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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탄 제1강 메시지
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3 :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12월 25일은 예수님의 생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뜻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서 오신 날짜가 또 하나의 우상이 될 까봐 하나님께서 숨기셨습니다. 그것을 로마 교회에서 12월 25일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일로 정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염려 하신 대로 오늘날 성탄절은 변질되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를 알고자 하기보다 모텔 비용을 평소보다 4배를 더 줘도 방을 예약 할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성탄 1, 2, 3강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성탄절을 맞아야 할지 깨닫기를 기도 드립니다.
I. 그 나라가 영원하리라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으로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 달째 되는 때였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을 방문하였습니다. 요 1:46을 보면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구원 받을 수 없는 지옥의 불쏘시게 쯤으로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방인의 피가 많이 섞인 나사렛지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멸시했습니다. 그런 나사렛 지방에 가브리엘이 온 이유가 무었입니까?
27~29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찾아가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인사는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나 선지자가 받았던 인사입니다. 이 인사를 어린 처녀인 마리아가 듣고 놀라 천사가 나에게 이런 인사를 하는 이유가 무인가 생각 하였습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마리아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 당시에 정혼한 여인의 부정은 사형으로 처벌되었습니다. 혼전의 성관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법이 이런데 이것이 어떻게 마리아에게 은혜가 됩니까?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비천함으로 멸시 받는 동네에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오신다고 천사는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자는 위대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큰 자 되십니까?
첫째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 모세의 위대함, 엘리야의 위대함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 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위대 했어도 인간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구 십니까?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에 의해 태어나시지만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골 1:15~20절을 보면 예수님의 신성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이십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인격이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진정한 위대성은 인격으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우리 인생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연약한 자들과 부족한 자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그들보다 아래로 낮아 지셔서 죄인들을 섬기시며 감당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병자들이라도 다 영접해주시고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라고 잘해주시고 가난한 자라고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많이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아픈 자나 건강한 자나 모든 사람을 다 영접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인격과 온유한 내면과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셋째 예수님께선 전인류를 구원 하시기 위해 오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은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대가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약속 하십니다. 창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장 17,18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 7장 13절과 18절을 통해서 다윗왕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2절에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의 뜻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인 다윗왕의 후손중에 메시야가 나오리라는 약속의 성취이고 반대로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의 정통성을 증명 하는 구절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야이자 왕으로 오셨지만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에게 떠받들어져서 높아지지 않으셨습니다. 지배하기 위해 백성들의 피를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백성들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온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전 인류를 구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에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시골 처녀인 마리아에게 천사가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위대 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하였음에도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라고 천사가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멸시 받고, 볼품 없고, 힘들어지고 하는 이런 인간적인 개념들이 그곳에 예수님께서 임하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부정한 조건들은 사라지고 큰 축복 많이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성탄절 되시어 큰 축복받기를 기도 드립니다.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야곱의 집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람에 집단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 받은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인간의 통치자는 길어 봤자 40~50년 정도 통치 합니다. 왕이 죽기 때문입니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 황제는 불노 불사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수은 중독으로 39세에 죽고 맙니다. 인간의 통치는 영원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셨고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통치를 받는 우리도 무궁해 질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없이 어떻게 아이를 날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는 마리아의 물음에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잉태 할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이 앞 말씀에서 계속해서 마리아의 처녀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27절에서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9절에서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34절 ‘남자를 알지 못하니’ 이렇게 마리아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의 고리를 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죄 없으심으로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동정녀를 통해서 오심으로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엘리사벳은 생리가 끊긴 할머니였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심으로 마리아가 믿음의 확신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자신이 하나님의 여종임을 고백합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여종을 ‘둘레’로 표현 하였습니다. 둘레는 하인이 아닌 노예를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과 육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 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임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자신에게 미 치게 될 온갖 비난과 돌팔매질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역사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심정을 이 말로써 표현하였습니다. 성령은 믿음과 순종의 레일을 타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와 같이 믿고 순종함으로 성령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의 역사를 체험 할 수 있습니다.
II. 능하신 이가 큰일을 행하셨으니
39~40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마리아는 사라갸의 집으로 갔습니다. 들어가서 이미 6개월이 되어 배가 불러 오른 엘리사벳을 문안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여 자신에게 닥친 사회적 어려움에 도움을 받기 위하여 엘리사벳을 찾아갔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38절에서 보여준 믿음을 보면 어려움에 대한 도움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으러 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친족 엘리사벳도 이적적 은혜에 의해 임신하였다는 소식을듣고 그 기쁨과 놀라움을 나누고 싶었을 것입니다.
41~45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유대 사회에서 자식이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이고 집안을 말아먹은 나쁜 여자였습니다. 이런 고난 앞에서 엘리사벳은 믿음으로 오랫동안 기도함으로 세례 요한을 잉태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오랫동안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성령의 계시로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때문에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 했음에도 동정이 아닌 축복과 ‘내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와 같은 표현으로 경배 하였습니다.
46~55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46~55절은 ‘마리아의 찬가’라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엘리사벳을 통해 마리아는 자신이 잉태한 아이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인 받았으며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하여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럼으로 마리아는 자신의 온 영혼에서 우러나는 찬양을 노래 할 수 있었습니다.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는 말은 목수의 아내라는 낮은 사회적 신분과 자신 또한 주님 앞에서 비천한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을 만한 별다른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데 대한 감격과 겸손을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자신을 표현 했던 ‘여종’에 이어서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는 말에서 다시 한번 마리아의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마리아와 같이 비천한 사람들 입니다. 우리의 영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긍휼로 의를 베푸사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으로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식으로 높여주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마리아는 권능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51~53절에서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4절에서 마리아는 이민족에 의해 지배를 받고 400년 동안 선지자 조차 없는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55절에서 마리아는 믿음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셔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36절에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 6개월 이었습니다. 이 이후에 마리아가 방문하여 3개월을 함께 보내었으니 엘리사벳은 임신 9개월이 되어 해산할 시기가 임박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이 고령임에도 해산이 임박하여 거동이 힘들어지지 전까지 마리아에게 말씀을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으로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캠퍼스 양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20대에게 잔인한 시대 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코로나로 인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수입이 줄거나 직업을 잃고 있다고 합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세상에 나와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성공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되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가운데서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다가 취업을 포기하고 재미를 추구하며 미래를 외면하고 애써 잊으려 하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사기에서 율법을 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짓던 것처럼 많은 양들이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모르고 살다가 결국 영원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비천하게 합니다. 우리가 비천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성과 의지로는 비천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방황하고 죄짓는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천한 갈리리 나사렛의 여자 마리아에게 임하셨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목수 요셉의 가정에 임하셨습니다. 메시야를 잉태할 사람을 왜 비천한 동네에서 고르셨을까요? 하나님의 역사는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주님께서는 비천한 자를 부르시고 복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자신이 부자이고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오만하고 교만한 자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합니다. 때문에 주님과 상관 없는 사람이 될 것이며 어떠한 주님의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교만한 자들에게 성탄은 그냥 지나 가는 날입니다. 겸손한 자들이어야 성탄은 위로요 축복의 날입니다. 비천한 자들에게 성탄은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비천한 시골 처녀의 몸으로 오셔서 평생 낮은 곳에서 섬기면서 사셨습니다. 겸손과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 하셨습니다. 지극히 큰 자이신 예수님께서 볼품없는 외모의 육신을 입으시고 끼니도 자주 거를 정도로 가난하게 사시고 머리 둘 곳 없이 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우리 또한 낮은 곳에서 섬기면서 겸손하게 살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시고 우리는 의인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가시고 대신 우리는 의로운 자리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구원함을 입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영원한 치세 아래에서 무궁히 지속 될 것입니다.
성탄은 겸손과 희생을 통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겸손과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탄을 누리려면 우리도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탄의 의미와 가치를 보았다면 우리도 낮아짐과 희생과 겸손을 배워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섬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낮아져서 힘들고 어렵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비천한 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 영원토록 나를 다스려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허이삭
첫댓글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한 해여서 더욱 특별한 성탄이 되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