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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14일 목요일, 맑음.
*걷기-넷째 날
*팜플로나(Pamplona)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이동거리 : 25km.
아침 6시 어김없이 숙소에 불이 켜진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침식사는 숙소에서 제공된다고 해서 식당 겸 주방이라고 되어있는 공간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이미 비치해 둔 빵과 음료로 각자 알아서 챙겨 먹는다. 자율배식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샌드위치 빵에 버터와 잼을 바르고 우유와 토마토 주스로 아침 식사를 했다.
공간이 좁아 복잡하다. 대충 먹고 숙소를 출발했다. 아침 7시 30분, 팜플로나를 출발했다. 순례자 길을 따르지 않고 시내 구경을 하면서 걸어간다. 먼저 카스티요 광장을 거쳐 이루나 카페 앞을 지나 시청 광장을 들린 후에 엔시에로(달리는 소) 조형물이 있는 곳에 잠시 멈춰서 기념 촬영을 한다.
그 옆에 있는 여신상 기념물 앞에서 잠시 둘러본 후 타코네라 공원 앞에서 순례자 길로 들어섰다. 순례자 길은 계속 시내로 이어진다. 바닥에 카미노 표시를 찾고 길에 세워진 화살표를 발견해 가며 건널목도 건너고 가로수 있는 공원길도 간다. 요새를 왼쪽에 끼고 카스티요 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아치가 하나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간다. 공원 같은 길을 계속 가다가 서서히 팜플로나를 벗어난다. 나바라 대학교가 있다는 간판이 공원에 가로로 만들어져 누워있다. 자연적이고 수수한, 재미있는 간판이다. 뉴질랜드 남 섬 카이코라 해변에서 보았던 커다란 소나무 종류가 여기도 많이 보인다.
팜플로나를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초록 밀밭과 노란색 유채 밭이 나타난다. 멋지다. 밀밭 사이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보초 서듯 줄지어 있다. 깨끗한 차 도로 옆으로 순례자 길이 이어진다. 잠시 유채 밭에서 사진을 찍는다. 붉은색 포장도로를 걷는다. 언덕 위에 오래되 보이는 성당(San Juan)과 그 아래 알베르게 론칼(Roncal)건물이 나타난다.
여기가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 마을이다. 팜플로나의 부유한 교외 주택지다. 예전에는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의 영지였고, ‘자비의 성모 마리아’를 섬겨 순례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자비의 성모 마리아는 이 지역 사람들이 가장 애모하는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마을을 통과해 걸어간다. Asados Martintxo라는 카페 건물에는 현재 기온이 영상 12℃가 보인다. 오전 9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도 있다. 3km 정도를 걸어온 것 같다. 깨끗하고 예쁜 집들이 많다. 금방 마을을 벗어나 약간 내려간다. 언덕 위로 노랑과 초록의 벌판이 그림 같이 펼쳐진다.
오늘 걷게 될 길은 나무가 거의 없고 그늘도 별로 없다. 앞쪽에는 언덕이 줄지어 있고 그 위 지평선엔 풍력 발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파란 하늘은 없다. 밭과 밭 사이로 길이 정답다. 도심과는 멀어진 시골길이다. 만개하여 엄청 피어있는 유채꽃의 노랑이 눈에 가득 들어와 기쁨을 준다.
작은 자갈이 갈려있는 길을 서서히 올라간다. 언덕을 너머 가면 또 언덕이 보인다. 작은 마을이 교회와 함께 보인다. 길을 돌아서는 오솔길에는 미루나무들이 서 있다.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 같다. 왼쪽에는 트랙터로 밭을 갈아 놓아 붉은 황토색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초록과 노랑의 벌판에 또 하나의 색상이 반갑다. 왼쪽 언덕 위에 보이는 갈라르(Galar) 마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지른다. 샤를마뉴의 기독교 군대가 아이골란도의 무슬림군대와 전투했던 바로 그 땅이란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걸어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곡선을 이룬다.
겐둘라인(Guendulain) 마을 이정표가 있다. 여기에는 오래된 대저택(궁전)과 유적이 있다. 우리의 목적지 Puente la Reina(Gares) 14.6km, 와 Alto del Perdon(Erreniega) 4.3km 이정표가 반갑다. 커다란 S자를 그리며 올라간다. 갈아놓은 밭을 보니 주먹보다 큰 돌들이 가득하다.
내륙에 이렇게 둥근 돌들이 밭에 있다니 놀랍다. 비옥해 보이는 밭이 돌밭이다. 거기에 모나지 않은 둥근 자갈돌이 이렇게 많다니 이상하다. 그늘이 없지만 태양을 등지고 가는 길이라 따듯함이 등 뒤에 느껴진다. 밀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이 참 예쁘다. 언덕에 올라 뒤돌아보면 멀리 눈 아래 펼쳐지는 팜플로나 마을과 초록색 밀밭 그리고 노랑 유채 밭이 정말 평화롭고 멋지다.
나무 그늘에서 쉬는 이도 있다. 좀 더 걸어가니 낡은 벤치가 하나 있고 그 옆에 나무 그늘, 그리고 묘지가 하나 있다. 묘 주인은 아마도 유태인인 것 같다. 그 기념비가 유대인을 상징하는 6가지 등잔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갈돌이 모아져 있고 카미노의 파란 가리비 표시도 걸려있다.
Koks Frans, Belgie라는 글도 보인다. 이름은 콕스 프란스, 벨기에 사람인 것 같다. 산티아고를 향하여 순례자 길을 걸어가던 사람인 것 같다. 여기에 묻힌 사람은 어떻게 여기에 묻혔을까? 아마도 사연이 많을 것 같다. 먼저 앉아 있던 순례자를 밀어내고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쉰다.
시원하고 편하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사키리에기(Zariquiegui) 마을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성당(San Andres)있다. 마당에 벗 나무가 화려하게 피어있다. 성당 식수대는 말라있다. 성당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비슷한 분위기인데 무척 어둡다.
좀 더 앞으로 걸어가니 작은 바(bar)를 갖고 있는 알베르게(San Andres)가 나온다. 마을을 통과해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마지막 오르는 오솔길이다. 이제 풍력 발전기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언덕 꼭대기에 도달하기 450m전쯤에 식수대가 왼쪽에 있다. 물은 나오지 않고 말라있다.
둥근 좌대로 이어져 있는데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감베야코스(Gambellacos)로 표시되어있는데 ‘포기의 샘(Fuente Reniega)’ 에 얽힌 옛 전설을 기념하여 현대에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거절의 샘이라고도 한다. 갈증에 힘들어하던 순례자 앞에 순례자로 변장한 악마가 나타난다.
교회, 신, 동정녀 마리아, 산티아고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면 찾고 있는 비밀의 샘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유혹했다. 그 순례자는 갈증에 목이 말라 괴로웠지만 결코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산티아고)가 순례자로 나타나 이 비밀의 샘에 대해 알려 주었고 목이 말라 괴로워하던 순례자는 가지고 있던 조가비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팜플로나와 저 멀리 있는 피레네 산맥을 돌아보면 정말 시원하고 감동적이다. 정상에 오르면 맨 먼저 바람의 환영을 받는다. 그동안 오르면서 느끼던 고단함을 한순간에 씻어줄 고마운 바람이다. 여기가 자비의 언덕(Alto del Perdon)또는 용서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생태 공원이다.
페르돈 고개다. 중세시대 순례행진을 철재로 형상화한 조각상으로 세어보니 14개나 된다. 용서를 하라는 것인지, 용서 받으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난 날 나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었을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바람의 언덕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조각상을 페레그리노(Peregrino, 순례자)라 부른다. 쇠로 만든 중세 순례자들의 상이 특징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페레그리노들에겐 참 반가운 모습이다. 순례자 길을 준비하면서 많이 대하게 되는 사진 중에 하나가 순례자 대열의 철제 조형물이다.
그걸 어느 정도 고행의 순례 길을 걷고 중반쯤 되면 만나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 외로 빨리, 순례길 4일 만에 만나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뭐랄까 아끼던 것을 의외로 일찍 만난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감정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조금 더 먼 길을 걷고, 힘이 많이 부쳤을 때 만났으면 더 큰 감흥과 위로를 받았을 그런 조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증 사진도 찍고, 한숨을 돌리는 그런 장소다. 순례자상 조형물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순례자들이 은하수를 좌표로 삼아 길을 걸어가는 모양을 형상화 한 것이다.
사방이 확 트인 곳에 하늘을 배경 삼아 은하수까지 그려 놓은 그들의 상상력이 이름 못지않게 친환경적이라 할까. 스페인의 자연이라는 게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첩첩 산이 둘려 쳐진 우리나라 풍경이 아니다. 높게 올라오지도 않았고 고개 위가 해발 79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도 사방이 일망무제다.
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는 정상 쪽으로는 스페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력 발전기가 수도 없이 서있다. 페르돈 고개에는 많은 순례 객들이 땀을 식히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돈키호테의 현대판 한 장면처럼 생각이 된다. 풍차가 변하여 풍력 발전기가 되고, 그 밑에서 창처럼 생긴 등산 스틱을 집고 서 있거나 앉아서 고개 위쪽을 노려보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들이 전투적이다.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자연 경관에 다시 한 번 감동하며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우리가 출발한 동쪽의 팜플로나,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몬레알의 이가(Higa) 봉우리가 잘 보인다. 우리가 내려갈 서쪽 아르가 계곡 방면을 바라보면 꼭대기에 암자가 있다는 아르노테기 산의 봉우리가 낮게 보이고, 앞으로 가야할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페르돈 봉 정상 공원의 약간 왼쪽 아래에는 영국의 스톤헨지 같은 둥근 돌 모형(MEMORIAL FOSAS DE LA SIERRA DEL PERDON)이 있다. 돌기둥이 10개 둥글게 세워져 있다. 무엇을 기념해서 만들어 졌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 언덕을 내려간다. 내려다보이는 경관은 마을과 숲 그리고 초록 밀밭과 노랑 유채꽃 들판이다.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급하지만 엄청 큰 자갈들이 깔려있는 위험한 길이다. 둥그런 돌을 잘못 밟으면 발목 삐기 딱 좋다. 발목에 바짝 긴장하고 허리를 고추 세우고 조심해서 내려간다. 돌무더기 위에 카미노 표시가 빛이 난다. 자갈길을 걷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비명이 절로 나온다.
보라색 엉겅퀴 꽃이 조심해서 걸어가는 우리를 걱정하며 바라보고 있다. 힘들게 내려왔다. 농로 길이 이어진다. 평지를 가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앞서 가는 순례자들의 배낭에 매달려 있는 조가비 소리가 들린다. 물통도 보이고 컵도 매달려있다. 겉옷도 묶여있다.
단단히 다져진 배낭이 건강해 보인다. 철 십자가가 보이는 작은 공간에 나무 그늘이 있다. 그늘에 들어서니 성모상(Monumento A la Virgen Maria)이 하얗게 자리 잡고 있다. 우르테가(Uterga) 마을 초입이다. 우르테가 마을로 들어섰다. 이 마을이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어서 실망했다.
기운이 쫙 빠진다. 작은 마을인데 잔디구장에서 남녀 어린이들이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다. 4개의 깃발이 걸려있는 시청(Ayuntamiento de Uterga - Utergako Udaletxea)건물 아래에 있는 벤치에 순레자들이 앉아있다. KitKat라는 글씨가 그려진 벤치가 귀엽다.
네슬레 식품 회사의 초코 과자 킷캇의 광고 그림이다. 예쁜 페르돈 알베르게는 정원이 넓다. 빨래가 주렁주렁 널려있다. 여기 마을의 집들은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검은 돌에 무늬를 그려 모아 놓은 장식물, 검은 십자가 등 깔끔하다. 다시 밀 밭과 유채밭을 걷는다.
한적한 시골길이다. 작은 시냇물도 건넌다. 흰색과 노란 색의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완두콩을 심어놓은 밭이 넓다. 멀리 마을이 또 보인다. 무르사발(Muruzabal) 마을이다. 커다란 그림에 부엔 까미노라는 글이 보인다. Santa Maria de Eunate 성당의 그림도 크게 붙어있다.
무르사발에서 에우나테(Eunate)로 가는 길과 오바노스(Obanos)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에우나테로 걸어가면 포도밭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12세기에 기사단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졌다는, 8복을 의미하는 8각형 모양의 성당이다. 8각형은 팔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주일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날,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산타 마리아 성당을 세 바퀴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무르사발에는 성 야고보 상이 있는, 3개의 십자가가 보이는 에스테반 성당(Iglesia de -San Esteban- Basaeliza)이 있다. 광장엔 식수대와 카페 그리고 약국도 있다. 마을에서 예쁜 집을 발견했다.
벽에 다양한 모양의 도마뱀(도룡뇽)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아주 섬세하고 칼라풀하고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메리 골드 꽃이 눈이 부시도록 황금 빛이다. 마을 외곽에는 철 십자가가 오래 되 보인다. 무르사발 마을 끝 표시가 우리를 오바노스(Obanos)로 안내한다.
Puente la Reina(Gares) 4.5km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아직도 한 시간은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힘들고 지친다. 메마른 자갈 길을 걸어간다. 힘들게 걸어가다보니 언덕 위에 오바노스 마을이 뚜렷이 보인다. 순례자 길 바닥에 검은색 조개 모양 표시가 보인다. 언덕을 오른다.
포장된 길이 태양열로 뜨겁다. 마을 초입 벽에 마을 지도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오바노스((Obanos)다. 조가비 문양이 길 바닥에 보인다. 마을에 들어서서 오바노스 광장에 도착했다. 14세기 나바르 귀족들은 이곳에 모여 군주제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그들의 모토는 간단히 말해 ‘국민과 국가를 위한 자유’ 였다. 인상적인 신 고전 양식의 세례자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이 있다. 성당에는 아름다운 레타블로(종교적인 그림, 제단화)와 성 야고보의 상이 있다. 이곳에는 비극적인 남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프랑스의 공작 기에르모와그의 누이인 펠리시아의 이야기다. 펠리시아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삶에 감명받아 북부 나바라 지역에서 수행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화려하나 공허한 궁전 생활대신 빈곤하지만 충만한 은둔자의 삶을 산다. 그녀를 귀족 생활로 돌아오게 하는데 실패한 오빠는 격노한 나머지 동생을 살해하고 만다.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기에르모는 결국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난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에전의 기에르모가 아니었다. 그는 누이를 추모하며 남은 생을 경건하게 보낸다. 그 후 죽은 남매는 모두 카톨릭교회로부터 ‘복자’라는 칭호를 얻게되고 모든 교회가 공경하는 자리에 오른다.
성 기에르모의 유골 역시 은으로 된 유골함에 담겨 이곳에 보관되어 있단다. 재미있는 일은 기에르모의 유골이 오랫동안 신성한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즉 유골에 부어서 신성해진 와인을 성 금요일마다 마을 주민들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멋진 교회에 넓은 광장이 인상적인데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오후다. 태양만 광장에 가득하다. 나무를 조각하여 순레자 모형을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비스듬히 광장과 교회를 지키고 있다. 노란색 우체통도 보인다. 철십자가 조형물이 원기둥 돌탑에 올려져 있다.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문을 통해 나간다. 길 가 작은 공원에는 현대식 철로 만들어진, 순례자 조형물(Statue of the Pilgrim)이 있다. 사진을 찍는다. 조형물에 공간이 있다. 구멍은 순례자의 모습을 덜어낸 것이다. 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다. 예쁜 대문에는 주먹 모양의 문고리가 잘 매달려있다.
작고 소박한 성당(Ermita de - San Salvador)이 보인다. 예쁜 십자가 모양도 만난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쉰다. 견과류를 꺼내서 먹는다. 점심이다. 육포와 함께 초코바도 먹는다. 정신없이 걸어온 길이 생각보다 길다. 카미노 산티아고 라는 석조 구조물을 만난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출발한다. 오바노스 마을을 벗어난다. 언덕을 넘어서니 멀리 교회 첨탑과 마을이 보인다. 언덕을 내려간다. 내리막길 아래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있는 농장과 포도밭이 나온다. 길을 건너 오솔길을 오른다. 논두렁같이 좁은 길이다. 사과나무 꽃이 아주 깨끗하게 피어있다.
Puente la Reina(Gares) 0.6km라는 글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Jakue Hotel이 보인다. 호텔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니 순례자 동상이 길 가운데 만들어져 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Puente la Reina(Gares)에 도착했다. 높은 굴뚝이 보인다. 숙소를 찾았다. 우리 숙소는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Albergue Padres Reparadores)다.
레파라도레스 신부회에서 운영하는 수도원 호스텔이다. 연중무휴이고 최근에 개보수한 건물에 100개의 침대(방 12개)를 갖춰놓고 있다. 오후 3시 30분에 도착한 것이다. 숙소 요금은 7유로, 10호실이다. 침대를 차지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고 양말을 빨았다.
넓은 뒤뜰에 양말을 널었다. 잠시 쉰 후 동네 한바퀴를 하러 나간다. 숙소 앞에는 작은 광장이다. 이름이 Padre Guillermo Zicke 광장이다. 기에르모 직케 신부(1886~1960)의 이름을 기념해서 이름지어진 광장이다. 그의 소개판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광장에 이어지는 십자가 성당(Iglesia del Crucifijo)이 신학교를 가지고 있는 수도원과 골목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이 성당은 적어도 3번은 이름이 바뀌고 3개의 다른 기사단에 의해 운영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원래는 템플 기사단의 가호를 받는<초원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기사단이 그 지위를 박탈당한 뒤 성당은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이 돌보게 되었다.
이름은<산토 크리스토 성당>으로 바뀌었다. 독특한 Y자 문양의 14세기 고딕 양식 십자가가 독일로부터 중세 순례자들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진 후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마요르 골목길로 간다. 약국 건물의 온도계는 영상 18℃를 보이고 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일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다. Hostal Plaza 건물의 Bar Restaurante Hostal Plaza로 들어갔다. 안은 제법 넓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말을 알아야 주문을 하지!!! 옆에서 먹고 있는 손님의 메뉴를 적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음식을 주문했다. 순례자 메뉴였다.
먼저 믹시드 샐러드를 주문했다. 물과 포도주가 먼저 제공되었다. 빵 바구니와 함께 샐러드가 나왔다. 참치가 올려진 야채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을 붓고 먹는다. 주식으로 소고기 구이를 주문했다. 올리브 기름에 빵을 찍어 먹는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빵이 붙어 있는 이름도 모르는 메뉴를 주문해서 먹었다.
아주 달콤하고 맛있다. 이렇게 든든히 배를 채운 후 다시 동네를 둘러본다. 식당 바로 앞, 사각형이 메나 광장이다. 회랑을 갖고 있는 시청사 건물이 있는데 뜨거운 열기로 조용하다. 시에스타라고 모두 낮잠 자는 시간이란다. 광장을 빠져나가 다리 방향으로 걸어간다.
도로가 대각선으로 나있다. 길 가에는 나무로 나들어진 조각물 인물상이 있다. 여인상과 농기구를 든 남자상 등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중세 유적이 발견된 터도 보존되어있다. 석관과 유골, 유물 사진이 함께 있다. 산 페드로 아포스톨 성당(Iglesia de San Pedro Apóstol)이 나온다.
이 성당에는 <푸이의 성모 마리아> 다른 이름으로 <새의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여기에는 예쁜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이 상이 예전에 다리 벽감(석상등을 두기 위해 움푹 들어간 곳)에 있을 때 새가 매일 같이 날아와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이야기다. 성당 마당에는 미끄럼을 비롯해 그네가 보이는데 꼬마들과 사람들이 보여 반가웠다.
11세기에 지어졌다는 다리를 찾았다. 반가웠다. 원래 명칭은 아르가 다리였는데, 산초 3세의 부인인 도냐 마요르를 기려 ‘ 왕비의 다리 Puente la Reina’로 개명되었다. 이 다리로 인해 마을 이름도 왕비의 다리로 되었다. 왕비는 점점 큰 폭으로 늘어나는 중세 순례자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이 다리에 있는 6개의 아치는 물살이 센 아르가 강 양끝을 잇는다. 샤를마뉴가 시수르에서 무어인들과 싸워 승리한 전투 후에 이 마을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먼저 다리를 살펴 보려고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오래된 석조 다리는 견고하고 길어보인다.
다리의 벽감(석상등을 두기 위한 움푹 들어간 곳)이 구멍이 뚫려있고 계단도 있다. 아이들이 올라가 놀고 있다. 다리 아래 잔디 밭에서는 사람들이 앉아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다리의 모습을 잘 보기 위해 아르강 위에 새로 만들어진 현대식 다리 위로 갔다.
여기에 서니 여왕의 다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물에 비친 아치 모양이 완벽한 원을 만들어 놓았다. 마음을 두고 다리를 쳐다보니 아주 특별한 다리가 되었다. 한참을 쳐다 봐도 지겹지 않은 다리다. 강의 수량도 많아 잔잔히 흐른다. 강따라 주택들도 예쁘게 세워져 있다.
다른 골목길을 걸어서 다시 숙소로 왔다. 숙소에는 커다란 주방이 있고 그 옆에 자판기가 보인다. 자판기에는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샌드위치도 있다. 내일 아침은 저 샌드위치로 해결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 있기가 무료해서 다시 다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작은 배낭을 메고 나왔다. 가는 길에 작은 마트에 들러 물을 하나샀다. 0.6유로다. 그늘진 다리 아래 벤치에 앉아서 일기를 섰다. 일기라기 보다는 하루의 기억을 더듬어 메모를 했다. 시원하다못해 서늘함이 느껴진다. 잔디 밭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보인다.
해가 져가는 오후에 점점 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해 지기 전에 숙소로 왔다. 침대에 오르니 드디어 발에 물집이 모인다. 발이 엉망이다. 드디어 발이 고장나기 시작했다. 바늘과 실이 필요한데 없어서 손톱으로 물집을 조심스럽게 터뜨린다. 걱정이다. 내일 걸어갈 때 아플 것 같다. 그래도 걸어야한다. 밤 9시가 되니 여지없이 불이 꺼진다. 감사하며 침낭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