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만 선생님은 우리 모임 선배 선생님이에요. 2013년에 돌아가셔서 살아계실 때 저는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여러 선배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술 한 잔 걸치고서는 어느 결에 "김종만이가 저한테" "종만이형이 그때" "김종만 선생님이 참" 하는 말을 자주 하세요. 또 그 말에는 늘 그리움과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었어요. 특히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성인 선생님과 둘도 없는 동무였다고 해요. 우리 서울경기글쓰기모임을 맨 처음 열 때부터 김종만 선생님과 함께 하셨던 이성인 선생님은 종만샘이 돌아가신 뒤 "늘 함께 나오던 김종만이 없으니깐, 연구회도 나오기 싫더라구요."라 하실 정도였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김종만 선생님과 친해졌어요. 그리고 오늘이 기일이에요.
김종만 선생님은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음력 8월 3일)에 돌아가셨어요. 부인 진양숙 선생이 제사를 음력으로 지내느라 2014년 8월 24일(일)에 1주기 추모제를 지냈구요. 2022년 기일은 양력으로 8월 29일이랍니다. (이성인 선생님께서 알려주심)
아래 글은 <교육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사 백서 2권 열전>에서 옮겨 왔습니다.
<나의 아버지 김종만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들>
글 김누리
나의 아버지는 1957년 음력 8월 17일 전남 여천에서 태어나셨다. 1980년 2월 인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3월, 경기도 포천시 운담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셨다. 1989년 7월 전교조 경기지부 의정부지회장을 맡게 되어 해직되셨다. 1994년 3월 신규임용 형식으로 복직하여 교사 생활을 이어가다 2013년 2월, 정부의 명예퇴직 반려로 일반퇴직 하셨다. 놀이뿐만 아니라 글쓰기 교육, 농사일, 목공예, 자연 생태, 집짓기, 인디언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늘 배우며 사셨다. 2013년 9월 7일 지병으로 하늘로 가셨다. 쓰신 책으로 <보리 어린이 놀이 도감>, <사격장 아이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열두 달 우리 농사>, <아이들 민속놀이 백 가지>, <북녘 아이들 민속놀이 백 가지>, <잘 놀아야 철이 들지>, <아이들을 매질하는 어른들의 나라>들이 있다.
기회가 되어 이번 여름 내내 아버지가 남기고 간 원고를 정리했다. 아버지가 쓰시던 서재에는 시대의 울분을 삼키며 써 내려간 원고들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2013년 9월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아버지가 세상에 남기신 울림 있는 말들을 더 많은 이들에게 퍼트리는 일이야말로 자식으로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하는 의지가 마음으로부터 샘솟았다. 아버지가 남기신 원고를 바탕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교사생활을 시작하신 1980년은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전두환이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뒤이어 5월 18일, 광주에서 죄 없는 시민들을 억압하고 학살했다. 아버지는 이때 벌어진 사건들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어려워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 아버지는 온갖 억압과 퇴폐와 비로 얼룩진 데다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교육계의 실상을 보며 절망하셨다. 그러나 절망으로만 그치지 않고 몇몇 선생님들과 뜻을 모아 교육을 걱정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공부를 이어나가셨다.
1983년 9월, 책으로만 만나 오던 이오덕 선생님께 교육현장의 문제에 대해 긴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 가입하여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셨다. 이듬해엔 경기글쓰기회를 만들어 지역 모임도 시작하셨다.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불의와도 싸우리라 마음속에 칼날을 벼리던 날들이었다.
아버지는 1984년 4월 어머니와 결혼하셨고, 이듬해 6월 나를 낳으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1985년 6월, 아버지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필화를 겪으셨다. 강원도 봉정분교 임길택 선생님이 펴낸 6학년 아이들 글모음 <물또래>를 읽고 쓴 글이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민중교육>창간호에 실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세상에 갓 나온 핏덩이인 딸과 아내를 두고서 경찰서 대공과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셨을까?
이런 와중에도 아버지는 아이들 놀이 연구에 매진해 전국 방방곡곡 답사를 다니며 아이들이 즐겨 노는 놀이를 수집하셨다. 아이들 놀이에 대한 관심은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운담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이 마당에서 땅따먹기하는 걸 보고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 주고 놀이 이름과 방법, 참여 인원을 써서 내도록 하기도 하고, 전국 글쓰기회 선생님들께 놀이 조사지를 보내 받기도 하고, 방학 때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놀이를 채록하기도 하셨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골라서 1990년도 초에 '우리교육'에서 책 <아이들 민속놀이 백 가지>를 내셨다. 해직되고 1992년에는 연변에 가서 놀이 조사를 이어가셨다. 아버지는 북녘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자료를 보고 조사해 우리 겨레 아이들이 함께 놀면서 즐겁게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북녘 아이들 놀이 백 가지>를 펴내셨다. 2017년 10월 보리출판사에서 이 두 권 가운데 오늘날의 어린이도 즐겨 놀 수 있는 145가지 놀이를 정리해 <보리 어린이 놀이 도감>으로 다시 펴내셨다.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안 계시지만,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새로운 삶이 움트고 나와 건강한 어른이 되니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놀 마당을 내주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외침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해직되셔서 전교조 경기지부 의정부지회장을 하시며, 작은 출판사 대표, 잡지 편집장 등 여러 일을 하시다 5년 뒤인 1994년 3월 신규임용 형식으로 복직하여 교사생활을 이어가셨다.
2012년, 아버지는 지병인 암으로 투병하면서 명예퇴직을 신청하셨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해 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것 때문에 공무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재판이 계속 미루어진 탓이었다. 결국, 2013년 2월 일반퇴직으로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으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정부는 아버지를 험난한 길로만 밀어낸 것이었다. 여러 해가 지난 지금 생각해도 정말 한스럽다. 비록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이 되어 아버지의 명예라도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아버지는 교사라면 "우리 아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는 당연하지만 묵직한 사실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며 사셨다. 그 힘이 아버지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와 전교조 활동으로 이끌었고, 아이들 놀이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둘러보며 놀이를 수집해 책으로 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지금 곁에 계시지 않지만, 아버지가 사셨던 삶을 돌아보니 배우고 이어가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내가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 아버지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새기고 또 새기게 된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고갱이를 많은 선생님도 기억하여주시기를 소망한다. (김누리는 고 김종만 선생의 큰딸이다.)
<종만샘 사진도 보세요!>
1. 2007년 종만샘이 연 놀이배움터 사진 (김종만샘, 김익승샘, 박종호샘, 박준형샘이 나옵니다.)
https://cafe.daum.net/seoulgul/8WkL/193
https://cafe.daum.net/seoulgul/8WkL/194
2. 2008년 5월 다모임 (얼핏 얼핏 종만샘, 익승샘, 한경샘이 나옵니다.)
https://cafe.daum.net/seoulgul/8WkL/206
첫댓글 저도 정말 뵙고 싶은 분이네요. 하늘에서는 걱정 고민없이 실컷 글쓰기 이야기 나눌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