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버스 투어를 이용하여 시내 곳곳을 직접 발로 밟고 다니는
위킹 투어는 외국 도시 여행을 할 때 내가 선호하는 투어 방식이다.
아바나에서도 그런 투어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직은 오전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올드 카 투어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시티 버스 투어에 참가하기 전에 센트럴 아바나 길을 먼저 걸어본다.
아바나 투어는 카피톨리오가 항상 그 중심지에 있다.
이미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지만 건물 외관은 아직 건재하다.
길을 걷다가 아바나 대극장(Gran Teatro de la La Habana)이
내 마음을 끌어서 발길을 그쪽으로 향해 가기로 하였다.
가는 중간에 이 골목에서 들리는 바이올린 선율이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2층 어느 방에서 누군가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데 그 소리가 아주 수준급이다.
이 극장에서는 오페라는 물론이고 각종 음악 연주회 그리고 국립 발레단
공연을 도맡아서 하고 지난번 미국과 국교 수립 후 오마바 전 대통령이
2016년 이 극장 무대 위에 서서 연설을 한 적이 있는 쿠바의 명소이다.
공식 명칭은 "Gran Teatro de la La Habana Alicia Alonso"이다.
아바나 대극장 투어를 하기 위해서 아내는 티켓을 구입하였다.
아바나 대극장은 1838년 '그란 테아트로 데 타콘'으로 첫 선을 보인 이래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 가는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대 이후로는 주로 발레를 중심으로 한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20세기의 화려했던 모습을 되살리려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친 후 2016년 초 다시 대중에게 개방했지만 지금은 내부 수리 중에 있다.
여기는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하는데 우리 앞에 팀이 현재 하고 있다.
우리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웅장한 건물 사진 촬영을 한다.
국립 극장 투어를 마치고 우리가 이용할 시티 투어 버스가 창밖으로 보인다.
발레리나 동상이 건물 정 중앙에서 시선을 끈다.
발레리나 동상 주인공의 이름은 "Alicia Alonso"이다.
1920년 아바나에서 태어난 알리시아 알론소(Alicia Alonso)는 열 살 무렵 무용을
시작해 16살 때 미국 뉴욕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무용수로서 커리어를 쌓는다.
1938년 브로드웨이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40년 지금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 합류해 초창기 멤버로 활약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던 알론소는 고국의 무용 발전을
위해 쿠바로 돌아와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레단을 설립했다.
이 발레단은 쿠바 국립발레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알론소는 바티스타 군부 독재 시절 쿠바를 떠났다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돌아왔다.
그녀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지원을 받아 쿠바 발레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극장 구석구석을 가이드는 보여주며 설명을 해준다.
극장 발코니 포토존에 세우고 가이드는 사진을 이렇게 찍어준다.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가서 아바나 전체를 보여주며 설명을 해 준다.
옥상에 서서 두 건물의 꼭짓점을 사진에 담아본다.
아바나 도심 중앙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는 극장 옥상이다.
이 사진은 알론소가 나이 72세 때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무대 공연을 한 마지막 사진이다.
알론소는 시력의 한계를 딛고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 발레리나로 잘 알려졌다.
그녀는 스무 살 무렵 망막 박리 진단을 받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시력을 상당히 잃었다. 하지만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침대에
몇 달 동안 누워서 지내면서도 무대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마음으로 춤을 췄다.
눈이 먼 채 가만히 누워서 스스로에게 지젤을 가르쳤다”고 했다.
무대에 돌아온 뒤에는 상대 무용수의 움직임과 무대 조명에 의지해 공연을 펼쳤다.
파트너가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도록 하고,
무대 조명을 여러 색깔로 지정해 동작의 안내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빛을 쫓다가 오케스트라 피트에 다가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무대 가장자리에 가는 실을 설치했다고도 한다.
시력의 한계를 딛고 70대까지 무대에 선 알론소는
1995년 이탈리아 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 뒤에도 쿠바 국립발레단의 단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무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98세의 나이에 심혈관 질환으로 쿠바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바나 대극장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길 가에 이런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센트럴 아바나 걷기를 마치고 버스를 향해서 간다.
그러는 사이 관광객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바나 시티 투어 버스 요금은 일인당 미화 $10이다.
버스는 말레꼰을 지나서 모로 요새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다음 찾아가는 장소는 혁명 광장이다.
체 게바라와 호세 마르티 그리고 시엔푸에고스에 대해서는
이미 전편에서 모두 언급을 하였기에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겠다.
혁명 광장은 아바나 투어 필수 코스이다.
투어 버스는 콜론 묘지(Colon Cemetery)도 지나서 간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쿠바의 공동묘지를 상세히 보아서 여기도 통과한다.
해변가를 지나서 이런 물놀이 공원으로 가지만 영업은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바나 대학교를 지나간다.
그 주변 모습을 이러하다.
시티 투어 버스를 타면 말레꼰을 여러 번 지나간다.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예수님 상도 멀리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산호세 공예품 마켓에서 내려서 점심 식사는 물론이고
약간의 기념품 구입을 마치고 시티 투어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 후에 온다는 버스는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래서 "역시 여기는 쿠바니까"를 다시 반복하게 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리가 아플까 봐 마켓 시큐리티 가드
아저씨는 아내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의자를 친절하게 제공한다.
시티 투어 버스는 또다시 말레꼰을 지나간다.
카피톨리오 건물이 보이니 이제 다 온 것 같아 보인다.
시티 투어 버스는 아바나 대극장을 지나서 우리를 내려준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첫 번째로 헤밍웨이 발자취 따라가기에 나선다.
그래서 찾아간 장소는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이다.
여기선 헤밍웨이가 다이키리를 주로 마셨다.
다이키리는 사탕수수로 만든 술 인 럼에
다양한 과일을 넣어서 만든 칵테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지 빈자리가 전혀 없다.
여기에는 2003년에 헤밍웨이 실물 크기 동상을 아예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헤밍웨이가 자리에 앉아 있는 지정석을 향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무리 그래도 인증샷 하나는 건지고 가는게 예의라서 이렇게 하였다.
엘 플로리디타를 나와서 오비스포 거리로 걸어간다.
올드 아바나에선 오비스포 거리가 단연 으뜸이고 볼거리가 가장 많다.
그 길에는 호세 마르티 학교가 있다.
오비스포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사람이다.
이건 걸어가다 만나는 봉제 공장 모습이다.
봉제 공장 바로 옆에 내가 찾는 호텔이 보인다.
그 호텔 이름은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이다.
이 호텔 511 호실에서 헤밍웨이는 7년 간에 걸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는데 현재는 문이 닫혀있다.
그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관광객의 감소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의 헤밍웨이가 쓰던 침대라고
하는데 이번에 볼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헤밍웨이 호텔이 다시 문을 열고 손님맞이 할 날을 고대한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 주변에는 당대 문학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내는 호텔 주변 쉴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가진다.
"신곡"의 작가 '단테'의 동상도 있다.
다시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만나는 종교인인지 무당인지가
아기 인형을 자리에 올려놓고 관광객의 돈을 노린다.
아바나 대성당 앞을 지나면서 모여 있는 인파를 만난다.
한때 아바나 대성당 안에는 콜럼버스 유해가 100년간 안치되었다고 한다.
대성당 옆에는 흰옷 입은 점쟁이가 시가를 물고 자리 잡고 있다.
아바나 대성당 앞 광장 모습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언제 문을 닫았는지 문이 잠겨있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발자취 방문지는 라 보데기타(La Bodeguita)이다.
여기는 헤밍웨이가 모히토를 즐겨 마신 장소이다.
여기엔 이런 문구가 헤밍웨이 싸인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guiri in El Floridita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
옆에는 헤밍웨이 얼굴 동판도 전시되어있다.
라 보데기타에서 만드는 모히토는 이런 모양이다.
다시 길을 걷다 바이올린 소리가 나서 잠시 들려보기로 하였다.
https://youtu.be/gTp3QLPa0rc
(우리만을 위한 베사메무쵸 연주 동영상)
쿠바에서는 처음으로 만나는 바이올린 연주 카페이다.
공원에는 동네 청년들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나바 번화가 주변에 사는 사람 모습에서도 삶의 빈곤함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 내 눈에 띄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곁에 다가갔다.
쿠바에 사는 유태인을 만난 것이다. 쿠바에도 유태인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사람 말로는 현재 쿠바에 300여 명의 유태인이 있는데
아바나에 있던 4개의 유태인 회당이 이번 펜데믹
기간에 모두 문을 닫았다고 그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다윗의 별 목걸이를 만지며 야훼-하나님을 나도 믿는다고 하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서로 희망을 잃지 말고 살자는
말을 전하고 약간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1939년 독일 나치의 손길을 피해서
쿠바 난민 길을 택한 것이 첫 유태인이 쿠바 땅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쿠바 정부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제 떠돌이로 만들었다.
이것을 보며 대한민국 삼성 제품의 위상을 아바나에서 실감하게 된다.
LG 제품 또한 그 위상이 대단하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매장에 전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기 상품이다.
헤밍웨이의 발자취 따르는 것은 La Floriditra 앞에서 마치기로 하겠다.
그곳은 실제로 아바나 올드타운 관광 1번지이다.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비를 뿌린다.
이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운전수 산디가 오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호텔로 자리를 옮겨가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산디가 픽업 오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아나나 시내 위킹 투어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련다.
계속 연결해서 다음 쿠바 소식을 올리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