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공간C2021미학적
공간(une espace esthetique) 미학에서,
D. Charles,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1992, pp. 841(P.3299)
샤를(Daniel Charles, 1949-) 벨기에 역사가. 요트스포츠 전문가.
현존에 물체의 불가침투성을 벩송은 말했다. 예술에서 공간은 작품으로 생성에 의해 건축, 조각, 회화에서 시각적 촉각적 공간은 접근불가능성에 대한 느낌이다. 인간이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이런 접근 불가능을 욕망한다고 설명하는 카우프만은 예술 공간이 경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는 아페이론에서 경계를 만드는 페라스가 학문의 시초인데, 말하자면 예술작품도 학문보다 먼저 경계짓는 작업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경계지움의 예술로서 건축, 조각, 회화라는 측면을 각각이 공간과의 주름을 형성한다고 본 들뢰즈의 바로크 예술에 대한 관점도 경계지움일 것이다. 이 여러 겹의 경계를 지우는 학문이 라이프니츠의 개념론인데, 개념론의 성립과 바로크 예술이 같은 길을 가듯이, 여기 샤를의 예술의 공간도 마찬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54N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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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une espace esthetique) 미학에서, [감성적 공간]
몰(Abraham Moles, 1920-1992)이 묻기를 어떻게 “내가 중심이지 않은 세계”가 있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각 종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동물집들 또는 조개들의 수준에서, 다양함들이란 무제한적이다. 매번 윅스퀼(Jakob Johann von Uexküll, 1864-1944)이 제시했던 대로, 무매개적 환경(die Unwelt, environnement)은 외부세계(die Aussenwelt, univers extérieur)를 보호한다. 게다가 자아(ego)인 한에서, 나는 “나의” 공간을, 여기 지금 가능성으로 된 “나의” 부피를 다룬다. 사람들이 알다시피, 근접학(la proxémique)은 내가 받아들인 메시지들의 중요성을(따라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존재들의 중요성) 결정하며, 이는 이들이 발산하는 거리를 함수로 한다. 이 원리는 수많은 응용사례들에 적합하다 .
그러나 보다 중성적이고 동질적인 공간이 있다. 이러한 공간은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와 뉴턴(Newton, 1642–1727)의 공간인데, 어째거나 거기에 거주하지 않은 관찰자에 의해 관조되는 공간이며, 따라서 관찰자는 그 공간의 초안을 냉정하게 그릴 수 있다. 사람들이 “임의적인 축에 의해 삼각좌표로 환원되기” 때문에, 이런 공간으로부터 사람들은 “선형의 번역, 규격화하기, 축들에 평행 등에서” 성질들의 총체(적분)를 보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거주하는 자들은 선천적으로(a priori) 동등성이 가정되어 있다. 이렇게 계산하는(compter, 고려하는) 것, 그것은 표면과 체적(부피)의 단위에 의해서 계산된 그자들의 밀도와 그자들의 수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의 용도들은 앞선 공간의 용도들 보다 훨씬 셀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역설 없이도 평가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술들과 작품들을, 이 두 공간의 각각에게 작품들이 속하는 정도에 따라서, 일정한 간격을 배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리하여 음악에서 음조의 체계는 음악의 성공을 변조와 전조의 편리함에 힘입은 것이다. 즉 8음계에서 동등한 12반음계의 분할 채택 허락하는 변조(transition 조이행)와 전조(modulation 轉調, 조바꿈)가 있다. 그러한 후에, 반음계의 일반화는 비팔음계의 공간들에게 길을 열었고, 사람들은 올바른 높낮이의 미묘함들을 새로이 발견하기 시작했다.
다른 영역에서 사람들은 20세기에 이탈리아 건축가 제비(Bruno Zevi, 1918-2000)를 볼 수 있는데, 그는 미국 건축가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의 생각[관념]들을 발전시키면서 주장하기를, 기념물은 합리적 선가정의 도식으로 기하학 속에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공간의 주위에 참가해야 한다고 한다. 그 공간은 “각 사용자가 원했고 그것의 건축가가 물질화 하였던 거주하는 공간이며 – 그 생각[관념]이, 각자의 필요들에 따른 주문에 의해 이렇게 발견할 수 있는 다는 점에서 틀림없이 정신분석학의 덕분이다.”(프랑카스텔, Pierre Francastel, 1900-1970). 사실상, 외부라고 생각되었던 공간의 분배를 실현하려고 고민하는 건축가는 확실히 단순히 거주하는 자에게 “암암리에 이런 합리성을 빌려줄” 수 있다(몰, Abraham Moles). 그 거주자는 공간을 전유하는[점령하는] 자기 개인적 방식을 중요시한다고 단순히 이해한다. 제비는 속지 않으면서, 그 당시 개인/사회의 충돌의 재발(réactivation)할 위협을 진단하는데, 이 충돌의 각각[당사자]은 정당하게 그것[위협]이 완전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만일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확증들을 일반화한다면, 사람들은 건축의 역사를 다루면서 거칠지만 효과적인 관점을 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스위스 건축사가인 지디옹(Giedion, 1888–1968)은 서양건축 발전에서 세 가지 단계를 구별한다. 이집트-수메르-그리스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에서 공간은 체적[부피]들 사이에 상호 작용이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둘째 단계로,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서 18세기 말까지이며, “움푹 파인공간 즉 내재적 공간”의 지배이다. 셋째로, 1910년대에 “특이한 전망의 중심”에 대한 거부와 더불어, 제1공간의 명가지 특징으로 회귀를 사람들은 내부성의 이상성과 조합한다. 거기에서 “내부공간과 외부 공간으로부터 그 당시까지 알려지지 내적 침투”가 나온다. 이러한 변증법은 매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공간의 형성과정은 그래도 역시 깊이 탐구되고 있다. “보지도 건드리지도 않고”내버려둔 것 같은 보다 수수께끼 같은, “공기만큼이나 달아난다”(빈켈, Fritz Wilhelm Winckel, 1907-2000) 이런 사실로부터 있는, 한공간(unespace)의 본성(la nature)에 대해 그리고 본질(l‘essence)에 대해 [깊이 탐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로(0)에서 다시 출발해보자.카우프만(Pierre Kaufmann, 1916-1995)이 말하기를 “건축, 조각, 회화 등의 작품이 중요할 지라도, 주체는(le sujet) 그 작품에서 표현되는데, 작품이 표상하는 대상이 그 작품에 정확하게 없다고 하더라도 표현 되어 있다. 건물은 빈 것을 둘러싸고 있다; 조각은 그 조각 자체에 들러붙어 있는 자발성의 분명한 특성을 물질 속에 고정시킨다; 회화는 깊이를 정지시키고 있는데, 그 깊이 속에서 대상이 자기의 효과적인 실재성을 기입[기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재적인 것을 재배한 이런 현존은 그것[실재적인 것]의 우발적 현실화 작업에 대한 감성적 가치들에 따라서 정확하게 표현된다. 건물에 없는[부재한] 신은 여기서[y, 공간에서] 자기 거주지를 갖는다. 조각은, 거기에서는 전개되지 않은 생기있는 몸짓의 원형(le prototype)을 우리에게 알게 해준다. 벽화나 화폭은, - 사물은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 사물의 현전하는 양식(le style)을 두 개의 차원들 위에 수집한다. 이리하여 각각의 차원들에 알맞은 감성의 종류들 하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회귀에서 오는 [작품의]돌발성 (l’éventualité) 표출될 것이다. 그 돌발작품에 대한 담론은 인쇄로 깊이 파여져 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동등하게, 미학이 정서적 경험의 해석에 기여한 것이 표시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물과 더불어 공간의 틀 자체가 있고, 조각과 더불어 물체의 지향성이 있고, 회화와 더불어 거리의 현상이 있다. 이것들의 객관적 지위는 우리에게 증명된다(공간의 정서적 경험(L'Expérience émotionnelle de l'espace, 1966)) 결론적으로 예술은 외적 공간을 관통하며(traverser 가로지른다), “그 외적 공간에 우리는 부르지 않고도 위치해 있다.” 이것은 내부성의 충만을 다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접근불가능성의 절박함”을 알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욕망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접근불가능성”을 알리는 것이다. (D. Charles).
* 인명 **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1864 윅스퀼(Jakob Johann von Uexküll, 1864-1944) 에스토니아 출신, 독일 생물학자 철학자. Mondes animaux et monde humain suivi de La théorie de la signification, 1934,
1867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 미국 건축가, 기안자. 유기적 건축가.
1888 지디옹/기디온(Sigfried Giedion, Siegfried Giedion, 1888–1968) 프라하 출생, 스위스 건축사가, 건축비평가. 공간, 시간, 건축(Space, Time and Architecture: The Growth of a New Tradition, 1941) .
1900 프랑카스텔(Pierre Francastel, 1900-1970) 프랑스 예술사가, 예술비평가, 예술 사회학 창설자 중의 한사람이다.
1907 빈켈(Fritz Wilhelm Winckel, 1907-2000) 오트리아 독일 음향학자, 전자 음악 선구자.
1916 카우프만(Pierre Kaufmann, 1916-1995) 프랑스 철학자, 정신분석가, 기자. 공간의 정서적 경험(L'Expérience émotionnelle de l'espace, 1966)
1918 제비(Bruno Zevi, 1918-2000) 이탈리아 건축가, 예술사가, 예술비평가, 건축이론가. 유기적 건축가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덕분에 알려졌다.
1920 몰(Abraham Moles, 1920-1992), 프랑스 정보과학 연구의 선구자. . Communications et langages, 1963. Art et ordinateur, 1971
1949 샤를(Daniel Charles, 1949-) 벨기에 역사가. 요트스포츠 전문가. 조선 건축가. 그는 까유보뜨의 전기를 썼다. / 까이유보뜨(Gustave Caillebotte, 1848-1894) 프랑스 화가, 수집가 인상주의 전시회를 네 차례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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