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때 그 시절 먹었던 음식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음식은 대부분 평범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옛날 음식에는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일 게다.
양철도시락
등굣길 버스 안 , 덜커덩거리는 흔들림과 함께 퍼져가는 김치 냄새. 덜 잠긴 병뚜껑 사이로 흘러나온 김치국물은 인정사정없이 가방 안을 초토화시키기 일쑤였다. 시금털털한 김치 냄새의 민망함도 그렇지만, 그날부로 교과서는 영광의 얼룩을 묻힌 채 남은 학기를 나야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다.이럴 때 원망의 화 살은 늘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뚜껑을 꼭 잠 가주었더라면 아니, 라면 봉지에 담아 고무줄로 봉해주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그렇지만 점심 시간이 되면 이런 원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입가에‘씨익’ 미소가 번진다. 소시지 반찬을 싸달라던 당부를 잊지 않은 어머니가 도시락 한쪽에 빛깔고운 분홍색 소시지를 촘촘히 채워 넣어주신 게 아닌가.
달걀간장비빕밥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음식, 달걀간장비빔밥이다. 괜스레 심통이 나서 반찬 투정을 하면 어머니가 으레 만들어 주시던 특별식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대접에 담은 후, 한가운데를 움푹하게 파서 그 안에 마가린 조각을 넣어 그것이 녹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달걀 하나를 깨어 넣고 간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 듬뿍 넣고 비벼 주시던 그것. 코끝에 감도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오물오물 먹다보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반찬 투정 부린 것이 겸연쩍어서 어머니 목을 끌어안고는 미안함을 표했던 기억이 새롭다.
보리굴비 구이
찬물에 식은 보리밥을 말아 보리굴비 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던 그 맛이란!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맛이어서 똑같은 재료로 해 먹어보아도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 나질 않고, 그리움만 더해질 뿐이다. 밥 한 숟가락을 뜰 때마다 옆에 앉아 굴비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주시던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서일까. 보리밥을 먹고 나서 방귀 뿡붕 뀌는 나를 놀리는 형제가 곁에 없어서일까. 백화점에서 사 온 최고급 보리굴비라 해도, 기억 속 생생한 그 맛을 더 이상 맛볼 수 없음에 옛 생각만 더할 뿐이다.
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