차근 올라오셔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힘겨운 정상 등정을 자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상을 100여 미터 지나 조금 비탈진 자리 여기저기에 각자 준비해온 점심거리를 펼쳤습니다.
이 높은 산중에 상추 고추가 입맛을 돋굽니다.
점심을 마치고 하산행에 오릅니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물기머금은 흙과 바위가 뒤섞여 미끄럽고 가파른 길입니다.
그러나 백운산 능선길은 영평정을 휘돌아 구비구비 흐르는 동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희열을 맛보입니다. 발걸음이 지칠만하면 구비구비 휘돌아가는 동강이 내비치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참으로 멋드러진 풍광의 연속입니다.
땀내와 지친 몸으로 인해 동강 시원한 물에 이끌리듯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신발과 양말만 벗은 채 동강의 푸른물에 몸을 담급니다.
비릿한 강물 내음과 시원한 촉감에 평안의 시간을 잠시 누려봅니다.
이렇게 동강 백운산의 산행을 길게 적는 일이 읽는 분들의 불편을 끼쳐드릴 모른다는 우려가 듭니다.
당일 만난 분들이 거의 처음 뵌 분들이지만 이물없고 허물없이 정이 갑니다.
행복한 시간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산악회총무 최 경란 입니다^^
항상 총장님의 말씀 경청했었지만 ...그날은 전날 잠을 못잔이유로 고개 떨구고 자는 모습까지 사진에 찍혀 너무 챙피했었는데. ㅠ.ㅠ 다시 글 올려주시고 설명 해주신님께 감사 드립니다^^
다시 산행후의 후기문 읽고 생각나게 하는 멋진글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요^^
멋쟁이 총무님, 그날 여러모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뒤늦게나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황대장 설명먼들어도 본전은 건젔읍니다.
이렇게 세세히 기록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릴적에 방랑시인 김삿갓의 한글 번역판을 읽은적 있는데 황대장님에 이어 다시한번 해석해 주시니 새롭습니다. 앞으로도 꼭 참석하시어 멋진 기행문 기대합니다.
자주 접할수 없는 아름답고 뜻깊은 산행기입니다.
나주산악회 첫 산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시 나주향우님 답게 달필을 쓰셨네요.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행운이 항상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멋지고 생생한 산행기는 우리 나주향우회 산악회 역사상 없었던것 같습니다. 문장력도 뛰어난데다 모든것을 보는 눈이 뛰어나며 예리합니다. 그날 산행하던날 처음 보았지만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로 통하나 봅니다. 앞으로도 자주 참석하시어 좋은 산행기 부탁하며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더욱더 친해집시다. 산포출신 김길주
박주동 나주 첫산행 축하한다. 잘지내고 있지 후기글 잘읽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