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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6권[1]
[투자 화상] 投子
취미翠微의 법을 이었고, 서주舒州의 상성현相城縣에서 살았다. 그의 휘諱는 대동大同이며, 서주의 회녕현懷寧縣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동도東都 보당사保唐寺 만滿 선사 밑에서 처음에 소승小乘의 법을 배웠는데, 잘못된 줄 알고는 그것을 버리고 삼장을 두루 궁구하여 그윽한 진리를 널리 깨달아서,
곧장 취미翠微에게 가서 물었다.
“2조祖가 처음 달마達摩를 뵙고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그대가 지금 나를 만나서는 무엇을 얻었는가?”
선사는 그의 문하에 귀의하여 마음을 쉰 뒤에 다른 곳으로 갔다.
또 하루는 취미가 법당에서 행도行道하는데,
선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절을 하고 물었다.
“서쪽에서 오신 비밀한 뜻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십니까?”
취미가 잠시 걸음을 멈추자,
선사가 재차 물었다.
“화상이시여, 가르쳐 주십시오.”
취미가 대답했다.
“옳지 않다. 두 번째 것은 마치 더러운 흙탕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데 얻어서 무엇 하리오.”
선사가 말끝에 진리를 깨달아 절을 하고 물러갔다.
취미가 말했다.
“감추지 마라[挅].”
선사가 대답했다.
“때가 되면 뿌리와 싹이 저절로 납니다.”
다시 물었다.
“듣건대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웠다는데,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나한羅漢에게 공양하시렵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태워도 태워지지 않으니, 공양하려면 또한 마음대로 공양하느니라.”
선사가 가르침을 받고, 진리를 깨달은 뒤에는 본성[性]에 따라 소요逍遙하면서 인간 세계에 거리낌 없이 다니며 좋은 경치를 구경하다가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투자산投子山 밑에다 자리를 잡고, 평생을 마칠 뜻으로 암자를 지어 마음을 쉬고자 자취를 감추었더니,
건부乾符와 중화中和 연간에 이르러 난리가 일어나 물이 끓듯, 고래가 바닷물을 삼키듯 월越나라와 초楚나라와,
오吳나라의 전쟁이 치열하며, 미친 오랑캐가 날뛰고 도적떼가 설치니,
어찌 나라만이 어지러우랴? 심지어 절까지도 파괴되었다.
이때에 폭도들의 괴수가 칼을 들고 암자 앞에 나타나 소리를 높여 외쳤다.
“화상은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마음을 전하오.”
괴수가 다시 물었다.
“무슨 놈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마음이오.”
괴수는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얼굴빛을 펴고 말했다.
“화상의 가풍家風은 참으로 부사의하여서 우리 따위가 헤아릴 바 아닙니다.”
그러고는 이내 칼을 다시 칼집에 넣고 입었던 옷과 지녔던 보배 장식품들을 풀어서 시주하고 물러갔다.
이로부터 날마다 선객들이 찾아왔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범부와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선사가 승상繩床을 내려와 서니,
다시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거늘, 어째서 도리어 놓아두라고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렇게 왔으니 수고했다.”
“선법을 알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선사가 주장자로 때리니,
다시 물었다.
“어째서 말해 주시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좋고 나쁨을 모르는가?”
“고인이 말하되, ‘죽은 뒤에는 산 밑에 가서 한 마리의 물소가 되리라.’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고삐가 항상 있느니라.”
“고삐가 항상 있지 않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또다시 속인을 끄느니라.”
“대유령大庾嶺까지 따라갔건만 어째서 발우를 들지 못했습니까?”
선사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니,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들지 못하는 꼴을 봐라.”
“부처님들과 조사들이 대대로 전했다 하는데, 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늙은이가 어찌 그런 헛소리를 다 들어 주리.”
“목구멍 입술을 떠나서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내가 말이 막히기만을 바라는구나.”
“달마達摩께서 오시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 하늘과 땅에 두루 하였느니라.”
“온 뒤에는 어떠합니까?”
“덮거나 가릴 수 없었느니라.”
“여러 성인들은 무엇으로 인해서 깨달았습니까?”
“병이 있어도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렇다면 닦고 증득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영원히 기뻐할 수도 없고, 영원히 성낼 수도 없느니라.”
“요긴한 곳에도 소식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나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구나.”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느니라.”
“끝내 어찌하여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긴요한 곳이니라.”
“어찌하여야 눈앞의 사물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벌써 범했느니라.”
“어디가 범한 곳입니까?”
“아까 무어라 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빨리 상응相應하려면 다만 불이不二만을 말하라.’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네가 물으니, 내 다시 말해 주리라.”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불이不二만을 말하느니라.”
선사가 언젠가 말했다.
“제방에서는 일체의 구절을 한 구절로 다 말하는데, 노승은 그렇지 않아서 한 구절로써 일체 구절을 다 말하노라.”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한 구절로써 일체 구절을 다 말해 버리는 구절입니까?”
“오늘 법당에 오를 때 밥을 약간 먹었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말을 하되 혀에 관계치 않고, 이야기를 하되 소리가 아니니라.’ 했는데, 어떤 것이 말할 줄 아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몽땅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혀에 관계치 않는 것입니까?”
“소리를 들을 귀가 없느니라.”
“옛사람이 ‘눈앞에 법이 없으나 뜻이 눈앞에 있다’ 했는데, 어떤 것이 눈앞에 뜻을 둔 것입니까?”
“미치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눈앞의 법이 아니니 귀와 눈으로 미칠 바가 아니니라.”
조주趙州가 투자投子를 찾아갔는데, 산 아래에 가게가 있기에 사람에게 물었다.
“투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가게를 보던 속인이 대답했다.
“왜 물으시오?”
조주가 대답했다.
“화상의 성화를 오래전부터 들었기에 뵙고 예배하려는 것이오.”
속인이 말했다.
“가깝기는 하나 산에 오를 필요가 없소. 내일 아침에 돈을 얻으러 올 터이니 그때 만나시오.”
조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화상께서 오실 때에 어떤 납자가 여기에 와 있다고 말하지 마시오.”
속인이 승낙하였다.
이튿날 과연 내려와서 돈을 얻으니, 조주가 나서서 붙들고 말하였다.
“투자의 성화를 들은 지 오래인데 요것뿐인가?”
투자가 이 말을 듣자마자 이내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다시 조리笊籬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소금 값 조금 주시오.”
조주가 곧 그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니, 투자는 산으로 향했다.
조주가 좀 뒤떨어져 가면서 투자에게 물었다.
“죽음 속에서 살아날 길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투자가 대답했다.
“밤중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라.”
조주는 그만 내려와서 곧장 달아나 버렸다.
투자가 사미沙彌를 시켜,
“내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묻게 하였다.
사미가 가서 조주를 불러 세웠다.
조주가 고개를 돌리자,
사미가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태백太伯을 만났구나.”
사미가 돌아가서 투자에게 이야기를 하니, 투자가 크게 웃었다.
어떤 스님이 설봉雪峰에게 가서 이 일을 들어 물었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설봉이 대답하였다.
“내가 호백胡伯이라 여겼더니, 다른 호백이 여기 있었구나.”
어떤 스님이 황룡黃龍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밤중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라.’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황룡이 대답하였다.
“밥을 씹고 노백魯伯을 맛보느니라.”
다시 물었다.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황룡이 대답하였다.
“있느니라.”
“4조를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황룡이 답하였다.
“있느니라.”
황룡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운거雲居에서 옵니다.”
“여기와 비교하니 어떠하던가?”
스님이 대답을 못 하고, 운거에게 돌아가서 고하니,
운거가 말하였다.
“남쪽에는 설봉雪峰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가 있구나.”
투자가 잠시 문을 열고 동쪽 서쪽을 두루 살피니, 대중이 함께 몰려서 올라오거늘 투자가 얼른 문을 닫았다.
이에 어떤 스님이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투자가 문을 연 뜻이 무엇입니까?”
투자가 대답하였다.
“문을 닫는 것이야 그만두더라도 문을 닫지 않은 때에 그대는 어디서 알아차리겠는가?”
선사가 어느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이 ▣▣ 한가한 데서 벗어나 상응하지 못할 때 무량겁으로부터 모든 곳에서 마음을 다급히 써서 자신의 대사大事를 오히려 부질없는 일로 만들어 서로 상응하기 어렵게 한다. 닦아서 각자의 일을 마치려 하지 말라. 옷을 ▣할 때 비로소 ▣▣하면 서둘러도 소용이 없게 된다.
노승이 이곳에는 교묘한 말이 없으니 마치 ▣▣▣한 사람이 음식을 씹는 것처럼 오직 그대들의 물음에 따라 대답할 뿐이다. 그대들이 만약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을 향해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또다시 그대들에게 향상向上한 것을 말해 주어 ▣▣▣ 향해 아무 일 없게 한다 해도 모두가 치달려 짓는 것이니, 그대들에겐 깨달을 때가 없느니라.
너희들은 이름을 쫓아 ▣▣▣ 치달려 짓지 마라. 그리하면 깨달음의 일 또한 그대들이 관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니 모두가 허물이로다. 비록 그렇다 하나 천지를 감싸 ▣▣▣▣▣▣▣▣▣▣▣▣▣▣한 법에로 의지 ▣▣▣▣▣▣.”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이여, 바로 가르쳐 주십시오.”
선사가 “와!” 하니,
스님이 물었다.
“이것뿐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도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질없는 말을 하지 마라.”
선사는 갑술년 4월 6일에 가부좌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초연히 세상을 떴으니, 춘추는 96세요, 승랍은 76세였다.
[종밀 화상] 宗密
하택荷澤의 제자는 자주石慈州의 법여法如요, 법여의 제자는 익주益州의 유충惟忠이요, 유충의 제자는 수주遂州의 도원道圓이요, 도원의 제자가 초당사草堂寺의 종밀宗密 화상이다.
스님의 휘는 종밀이며, 행장을 볼 수 없어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내외가 모두 우러러보았고, 조야朝野가 공경했다. 몇 부의 대승경론의 소초(강의본)와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 1백 권과 예참禮懺 등을 저술하여 지금도 국내에 퍼지고 있다. 대신인 배휴裴休가 매우 공경하여 그의 비문을 지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이다. 시호는 정혜定慧 선사이며, 탑호는 청련靑蓮이다.
언젠가 사史 산인山人이 초당 화상에게 열 가지 질문을 했는데,
첫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 반드시 닦아서 이루어야 합니까? 아니면 아무런 공부도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걸림 없는 것이 도요, 허망을 깨닫는 것이 닦음이다. 도는 본래부터 원만한 것이지만 허망이 일어나면 누累가 된다. 허망한 생각이 모두 다하면 이것이 곧 닦아 이루는 것이다.”
둘째 질문에서 말했다.
“도라는 것이 만일 닦아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곧 조작이니, 세상의 법과 다를 바 없이 거짓되고 진실하지 않아서 이루어졌다가는 다시 무너질 것이니, 어찌 출세간의 법이라 하겠습니까?”
“조작도 역시 업을 짓는 것일 뿐이니 거짓된 세간이라 하고, 작위 없음이 곧 수행이니 진실한 출세간이라 하느니라.”
셋째 질문에서 말했다.
“그 닦는다는 것은 돈(頓:단박)입니까, 점(漸:점차)입니까? 점이라면 앞의 것과 뒤의 것을 잊으리니, 어찌 한데 모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돈이라면 만행이 여러 방법인데, 어찌 한꺼번에 원만해지겠습니까?”
“진리는 깨닫자마자 단박에 원만해지고, 망정妄情을 쉬어 점차로 다하나니, 단박에 원만히 나타나는 것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이 하루 만에 사지가 다 갖추어지는 것이며, 점차로 닦는다 함은 마치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 여러 해 만에 뜻과 힘이 차츰 장대해지는 것 같으니라.”
넷째 질문에서 말했다.
“무릇 마음 닦는 법이라 함은, 마음을 깨달으면 그만입니까, 아니면 다른 수행문이 있습니까? 만일 따로 수행할 부문이 있다면 어찌 남종南宗의 돈지頓旨라 하겠으며, 만일 깨달으면 곧 부처와 같아진다고 하면 어째서 신통 광명을 발하지 못합니까?”
“얼음이 물인 줄 아나 햇볕을 받아야 녹고, 범부 그대로가 진실인 줄 깨달으나 법력에 의하여서 닦아 익히나니, 얼음이 녹아 물이 출렁이면 비로소 물을 대고 씻는 공이 있고, 허망이 다하여 심령이 트이면 비로소 신통과 광명을 발휘하게 되나니, 마음을 닦는 것밖에는 다른 수행의 문이 없느니라.”
다섯째 질문에서 말했다.
“만일 마음을 닦아서 부처가 된다고 하면 어째서 여러 경에서반드시 ‘불국토를 장엄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여야 비로소 불도를 이룬다’ 하였습니까?”
“거울이 맑을 때에 그림자는 천 가지 차별이 생기고, 마음이 맑을 때에 신통은 만 가지로 응한다. 그림자는 불국토를 장엄하게 하는 데 견주고, 신통은 중생을 교화하는 데 견주나니, 장엄은 장엄이 아니요, 그림자 또한 색이 아니니라.”
여섯째 질문에서 말했다.
“여러 경에 모두 중생을 제도하라 말씀하시고, 또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라 하시는데, 어째서 수고로이 제도해야 합니까?”
“중생이 만일 진실한 것이라면 제도하기에 수고롭겠지만, 이미 중생을 중생이 아니라 했으니, 어찌 제도하되 제도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일곱째 질문에서 말했다.
“여러 경에 부처님께서 영원히 계신다 하고, 또 때로는 열반에 드셨다 하는데, 항상하다면 열반에 들지 않아야 하고, 열반에 들었다면 항상하지 않은 것이니, 이 어찌 어긋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온갖 모습을 여읜 것을 부처라 한다 했으니, 어찌 세상에 나시거나 열반에 드시는 실체가 있겠는가? 들고 나는 것을 보는 것은 시기와 인연 때문이니, 시기와 인연이 맞으면 보리수菩提樹 밑에 나타나시고, 시기와 인연이 다하면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드신다. 마치 맑은 물이 무심하되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가 없고, 그림자가 나라는 주체가 없되 바깥 물체의 가고 옴에 의하는 것과 같다. 모습은 부처님 몸이 아니거늘 어찌 부처님에게 들고 남이 있겠는가?”
여덟째 질문에서 말했다.
“어찌하여 부처님을 변화로 태어났다 합니까? 나도 그의 태어남과 같이 태어났거늘 부처님은 남[生]이 없다 하였으니, 남이란 무슨 뜻입니까? 만일 ‘마음이 나기 때문에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법이 멸한다’ 한다면, 이 법에 남이 없는데, 어찌 이름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합니까?”
“화생化生이라고 말한다면 화생은 곧 허깨비요, 공空이다. 공은 남이 없거늘 어찌 난다는 뜻으로 질문하는가?
생멸이 다 사라진 뒤에는 적멸이 참되게 되나니, 이 법의 무생을 확실히 아는 것을 무생법인이라 하느니라.”
아홉째 질문에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도를 이루어 설법하심은 오직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인데, 중생에게 여섯 갈래의 세계가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인간 세계에만 태어나셔서 교화를 펴셨습니까?
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가섭에게 법을 전하셨고, 그 뒤로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여 중국의 7조에 이르기까지 매양 한 사람에게만 전했으니, 일체 중생을 외아들같이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거늘 부처님의 교화는 어찌 두루 하지 못합니까?”
“일월이 중천에 밝아 6합合을 두루 비춰도 소경은 보지 못하고, 엎어진 그릇 속은 밝히지 못하니, 일월이 두루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막힘의 허물 때문이니라.
제도함과 제도하지 않음의 이치도 이런 것이니, 인간이나 하늘을 선택하여 귀신이나 축생을 버린 것이 아니라 결집해서 끊이지 않고 전할 수 있는 곳은 인간의 세계뿐이므로 부처님께서 인간 세계에 태어나셨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가섭에게 전했다가 차례로 한 사람씩 이어간 것은 대체로 그 당시에 교법을 대신한 이를 말하되, 마치 땅 위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같이 했을 뿐이요, 제도를 받은 이가 그 분들뿐이라는 것이 아니니라.”
열째 질문에서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인해 발심하셨고, 무슨 법을 흠모하여 출가하셨습니까?
지금은 어떤 수행을 하시며, 어떤 법미法味를 얻으셨고, 어떤 경지境地에 이르셨습니까?
지금은 마음에 머무르십니까, 마음을 닦으십니까?
만일 마음에 머무르신다면 마음 닦음에 방해가 될 것이요, 만일 마음을 닦으신다면 마음이 흔들려 불안하실 터이니, 어떻게 도를 배운다 하겠습니까?
만일 마음을 한 곳에 안정시켰다면 정성定性의 무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대덕께서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치에 맞게 똑똑히 차례차례 대답해 주소서. 장경長慶 4년 5월에 사제성史制誠은 삼가 묻사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4대大가 망가지는 허깨비 같은 줄 알고, 6진塵이 허공 꽃 같은 줄 알며, 내 마음이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고, 본 성품이 법의 성품임을 보는 것이 발심이다.
마음이 머무를 곳 없음을 아는 것이 수행이요, 머묾이 없되 역력히 아는 것이 법미이고, 법에 머물러 생각을 움직이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어둠 속에 들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머무는 바가 없고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니,
마치 사람이 눈이 있고 일월의 광명이 있어 갖가지 물건을 보는 것 같은데, 어찌 정성의 무리와 같다 하리?
이미 집착한 바가 없거늘 어찌 처소와 계급을 말하랴?
같은 해, 같은 달, 2일에 사문 종밀은 삼가 답하노라.”
사 산인이 이 뒤에도 자주 심지心地에 대하여 토론했는데, 선정에서 나오는 것이 도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신산 화상] 神山
운암雲巖의 법을 이었고, 휘諱는 승밀僧密이다. 그의 행적이 없어 생애를 알 길이 없다.
선사가 동산洞山과 차밭을 매는데, 동산이 호미를 던지면서 말했다.
“나는 오늘 고단해서 힘이 조금도 없다.”
선사가 말했다.
“힘이 없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동산이 말했다.
“기력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라고 말할 참이었다.”
배裴 대부大夫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공양을 올리면 부처님께서 잡수십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마치 대부大夫께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가 이 일을 운암에게 고하니, 운암이 말했다.
“그 사람은 아직 출가하지 못했구나.”
이에 선사가 나서서 물었다.
“화상께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운암이 말했다.
“몇 가지 음식이든지 그저 몽땅 가져오너라.”
그리고는 선사에게 도리어 물었다.
“갑자기 가져왔다면 어찌하겠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발우를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이에 운암이 인가하였다.
어떤 행자가 물었다.
“나고 죽는 일이 큰데 스님께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행자는 언제 죽었었는가?”
행자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한번 죽어봐야겠구나.”
선사가 동산과 행각行脚을 하다가 어느 절에 도착하였는데, 동산은 좌선坐禪을 하고 선사는 졸기만 했다. 이에 동산이 걱정되어 큰 소리로 선사를 불러 선사가 대답하자, 동산이 말했다.
“상좌께서는 알겠소이까?”
선사가 대답했다.
“모르겠소.”
동산이 다시 말했다.
“모르면서 어찌 잠만 자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아는 사람도 잠을 잡니까?”
동산이 말이 없자, 선사가 말했다.
“노끈 한 가닥으로 스스로를 묶는구나.”
선사가 바느질을 하는데,
동산이 물었다.
“무엇을 하시오?”
“바느질을 합니다.”
동산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바느질을 하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낱낱이 그와 비슷하게 합니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만일 낱낱이 있다면 비슷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오히려 동산에게 물으니,
동산이 대답했다.
“대지大地에 일제히 불이 일어납니다.”
조산曺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대지에 큰 불이 이는 것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조산이 말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 큰 불이라면 그럴 때에 한 올은 남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한 올도 남지 않습니다.”
조산이 말했다.
“어찌하여 한 올도 남지 않는가?”
“한 올이라도 남았으면 큰 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조산이 수긍하지 않자 때마침 막邈 상좌가 있다가 말했다.
“바로 그러한 때 오히려 한 올이 남습니다.”
조산이 말했다.
“막 사리는 과연 드문드문 태어나는 현자로다.”
선사가 동산과 함께 촌원村院에 갔다가 불을 쬐던 차에,
동산이 물었다.
“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오?”
선사가 대답했다.
“나오는 곳이 없소이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30년을 같이 수행했건만 아직도 저런 말을 하다니.”
선사가 말했다.
“이치에 합당하면 곧 행할 뿐이오. 노형은 어찌하시겠소?”
동산이 말했다.
“철철 흐르는 것만 보았지 어디서 나오는 줄을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