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 금린담
급류를 타고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염수하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깊은 계곡에서 용솟음쳐 나와 초승달모양의 긴 담을 이룬다. 마치 베일에 가려진 숙녀마냥 가벼운 발걸음으로 염촌을 감싸 흘러 지난다.
눈부신 아침 해를 한 몸에 받아 안을 때거나 석양의 아름다운 빛을 온몸으로 만끽할 때면 마치 표면에 부드러운 비단이 깔려있는 듯 금빛으로 눈부시고 아로아나가 헤엄치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여 염촌 사람들은 이 담을 금린담이라 부른다.
염촌은 10여 호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고 사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청기와에 까만 목질구조 집들은 마치 성냥갑마냥 산허리에 듬성듬성 이루어진 평지에 빽빽이 널려 있다.
촌 앞에는 다락밭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산길을 타고 불어오며 금색 물결이 출렁이는 논밭은 흡사 금싸라기가 흘러내리는 듯하다.
황금물결을 따라 보일 듯 말 듯한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담 변두리에 이른다. 담 변두리에는 반듯한 청석판이 놓여있고 석판은 풍상고초를 거쳐 반듯한 나머지 거울면처럼 알른거린다.
긴 머리를 드리운 아가씨들이나 마을 아낙네들이 석판을 찾아 옷을 빨기도 하고 나물을 다듬어 깨끗이 헹구기도 한다. 망치 두드리는 소리, 이야기꽃 피우는 웃음소리 등이 석판 주위에 울러 퍼져 은은한 사람냄새 풍긴다……
많은 소리들이 합쳐져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한 곡의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까지 더해지면 그 어떤 음악대사도 만들어내지 못할 아름다운 하모니가 탄생한다.
여름과 가을이 되면 금린담은 아이들에게 더없는 놀이터가 되어준다.
하학하고 나면 우리 대여섯 남학생들은 한달음에 담으로 달려갔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추자의 영솔 하에 홀랑 벗은 채 석판 위에 서서 구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추자는 물장구를 제일 잘 쳤다. 그는 물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긴 시간동안 물속에서 숨바꼭질 하듯 힘 좋은 메기를 잡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물 위에 누운 채 둥둥 떠 있었는데 마치 편안한 안방에 누운 듯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넘치는 재능으로 하여 그는 당연히 우리들 중에 “최고”가 되었다.
“뛰어!”
추자가 외쳤다.
우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어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잠수 시합을 하기도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고요하던 금린담은 삽시에 웃음소리로 들끓었다.
실컷 물장구를 치고 나서 강기슭에 기어올라 모래 위에 누워있었다. 하늘에서 자유로이 날아예는 제비와 참새들의 모습에 푹 빠져있었고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날이 이슥히 저물어서야 부모님들의 독촉에 못 이겨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준 금린담을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이가 물장난을 치다가 물속에서 그만 다리에 쥐가 올랐다. 다행히 헤엄을 잘 치는 추자가 그를 물 밖으로 내왔으며 석이는 집에서 며칠간 휴식하고 나서야 회복될 수 있었다.
그 후 어른들은 금린담에는 천 년 넘게 산 사람을 해치는 자라가 숨어있다면서 금린담에서 수영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말에 겁 먹을 우리들이 아니지 않는가?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린담 상류에 댐이 건설되면서 염수하 물을 발전소에 끌어들여 금린담은 말라붙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정말 기적같이 말라붙은 금린담에서 얼굴크기만 한 자라를 잡기도 했다. 그 후 추자가 큰 병에 걸려 앓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는 물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 나무: 은행나무
염촌어구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몇 살일까? 마을에서 제일 연로하신 어르신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당시 서왕모가 염촌 상공을 지날 때 조심하지 않아 은행나무 열매를 떨어트린 것이 뿌리를 내리고 싹이 텄다고 했다.
나와 추자는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서왕모는 언제 우리 마을을 지나갔던 거예요?”
어르신은 우리들의 다급한 물음에 한 만 년쯤인가 될 거라고 둘러댔다.
“그럼 이 나무가 만 살이나 된다는 얘기인가요? 세상에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도 있나요?”
나와 추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에 잠긴 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어르신의 말씀을 다 믿을 수 없었지만 어른 몇 명이서 둘러싸도 겨우 둘러싸일 만 한 나무는 만 살은 아니어도 천 살은 가까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나무 등허리쯤 되는 곳에 커다란 새둥지가 있었는데 한 쌍의 까치 부부가 자리 잡고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은행나무 위에서 쉴 새 없이 짹짹거렸는데 조용한 마을에 행운을 가져다주고 있는 듯했다. 6월이 되면 자녀들은 자리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까치 부부는 은행나무가 아쉬워서인지 염촌을 떠나기 싫어서인지 꿋꿋이 남아 보금자리를 지켰고 여전히 즐겁게 짹짹거렸다. 염촌마을 사람들은 자연히 까치 부부를 마을 일원으로 생각해 주었고 그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은행나무는 나이가 많았지만 여름이면 정기가 넘치는 청년마냥 푸르싱싱한 가지를 쭉쭉 뻗었고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작은 열매는 가을이 돌아오자 엄지손가락만큼 커졌다. 연푸른색 옷을 벗어던지고 금색 옷을 갈아입었는데 이는 열매가 완전히 성숙되었음을 의미했다.
촌장은 나뭇가지가 파괴될 수 있으니 절대 막대기로 가지를 쳐 열매를 따서는 안 된다고 했다. 촌장의 말이 맞았다. 수많은 시간의 풍상고초를 거쳐 자란 은행나무가 이렇게 튼실한 열매를 선물해주었는데 어찌 괴롭힐 수 있을까. 열매가 익어 절로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열매 주으러 나오세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촌장은 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삽시에 은행나무 주위에 모여들었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나뭇잎은 거센 바람이 불어치자 우수수 떨어졌다. 한 차례의 거센 바람이 지나가자 땅에는 은행나무열매가 두텁게 깔려있었다.
열매를 다 줍고 나서 집집마다 한 광주리 남짓한 은행나무열매가 주어졌다. 껍질을 벗기고 나서 열매를 햇빛에 말려 팔거나 요리할 때 넣으면 풍미가 흘러넘쳐 마을 사람들이 즐겨먹었다.
우리들은 은행나무 주위에서 게임을 하다가 열매를 줍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은행나무 주위를 떠날 줄 몰랐다. 초겨울이 다가올 때쯤 우리는 그동안 모은 열매를 판 돈으로 만화책을 사기도 하고 사탕을 사먹기도 하였다. 만화책 속의 아름다운 세상이나 달콤한 사탕 맛을 알게 된 것도 은행나무열매 덕분이었다.
엄동설한이 왔음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자 은행나무도 하얀 눈옷을 갈아입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한 폭의 유채화 같은 절경을 방불케 하였다.
하지만 마을에 고속도로가 통하면서 목질구조의 집들이 신식아파트로 변하고 마을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수림 속의 나무들이 채벌되어 트럭에 실려 나갔다. 은행나무는 변화되는 마을의 모습에 슬픔에 잠긴 것인지 숨 막히는 먼지와 소음에 참기 힘들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더니 나중에는 앙상히 말라버렸다.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던 까치 부부도 멀리 떠나가 버렸다.
그 사람: 어르신
어르신은 세월의 풍상고초를 거쳐 주름살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영준하고 멋진 모습이 남아있었다.
어르신은 귀공자의 신분으로 태어났는데 당시 하인만 60여 명 되었고 외출할 때면 하인들이 들어주는 으리으리한 가마에 앉아 돌아다녔는데 그 위풍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15살 나던 해 토비들이 그의 집을 습격해 재산을 몰수했고 부모님들은 물론 형제자매들마저 모두 암살했다. 당시 그는 현성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요행 목숨은 건졌지만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을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늘땅이 맞붙는 변화를 겪고 나서 어르신은 혼란한 사회의 풍모에 겁에 질린 나머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해방 후 어느 해인가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날이었다. 할아버지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눈에 덮여 추위에 떨고 있는 건장한 사내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그가 당년의 귀공자임을 발견하고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구들 목에서 한참동안 몸을 녹이고 차를 마시고 나서 사내는 간신히 눈을 떴다.
어디서 무엇 하다 이렇게 되었냐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사내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마을 빈 집을 그에게 빌려주었고 사내는 자리를 잡고 생활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어르신이 된 그는 짬짬이 얼후를 켰고 고즈넉한 마을에는 은은한 얼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후 마을은 더 이상 단조롭지 않았고 초저녁이 되면 어르신 주위에 모여들어 얼후 소리에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와 얼후를 배웠고 나와 추자도 유행에 동참했다. 그는 항상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들과 어울려 지냈고 내심 있게 배워주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녹음기가 유행되었고 어르신 주위는 날이 갈수록 쓸쓸해졌다. 밤이 되면 녹음기 소리와 함께 처량한 얼후 소리가 은은히 섞여 들려왔다.
어느 하루인가 어르신의 얼후 소리가 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의 집을 찾아가보았더니 그는 이미 시체가 되어 굳어있었다. 그의 옆에는 땀에 절어있는 선 끊긴 얼후가 놓여있었다.
나와 추자가 마을을 떠난 후 그 물, 그 나무, 그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지만 매번 밤이 깊어지면 한 폭의 그림마냥 눈앞에 생생히 나타나 그 속에 뛰어들곤 한다(림연춘 옮김).
梁安早,广西灌阳人,瑶族,中国少数民族作家学会会员,广西作家协会会员,鲁迅文学院第十二期少数民族作家班学员,桂林文学院第三、四届签约作家,灌阳县政协委员,曾获广西第七届文艺创作铜鼓奖、第五届少数民族花山文学创作奖。在《儿童文学》《中国校园文学》《故事大王》《格言》《意林》《广西文学》等近七十种公开发行刊物发表儿童文学、小说、散文一百八十余万字,多篇文章入选各种选本。出版有长篇童话《教科书失踪了》,长篇少儿成长小说《英雄木槿》等近二十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