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23브레3권5장7절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 제3권. 중세와 르네상스, Moyen Age et Renaissance 463-
제5장 13세기 Le XIIIe siècle 565
7절 성 알베르 르 그랑 / 알베르투스 Saint Albert Le Grand 582
크리스트교의 소요학파학자들의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도미니크파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 le Grand, Albertus Magnus, 1200경-1280)이다. 그는 “보편박사(docteur universel)”라 불렸다. 알베르투스는 1245년에서 1248년까지 파리대학에서 가르친 신학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1248년에서 1260년에는 쾰른에서도 강의 했으며, 그리고 1270년에서 죽을때까지도 가르쳤다. 만일 1250년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알려진 모든 논저들에 대해 긴 설명들을 썼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계획 속에 들어있었지만 그에 의해 부인되었던(De Mineralibus)처럼)문제들에 관해 그가 믿었던 논저들을 거기에 덧보탠다면, 그리고 진위가 의심되는 De Causis(그는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와 아비센의 저술들로부터 유대인 다비드의 발췌본으로서 생각했다.)의 주석을 보탠다면, 그는 또한 평결문들의 주석과 피조물들의 대전(Summa de creaturis)과 같은 독단적 신학론저들의 저자이기도 하고, 그리고 위-드니의 주석처럼 신비적인 글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1256년에 기욤 드 생아무르의 공격들에 대항하여 도미니트파 수도원의 방어자로서 능동적 역할을 했다. , 그리고 1263년 독일에서 십자군의 설교자이면서 교황의 대사로서 활동했다.
극단적인 다양성과 극단적인 확장으로 알베르투스는 그의 사유의 정합성의 부족을 은폐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다양성과 확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백과사전 속에 포함된 풍부한 목록을 만드는 것이고 그리고 이 풍부함에 덧붙이는 것인데, 그에게 즐거움이었다. 알베르투스는 이에 대한 감정을 가졌던 것같다. 그리고 그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기도 했다. “나의 철학적 모든 작품들에서 나는 나 자신의 것을 결고 말하지 않았지만, 또한 나는 내가 소요학파학자들의 견해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충실하게 제시했다;‥… 만일 내가 나에게 속하는 어떤 견해가 가졌다고 한다면, 신에게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 견해가 철학적 저술에서 보다 오히려 신학적 저술들 속에서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것이다.” (583)
또한 이것은 알베르가 자기 자신에게 대립시키는, 자기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소요학파주의에게 대립하게 하는, 하나 놀이이다. 가끔 그는 병치시키는데 만족했다. 이리하여 신학 총서(Somme de Théologie) 속에서 그는 영혼의 2중 용어가 있다고 경고한다. 영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인데, 여기서 영혼은 마치 유기체화 된 물체의 형상과 같다. 그리고 신학적 이론이 있다. 특히 그가 이 이론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들로부터 끌어냈다. 한편으로 지적이고 의지적인 삶의 메카니즘의 묘사가 있다. 다른 한편 하나가 다른 것 위에 놓이는 단계들로 이루어진 능력들의 묘사가 있다. 능력들은 감각적 인식에서 신에까지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영혼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작용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감각성 사이에 어떠한 것도 닮지 않다. 전자는 느끼는 것과 느꼈던 것에 공통하는 현실태이며, 후자는 영혼에게 유용한 곳을 찾게 하고 해로운 것을 멀리하게 하면서, 영혼을 땅에 묶는 것이다. 우리를 인도하는 상위 이법과 우리에게 도덕 법칙을 알게 하는 하위 이법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 구별과, 능동 예지와 가능 예지에 대한 소요학파의 구별 사이에서, 알베르가 이에 대해 사유한 것이라 할지라도,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알베투스가 인정한 근본적 구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의지(προαίρεσις ou electio)와 임의 자유에 대한 배타적인 신학적 용어 사이에 구별이 있다. 전자에서 의지는 오성의 판단을 따른다. 후자에서 이 임의 자유는 “이법과 의지의 능력이다. 이 능력에 의해. 만일 우호적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면 선이 선택되었고, 그 분위기가 우리게 모자라면 악이 선택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신테레시스(synteresis) 즉 “의식의 불꽃”에 해당하는 것[용어]은 아무 것도 없다. “의식의 불꽃은 성 제롬에 따르면, 정원[천국]에서 쫒겨났다고 할지라도 아담의 영혼 속에서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 그것(신테레시스)은 최고 도덕 규칙들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그것에 대해 철학자들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일반적 대상들에 따라서 영혼의 능력들을 분할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학자들은 신적 권리와 인간적 권리 사이를 구별할 줄 안다.” 이리하여 감각적 세계와 전체 연관 밖에서 고려된 영혼에 관한 “성자[성인]들”의 관점들은, 영혼을 신체와 연관에 의해서만 인식하는, 철학자의 관점들을 채워준다. (58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들에서는 알베르투스의 학설이 당대의 지배적인 아우구스티누스의와 연관해서 정신의 아주 새로운 습관들을 지적한다. 철학적 이법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 낮추어졌다. 성 알셀무스에서 처럼 예지에 의해 계시된 독단들의 – 신체화 또는 삼신성 - 이법들을 발견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서 순수 신앙이 있고 또한 곧 회복할 것은 항목들(des articles)이다. 철학적 이치는 결과들에서 원인으로만 진행할 수 있을 뿐이다. 인식 질서에서 첫째 인 것은 존재 질서에 마지막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감각적 세계에 의해서, 존재론적 증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과에서 원인으로 가는 우주적 증거를 통해서, 신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세계에 대한 고찰로부터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에게로 결론지울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세계가 시간 속에서 시작했거나 않았거나 간에, 심지어 사람들은 추리적인(rationnelle) 전반적 확실성을 가지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발견하는 영원성을 위한 논증들은 반대 논증들과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단지 계시만이 문제를 단호하게 해결할 수 있다.
알베르투스에게서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항들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 항들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학자의 플라톤주의는 연속성과 위계질서를 찾고 있다. 바로 이런 경향성에는 몇 가지 측면들이 있다. 13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학자들은 아비체브론에 가까운 다소의 영향 하에서 모든 피조물들에서 또한 물체적인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피조물들에서, 질료형상적 혼성(une composition)을 인정했었다. 천사와 영혼, 또한 물체도 마찬가지로 질료와 형상으로 혼성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 반대하여, 그리고 순수 현실태인 운동하는 지성과 형상인 영혼에 대해 자기 이론을 갖춘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서, 알베르투스는 질료를 마치 정신적 존재들을 혼성하는 것처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런 거부의 효과는 우주에 대한 자기의 통찰을 변형하는 것이다. 마치 형상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것처럼, 마치 개별화의 원리가 형상에 보태진 질료에서 유래하는 우발사고들에서 있는 것처럼, 개별적인 인간의 자연[본성]은 영혼과 신체로 혼성되어 있어서 천사의 자연과는 거의 어떠한 공통점도 더 이상 없다는 결과가 뒤따른다. 천사들은 순수 형상들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마치 개별자들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종들로서 취급되는, 형상들 사이에서 달라야만 한다. 동일한 이름의 어떤 능력들도 천사에게서, 인간 영혼에서, 신체에 연결된 영혼에서, 동일한 능력이 아니다. 이 [신체와 연결된] 영혼은 감각적 이미지들에게 향한 추상화의 조작에 의해서만 추리적인 것에 도달한다. 반면에 천사는 오류와 탐색이 면제되어 직관적 인식을 갖는다. 능동 예지, 즉 천사의 직관적 예지는, 인간에서 보면, 구별되지 않는 단순한 명석함이다. 이런 명석함은 류들과 종들의 모든 구별들을 감각적 이미지들에서 끌어온다. (585)
이리하여 사람들은 보편적 연속성 안에서 깊은 틈들의 인상을 도처에서 갖는다. 알베르투스는 심지어, 아랍의 소요학파 학자들에게 속하는 지적 인식이론에서, 신으로부터 인간을 접근시키려했던 모든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아베로에스에게서 능동 예지는, 열째 구 차제 속에 가지적인 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어서 열째 구의 운동하는 지성이기에,그 귀결로서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이었다. 그 [아베로에스의] 능동 예지는 인간 영혼의 일부를 이루는 하나의 능동예지에 의해 대체되었다. 따라서 영혼들이 있는 그 만큼 많은 능동예지들이 있다. 게다가 그것은 형상들로부터[형상들 없이] 비어있고, 그리고 다른 곳으로부터 주어진 감각적 이미지들로부터 형상들을 추상화하는 것 이외의 다른 기능을 갖지 않는다.
만일 분리된 지성 또는 천사적인 지성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면, 이런 영향의 결과는 전적으로 자연적 인식과 구별되는 계시[폭로]이다. (585)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알베르투스가 자연의 연구를 그 자체로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의 문제들에서 “경험만이 확실성을 부여한다”는 이 원리의 덕분에 이런 과학들이 어떻게그에게서 환상적 동물의 우화집 또는 전통적 상징적 우화집과는 다른 것이 되기 시작 했는가?를 이해한다. (585)
독일 도미니크파 학자들로서, 위그 드 스트라스부르(Hugues de Strasbourg, ?-1268)와 울리히(Ulrich de Strasbourg, 1220-1277)는 알베르투스의 학설들을 퀠른에서 퍼뜨리기 시작하였고, 또한 매우 잘 못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들 중에 둘째 학자는 아랍 소요학파주의에 대해 자기 스승보다 훨씬 더 잘 접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신비적 운동의 초기에 있었을 것이고, 그 신비적 운동은 곧 에크하르트(Maître Eckhart, 1260경-1328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