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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남조의 서법과 남첩
진(晉)의 황실이 남쪽으로 천도함으로써
남방의 서가는 위진의 유풍(遺風)을 계승하게 되었다.
진 무제(武帝)의 금비령(禁碑令)이 해제되지 않았으므로
서가는 견지상(絹紙上)에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행초가 크게 발달하였다.
흔히 <첩(帖)>이라 하는 것은
역대에 돌에다 모본(摸本)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며
비(碑)>와 상대되는 표현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남조에서
글씨를 인품과 동일시하는
이른바 ‘품조(品藻)’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 유풍 이후 역대로 서평의 근간이 되었다.
특히 이론서인 사전(史傳). 논술(論述).
품조(品藻). 제찬(題贊). 저록(著錄).
등이 다양하게 나와 서법이론과 평론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서법(書法)’이란 단어도 이 시기에 탄생하였고
서예가 예술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碑)로는 동진(東晋)의 <찬보자비(爨寶子碑)>
외에 <양양신도비(楊陽神道碑)>.
<왕민지묘지명(王閩之墓誌銘)>이 있으며
남조(南朝)에는 송의 <찬용안비(爨龍顔碑)>.
양의 <예학명(瘞鶴銘)>. <소담비(蕭憺碑)>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서가로는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동진의 왕희지(王羲之)와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
그리고 왕순(王珣) 등이 있고,
남송의 양흔(羊欣),
제의 왕승건(王僧虔),
양의 소자운(蕭子雲)과
진(陳)의 지영(智永) 등이 있다.
유풍(遺風) ; 유속(遺俗). 후세에 까지 남겨진 교화(敎化)
금비령(禁碑令) ; 석비(石碑)를 세우는 것을 금지함 ?
견지상(絹紙上) ;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방망이로 두드리고 다듬어서
만들었던 종이의 위
사전(史傳) ; 역사와 전기(傳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
모본(摸本) ; 원본을 본뜸
품조(品藻) ; (인물을) 평하다
사전(史傳) ; 역사와 전기(傳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역사에 전해진 기록
논술(論述) ; 어떤 것에 관하여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함
제찬(題贊) ; 어느 글에 칭찬하여 써 놓은 글 ?
저록(著錄) ; 어떤 사실을 드러내어 적음.
이름 따위를 장부에 적음.
서성(書聖) ; 글씨를 빼어나게 잘 쓰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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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보자비(爨寶子碑)
동진(東晋)시대 405년에 세워졌다.
청 건륭(乾隆) 43년에 출토되어
이후 귀중히 여겨졌다.
해서에 가까운 예서 글씨로 볼 수 있다.
방절(方折)한 용필로서
결체가 전서같이 고장(高長)하며
파세가 아직 남아 팔분에서 해서로
변모하는 흔적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지료이다.
기자(奇姿)하면서도 고박(古樸)하고 수려한 맛이 있다.
방절(方折) ; 각이 지게 꺾는 것 ?
고장(高長) ; 크고도 길다. ?
기자(奇姿) ; 기이한 모양
고박(古樸) ; 예스럽고 소박하다. 수수하면서 고풍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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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용안비(爨龍顔碑)
남송 458년에 세워졌다.
완원(阮元)이 운귀총독(雲貴總督)으로 있을 때
세상에 소개하였다.
서법은 북조의 동일시대의 것과 유사하다.
동진의 <찬보자비>와도 통한다.
진서(眞書)이면서도 고예(古隸)의 비의 맛이 많다.
순박졸후(純樸拙厚)의 풍격이다.
진서(眞書) ; 해서(楷書)
고예(古隸) ; 진한 시대 때의 예서
순박졸후(純樸拙厚) ; 순진하고 꾸밈이 없으며
수수하고 후한 맛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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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학명(瘞鶴銘)
남조 양의 것으로
강소진강(江蘇鎭江) 초산(焦山)의 벼랑에 새겨졌다.
현재는 초산 비림에 몇 조각이 보존되어 있다.
도사(道士)인 도홍경(陶弘景)이
찬문(撰文)하고 썼다고 전해진다.
훼멸(毁滅)되어 전모(全貌)를 볼 수 없다.
운필에서 방원(方圓)을 함께 사용하였고
웅장하고 굳세며 기이하고 편안한 특징이다.
북조 <정희하비(鄭羲下碑)>와 서로 비슷하다.
황산곡은 왕희지의 글씨로 보았다.
찬문(撰文) ; 문장을 지음
훼멸(毁滅) ; 헐어 망침
전모(全貌) ; 전체의 모양
방원(方圓) ; 모난 것과 둥근 것
왕희지(王羲之)
동진의 서법은
왕희지 부자에 와서 집대성 되었고
그 성취는 또 다시 허물 수 없는 경지였으며
남첩 수립의 최고의 해모(楷模)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왕희지는 자는 일소(逸少), 낭야임기(琅琊臨沂) 사람이다.
생졸년대는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303-361년, 혹은 321-379년이다.
귀족출신으로 벼슬이 우군장군(右軍將軍)에 이르러
보통 왕우군(王右軍)으로 부르며
관리를 사직한 이후에 회계산음(會稽山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려서 위부인에게 글씨를 배우고
후에 초서는 장지(張芝)를
정서(正書)는 종요의 영향을 받았다
.
당시 여러 종류 글씨의 장점을 널리 수용하여
체세를 정교하게 연구함으로서
한. 위 이래의 질박한 서풍을
연미유려(姸美流麗)한 풍격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깝게도 우군의 진적(眞蹟)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당인의 탑모본(榻摹本) 또는 임본(臨本)이다.
낙의론(樂毅論)은 우군의 해서 중 대표적인 것으로
두 종류의 탑모본이 전한다.
자체는 약간 납작하여 종법(鍾法)을 보는 듯 하며
필획이 초조(稍粗)하고 행관(行款)이 관서(寬舒)하다.
혼고주경(渾古遒勁)하면서도 수려한 풍격이다.
이밖에 <黃庭經>. <동방화찬(東方畵贊)>.
<조아비(曹娥碑)>도 모두 소해(小楷)의 전범(典範)이다.
난정서(蘭亭序)는 천하제일의 행서(行書)로 여겨진다.
진(晉)나라 목제 영화 9년(353)년 3월 3일에
왕희지는 사안 41명과 함께
회계의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성대한 계사를 거행하였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서 시를 지었는데
당시 나이 51세인 왕희지는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잠견지(蠶繭紙)에다 서수필(鼠鬚筆)을 사용하여
단숨에 천고의 명작이라고 알려진 <난정서>를 썼다.
전문은 모두 28행으로 전체의 글자 수는 324자이다.
작품 전체가 굳세고 아름다우면서도
표일한 맛이 충만 되고,
종횡의 형세의 변화가 무궁하며
행서에서 볼 수 있는 기복과 변화,
강한 리듬감, 형태의 다양한 변화,
점획의 서로 상응하는 것들이 충분히 표현된 작품이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왕희지의 난정서는
그의 7대손인 지영(智永)에게 전해졌으며,
지영이 다시 제자인 변재(辨才)에게 이를 물려주었다.
당 태종은 어사인 소익을 변재가 있는 곳으로 파견하여
그를 속여서 <난정서>를 취한 다음
구양순, 저수량, 우세남 등에게
임모 하도록 명령하였다.
진본은 당태종의 부장물이 되었으며
지금 전해지는 것은 당나라 때 임모본이 전해진다.
해모(楷模) ; 본보기. 모범. 법식.
연미유려(姸美流麗)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거침없이 미끈하다. ?
진적(眞蹟) ; 실제의 유적. 친필.
탑모본(榻摹本) ; 본떠 쓴 글씨본?
임본(臨本) ; 베껴 쓴 글씨 ?
초조(稍粗) ; 조금 거칠다
행관(行款) ; 글자의 배열
관서(寬舒) ; 넓게 펴 있음
혼고주경(渾古遒勁) ; 질박하고 예스러우며 웅건하고 힘이 있음
잠견지(蠶繭紙) ; 비단 종이 ?
서수필(鼠鬚筆) ;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는 당의 승(僧) 회인(懷仁)이
왕희지의 글자들을 모아서 677년에 만든 비(碑)로서
글자는 1902자이며 25년에 걸쳐 만든 역작(力作)이다.
이밖에도 행서로 쓴 <흥복사단비(興福寺斷碑)>가 유명하다.
이 밖에도 여러 묵적(墨跡)이 있다.
왕헌지(王獻之 344-388)
자는 자경(子敬)이고 희지의 일곱째 아들이다.
벼슬은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으며
부친 글씨의 기초 위에 개변(改變)하여
영준호매(英俊豪邁)한 풍격을 이루어
세상 사람들이 ‘이왕(二王)’이라고 한다.
그의 영향은 왕희지에 버금간다.
낙신부십삼행(洛神賦十三行)은 정서(正書)로서
청신연수(淸新娟秀)한 풍격으로
낙의론(樂毅論)과 조금 차이가 있다.
필획이 약세(略細)하고 간가(間架)가 평정하며
기세가 약동하는 수경청려(秀勁淸麗)한 풍격이다.
개변(改變) ; 고치어 바꿈
영준호매(英俊豪邁) ; 출중하고 호탕하다
약세(略細) ; 간략하고 세밀함 ?
간가(間架) ; 시문이나 필획의 짜임새
청신연수(淸新娟秀) ; 맑고 새로우며 아름다고 빼어남
수경청려(秀勁淸麗) ; 빼어나게 굳세고 맑고 고움
압두환첩(鴨頭丸帖)은
왕헌지의 유창한 필치가 두드러진 작품으로
필세가 영동(靈動)하며 신취(神趣)가 활현(活現)하여
수경묘절(秀勁妙絶)한 맛을 풍긴다.
영동(靈動) ; 신령스럽게 움직임
신취(神趣) ; 신령스런 운치
활현(活現) ; 생생하게 드러나다
수경묘절(秀勁妙絶) ; 빼어나게 굳세고 더할 수 없이 교묘함
중추첩(中秋帖)에 대하여 미원장(米元章)은
“이 첩의 운필이 불꽃같고 근획(筋畫)이 회연(灰連)하여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마치 의(意)조차 경영하지 않는 것 같아
소위 일필서(一筆書)라 하겠으며,
자경의 제일첩(第一帖)이다”라고 하였다.
단번에 연결하기를 너댓자로 우군의글씨와 다르다.
후에 연면초(連綿草)의 실마리가 된 중요한 자료이다.
근획(筋畫) ;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획
회연(灰連) ; 잇닿다
일필서(一筆書) : 처음부터 끝까지 먹을 다시 먹이지 않고 글자를이어서 쓰는 일
연면초(連綿草) ; 각 글자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쓰는 초서체
왕순(王珣 349-400)
왕순은 낭야사람으로 자는 원림(元林)이다. 조부인 왕도(王導)와
아버지 왕흡(王洽)도 모두 명필이다.
백원첩(伯遠帖)은 성숙된 행초로서
운필이 극히 자연스러우며
왕헌지의 필치와 닮은 듯하다.
이 첩은 위진의 진적(眞跡)으로서
육기의 평부첩에 거의 버금가는 최고의 것으로
또 하나의 보물이다.
진적(眞跡) ; 친필(親筆), 손수 쓴 글씨
지영(智永)
생졸년대는 전하지 않으며
진(陳). 수(隋)간에 가장 걸출한 서예가이다.
이름은 법극(法極)이고 회계(會稽) 사람으로
왕희지의 7대손이다.
출가하여 영흔사(永欣寺)에서 기거하면서
30년간 폐문고독(閉門苦讀)하였다.
또한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800여 본을 써서
강동(江東)의 모든 절에 한 본씩 기증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진초천자문은 표일하면서도 근엄하다.
초당의 대가들의 초서에도 그 영향이 나타나며
손과정의 <서보>도 같은 계보(系譜)로 볼 수 있다.
폐문고독(閉門苦讀) ; 문을 닫고 글만을 읽음 ?
계보(系譜) ; 학풍 따위가 계승되어 온 연속성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한한대자전, 삼덕동집, 도서 참고.
첫댓글 2015년 1월 30일 명지서법 서예이론 진도를 미리 올려보았다.
바쁜 후배들이 참고 하길 바란다.
오늘은 2020년 3월 21일
토요일이다
코로나ㅡ19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불금이 지났다
우리후배들은
인강을 한다고 했는데
모두 건강하게 공부하며
개학이 빨리오길 바란다
우리후배들 모두
화이팅
명지서법 화이팅
🌹🍀🌹
어휘 설명 중
? 표시가 있는 것은
사전에 없어
내가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이다
참고하자
오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