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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집이문족론 제13권
6. 오법품 ③
[5능인공덕]
5능인공덕(能忍功德)이라 함은,
첫째는 포악하지 않은 것[不暴惡]이요,
둘째는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는 것[不憂悔]이며,
셋째는 중생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衆生愛樂]이요,
넷째는 시방에 착한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十方善名流布]이며,
다섯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 착한 세계[善趣]의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이다.
[문] 어떤 것이 포악하지 않은 것인가?
[답] 능히 참아내는 모든 보특가라가 능히 참아낸 인연에 의하여 칼이나 막대기를 모으지 않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포악하지 않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이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는 것[不憂悔]인가?
[답] 능히 참아내는 모든 보특가라가 능히 참아낸 인연에 의하여 몸의 묘행(妙行)을 행하고 말의 묘행을 행하고 뜻의 묘행을 행하며, 그는 몸과 말과 뜻의 묘행을 행한 뒤에는 근심하거나 뉘우치지도 않고 몸과 마음이 맑고 시원한 것을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이 중생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衆生愛樂]인가?
[답] 능히 참아내는 모든 보특가라가 능히 참아낸 인연에 의하여 욕에는 욕으로 갚지 않고 성[瞋]에는 성으로 갚지 않으며, 매에는 매로써 갚지 않고 손해에는 손해로 갚지 않으며 희롱에는 희롱으로 갚지 않나니, 이로 말미암아 중생들은 모두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다. 그는 이와 같이 욕 등으로써 갚지 않는 인연 때문에 중생들이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이 시방에 착한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十方善名流布]인가?
[답] 능히 참아내는 모든 보특가라가 능히 참아낸 인연에 의하여 언제나 싸우는 일이 없고 서로 말로 다투거나 업신여기거나 헐뜯는 일이 없나니, 이로 말미암아 시방에 착한 이름이 널리 퍼진다. 그는 이와 같이 싸움이 없는 등의 인연 때문에 시방에 착한 이름이 널리 퍼진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착한 세계[善趣]의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인가?
[답] 능히 참아내는 모든 보특가라가 능히 참아낸 인연에 의하여 증상(增上)의 몸의 묘행(妙行)과 말의 묘행과 뜻의 묘행을 많이 행하며, 그는 증상의 몸과 말과 뜻의 묘행을 행하고 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착한 세계의 천상에 태어나서 모든 묘한 쾌락을 받게 되나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착한 세계의 천상에 태어난다’라고 한다.
[5손감]
5손감(損減)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친속(親屬)의 손감(損減)이요, 둘째는 재부(財富)의 손감이며, 셋째는 무병(無病)의 손감이요, 넷째는 계(戒)의 손감이며, 다섯째는 견(見)의 손감이다.
[문] 친속(親屬)의 손감이란 어떤 것인가?
[답] 친속이 있어서 모든 재해(災害)를 만나는 것이니, 왕(王) 때문이요 도둑[賊] 때문이며, 불[火] 때문이요 물[水] 때문이며, 죽음[死] 때문이다.
또 친속이 적은 것도 또한 친속의 손감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친속의 손감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친속의 손감이라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요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며, 참을 만한 것이 아니요 구호가 없으며, 어김과 손해가 있어서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친속의 손감이라 한다.
[문] 재부(財富)의 손감이란 어떤 것인가?
[답] 재부에 모든 재해를 만나는 것이니, 왕 때문이요 도둑 때문이며, 불 때문이요 물 때문이며, 원수 때문이다.
또 재부가 적은 것도 또한 재부의 손감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재부의 손감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재부의 손감이라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요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며,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니요 뜻에 맞는 것이 아니니,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문] 무병(無病)의 손감이란 어떤 것인가?
[답] 몸 속에서 이와 같은 병을 만나는 것이니 두통(頭痛) 등이며,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또 이 몸 속에 있는 많은 질병 등도 또한 무병의 손감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무병의 손감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무병의 손감이라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며, 나아가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문] 계(戒)의 손감이란 어떤 것인가?
[답] 생명을 살해하고 도둑질을 하며, 음욕의 삿된 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이간하는 말을 하고 추악한 말을 하며, 잡스럽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다.
또 온갖 착하지 않은 계율과 또는 온갖 이치로 이끄는 것이 아닌 계율과 또는 온갖 선정을 장애하는 계율이니, 이와 같은 모두를 계의 손감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계의 손감이라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요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며, 참을 만한 것이 아니요 구호가 없고 어김과 손해가 있어서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닌 과(果)가 있고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닌 과가 있으며,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닌 과가 있고 뜻에 맞지 않은 과가 있으며, 흐뭇하지 못한 과가 있고 즐겁지 않은 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닌 이숙(異熟)이 있고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닌 이숙이 있으며,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닌 이숙이 있고 뜻에 맞지 않는 이숙이 있으며, 흐뭇하지 못한 이숙이 있고 즐겁지 않은 이숙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계의 손감이라 한다.
[문] 견(見)의 손감이란 어떤 것인가?
[답] 존재하는 모든 소견[見]으로서 베풀 것도 없고 제사지낼 것도 없으며, 좋아할 것도 없다는 등등의 자세한 설명이며,
또 존재하는 모든 착하지 않은 소견과 존재하는 모든 이치로 이끄는 것이 아닌 소견과 존재하는 모든 선정을 장애하는 소견 등이니, 이와 같은 모두를 견의 손감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견의 손감이라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며 자세히 설명하면 더 나아가 즐겁지 않은 이숙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견의 손감이라 한다.
[5원만]
5원만(圓滿)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친속(親屬)의 원만(圓滿)이요, 둘째는 재부(財富)의 원만이며, 셋째는 무병(無病)의 원만이요, 넷째는 계(戒)의 원만이며, 다섯째는 견(見)의 원만이다.
[문] 친속(親屬)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친속에 있어서 모든 재해(災害)가 없는 것이니, 왕 때문이거나 도둑 때문이거나 불 때문이거나 물 때문이거나 죽음 때문이 아닌 것이다. 또 친속이 많은 것도 또한 친속의 원만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친속의 원만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친속이 원만하다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며, 참을 만하고 구호가 있으며, 어김과 손해가 없어서 뜻에 맞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친속이 원만하다고 한다.
[문] 재부(財富)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재부에 있어서 모든 재해가 없는 것이니, 왕 때문이거나 도둑 때문이거나 불 때문이거나 물 때문이거나 죽음 때문이 아닌 것이다. 또 재부가 많은 것도 또한 재부의 원만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재부의 원만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재부가 원만하다고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며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것이며,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무병(無病)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며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것이며,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무병(無病)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몸 속에 이와 같은 병이 없는 것이니, 두통 등이며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또 이 몸 속에 모든 질병이 없는 것도 또한 무병의 원만이라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것을 무병의 원만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병이 없어 원만하다고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하며,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문] 계(戒)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생명을 끊지 않는 것과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과 음욕의 삿된 행을 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과 이간질을 하지 않는 것과 추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과 상스럽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존재하는 모든 착한 계율과 또는 존재하는 모든 이치대로 이끄는 계율과 또는 존재하는 모든 선정을 장애하지 않는 계율 등이니, 이와 같은 모두를 계의 원만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계율이 원만하다고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며, 참을 만하고 구호가 있으며 어김과 손해가 없고 뜻에 맞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법은 사랑할 만한 과(果)가 있고 좋아할 만한 과가 있으며, 기뻐할 만한 과가 있고 뜻에 맞는 과가 있으며, 흐뭇한 과가 있고 즐거운 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법에는 사랑할 만한 이숙(異熟)이 있고 좋아할 만한 이숙이 있으며, 기뻐할 만한 이숙이 있고 뜻에 맞는 이숙이 있으며, 흐뭇한 이숙이 있고 즐거운 이숙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계율이 원만하다고 한다.
[문] 견(見)의 원만이란 어떤 것인가?
[답] 존재하는 모든 소견으로서 베풀 것도 있고 제사지내는 것도 있으며, 좋아하는 것도 있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또 존재하는 모든 착한 소견과 또는 존재하는 모든 이치대로 이끄는 소견과 또는 존재하는 모든 선정을 장애하지 않는 소견 등이니, 이와 같은 모두를 견의 원만이라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소견이 원만하다고 하는가?
[답] 이와 같은 법은 곧 사랑할 만하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즐겁게 하는 이숙(異熟)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소견이 원만하다고 한다.
[5어로]
5어로(語路)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때에 맞는 말[時語]과 혹은 때에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요,
둘째는 진실한 말[實語]과 혹은 진실하지 않은 말[不實語]이며,
셋째는 이익되는 일을 이끄는 말[引義利語]과 혹은 이익 없는 일을 이끄는 말[引無義利語]이요,
넷째는 미세하고 부드러운 말[細軟語]과 거칠고 거센 말[麤獷語]이며,
다섯째는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말[慈愍語]과 혹은 성을 내는 말[瞋恚語]이다.
때에 맞는 말[時語]과 혹은 때에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하였다.
[문] 어떤 것이 때에 맞지 않는 말인가?
[답] 때에 맞지 않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바깥[外]이다.
[문] 안[內]이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마치 다른 이의 죄(罪)를 들추어내는 필추가 혹은 탐냄의 번뇌[纏]에 얽히어 있거나, 혹은 성냄의 번뇌에 얽히어 있거나, 혹은 어리석음의 번뇌에 얽히어 있거나, 혹은 극심한 고통을 만나게 되었거나, 혹은 중한 병이 들어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이와는 언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안이 때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문] 바깥[外]이 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마치 다른 이의 죄를 들추어내는 필추가 들추어내려고 할 적에 그 이에게 혹은 탐냄의 번뇌에 얽혀 있거나, 혹은 성냄의 번뇌에 얽혀 있거나, 혹은 어리석음의 번뇌에 얽혀 있거나, 혹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혹은 중한 병이 들어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이의 언론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혹은 아직 구계(具戒)를 받지 못한 보특가라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바깥이때에 맞지 않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는 안이 때에 맞지 않는 것과 바깥이때에 맞지 않는 것을 모두 한데 묶어서 요약하여 하나의 수효로 삼아 때에 맞지 않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때에 하는 말을 때에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때에 맞는 말[時語]인가?
[답] 두 가지 때에 맞는 것이 있나니, 하나는 안[內]이요, 다른 하나는 바깥[外]이다.
[문] 안의 때에 맞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다른 이의 죄를 들추어내는 필추가 탐냄의 번뇌에 얽히지 않고 성냄의 번뇌에 얽히지 아니하며, 어리석음의 번뇌에 얽히지 아니하고 극심한 고통도 없으며, 중한 병도 없고 또 다른 이와 언론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안의 때에 맞는다고 한다.
[문] 바깥의 때에 맞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다른 이의 죄를 들추어내는 필추가 죄를 들추어내려고 할 적에 그 이에게 탐냄의 번뇌에 얽히지 아니하고 성냄의 번뇌에 얽히지 아니하며, 어리석음의 번뇌에 얽히지 아니하고 극심한 고통도 없으며, 중한 병도 없고 또 다른 이의 언론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한 보특가라가 그의 앞에 서 있는 일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바깥의 때에 맞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는 안의 때에 맞는 것과 바깥의 때에 맞는 것을 모두 한데 묶어서 요약하여 하나의 수효로 삼아 때에 맞는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때에 하는 말을 때에 맞는 말[時語]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때에 맞는 말이라 하고 혹은 때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진실한 말과 혹은 진실하지 않은 말이라고 하였다.
[문] 어떤 것이 진실하지 않은 말[不實語]인가?
[답] 마치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그가 계율[戒]을 범하고 소견[見]을 범하고 궤칙(軌則)을 범하고 청정한 생활[淨命]을 범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의심하지도 않았으면서 그의 죄를 들추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가 이와 같은 데에 대하여 하는 말을 진실하지 않은 말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진실한 말[實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그가 계율을 범하고 소견을 범하고 궤칙을 범하고 청정한 생활을 범한 것을 실제로 보았고 실제로 들었고 실제로 의심해서 그의 죄를 들추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가 이와 같은 데에 대하여 하는 말을 진실한 말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진실한 말이라 하고 혹은 진실하지 않은 말이라 한다.
이익되는 일을 이끄는 말과 이익이 없는 일을 이끄는 말이라고 하였다.
[문] 어떤 것이 이익이 없는 일을 이끄는 말[引無義利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그가 계율을 범하고 소견을 범하고 궤칙을 범하고 청정한 생활을 범하는 것 등의 죄를 들추어낼 적에 그 다른 필추는 이러한 죄에 대하여 이미 자수(自首)하였고 이미 들추어내었으며, 이미 드러내 보였고 이미 참회하여 없애어 실로 남은 것이 없는데도 ‘남은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와 같은 데에 대하여 하는 말을 이익이 없는 일을 이끄는 말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이익되는 일을 이끄는 말[引義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그가 계율을 범하고 소견을 범하고 궤칙을 범하고청정한 생활을 범하는 것 등의 죄를 들추어낼 적에 그 다른 필추는 이러한 죄에 대하여 아직 자수하지 않았고 아직 들추어내지 않았으며, 아직 드러내 보이지 않았고 아직 참회하여 없애지 못했으므로 혹은 남은 것이 있는 데에 ‘남은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와 같은 데에 대하여 하는 말을 이익되는 일을 이끄는 말이라 한다. 이 때문에 이것을 이익되는 일을 이끄는 말이라 하고 혹은 이익이 없는 일을 이끄는 말이라 한다.
미세하고 부드러운 말과 혹은 거칠고 거센 말이라고 하였다.
[문] 어떤 것이 거칠고 거센 말[麤獷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원한과 분을 품고 흉악한 뜻을 내며 말하기를,
‘네가 이러한 죄를 범한 것을 보았다. 너야말로 악한 사문이요 우둔한 사문이며, 수치심이 없는 사문이어서 조복하기 어려운 자다. 너는 이러한 모든 죄를 자백해야 되며, 감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와 같이 하는 말을 거칠고 거센 말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細軟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구수(具壽)여, 이미 이러이러한 죄를 범하였으니, 마땅히 자수해야 되고 들추어내어야 하며, 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수하면 안락하게 되지만 자수하지 않으면 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와 같이 하는 말을 미세하고 부드러운 말이라 한다. 이 때문에 미세하고 부드러운 말이라 하며, 혹은 거칠고 거센 말이라 한다.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말과 혹은 성내는 말이라고 하였다.
[문] 어떤 것이 성내는 말[瞋恚語]인가?
[답]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과 손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있어서 범한 계율과 범한 소견과 범한 궤칙과 범한 청정한 생활에 관한 죄 등을 들추어내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렇게 하면서 하는 말을 성내는 말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말[慈愍語]인가?
[답] 마치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 대하여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자비를 완전히 갖추어서 그에게로 가서 그가 범한 계율과 범한 소견과 범한 궤칙과 범한 청정한 생활에 관한 죄 등을 들추어내는 것과 같나니, 그가 이렇게 하면서 하는 말을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말이라 한다. 이 때문에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말이라 하며 혹은 성내는 말이라 한다.
[5무감능처]
5무감능처(無堪能處)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漏]를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일부러 산목숨을 끊는 일이 있을 수 없고[無堪能], 다시는 주지 않는 물건을 도둑의 마음으로 취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다시는 범행(梵行)이 아닌 행을 행하면서 음욕의 법을 익히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다시는 바르게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다시는 모든 욕락(欲樂)의 기구들을 저축하거나 수용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일부러 산목숨을 끊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함은,
이를테면 그것이 인(因)과 연(緣)이 되어 산목숨을 끊게 되는 것인데,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 까닭에 인연(因緣)에 대하여 이미 영원히 끊고 이미 두루 아는 것이, 마치 나무의 뿌리를 끊어 버리고 다라나무[多羅樹] 순을 자른 것과 같아서 후유(後有)의 갈래로 하여금 나지 않는 법[不生法]을 이루게 하였나니, 그 때문에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일부러 산목숨을 끊는 일이 있을 수 없다’라고 한다.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주지 않는 물건을 도둑의 마음으로 취하거나 범행이 아닌 행을 행하면서 음욕의 법을 익히거나 바르게 알면서 거짓말을 하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모든 욕락의 기구를 저축하거나 수용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함은,
이를테면 그 인(因)과 그 연(緣)으로 말미암아 모든 욕락의 기구를 저축하고 수용하는 것인데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 까닭에 인연에 대하여 이미 영원히 끊었고 이미 두루 아는 것이 마치 나무의 뿌리를 끊어 버리고 다라나무 순을 자르는 것 같아서 후유의 갈래로 하여금 나지 않는 법을 이루게 하였나니, 그 때문에 ‘아라한인 필추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한지라 다시는 모든 욕락의 기구를 저축하거나 수용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라고 한다.
[5승지]
5승지(勝支)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구수(具壽)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성스러운 제자는 여래께 청정한 믿음을 닦고 심어 뿌리가 나서 편안히 머무르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梵)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세간 때문에 법대로 끌리거나 빼앗기지 않나니, 이것을 첫 번째 뛰어난 갈래[勝支]라 한다.
또 구수여, 모든 성스러운 제자는 아첨이 없고 속임수가 없으며 순박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무리여서 큰 스승과 범행을 같이한 이에 대하여 자신을 사실대로 드러내나니, 이것을 두 번째 뛰어난 갈래라 한다.
또 구수여, 모든 성스러운 제자는 질병이 적고 병이 없어서 평등하게 성숙시키는 배[等熟腹]를 이루어 극히 싸늘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것도 아니며, 때와 계절에 조화되어 모든 고뇌가 없나니, 이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는 것이 쉬이 바르게 소화되나니, 이것을 세 번째 뛰어난 갈래라 한다.
또 구수여, 모든 성스러운 제자는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머무르고 기세[勢]가 있으며 힘씀[勤]이 있고 세참[勇]과 굳셈[堅]과 날램[猛]이 있으며, 모든 착한 법에 대하여 언제나 멍에[軛]를 버리지 않나니, 아직 증득하지 못했다 하면 정진이 왕성해서 끝내 그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다. 이것을 네 번째 뛰어난 갈래라 한다.
또 구수여, 모든 성스러운 제자는 지혜[慧]를 갖추어 편히 머무르며 세간의 출몰이 있는 지혜[世間有出沒慧]와 거룩한 지혜[聖慧]와 벗어남의 지혜[出慧]와 잘 통달한 지혜[善通達慧]와 그가 지을 지혜[彼所作慧]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는 지혜[正盡苦慧]를 성취하나니, 이것을 다섯 번째 뛰어난 갈래라 한다.
[문] ‘여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닦고 심는다’라고 하였는데 여래(如來)란 어떤 이인가?
[답] 응공[應]ㆍ정등각(正等覺)을 말하여 여래라 한다.
[문] ‘청정한 믿음[淨信]’이란 어떤 것인가?
[답] 만일 벗어남[出離]과 멀리 여읨[遠離]이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한 모든 믿음과 믿음의 성품과 따르는 성품과 인가(印可)하는 성품과 이미 좋아하였고 장차 좋아할 것이며, 현재 좋아하는 성품과 마음이 청정하게 되는 성품이기 때문에 ‘청정한 믿음’이라고 한다.
곧 이 청정한 마음을 여래께 이미 닦아 심었고 장차 닦아 심을 것이며, 현재에 닦아 심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말하기를 ‘여래께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닦아 심는다’라고 한다.
‘뿌리[根]가 난다’라고 함은,
이 청정한 믿음에는 두 가지 뿌리가 있나니,
첫째는 무루(無漏)의 지혜[智]요, 둘째는 무루의 선근(善根)이다.
이 때문에 ‘뿌리가 난다’라고 한다.
‘편안히 머무른다[安住]’고 함은,
이와 같은 행상(行相)을 말미암아 뿌리가 생기면 곧 이와 같은 행상으로 말미암아 편히 머무르게[安住] 되며 만일 이와 같은 행상을 말미암아 편안히 머무르면 곧 이와 같은 행상을 말미암아 뿌리가 생기게 되나니, 이 때문에 ‘편안히 머무른다’라고 한다.
‘이끌거나 빼앗을[引奪] 수 없다’라고 함은,
이와 같이 청정한 믿음을 성취한 까닭에 온갖 세간의 하늘이나 악마나 범(梵)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그 밖의 중생과 모든 하늘과 사람들로서는 모두 이끌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고 이끌거나 빼앗을 수도 없으며, 기울일 수도 없고 함께[等] 기울일 수도 없고 함께 지극하게 기울일 수도 없으며, 흔들 수도 없고 같이 흔들 수도 없고 함께 지극하게 흔들 수도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고 같이 움직일 수도 없고 같이 지극하게 움직일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이끌거나 빼앗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이것을 첫 번째라 한다’라고 함은, 점차(漸次)와 순차(順次)와 서로 이어지는 차례의 수(數)로 첫 번째가 된다.
‘뛰어난 갈래[勝支]’라 함은, 청정한 믿음이 더욱 왕성한지라 그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뛰어나기 때문에 ‘뛰어난 갈래’라고 한다.
[문] ‘아첨[諂]이 없다’라고 말하는 아첨이란 어떤 것인가?
[답] 모든 마음에서 험한 성품이요 또는 마음의 간사한 성품이며, 마음의 굽은 성품이요 마음의 뒤섞이고 어지러운 성품이며, 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성품이요 마음이 정직하지 않은 성품이며, 마음이 고르거나 착하지 않은 성품을 모두 아첨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아첨이 없기 때문에 ‘아첨이 없다’라고 한다.
[문] ‘속임[誑]이 없다’라고 함에서 속임이란 어떤 것인가?
[답] 말[斗]을 속이고 저울을 속이며, 함(函)을 속이고 말을 속이면서 다른 이에게 둘러씌우고 지극하게 둘러씌우고 두루 둘러씌우며, 둘러씌우는 업(業)으로 속이며 헷갈리게 하는 것을 모두 속임수라 한다. 이와 같은 속임수가 없기 때문에 ‘속임수가 없다’라고 한다.
‘순박하고 정직한 성품[渟直性]을 지닌 무리’라 함은, 아첨과 속임수가 없는 성품을 거듭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니, 이 때문에 또 말하기를 ‘순박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무리’라고 한다.
‘큰 스승[大師]과 지혜가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有智同梵行者]에 대하여 자신을 사실대로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문] 큰 스승이란 어떤 분인가?
[답]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말하여 ‘큰 스승’이라 한다.
[문] ‘지혜가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란 어떤 이들인가?
[답] 사리자(舍利子)와 대채숙씨(大採菽氏)와 대영구씨(大營搆氏)와 대가섭파(大迦葉波)와 대집장(大執藏)과 대겁비나(大劫庀那)와 대가다연나(大迦多衍那)와 대준타(大准陀)와 대선현(大善見)과 대로(大路)와 대명(大名)과 무멸(無滅)과 욕락(欲樂)과 금비라(金毘羅) 등을 모두 ‘지혜가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라 한다.
만일 그 구수(具壽)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많아서 어기고 범한 것이 있으면 곧 큰 스승과 모든 지혜가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사실대로 자수하고 시설(施設)하며 건립(建立)하고 분별하며 분명히 드러내고 들추어내며 열어 보이면서 감추는 것이 없나니, 이로 말미암아 말하기를 ‘큰 스승과 지혜가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에게 자기 자신을 사실대로 드러낸다’라고 한다.
‘이것을 두 번째라 한다’라고 함은, 점차와 순차와 서로 이어지는 차례의 수로 두 번째가 된다.
‘뛰어난 갈래’라 함은, 아첨과 속임수가 없는 것이 더욱 왕성한지라 모든 선남자나 선여인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뛰어나기 때문에 ‘뛰어난 갈래’라 한다.
[문] ‘질병이 적다[少病]’고 말하는데, 질병이 많은 것[多病]은 어떤 것인가?
[답] 두통(頭痛) 등과 나아가 그 밖의 갖가지 괴로움과 진질(疹疾)로서 여러 가지로 안온(安穩)하지 않은 접촉을 내게 하는 것이 몸 속에 머물러 있으면 모두 질병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병이 없기 때문에 ‘질병이 적다’라고 한다.
‘병이 없다[無病]’는 말은 질병이 적다는 것을 거듭하여 드러낸다.
‘평등하게 성숙시키는 배[等熟腹]를 이루어서 극히 싸늘한 것[冷]도 아니고 뜨거운 것[熱]도 아니며 때와 계절에 조화되어 모든 고뇌(苦惱)가 없나니, 이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는 것이 쉬이 바르게 소화된다’라고 함은,
그는 극히 싸늘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것도 아니어서 평등하게 성숙시키는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의 두 장(藏)을 성취한 것이다.
만일 극히 싸늘한 장부를 이루고 있으면 마시고 먹고 하는 모든 것은 극히 더디게 성숙되면서 몸을 묵직하게 하고 감당할 수 없게 하므로 부지런히 힘쓰면서 뛰어나게 끊는 행[勝斷行]을 닦을 수 없게 할 것이요,
또 만일 극히 뜨거운 장부를 이루고 있으면 마시고 먹고 하는 모든 것은 극히 빠르게 성숙되면서 몸을 오히려 파리하게 하고 감당할 수 없게 하므로 부지런히 힘써 뛰어나게 끊는 행을 닦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는 극히 싸늘한 것도 아니요 뜨거운 것도 아닌 생장과 숙장의 두 장부를 성취한 까닭에 때와 계절에 조화되어 모든 고뇌가 없으며, 먹고 마시는 것은 쉽고 바르게 소화되어 몸으로 하여금 강건하고 왕성하게 하여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 뛰어나게 끊는 행을 닦을 수 있다.
‘이것을 세 번째라 한다’라고 함은, 점차와 순차와 서로 이어지는 차례의 수로 세 번째가 된다.
‘뛰어난 갈래’라 함은, 질병이 적어짐이 더욱 왕성하게 되는지라 모든 선남자나 선여인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뛰어나기 때문에 ‘뛰어난 갈래’라 한다.
[문] ‘부지런히 정진하며 머무른다’라고 하는데, 정진(精進)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벗어남[出離]과 멀리 여읨[遠離]이 생기는 착한 법에 대하여 부지런히 힘쓰면서 용맹스럽고 기세 있는 작용으로 다잡아 격려하며 억누를 수 없는 다잡은 마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바로 정진이라 한다.
그런데 그는 이와 같은 정진을 성취한 까닭에 닦고 익히는 것에 대하여 뛰어난 행을 행하면서 나아가고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부지런히 정진하며 머무른다’라고 한다.
‘기세[勢]가 있다’라고 함은, 그는 상품(上品)으로 정진이 원만한 까닭에 ‘기세가 있다’라고 말한다.
‘힘씀[勤]이 있다’라고 함은, 곧 정진이 견고함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에 ‘힘씀이 있다’라고 한다.
‘세참[勇]과 굳셈[堅]과 날램[猛]이 있다’라고 함은,
정진하는 힘을 성취한 까닭에 이로 말미암아 용감하게 결단하면서 취(取)하고 견고하게 머무르면서 취하고 맹렬하고도 날카롭게 취하되 그 모든 취하는 것은 곧 선(善)이요 악(惡)이 아니며, 취한 모양[相]을 따라 수호하고 버리지 않는 것은 마치 다른 나라를 얻은 뒤에 잘 수호하는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세참과 굳셈과 날램이 있다’라고 한다.
‘모든 착한 법에 대하여 언제나 멍에[軛]를 버리지 않는다’라고 함은,
착한 법에 대하여 근면과 용기를 버리지 않고 정진해서 끊어짐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말하여 ‘모든 착한 법에 대하여 언제나 멍에를 버리지 않는다’라고 한다.
‘구하고 있는 뛰어난 착한 법을 얻기 위하여 만일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 왕성하게 정진해서 끝내 그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다’라고 함은,
만일 아직 아라한의 과위를 얻지 못했으면 왕성하게 정진해서 언제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구하고 있는 착한 법을 위해서 만일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 왕성하게 정진해서 끝내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다’라고 한다.
‘이것을 네 번째[第四]라 한다’라고 함은, 점차와 순차와 서로 이어지는 차례의 수로 네 번째가 된다.
‘뛰어난 갈래[勝支]’라 함은, 정진이 왕성한지라 모든 선남자나 혹은 선여인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훌륭해지기 때문에 뛰어난 갈래라 한다.
[문] ‘지혜를 갖추어 편히 머무른다’라고 함에서 지혜[慧]란 어떤 것인가?
[답] 만일 벗어남[出離]과 멀리 여읨[遠離]이 생기는 착한 법에 의거한 모든 법의 모양[法相]에 대하여 능히 간택(簡擇)하고 지극히 간택하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더 나아가 비발사나(毘鉢舍那)가 있는 것을 지혜라 한다.
‘편안히 머무른다[安住]’고 함은,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모든 법의 모양에 대하여 뛰어난 행을 행하여 나아가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지혜를 갖추어 편안히 머무른다’라고 한다.
‘세간의 출몰이 있는 지혜[世間有出沒慧]를 성취한다’라고 함에서 세간이란, 5취온(取蘊)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취온(色取蘊)ㆍ수취온(受取蘊)ㆍ상취온(想取蘊)ㆍ행취온(行取蘊)ㆍ식취온(識取蘊)이다. 그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이 5취온이 생기는 것과 변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말하기를 ‘세간의 출몰이 있는 지혜를 성취한다’라고 한다.
‘거룩한 지혜[聖慧]’라 함은,
두 가지 거룩한 것이 있나니,
첫째는 선(善)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둘째는 무루(無漏)이기 때문에 거룩하다.
여기서 이 지혜는 두 가지 거룩한 것을 다 갖춘 까닭에 ‘거룩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거룩한 지혜라 한다.
‘벗어나는 지혜[出慧]’라 함은, 그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욕계(欲界)를 벗어나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벗어나게 되나니, 이 때문에 벗어나는 지혜라 한다.
‘잘 통달한 지혜[善通達慧]’라 함은, 그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괴로움[苦]ㆍ괴로움의 원인[集]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道諦]에 대하여 괴로움ㆍ괴로움의 원인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모양을 능히 통달하고 잘 통달하며 저마다 따로따로 통달한 까닭에 잘 통달한 지혜라 한다.
‘그가 지을 지혜[彼所作慧]’라고 함은,
그가 이끄는 배울 것 있는 이[學]의 무간도(無間道)에 있는 온갖 뛰어난 지혜를 여기서는 말하여 ‘그가 지을 지혜’라고 한다.
【문】‘바르게 괴로움을 다하는 지혜[正盡苦慧]’라고 하였는데,
바르게[正]란 어떤 것인가?
[답] 인(因)이기 때문이요 문(門)이기 때문이며, 이취(理趣)이기 때문이요 행상(行相)이기 때문에 ‘바르게’라고 한다.
‘괴로움을 다하는 지혜[盡苦慧]’라 함은, 5취온(取蘊)을 괴로움[苦]이라 하는데, 이 지혜는 5취온으로 하여금 다하고 평등하게 다하며 두루 다하여 영원히 다함을 증득하게 하므로 괴로움을 다하는 지혜라 한다.
‘이것을 다섯 번째[第五]라 한다’라고 함은, 점차와 순차와 서로 이어지는 차례의 수로 다섯 번째가 된다.
‘뛰어난 갈래’라 함은, 지혜를 갖춤이 왕성한지라 모든 선남자나 혹은 선여인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뛰어나기 때문에 뛰어난 갈래라 한다.
[5성숙해탈상]
5성숙해탈상(成熟解脫想)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이요,
둘째는 무상하고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이며,
셋째는 괴롭고 나 없다는 생각[苦無我想]이요,
넷째는 음식에 싫증내는 생각[厭逆食想]이며,
다섯째는 죽는다는 생각[死想]이다.
[문]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이란 어떤 것인가?
[답] 온갖 행(行)은 모두가 무상하다. 그 무상한 행에 대하여 무상하기 때문에 이치대로[如理] 생각하는 모든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바로 앞에 나타나는 생각[現前而想]과 이미 낸 생각[已想]과 장차 낼 생각[當想]과 현재 내는 생각[現想]을 무상하다는 생각이라 한다.
[문] 무상하고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이란 어떤 것인가?
[답] 온갖 행은 모두가 무상하다. 무상하기 때문에 존재[有]하는 것은 괴로운 것이니, 모든 괴로운 행에 대하여 괴롭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이치대로 생각하는 모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바로 앞에 나타나는 생각과 이미 낸 생각과 장차 낼 생각과 현재 내는 생각을 무상하고 괴롭다는 생각이라 한다.
[문] 괴롭고 나 없다는 생각[苦無我想]이란 어떤 것인가?
[답] 온갖 행은 모두가 무상하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나가 없는 것이니, 이 나 없는 행[無我行]에 대하여 나 없기 때문에 이치대로 생각하는 모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바로 앞에 나타나는 생각과 이미 낸 생각과 장차 낼 생각과 현재 내는 생각을 괴롭고 나 없다는 생각이라 한다.
[문] 음식에 싫증내는 생각[厭逆食想]이란 어떤 것인가?
[답] 모든 필추들은 마땅히 단식(段食)에 대하여 싫증내는 생각과 함께 행해지는 작의(作意)를 일으키며, 그리고 헐뜯는 생각과 함께 행해지는 작의를 일으키면서 부정하다는 생각[不淨想]으로써 단식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문]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답] 모든 죽과 밥에 대해서는 ‘퉁퉁 부풀어 오른 죽은 시체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勝解]를 일으켜야 하고,
미음과 국에 대해서는 ‘사람의 묽은 똥이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며,
생소(生酥)와 우유[乳]와 타락[酪]에 대해서는 ‘사람의 골수와 뇌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고,
익은 소유[熟酥油]와 사탕[沙糖]과 꿀에 대해서는 ‘사람의 지방(脂肪)이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한다.
미숫가루[麨]에 대해서는 ‘뼈의 가루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고,
떡에 대해서는 ‘사람의 피부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며,
소금에 대해서는 ‘부스러진 이[齒]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고,
연(蓮)의 뿌리ㆍ줄기와 날 채소의 가지와 잎에 대해서는 ‘잇닿은 머리카락과 해골이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하며,
모든 음료(飮料)에 대해서는 ‘사람의 고름과 피다’라고 하는 뛰어난 견해를 일으켜야 한다.
그가 단식(段食)에 대하여 이와 같은 싫어하는 생각과 헐뜯는 생각과 함께 행해지는 작의를 일으켜 청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써 단식에 대하여 생각하는 모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바로 앞에 나타나는 생각과 이미 낸 생각과 장차 낼 생각과 현재 내는 생각을 음식에 싫증내는 생각이라고 한다.
[문] 죽는다는 생각[死想]이란 어떤 것인가?
[답] 자기 자신의 몸과 목숨에 대하여 지극히 잘 뜻을 지어서 무상을 생각하는 모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바로 앞에 나타나는 생각과 이미 낸 생각과 장차 낼 생각과 현재 내는 생각을 죽는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해탈을 성숙시키는 생각을 성숙해탈상이라 한다.
[문] 무슨 연유로 이 다섯 가지를 성숙해탈상(成熟解脫想)이라 하는가?
[답] 해탈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심해탈(心解脫), 둘째는 혜해탈(慧解脫)이며, 셋째는 무위해탈(無爲解脫)이다.
이 다섯 가지 생각[五想]으로 유위(有爲)의 해탈이 아직 생기지 못했으면 생기게 하고, 생긴 뒤면 더욱 자라고 견고하고 광대하게 하며, 속히 무위의 해탈을 깨달아 얻나니,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성숙해탈상이라 한다.
[5해탈처]
5해탈처(解脫處)란 어떤 것인가?
구수(具壽)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에게 혹은 큰 스승께서 그를 위하여 법요(法要)를 설하시거나 혹은 어느 한 높으신 지혜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有智同梵行者]가 그를 위하여 법요를 설한다고 하자.
여여(如如)하게 큰 스승이거나 혹은 어느 한 높으신 지혜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가 그를 위하여 법요를 설할 적에는 그와 같고 그와 같이 그 법요에 대하여 법(法)과 뜻[義]을 바르고 분명히 아는 것이니, 법과 뜻을 바르고 분명히 앎으로 말미암아 곧 기꺼워하게 되고,
기껍게 여기기 때문에 기쁨이 생기며,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몸이 가뿐해지고, 몸이 가뿐해지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사실대로 알고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기 때문에 싫증을 내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여의게 되며, 여의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나니, 이것을 제1의 해탈하는 곳[解脫處]이라 한다.
이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은 이곳에 편안히 머물러서 기억이 아직 머무르지 못하는 이면 바른 기억[正念]에 머무르게 되고,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못한 이면 바른 선정[正定]에 머무르게 되며,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한 이면 모든 번뇌[諸漏]가 다하게 되고, 아직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한 이면 빨리 증득하게 된다.
또 구수여,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이 비록 큰 스승이거나 혹은 어느 한 높으신 지혜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가 그를 위하여 법요를 설함이 없다 하더라도 큰 음성[大音聲]으로써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究竟)의 법요를 독송한다고 하자.
여여하게 큰 음성으로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독송할 적에는 그와 같고 그와 같이 그 법요에 대하여 법(法)과 뜻[義]을 바르게 분명히 아는 것이니, 법과 뜻을 바르게 분명히 앎으로 말미암아 곧 기꺼워하게 되고, 기껍게 여기기 때문에 기쁨이 생기며,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몸이 가뿐해지고, 몸이 가뿐해지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사실대로 알고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기 때문에 싫증을 내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여의며, 여의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나니, 이것을 제2의 해탈하는 곳이라 한다.
이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은 이곳에 편안히 머물러서 기억이 아직 머무르지 못한 이면 바른 기억에 머무르게 되고,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못한 이면 바른 선정에 머무르게 되며,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한 이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고, 아직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한 이면 빨리 깨닫게 된다.
또 구수여,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이 비록 큰 스승이나 혹은 어떤 한 높으신 지혜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가 그를 위하여 법요를 설하는 것도 없고 또한 큰 음성으로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독송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이를 위하여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널리 설해서 열어 보인다고 하자.
여여하게 다른 이를 위하여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널리 설하면서 열어 보일 적에는 그와 같고 그와 같이 그 법요에 대하여 법과 뜻을 바르게 분명히 아는 것이니, 법과 뜻을 바르게 분명히 앎으로 말미암아 곧 기꺼워하게 되고, 기껍게 여기기 때문에 기쁨이 생기며,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몸이 가뿐해지고, 몸이 가뿐해지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사실대로 알고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기 때문에 싫증을 내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여의게 되며, 여의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나니, 이것을 제3의 해탈하는 곳이라 한다.
이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은 이곳에 편안히 머물러 기억이 아직 머무르지 못한 이면 바른 기억에 머무르게 되고,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못한 이면 바른 선정에 머무르게 되며,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한 이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고, 아직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한 이면 빨리 깨닫게 된다.
또 구수여,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이 비록 큰 스승이나 혹은 어느 한 높으신 지혜 있고 범행을 같이하는 이가 그를 위하여 법요를 설하는 것도 없고, 또한 큰 음성으로써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독송하지도 않으며, 또 다른 이를 위하여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를 널리 설하여 열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에 있는 모든 이치를 생각하고 헤아리며 관찰한다고 하자.
여여하게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일찍이 들었던 대로 구경의 법요에 있는 모든 이치를 생각하고 헤아리며 관찰할 적에는 그와 같고 그와 같이 그 법요에 대하여 법과 뜻을 바르게 분명히 아는 것이니, 법과 뜻을 바르게 분명히 알므로 곧 기꺼워하게 되고, 기껍게 여기기 때문에 기쁨이 생기며,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몸이 가뿐해지고, 몸이 가뿐해지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사실대로 알고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기 때문에 싫증을 내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여의게 되고, 여의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나니, 이것을 제4의 해탈하는 곳이라 한다.
이 모든 필추와 필추니 등은 이곳에 편안히 머물러서 기억이 아직 머무르지 못한 이면 바른 기억에 머무르게 되고,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이면 바른 선정에 머무르게 되며, 번뇌를 아직 다하지 못한 이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고, 아직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한 이면 빨리 증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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