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땡삐(땅벌) 이야기
호박벌 / 땡삐(땅벌) / 말벌 / 말벌집(노봉)
지구상에 서식하는 벌의 종류는 아종(亞種)을 포함하여 약 2만 종(種)이나 된다고 한다.
호박벌과 뒤영벌은 몸이 통통하고 꿀이 많은데 어린 시절 호박꽃 속에 호박벌이 들어가면 재빨리 꽃 가장자리를 오무리고 잡아서 꿀을 빨아 먹곤 했다.
꽃자루에서 꽃을 뜯어내면 꽃 속에 벌이 갇혀 윙윙거리는데 한참 가지고 놀다가는 땅에 놓고 꼬챙이로 눌러서 벌 뒤쪽을 잡고 고무신을 벗어 침을 대면 벌은 고무신을 쏘는데 잡아당기면 침이 신발에 박혀 쏙 빠져나온다. 그런 다음 맨손으로 가지고 놀다가 배를 잡아당기면 쏙 빠지며 가슴 부분에 동그랗고 노란 꿀주머니가 매달린다. 고것을 입으로 쪽 빨면 꿀주머니가 터지며 향기로운 꿀이 입속으로.... 통통한 호박벌은 몸길이 1.5~2.5cm 정도이다.
나나니벌(호리병벌)은 허리가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인데 땅속에 구멍을 만들고 곤충의 애벌레를 잡아다 침으로 마취시킨 후 거기에다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몸길이는 2~2.5cm 정도.
강릉 사람들이 바다리라고 부르는 쌍살벌은 1.5~2.2cm 크기로 날씬하며 배 부분에 노란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고 나뭇가지나 잎 뒤에 해바라기 꽃 모양의 집을 짓는다.
강릉말로 땡삐라고 부르는 땅벌은 몸길이가 1.5cm 정도로 자그마한 벌인데 땅속이나 수풀 속에 집을 짓는다. ‘참 땅벌’, ‘노랑띠 땅벌’, ‘점박이 땅벌’ 등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쏘지 않지만 집을 건드리거나 근처 땅을 발로 쿵쿵 울리기라도 하면 새까맣게 몰려나와 떼거지로 덤벼든다. 정말 벌 떼같이 덤빈다는 말과 같이....
벌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해도 말벌이 제일 무서운데 장수말벌의 몸길이는 2.5~3.7cm 정도로 우리나라에 있는 벌 중에서 가장 크다. 언젠가 해외 토픽에 괴물 말벌이 나타났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2.5인치 크기였다니 6.35cm인데 우리나라 말벌의 두 배 크기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같은 말벌 종류로 몸집이 작은 ‘털보 말벌’, ‘황 말벌’, ‘등 검은 말벌’도 있는데 폐가(廢家) 처마 밑이나 나뭇가지 등에 큰 항아리 모양의 집을 매달아 짓는다.
말벌은 성질이 포악해서 꿀벌이나 쌍살벌 등 다른 벌들을 공격하여 그 애벌레를 식량으로 삼아서 양봉 농가에서는 일삼아 지켜야 하며, 사람이 말벌 침에 쏘이기라도 하면 신경계 독이라 정신을 잃고 심하면 호흡곤란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 말벌의 집이 호흡기질환, 소화기관의 각종 염증, 순환기 질환, 뇌 및 신경계 질환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소문이 나서 말벌들도 수난인데 말벌집을 뜯어내어 벌, 애벌레, 집을 통째 술로 담가 1년 정도 숙성시키면 만병 통치약로 알려진 노봉방주(露峰房酒)가 된다.
양봉꿀벌(蜜蜂/밀봉/서양꿀벌)은 몸길이 1.2cm 정도인데 토종꿀벌(토종벌)의 크기도 양봉꿀벌과 비슷하나 검은색이고 조금 더 날씬하다.
양봉꿀벌과 토종꿀벌이 가까이 있으면 양봉꿀벌이 토종꿀벌을 공격하여 죽이기 때문에 함께 두지 못한다. 꿀벌하고 비슷하나 검은색으로 더 작은 어리흰줄애꽃벌도 있다.
벌침에 쏘이면 몹시 아프고 퉁퉁 붓는데 말벌 독이 가장 강하지만 다른 작은 벌들도 심하게 쏘이면 곧바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꿀벌의 독은 신경통이나 퇴행성관절염, 류머티스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쏘이는데 그것이 바로 봉침(蜂針)이다. 꿀벌을 산 채로 잡아 핀셋으로 벌 뒤꽁무니의 침을 뽑아서 아픈 부분에 찌르는데 몸뚱이에서 뜯어낸 침이 제 혼자 꿈틀거리며 독을 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문에 이따금 이 봉침을 맞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도 나는 걸 보면 함부로 맞을 일이 아니다. 등에는 벌과 비슷하여 벌과 혼동하기도 하나 침이 없는 파리의 사촌(말 파리/Horse Fly)으로 몸길이는 1.5~2cm 정도이다.
학교 가는 길섶에 땡비(땅벌)집이 있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은 등하교 때마다 돌멩이를 집어 던지고는 냅다 도망가곤 했는데 조용히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벌 구멍 근처에 돌멩이를 던지거나 발로 근처 땅을 쿵 울리기만 해도,
‘부엉~~’하는 소리와 함께 벌 떼가 새까맣게 몰려나와서 덤벼들던 기억이 난다.
여자애들을 포함해서 칠팔 명이 함께 등교할 때도 있는데 벌집 근처에 오면 말도 하지 말고 살금살금 가야 한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은 숨기고 오던 돌멩이를 느닷없이 벌집에 던지고 냅다 뛰면 마음을 졸이며 살금살금 가던 다른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개미 새끼 흩어지듯 뿔뿔이 도망을 간다.
그리고 벌에 쏘인 여자애들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개새끼, 쇠새끼’ 하며 욕을 해 대던 기억....
매일 그 짓을 하다 보니 그 땡비(땅벌)집 언저리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생겼다.
어느 날 친구 남화와 하교를 하다가 벌집을 건드릴 심산으로 미리 돌멩이를 두어 개씩 주워들고 오는데 저쪽 언덕에 웬 낯선 청년이 혼자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눈짓을 주고받다가 돌멩이를 벌집에 냅다 집어 던지고는 재빨리 논두렁 밑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멋모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던 청년은 갑자기 덤벼드는 땡비에 혼비백산이 되어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도 통쾌해서 두고두고 웃던 일이 생각난다.
고모네 고종사촌 형님은 한국전쟁(6.25) 때 포항전투에서 전사했는데 그 아들 문식이는 나한테 조카뻘이지만 동갑으로 같은 학년이었다.
재산이 넉넉한 편이었던 고모네는 문식이가 집안의 장손(長孫)인 데다 아버지도 없어 불쌍하다고 당시 귀했던 란도셀 가방에다가 예쁜 쎄라복까지 사 입히며 모두 부러워할 만큼 귀하게 키웠다.
고모의 막내딸 옥이, 나, 문식이까지 셋이 같은 학년이어서 항상 같이 몰려다니며 놀았는데 문식이는 저밖에 모르고 뭐든지 제 맘대로만 하려고 해서 짜증이 났지만 우리는 그저 귀한 아들이어서 그러려니 여겼다.
가을 운동회 철이 되었는데 4학년이던 우리는 단봉(短棒) 체조를 한다고 선생님이 단봉을 만들어 오라고 하셨다. 단봉 체조는 1m쯤 길이의 나무 막대기인데 운동회 때 학생들이 하나씩 들고 줄을 맞추어 서서 휘두르던 체조운동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는 우리끼리 만들어 보자고 톱과 낫을 챙겨 들고 솔밭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맞춤한 나무를 고르느라 돌아다니다가 그만 땡비(땅벌) 집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옥이와 나는 들러붙는 벌을 손으로 휘둘러 쫓으며 냅다 뛰는데 문식이는 ‘아이고 따가워....’ 어쩌구 하며 땅바닥에 나뒹군다. 멀찍이 도망을 가서 엎드려 바라보니 문식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빨리 도망을 오라고 소리를 질러도 계속 땅바닥에 뒹굴며 울기만 한다.
벌들의 소동이 다소 사그라진 후 후다닥 달려가서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온몸에 쏘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당시, 병원이 멀기도 했고 병원에 가는 일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집에서 온몸에 된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특히 머리를 많이 쏘여서 머리카락 속에서 수십 마리의 벌을 떼어 냈다고 한다.
밤새도록 열에 들떠 헛소리를 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가 와보니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 바라보며 산다던 고종사촌 형수는 미련 없이 훌훌이 개가(改嫁)를 하여 떠나 버렸고, 우리 둘은 죄인인 양 사람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풀이 죽어 학교를 다녔다. 며칠 후 동네 청년들이 밤에 그 땡비(땅벌) 집 입구에 마른 나뭇가지를 쌓고 불을 지른 다음 괭이로 파헤쳐 버렸다.
‘그러기에 애들은 그저 잡초(雜草)처럼 키워야 하는 게여. 그렇게 호호 불며 키우니 그렇지...’
저녁을 잡수시며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었다.
나는 매년 추석 열흘쯤 전이면 고향(학산 설래마을)에 모신 아버지 산소에 벌초(伐草)하러 간다.
아들과 함께 다녀오곤 했는데 아들이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 동안은 집사람과 함께 다녀온 적이 몇 번 있다. 마을에서 한참 산등성이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그날도 집사람은 덥고 힘도 없다며 내가 낫질을 하는 동안 그늘 밑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래된 산소라 풀도 많고 언저리에 싸리나무가 무성해서 낫으로 쳐내는데 갑자기 윙~~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보았더니 싸리나무 가지에 바다리(쌍살벌) 집이 매달려 있고 내가 그 옆의 싸리나무 가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바다리 집이닷~~’
내가 소리를 지르며 냅다 뛰었더니 다리가 아프고 죽을 힘도 없다던 집사람이 나보다 더 빠르게 총알처럼 도망을 간다.
한참을 뛰다 엎드려 바라보았더니 바다리 집이 그다지 크지는 않고 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한참 집을 짓는 중인 모양이었다. 한참 있다가 휴지를 풀어 뭉텅이를 만들고 살그머니 기어가 벌집 밑에 놓고 불을 질렀다. 지금도 이따금 집사람 보고,
‘다리 아프고 힘이 없다던 사람이 그때는 눈썹을 휘날리며 총알처럼 잘도 도망가더라.’고 놀리는데 우리는 당시 정황(情況)을 떠올리고 함께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