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아비달마론 하권
4.2. 불상응행(4), 명(名)ㆍ구(句)ㆍ문(文)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등이란, 말하자면 말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마치 지식이 그 대상[義: artha]의 영상을 띠고 나타나듯이 능히 자신의 의미대상을 드러내는 것[能詮自義]을 명(nāma)ㆍ구(pada)ㆍ문(vyañjana)이라고 한다.
즉 이것은 개념[想: samjña]ㆍ문장[章: vākya]ㆍ음소[字: varṇa]의 다른 이름으로, 마치 눈 등의 감관을 근거로 하여 생겨난 안식(眼識) 등은 색등의 대상의 영상을 띠고 나타나, 능히 자신의 대상을 인식하듯이 명 등 또한 그러하다.
즉 말소리[語音: śabda]가 직접 의미대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므로, 불을 말할 때 입을 태우는 법이 없다.
요컨대 말[語: vac]에 의해 불 등의 이름[名: nāma]이 생겨나며, 불 등의 이름에 의해 불 등의 의미대상[義: artha]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다[詮]’고 함은 드러나야 할 의미대상[所顯義: jñeya]에 대해 그것과는 다른 관념이나 지식[覺慧: buddhi]을 낳는다는 말로써, 그것이 바로 의미대상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즉 소리[聲: śabda]는 공간적 점유성을 지니는 물질이므로 그 성질상 대상에 대한 관념이나 지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기론자(記論者: 문법가)가 주장하는 상성(常聲)의 이론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영속적인 말에 의해 대상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상성(常聲)의 이론: 미맘사학파의 성상주론(聖常住論)으로, 그들은 말을 단순히 발성과 함께 생기하는 소리로써의 현상이 아닌 보편ㆍ객관적 실재성을 지닌 형상(akṛti)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그것이 각각의 음소로 발성됨과 동시에 소리로서 현현하여 우리의 지각상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땅히 이 같은 명ㆍ구ㆍ문이라고 하는 세 가지 존재를 배제하고서는 능히 의미대상을 드러낼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리[聲]ㆍ이름[名]ㆍ의미대상[義]ㆍ지식[智] 등 네 가지 존재는 마치 동일한 상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명이란 개념을 말하며,
구란 이를테면 ‘모든 악을 짓지 말라’ 등의 게송처럼 그 의미 체계를 완전하게 드러낸 것을 말한다.
세간 일반에서도 역시 ‘데바닷타는 흰 소를 몰고 와서 우유를 짰다’ 등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란 바로 아(a)ㆍ이(i) 등의 음소를 말한다.
이 세 가지는 각기 개별적 존재로, 같은 종류의 존재를 모아서 신(身: kaya)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선(大仙)께서도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라. 여래는 세상에 나와 바로 명신ㆍ구신ㆍ문신이 있음을 능히 아는 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4제ㆍ5온ㆍ12처ㆍ18계ㆍ4사문과 연기법 등의 명ㆍ구ㆍ문신을 안다는 뜻이다.
또한 세존께서는
“여래는 이러저러한 명ㆍ구ㆍ문신을 획득한 자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곧 그렇고 그러한 불공불법(不共佛法)에 대한 명ㆍ구ㆍ문신 등을 획득하였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이 가운데 그 뜻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불공불법(不共佛法): 부처님만이 갖는 덕으로,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 등 18불공법을 말한다.]
모든 행구의(行句義)는 이에 따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