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양식
‘양식’ ‘알토스’(a[rto")는 빵, 떡이란 뜻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빵(밥)은 육신적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으로 말씀, 진설병이다. ‘진설’ 차려놓은 떡(말씀)이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마12:4) 그런데 이 ‘차려놓은 떡(말씀)’ 의 영적말씀은 어떤 말씀을 차려놓았느냐(선악과와 생명과) 하는 것이다. ‘진설’ ‘프로데시스’(provqesi")는 ‘프로티데미’(protivqhmi)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두다, 가져다가, 빼앗아가다, 옮겨놓다, (십자가)를 지다, 없이하다, 멸하다’ 로 선악과에서 생명과로 옮겨오는 것을 말한다. 떡은 생명과이다(눅9:13,요6:33~58).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7)
‘한 떡’ 곧 진리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6:48)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 떡이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10)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는 씨 곧 하나님의 말씀(눅8:11)과 양식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양식은 우리 입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오는 육의 양식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먹을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그 양식 속에는 모든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연은 곧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육의 양식은 목숨(육체)과의 관계성이고 영의 양식은 생명과 영생과의 관계성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성경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과 일에 대한 관계성을 말한다.
예수님의 양식은 바로 이 일 자체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1)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오늘날)에서 우리에게 위에 존재(생명과 = 그리스도 = 말씀)를 주셔서 아버지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즉 은혜의 빚을 탕감 할 수 있게 생명과의 “말 아닌 말” 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주시라는 간절한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