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아름다움, 우리 음식의 맛, 우리 소리의 멋 ―송수건의 시집 『퉁』 이승하
현재 한창 활동하고 있는 시인 가운데 남도의 가락을 잘 살려내어 사투리와 함께 (전라)남도 특유의 풍습과 풍광을 그려내는 시인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라도 송수권 시인을 꼽을 것이다. 강진에 영랑이 있었고 고창에 미당이 있었고 고흥에 송수권이 있다. 시인은 사전 깊이 봉인되어 있는 우리말을 찾아내어 시어로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래 시는 송수권 시인의 시론으로 읽어도 무방한 작품이다.
드팀전, 싸전, 잡살전, 다림방, 시계전, 어리전, 진전 마른전, 군치리, 물집, 마전, 말감고…… 저 수표교가 서 있었던 자리, 정월 보름날은 당나귀 울음소릴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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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주비전의 바글거리는 왈패들과 짝패들 새로 단장한 팻션 거리, 명동 천주당과 투전꾼들 아오개와 배고개 소근개와 마당개들까지 한통속이 되는…….
―「봉인封印된 말을 찾아서」 제4, 6연 송수권은 서울시내의 옛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수표교가 있던 자리에 뭐가 있었더라? 피륙을 파는 드팀전, 채소 씨앗을 파는 잡살전, 왕족과 귀족에게 육류를 공급하던 백정의 가게인 다림방, 꿩ㆍ닭ㆍ오리 등을 파는 어리전, 개고기를 안주로 하여 술을 파는 집인 군치리, 피륙을 염색하는 물집……. 뭐 이런 것들이 있었으리라. 말감고는 곡식을 팔고 사는 장터에서 말로 되어 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운종가와 육주비전은 지금 무엇으로 바뀌어 있나. 아오개와 배고개에는 백정들(소근개와 마당개)이 살고 있었나?
근대화 10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런 가게, 직업, 지명 같은 것들인가? 물론 이런 것들도 있지만 낱말들이 다 봉인되어 버렸다고 시인은 개탄하고 있다. 시어가 될 만한 우리말을 대체한 한자어, 영어, 일본어들. 시인은 MB정권의 언어 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소망교회의 한 장로가 꿈꾸었던 무식쟁이의 청계천을 사랑하고 시의 언어가 시장詩場이 되고 공약公約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종로바닥을 싹 쓸어버리고 쥐뿔도 고양이뿔도 전통이라면 찾아내어 운종가의 봄을 새로 불러오겠다
―「봉인封印된 말을 찾아서」 제5연
청계천 개발 치적을 발판으로 삼아 대통령이 된 무식한 사람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망스러운 것은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전통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이 전 대통령 시절에 관공서의 언어가 영어와 한글 혼용이 된다. 예를 들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 반포 컬처 랜드, 금호 나들목 빌리지 커뮤니티 플라자/ 비전 서울 핵심 프로젝트, 시민행복 업그레이드, 보육 포털사이트, 서울형 데이케어 센터/ WDC서울 국제컨퍼런스, SHift, N서울타워, 상도동 SH Vill 같은 것들.) 시인은 이런 현실이 통탄스러워 “비린내가 흥건한 포구의 불빛 속에서/ 황토흙을 태우는 그 모닥불의 연기 속에서/ 창호 문발을 치는 소슬한 대숲 바람 속에서” 화자는 봉인된 낱말들을 찾아 개봉하고자 한다. “길들여진 습관적인 말들로는/ 소리와 냄새 맛의 원초적인 감각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 한 줄이 우울증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작 한 알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갈망하게 된 것이다.
시집 제목이 된 시도 일종의 시론이다. 벌교에 있는 참꼬막 집에 가서 꼬막 정식을 시켰을 때의 일이 시가 되었다.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고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확, 비틀었지요
―「퉁」 부분 제삿날 밤 괴(고양이) 꼬막 보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 모양이다. 화자가 서툰 솜씨로 꼬막을 굴리고만 있다가 남도 시인한테 퉁을 맞는다. ‘퉁바리맞다’의 준말이 ‘퉁맞다’인데 무엇을 말하다가 매몰스럽게 거절을 당한다는 뜻이다. 퉁이란 품질이 낮은 놋쇠로, 퉁바리란 이 퉁으로 만든 바리(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이다. 여자의 밥그롯으로 얻어맞는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무엇을 말하다가 매몰스럽게 거절당하는 뜻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우리말임에 틀림없다. 화자는 퉁을 맞고 나서 그늘이 있는 시라는 충고를 또 듣는다. 남도 시인은 목포 출신의 시인 김지하인 듯하다.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이 있는 詩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퉁」 부분
‘퉁’이란 이 시에서는 거절을 당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지람이나 충고를 듣는다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남도 일원의 말은 이렇듯 사전적인 의미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거시기’가 수많은 표현의 대유법으로 쓰이듯이 말이다. 송수권은 퉁, 괴, 숭악한 맛 같은, 사전적인 의미에 머물 수 없는 우리말의 묘미를 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이 “진짜 곰삭은 삶”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남도 사람’에게 들은 말이라고 하면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늘’의 뜻은 김지하의 저작을 펼쳐보아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아마도 생의 비극적 측면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정 같은 것이 아닐까. 세계관의 깊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두 편의 시에 대충 드러나 있는 것인데, 시인이 크게 세 가지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하여 이번 시집을 펴냈다. 하나는 우리말이요 하나는 우리 음식이요 또 하나는 우리 예술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해 간단간단히 논해본다.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 우리 탯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나는 말 쥐눈콩을 널어놓고 썩은 콩 무른 콩을 골라내던 어머니 손 그 쥐눈콩 콩나물국이 되면 술이 깬 아침은 어, 참 시원타는 말 아리고 쓰린 가슴 속창까지 뒤집어 흔드는 말
―「소반다듬이」 제1연
소반(小盤)이란 작은 상인데 소반다듬이란 소반 위에 쌀을 펴놓고 모래나 잡곡을 낱낱이 고르는 일을 가리킨다. 개다리소반은 네모 반듯하고 다리가 민틋한 막치 소반이다. 이런 우리말을 시인은 탯말이라고 한다. 모국어는 한자어라서 탯말이라고 한 것이라 여겨진다. 소반이라는 한자어에 개다리라는 말을 하나 덧씌워 개다리소반상이란 새로운 낱말이 태어났는데, 이 말이 눈물겨운 이유는 어머니의 노동에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쥐눈콩이 아주 작은 콩을 가리키는지, 콩과의 덩굴풀인 쥐눈이콩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시인의 우리말 공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시인이 된 지금도 쥐눈콩처럼 쥐눈을 뜨고 소반상 위에서 밤새워 쓴 시를 다듬이질하면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우리말 오리, 망아지, 토끼 하니까 되똥거리고 깡총거리며 잘도 뛰는 우리말 강아지하고 부르니까 목에 방울을 차고 달랑거리는 우리말
―「소반다듬이」 제2연
시에서 소재나 주제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질료는 언어이다. 시인이라면 응당 시어의 선택과 배열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런 것을 잘 가르쳐준 이가 소월과 영랑, 백석과 미당, 박재삼과 신석정, 김종삼과 박용래…… 이런 분들이었다. 이 땅의 많고 많은 시인 중에 송수권만큼 시어에 대해 고민한 이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번 시집은 그의 고뇌와 환희가 가장 잘 집약되어 있고, 바로 그 이야기를 「소반다듬이」에서 하고 있다. 시인의 우리말 탐구는 「왱병」「내빌눈」「소금산」「금소리 예천임씨 종택을 지나며」 등에서 아주 흥미롭게 행해지고 있다.
아서,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지, 또 머퉁이 줬지요……. 그때 갓동지 국물 한 방울이 창에 튀어 소금산 한 채가 발그족족, 까나리 액젖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소금산」 끝부분
쓸쓸한 종갓집에 첫눈이 내린다 마당귀 놓인 드므에도 눈이 쌓인다 기왓골 용마루 끝 도깨비탈을 쓴 두 치미가 물 젖은 드므 속을 놀란 듯 내려다보고 앉았다
(중략)
노종부가 차려준 아침 밥상엔 은수저 한 벌이 올라와 있다 우주의 중심을 떠받치는 정갈한 장종지와 비아통도 하나 아직도 변함없는 그 손맛에 한 숟갈 시레기 국물을 뜨기도 귄 없다
―「금소리 예천임씨 종택宗宅을 지나며」 부분 시인이 친절하게도,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낱말에 대해 일일이 각주를 통해 설명을 해두어 독자는 사전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소설가들의 우리말 구사 실력(?)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박경리의 『토지』, 김주영의 『객주』, 최명희의 『혼불』을 보라. 모국어의 파수꾼이어야 할 시인들이 우리말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는 것이 현실인데 송수권은 이렇게 사전 속에서 사어가 돼가고 있는 우리말을 꺼내어 녹을 벗겨내고 반짝반짝하는 시어로 우리 앞에 내보이고 있다. 후학으로서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음식, 특히 남도 음식에 대해 시인은 예전에도 많이 연구를 했지만 이번 시집에서도 서평자로서는 생소한 그곳의 음식을 많이 선보여 남도 맛 기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무려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 거나
―「봄날, 영산포구에서 1」 제3연
‘뭇’―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생선 열 마리를 일컫는 우리말이다. 이 시를 읽고 주꾸미에 대한 식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맛있는 주꾸미를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시인의 솜씨가 부러울 따름이다. “동지팥죽을 쑤어먹고 나면”으로 시작하는 「내빌눈」이란 시를 보자. 내빌눈의 원래 말은 ‘납일눈’이다. 납일(臘日)이란 민간과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게 제사지내던 날이다. 동지 뒤의 셋째 술일(戌日)에 지냈으나, 조선 태조 이후에는 동지 뒤 셋째 미일(未日)로 하였다. 이때 내리는 눈이 내빌눈이다.
그리하여 대구국을 푸지게 먹고 나면 밤에 진할머니는 질옹박지에서 감주를 퍼왔는데 또 그것을 내빌감주라고 했다 절이 잘도 삭은 감주에 동동 대추살로 다진 고명이 떠돌았는데 그것을 대추란이라고도 했다 순두부 떡에다 대구국보다 진할머니가 내빌물에 진달래 마른 꽃잎을 엿질금 가루로 섞어 빚었다는 감주가 더 맛있었고 그중에서도 대추란이 나는 제일 맛있었다
―「내빌눈」 제4연 백석은 자신의 시에다 무려 150가지나 되는 먹거리를 제시하였다. 고향인 평북 정주를 떠나 일본이나 서울, 또는 만주 등지에서 살면서 고향의 음식을 줄곧 그리워하였다. 오죽했으면 계속 먹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송수권은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 광주 등지에서 살면서 남도의 온갖 맛난 음식을 들고 계시는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북 의성에서 나서 김천에서 자란 서평자는 ‘회’라는 것을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 맛보았다. 삼합은 서른이 넘어, 생대구탕은 마흔이 넘어 처음 맛보았다. 이 시에 나오는 대구국과 순두부 떡, 그리고 대추살로 다진 고명을 넣은 감주를 죽기 전에 맛볼 수 있을까? 아, 불가능한 일이리. 「소금산」에 나오는 “박하지젓, 무젓, 멸젓, 고노리젓, 딘팽이젓, 곤쟁이젓, 엽삭젓, 모치젓, 새뱅이젓, 강다리젓, 홍애위젓, (거북이 뒷다리만 없군요) 그 쫄굿거리고 아삭거리며 느믈느믈 고리고리한 맛”도 대부분 느껴보지 못하고 죽으리. 맛을 아는 시인은 중국 여행을 가서도 야생의 식탁 기행을 하여 「북치는 원숭이」「불도장」을 쓴다. 이들 시편에 대한 탐색은 생략하고 또 다른 한국적인 음식을 구경하자.
붉은 쇠고기 저민 것, 푸른 미나리, 검은 김, 황포묵……. 비빔밥집 탕평관에 들러 탕평채를 든다 어쩌면 전주비빔밥의 원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추장 한 숟갈에 참기름 한 방울 나는 여기에다 계란 탁, 파 송송, 고명으로 비벼낸 비빔밥을 좋아한다
―「탕평채蕩平菜」 제1연
광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꽃게장 집이 있다 백운동에서 충장로 입구로 가는 까치고개 넘어 있다
장구섬꽃게장집
내리 묵은 간장으로만 꽃게장을 담근다는 그 집 앞을 지나면 장구 소리에 귀 먹먹하다 그 집 앞을 지나면 혓바닥이 장구채처럼 논다
―「장구섬꽃게장집」 전반부 비빔밥집 탕평관에 들러 탕평채는 먹어볼 수 있으리. 광주시 까치고개 넘어 있다는 장구섬꽃게장집에 내 살아서 꼭 한번은 가보리. 송수권의 이번 시집에는 남도 특유의 풍류가 또다시 질펀하게 전개된다. 음식점이 어떠하기에 그 집 앞을 지나면 장구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까. 장구 소리는 “눈 멀어도 보이고 귀 먹어도 들리”고, 시인은 “인제는 저 구름 위의 영수 봉황을 타고 노는/ 천녀의 장구 소리나 따라가 볼거나”(「구름 위의 장구 소리」) 판타스틱한 꿈을 꾼다.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시인이 멋을 느끼고 누릴 줄 아는 것이다.
진고개를 넘다 보면 아나, 내 소리를 받아라,고 외장을 놓는 북바위 장단에 마을에선 소리꾼이 대를 이어 끊이지 않고 솟아난다고 합니다.
―「명창」 마지막 연
이 시에서는 서편제의 대가 애꾸눈 박유전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원군이 소문을 듣고 박유전을 불러올려 소리를 시켜보니 그 소리 “서리 낀 하늘에 밤 기러기 목을 뽑고 가듯/ 싸락눈 속에 왕소군이 가마 타고 시집가듯” 하는 소리인지라 대원군은 그 신비한 소리의 출처를 대보라고 한다. 그러자 박유전은
합하閤下, 이 소리 내력은 강산 마을 진고개 캄캄한 바위 속인데, 마을사람들은 그 바위를 북바위 또는 소리바위라고 부릅니다
라고 대답한다. 믿거나 말거나, 설화 같은 재미있는 일화요 이를 구수하게 표현한 시편이다. 이 시를 보니 이청준의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그래서 남도 사람는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로 통성이 되고, 수리성이 됩니다. 또 이것을 시김새 소리라고도 합지요. 시김새 붙은 소리는 왱병 속에서 왔기에 소리 중에서도 땅을 밟는 뱃소리, 하다못해 한바탕 바가지로 설움을 떠내는 큰소리꾼도 되고 명창도 되는 것입지요.
―「왱병」 마지막 연
멋은 이런 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중에도 멋있는 이야기가 있다. 「화사」의 竹竹女 이야기는 비애미가 느껴지고, 퇴계 이황의 감춰둔 사랑 두향杜香 이야기는 아련한 비장미가 있다. 다산과 홍씨부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노을치마」는 아아, 가슴을 때리는 감동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멋이 아닌가. 맛을 느끼고 멋을 아는 송수권이 시인이 부러워 미치겠다. 학생 가르치기, 지겨운 글 쓰기 다 집어치우고 남도로 훌쩍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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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승하 : 화가 뭉크와 함께 이후 원문보기 글쓴이: 이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