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2, 3 그리고 36+52=88
여러분, 이것은 무엇일까요? 힌트: 악기
천재들의 책상을 본다. 스티브 잡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크 트웨인, 마크 저커버그. 그들의 책상 위로 색깔도 모양도 제각각인 생각 벌레들이 네모난 공간 사방에 흩어져 움직인다. 때론 글자 같기도, 또 숫자나 그림 같기도 하다.
천재란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엔 일절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책상엔 여러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저 어질러진 불규칙의 공간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생각 벌레들은 이런 환경을 좋아한다.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누군가 자기를 잡아주길 바란다
‘게임 나이트’를 준비하는 둘째 아이의 눈이 분주하다. 스캐빈저 헌트를 할 거란다. 헌트? 뭔가 잡는 놀이인가 싶어 흥미롭게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이에 글자를 적는 손과 집안 곳곳에 도장을 찍는 발보다 두 개의 동그란 눈이 더 바쁘다. 아이의 두 눈은 마치 크라임씬을 둘러보는 형사처럼 예리하게 번뜩인다. 꽤 공들인 현장 기록은 수십 줄에 달한다. 조용히 아이의 옆에 다가가 어깨 너머로 훔쳐보기를 시도한다.
상어 그림 액자, 반쯤 남은 피넛 버터 과자, 핑크색 머릿수건, 나무로 만든 공룡 피규어, 검은색 작은 선풍기, 러시아 대통령 마트료시카, 그 외에 우리 집에 있는 갖가지 물건들로 종이가 한가득 차고 나서야 드디어 아이의 발 도장이 멈췄다. 그리고 아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준비 끝!
이 놀이를 이해하려면 뛰어난 관찰력과 작고 평범한 것도 지나치지 않는 정성 어린 열의가 필요하다. 일상으로 덮인 공간은 이제 찾아야 할 이름들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눈동자에 걸리진 않는다. 엉성한 눈길이 놓친 이름은 다시 일상을 입고 흩어져 숨는다. 또 다른 사냥꾼을 기다리면서.
베른하르트 리만은 천재들의 책상에서 생각 벌레들이 나르던 숫자 카드들을 집어 올렸다. 일렬로 줄 선, 규칙이 없어 보이는 2, 3, 5, 7, 11... 그리고 질문했다. 그래서? 그러다가 외쳤다. 그런데! 그리고 마지막엔 숫자 카드들을 손에 말아쥐며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 특이한 숫자들을 늘어놓은 놀이의 설계자는 대체 무엇을 발견해 주길 바랐을까. 문제를 풀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가 글자와 숫자로 촘촘한 그물을 엮었다. 방식도 다양했다. 누군가가 이미 만든 그물에 자신만의 생각을 더 꼬아 넣기도 했고, 완전히 다른 방식과 재료를 씨줄, 날줄 삼아 새로운 그물을 엮기도 했다.
리만의 것도 그랬다. 그렇게 가우스와 오일러가 만든 그물에 약간의 변형을 주어 엮은 그물에 걸린 건 ‘그래프’와 ‘영(0) 점’이었다. 그는 펜 끝에 침을 발라가며 신중히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완성된 숫자 산맥은 영 점마다 봉우리가 걸렸다. 정확히 같은 높이의 봉우리들이 일렬로 서 있어서 각도에 따라 사각지대가 생겼고, 다른 사냥꾼들은 그냥 스쳐 지나갔다.
검은색이 둘 셋 둘 셋. 처음 피아노 학원에 가던 날. 작은 손으로 피아노 검은 건반을 두 개, 세 개씩 꾹꾹 눌렀다. 불협화음이었지만 묘한 화성으로 귀를 끌었다. 끌려간 건 귀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악보를 보고 치라고 해도 검은 건반이 계속 눈에 걸려 속으로 둘 셋 둘 셋을 세었다. 공책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 숙제할 땐 칸칸이 나눠 놓은 흰 건반 위에 둘 셋 둘 셋을 중얼거리며 검은 건반을 그려 넣었다.
음악 시간이 아니라, 수학 시간이었다. 피아노를 배우러 온 내게 선생님은 자꾸 숫자를 세라고 했다. 선생님의 연필은 규칙적으로 피아노를 두드렸고, 가끔은 손뼉 소리로 대신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가 숫자가 되어 일정 규칙에 따라 음과 박자가 되고, 그것이 합쳐져 하나의 곡이 됐다.
피아노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곰곰이 생각하다가 ‘2, 3, 2, 3 그리고 36+’이라고 적었다. 검은 건반의 패턴, 흰 건반 수와 검은 건반 수를 합친 건반 총수. 숫자들로 어떤 사물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세상이 온통 숫자로 보이기 시작한 건. 신의 피조물이 모두 규칙을 갖고, 그렇기에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숫자는 원래 존재했고, 인류가 발견한 것이다’라는 말은 신빙성이 있다. 단지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일 뿐이다. 스캐빈저 헌트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숨겨둔 걸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이미 있는 것 중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만의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숫자 카드를 많이 모으긴 했지만, 아직 찾지 못한 이름들이 흩어져 있다. 정답을 추측할 뿐, 모든 퍼즐을 맞추진 못했기에 보류 상태다. 이제는 물리학자들도 이 사냥에 가담했으니,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어쩌면 그의 후임자 중 최종 보물을 거머쥘 사람이 평생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 시대 최고의 두뇌, 양자 컴퓨터로도 답을 얻지 못했으니 이 놀이의 설계자는 우리보다 더 흥미로워할지도 모르겠다.
어질러진 천재들의 책상 위에서 불규칙이 규칙이 되는 순간, 스캐빈저 헌터는 외친다. 유레카!
39+27=66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힌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