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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5일 주일메시지 ubf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말씀 / 누가복음 9:37~50
요절 / 누가복음 9:4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ubf 우리는 6.25 때 탱크가 없어서 초기에 질 수 밖에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조총이 없어서 전쟁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학생때, 수양회 앞두고 모든 형제자매들이 다 센터에 와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 모임에 결석하는 사람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ubf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고, 문제의 원인이 명백하게 외부에 있다고 하더라도 해법은 대부분 나에게 있습니다. 능력과 관계와 믿음 생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비밀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의 깊은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ubf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산 아래에는 예와 다름 없이 큰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큰 양무리들이 긴 시간동안 산 아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산에 예수님과 함께 가지 못하고 아래에 있던 아홉명의 제자들이 난처한 상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ubf
ubf 38절에서 40절을 보십시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
ubf 무리들 중에 절실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귀신들린 아들로 인하여 심정이 타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들을 고쳐 달라고 왔는데, 전에는 귀신을 내쫓고 능력을 행하였던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자 속이 상하고 마음이 다급한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큰 소리로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ubf 4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이 말씀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라는 뜻입니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이 말씀은 "내가 얼마나 너희의 성화를 참으리요" 라는 뜻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은 요동을 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성화가 대단합니다. ubf
ubf 예수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오라 하시자 그 아비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하였습니다. 이에 주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비에게 주셨습니다. ubf
ubf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에는 귀신을 쫓아냈으나 지금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전에는 예수님 가까이 계시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쫓아내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예수님은 어찌해서 언제나 영적 권세로써 악한 영들을 제압하시고 내어 쫓으시는 것입니까? 다른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이 사건 이후에 "우리는 어찌해서 못 쫓았습니까? " 여쭙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말씀하십니다.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고 삐뚤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고 삐뚤어지게 된 것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ubf
ubf 산 아래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왜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산에 올라 가셨을까?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산에서 세 사람과 무엇을 하셨을까? 인간적인 조바심을 가졌습니다. 앙큼한 요한과 야고보가 또 무슨 작전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의심되고 화가 났습니다. 이들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습니다. 이들은 인간적인 생각 하느라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남겨두었지? 나는 왜 안데리고 가신거지? 이들은 자기를 생각하느라 기도가 막혔습니다. 자기에 깊은 집착을 가졌을때, 기도가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기도를 막히게 합니다. 기도하지 못한 결과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운 되었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허망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권능을 받아서 악한 영에 사로잡히고 질병에 고통하는 양들을 고쳐줄 수 있었고 도와 줄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여 망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남도 못돕고 자신도 무기력하게 되었습니다. ubf
ubf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들어 무기력하게 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예수님께서 다시금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듣기 싫은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틀어막고 않들으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영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상 메시야 왕국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지상메시야 왕국에서 한 자리 차지할 인간적인 생각을 하느라 경쟁심에 사로잡히고 시기심에 사로잡혀서 기도하지 못하였고 기도하지 못하여 믿음이 없으며 믿음이 없어서 아무런 능력도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귀에 담아 두라고 하십니다. 마음으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영접하여 마음 중심으로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감당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시겠다 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을 얻으시고 승리하시는 메시야의 길을 가시겠다 하십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십자가, 예수님께서 얻으시는 부활을 영접할 때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 우리의 스스로 비참해지는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십자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기는 십자가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 온 인류에게 임하는 구원과 영광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ubf
ubf 45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아직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묻기 조차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시는 것이 조금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9일전에는 십자가를 말씀 하시자 강하게 반발하고 책망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반발은 수그러 들었습니다. ubf
ubf 예수님은 그동안 기도의 투쟁을 감당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를 영접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이기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감당하십니다. ubf
2.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내면성
ubf 46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십자가와 고난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 중에는 여전히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크냐 하는 것은 누가 서열이 높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의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로마를 몰아내고 통일 다윗왕국과 같이 예수님이 임금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제자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 누가 총리가 될 것인가? 누가 장관으로 입각할것이며 누가 비서실장이 되며 누가 왕수석 실세로 떠오를 것인가? 제자들은 지금 그런 문제로 인하여 논란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땅위의 권력을 쟁취할 수 있게 해주시는 권력의 문, 권력의 키였습니다. ubf
ubf 제자들은 땅위에서 부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하여 갈등하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땅 위의 것을 소망하는 자들은 언제나 갈등을 유발합니다. 땅 위의 것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피곤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일삼습니다. 땅위의 권력, 사람의 사랑과 인정, 이런 것을 얻고자 할 때 화평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로 멀어집니다. ubf
ubf 47,4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ubf 2000년전 유대사회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린이는 자기중심입니다. 어린아이는 끊임없이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을 배려하거나 어린 아이가 어른 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며 큰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오히려 아동을 노동하게 하고 아동을 학대 하였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는 보살펴 주고 용납하고 감당해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사람이란 연약한 존재에게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는 사랑의 내면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담이 되고 짐이 되는 사람을 사랑해주고 오래 참아주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도 영접하고 함께하는 내면성있는 사람입니다. ubf
ubf 예수님은 또 모든 사람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자라 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을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약해보입니다. 겸손한 자람은 다른 사람이 무시 해도 화 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치열한 세상에서 자기 밥그릇도 찾아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제자들은 이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힘의 철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약한 것은 죄악이었습니다. 스스로 작은 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약자로 보이게 되는 겸손함은 생각지도 말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ubf
예수님께서 큰 자로 인정하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추구하는 큰 자는 권력과 부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큰 자는 인격과 내면에 있습니다. ubf
ubf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큰 자인가 가장 좋은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을 낮추시되 땅끝 까지 낮추셨습니다. 연약한 한 아기의 몸을 입고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마굿간에서 나시고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냄새나는 많은 죄인들을 모두 영접하셨습니다. 문둥이의 몸에 손을 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손 마른자나 중풍병자나 귀신이 들려 소리지르는 자나 영접하시고 그들을 고치며 섬기셨습니다. 비난받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나 갈릴리 사람이나 이방사람이나 모두 영접하시고 믿음으로 나온 자들을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결단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이나 순종치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가는 사람조차도 불쌍히 여기시고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연약한 베드로도 감당하시고, 예수님을 파는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결국 자기 목숨을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죄인중의 하나가 되어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만유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세우셨습니다. 만왕의 왕 주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이 다 예수님앞에 무릎꿇게 하셨습니다. ubf
ubf 제자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영접하지 못하고 갈등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이 있었고, 자신을 높이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높아져야 하고 내가 영광 받기 원하였기 때문에, 섬기는 종 예수님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동고동락하는 같은 제자들을 경쟁자로 보았습니다. 내가 존중받고 내가 인정받고 내가 높임받고 내가 영광 받아야 겠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내면은 늘 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배우며 극복하여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격과 내면이 성숙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경쟁심을 벗어나지 못할 때,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ubf
예수님을 바라보고 섬김과 겸손의 종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고 땅 끝까지 낮아 지셨으나,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ubf
ubf 그렇다면, 우리가 꼭 이렇게 겸손과 섬김의 내면성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나의 타고난 본성 그대로 살면 안되는 것입니까? 나를 바꾸지 말고 그냥 나 그대로 사는 것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을 배울 때, 우리는 먼저의 우리의 내면에 ‘평화’를 선물로 받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불합리를 고집하고 부당한 결정 아래서 괴로워하는 후배들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겪는 불합리와 부당함에 좌절하거나 저항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일을 하라고 권면해주었습니다.
나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은 상처받고 좌절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길을 수정하며 제가 권면한 옳은 길에서 이탈하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입니다. 후배들을 불합리와 부당함으로 압박한 사람이 도리어 저더러 불신을 심었다고 주장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행해온 일이나 그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저의 마음에는 ‘평화’가 임할 수 없었습니다. 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지, 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지, 그러고서도 왜 나에게 작은 혐의라도 있으면 그것을 확대하고 재생산 하는지, 따지고 싸우고 싶었습니다. 이럴 때 싸우면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다고 따지지 않고 싸우지 않고 있자니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땅 끝까지 낮아지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평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섬김의 종 예수님을 바라볼 때, 다른 사람이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배워서 섬김을 행할 때, 그런 사람을 찾고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왔습니다. 요즘 기업들은 인성면접을 실시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더라도 사람과 싸우는 사람,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무시하는 사람을 탈락 시킵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부족한 사람도 섬기는 사람을 찾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이런 사람을 원하고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왔습니다.
셋째로, 이 땅에서 일 많이 한 것 하늘나라에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큰 업적을 세운 것 하나님 나라에서 별로 쓸 것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유명해진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최근 유명한 걸그룹 톱 가수가 안중근의사 사진을 보고 딴소리 했다가 비난을 받았습니다. 안중근 처럼 나라를 구해도 잊혀집니다. 테무진 처럼 수많은 나라를 정복해도 다 지나간 옛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세월따라 사람들은 기억 저편으로 옛사람과 옛일을 던져 버리고 잊어버립니다. 기억만 희미 해지지 않습니다. 찬란하고 위대한 건물도 사라지고 기록도 없어집니다. 인간의 손으로 이룬 것은 모든 것이 허무 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귀하게 쓰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된 우리의 내면성, 우리의 섬김과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워서 서로 섬기고 서로 사랑하는 인격과 내면성을 덧입는 것은 가장 귀한 보배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ubf
ubf 만약, 누가 높은가 다투고 경쟁한 제자들처럼 이 땅에서 영광얻고 높임받기 원하느라 관계가 파괴되고 갈등하며 살고 섬기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잃어버리며 사는 것입니까! ubf
3. 금하지 말라
ubf 49절에서 56절은 요한과 다른 제자들의 편협함이 드러난 사건들입니다. 49,50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어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 금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12제자 그룹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ubf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이 떠나가는데도 이를 기뻐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ubf 이 모습은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사람을 못살게하는 악한 영이 떠나가는 것보다도 자기들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항한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 입니다. 요한이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금하게 한 것은 지극히 편협하고 교만한 일입니다. ubf
ubf 양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활발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소식이 들려도 그것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가질 때, 예수님의 이름이 높임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편협함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지 못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ubf
ubf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가? 나를 챙겨주지 않는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은 본인 자신의 능력도 상실하게 하였습니다. ubf
내가 더 높아져야 하고, 내가 영광 받아야 한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관계를 파괴하고 갈등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ubf
나를 통해서 예수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까지 영광받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ubf
우리는 북한 공산집단과 싸우기 이전에 먼저 나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대입경쟁과 성적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인간적인 생각을 항상 이기고자 하여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을 극복하지 못하면, 능력도, 평안도, 관계도 상실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까지도 높여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ubf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 예수님 이름 중심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ubf
ubf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간적인 생각이 능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간적인 생각이 형제를 영접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갈등하게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간적인 생각이 예수님의 이름까지 높여 드리지 못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앞서 가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자기를 뛰어 넘어서 이 시대의 양들을 돕고 평안과 은혜를 선물로 받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넓은 인격과 내면성을 가져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 부끄러움 없는 천국 시민으로 복락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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