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장엄경론 제5권
12. 술구품 ②[2]
[무생인을 구하는 것]
이미 자기의 성품이 없음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무생인(無生忍)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본래와 진실과
이상(異相)과 자기의 모양[自相]과
자연과 다름없음[無異]과
염오와 차별의 여덟 가지이다.
[釋] 여덟 가지의 무기법(無起法)이 있으니 이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이른다.
첫째는 본래무기(本來無起)이니 생사가 본래 일어남이 있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둘째는 진실무기(眞實無起)이니 법에는 먼저와 뒤의 다름이 없음으로 말미암으며 그것은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상무기(異相無起)이니 옛 종처(種處)가 아님으로 말미암으며 그것은 다시 일어남을 얻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상무기(自相無起)이니 분별의 성품은 필경에 일어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자연무기(自然無起)이니 그것은 의타(依他)의 성품은 자기의 성품이 일어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무이무기(無異無起)이니 그것은 진실의 성품에는 다른 체가 있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염오무기(染汚無起)이니 그것은 멸진정(滅盡定)의 지혜를 얻었을 때에는 염오의 여러 견(見)을 다시 일으키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차별무기(差別無起)이니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신에는 차별의 일어남이 있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무기법을 무생법인이라고 이른다.
[일승을 구하는 것]
이미 무생법인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일승(一乘)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법과 무아와 해탈이
동일함과 성이 다름과
두 가지의 뜻을 얻음과 변화를 얻음과
구경으로 일승(一乘)을 말한다.
[釋] 이 가운데 여덟 가지의 뜻으로 부처님께서 일승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법이 같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문들의 사람이 다른 법계가 없으며 나아가는 것이 동일하기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는 무아가 동일하다.
이른바 성문들의 사람이 동일하게 무아의 체이기 때문이며 나아가는 것이 동일하기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는 해탈이 동일하다.
이른바 성문들의 사람이 동일하게 혹장(惑障)을 멸하였으며 출리(出離)함이 동일하기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넷째는 종성(種性)이 다른 것이다.
이른바 부정 삼승(不定三乘)의 종성을 가진 사람들을 대승으로 끌어들이려고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얻은 것이 동일하게 자기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뜻을 얻은 것이 내가 얻은 것과 같고
일체의 중생들도 또한 내가 얻은 것과 같기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섯째는 성문들이 부처님의 뜻 짓기를 얻은 것이다.
이른바 여러 성문들이 예전에 큰 보리의 무더기를 행했을 때에 결정코 부처님이 될 성품이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호(加護)하셨기 때문이요, 뛰어나게 섭수하셨기 때문에 스스로 부처님의 뜻 지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앞과 뒤의 서로 이음에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일곱째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처님께서 성문으로 나타내 보이시어 열반에 드신 것은 교화하기 위함이었다.
부처님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량없고 수도 없이 성문승(聲聞乘)으로서 열반을 나타내 보였다”고 하셨다.
그것은 이 방편을 떠나서는 다시 방편으로 소승의 근기를 교화하여 대승에 들어가게 할 수 없으니 이치가 참으로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덟째는 구경(究竟)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처님의 체에 이르면 다시 더 갈 곳이 없으므로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곳곳의 경전 가운데서는 이 여덟 가지의 뜻으로써 부처님께서 일승을 말씀하셨지만 또한 삼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 만일 그러하다면 다시 어떤 뜻이 있기에 갖가지의 뜻으로써 1승을 말씀하셨습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성문들을 인접(引接)하고
여러 보살들을 섭주(攝住)하려고
이 두 가지의 정하지 않음을 써서
모든 부처님께서 일승을 말씀하셨다.
[釋] 갖가지 뜻이라고 함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성문들을 인접하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여러 보살들을 섭주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만일 여러 성문들이 자기 승(乘)에서 종성이 정하지 못한 이를 부처님께서 그 사람을 인접하여 대승에 들어가게 하려고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요,
또한 여러 보살들이 자기 승에서 정하지 못한 것을 부처님께서 그 사람들을 섭주해서 대승에서 퇴전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성문에 두 가지 부정(不定)이 있으니
견의(見義)와 불견의(不見義)이다.
견의하고서 애욕을 끊지 못한 이와
애욕을 끊은 이가 함께 연근(軟根)이다.
[釋] 성문의 부정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견의승(見義乘)으로서 제(諦)를 보고 대승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둘째는 불견의승(不見義乘)으로서 제(諦)를 보고서 대승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견의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단애(斷愛)로서 그가 이미 욕계(欲界)의 욕심을 벗어났기 때문이요,
둘째는 부단애(不斷愛)로서 그가 아직 욕계의 욕심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견의의 두 사람은 모두 연품(軟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근기가 둔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둘이 다 성인의 도를 얻은 사람으로서
여러 유(有)에 회향하고
회향은 부사의(不思議)이니
두 생(生)이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
[釋] 이와 같이 견의에서 성인의 도를 얻은 두 사람이 능히 성인의 도로써 여러 유에 회향하면 이와 같은 회향을 부사의(不思議)라고 이른다. 그것은 성인의 도로써 회향하여 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은 두 가지의 생으로 서로 응한다.
[문] 어느 것을 두 생이라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원력(願力)과 화력(化力)으로
하고 싶음을 따라 생을 받지만
원력은 애욕을 끊지 못하고
화력은 아나함(阿那含)에 머문다.
[釋] 두 생이라 함은, 하나는 원자재(願自在)의 생이요,
또 하나는 화자재(化自在)의 생이다.
처음 사람은 아직 욕심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요,
뒤의 사람은 아나함에 머무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을 어찌해서 연품이라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두 사람이 열반을 즐겨서
자주자주 스스로를 싫어하지만
둘을 다 아둔한 도라고 말하니
오래도록 해야 보리를 얻는다.
[釋] 이 두 사람은 먼저 열반을 즐기는 마음이 있다.
그러기에 항상 스스로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그 도(道)를 아둔한 도라고 말하니, 그것은 위없는 보리를 능히 속히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지을 것을 판단하지 못한 사람은
태어나도 부처 없는 세상에 있게 되지만
선(禪)을 닦아 변화하게 되면
점차 큰 보리를 얻으리.
[釋] 지을 것을 판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함은, 이른바 4제(諦)를 보고도 아직 애욕을 끊지 못하여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지 못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서는 스스로 부지런히 선을 닦아 변화하게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 변화를 의지하여 닦으면 점점 다시 더 위없는 보리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세 지위는 부처님께서 「승만경」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성문이 다음에는 연각을 얻고 뒤에는 부처님이 됨을 얻는 것은 대비(大譬)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첫째는 먼저 4제의 위치를 보고,
둘째는 부처님이 없는 곳에 태어나지만 스스로 능히 참선을 닦아서 생신(生身)을 버리고 화신(化身)을 받으면,
셋째는 마땅히 위없는 보리를 얻을 것이다.
[다섯 가지의 명(明)을 구하는 것]
이미 일승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다섯 가지의 명(明)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이 다섯 가지의 명(明)을 익힘은
통틀어 일체종지를 구함이다.
해(解)와 복(伏)과 신(信)과 치(治)와 섭(攝)으로
다섯이 되니 다섯을 또한 따로 구한다.
[釋] ‘보살이 다섯 가지의 명(明)을 익힘은 통틀어 일체종지를 구함’이라 함에서
명(明)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명(內明)이요, 둘째는 인명(因明)이요, 셋째는 성명(聲明)이요, 넷째는 의명(醫明)이요, 다섯째는 교명(巧明)이다.
보살이 이 다섯 가지의 명을 배우는 총의(總意)는 일체종지를 구하기 위함이니 만일 다섯 가지의 명을 부지런히 익히지 않으면 일체종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다섯 가지의 명을 배우는 개별적인 뜻은 무엇입니까?
[답] 해(解)와 복(伏)과 신(信)과 치(治)와 섭(攝)의 다섯 가지이다.
다섯 가지를 따로 구하는 뜻은, 그 순서대로 볼 때
내명을 배워 자기의 해탈을 구하기 위함이요,
인명을 배우는 것은 외도들의 집착을 조복하기 위함이요,
성명을 배우는 것은 남이 믿도록 하는 것이요,
의명을 배우는 것은 다스리는 방법을 위함이요,
교명을 배우는 것을 일체의 중생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