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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大韓帝國) 융희(隆熙) 4년/순종(純宗) 3년/일본(日本)메이지(明治) 43년 1910년 10월 27일 (木) 음력,1910.9.25 ❦ 신한국보(新韓國報) 第115.116號와 大道 第2卷 第2號 발매 반포금비,압수됨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10.10.29 警務月報 1910. 일제침략하 36년사 p.85 ❋ 新韓國報 第115·116號와 大道 第2卷 第2號는 치안 방해를 이유로 발매 반포를 금지 당하고 압수되다. [출전]警務月報 1910年 |
신한국보(新韓國報) 第115·116號와 대도(大道) 第2卷 第2號는 치안 방해를 이유로 발매 반포를 금지 당하고 압수되다.
신한국보 (新韓國報. 한인합성신보, 국민보(國民報) )
*창작/발표시기 ; 1909년 2월 12일(창간호), 1913년 8월 6일
*간행/발행 ; 국민회하와이지방총회, 대한인국민회하와이지방총회
1909년 2월 12일자부터 1913년 8월 6일자까지 총 250회가 발행된 하와이 한인사회 초창기 한글신문이다. 타블로이드 배대판의 크기로 4면 6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미주한인사회는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의 결실로 결성된 합성협회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와의 통합으로 1909년 2월 1일 국민회를 탄생시켰다. 이에 따라 합성협회는 국민회하와이지방총회로, 공립협회는 국민회 북미지방총회로 재조직 되었다. 1910년 2월 그동안 국민회 결성에 합류하지 않았던 하와이의 전흥협회와 미국 본토의 대동보국회가 국민회에 합류하면서 국민회의 명칭은 대한인국민회로 변경되었다.
『신한국보(新韓國報, The United Korean News)』는 새로 설립된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기존에 발간해오던 『한인합성신보』의 명칭을 1909년 2월 12일자로 바꾸면서 발행되었다. 이에 따라 『신한국보』는 창간일자를 『한인합성신보』의 창간일인 1907년 10월 22일자로 정했는데, 이는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한 신문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주1회 발간된 한글신문인 『신한국보』은 이후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한 인물은 홍종표, 한재명, 이래수, 박상하, 노재호 등이다. 대한인국민회 탄생이후 발행처의 이름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로 바뀌었다.
내용
현재 『신한국보』는 1909년 2월 12일자 창간호부터 1911년 1월 3일자까지 발행된 신문만 남아 있다. 결본이 적지 않지만 『신한국보』를 통해 경술국치 전후 하와이 한인들이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보여주었다. 특별히 『신한국보』는 국내를 비롯해 해외 각지에도 배포되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일제 통감부는 1909년 한 해 동안 27회에 걸쳐 1,135부나 압수하였다. 그만큼 『신한국보』의 논조는 애국적이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밖에 『신한국보』는 하와이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실상과 형편을 잘 보여주고 있어 이민사 연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이러한 『신한국보』는 1910년 2월 대한인국민회 설립을 계기로 1913년 8월 13일자부터 제호가 『국민보(國民報, The Korean National Herald)』로 바뀐 뒤 하와이 한인사회의 중추적인 한글신문으로 성장하였다
대도(大道)
1908년(창간), 1912년 1월 20일(종간)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윤병구가 교파를 초월한 교인들의 연합과 신앙심의 배양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개신교잡지.
샌프란시스코 거주 한인들의 북미감리교회의 기관지로서 『한인연합교보』를 개제하여 발간한 것이다. 사장은 라이엘(Reiel,B.F.), 주필은 윤병구(尹炳球)이었다.
1907년 당시 미국 내에는 한국인 교회당이 3, 4개가 있었으며 교인은 400여명에 불과하였으나, 장로교회·감리교회 및 미이미교회 등 3개 교파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인연합교보』는 교파를 초월하여 각 교인들을 연합, 상통하게 하고 신앙심을 배양하기 위하여 발간되었다.
그뒤 주필로 양주삼(梁柱三)·이대위(李大爲) 등이 일하였다. 한글전용으로 48면 내외의 조그마한 책자형식이었다. 발행소는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당이었으며, 종교잡지적 성격이 뚜렷하였다. 정가는 매호 15전이었으나 장기구독자로서 대금을 선납할 경우 할인혜택을 주고, 본국에서 구독하거나 현지에서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특별히 염가로 제공하였다.
경영은 한인감리교회가 하였으며, 신문대금과 교인들의 성금이 주요수입원이었다. 비록, 종교단체에서 발행하는 잡지였으나, 식민지로 전락한 본국의 정세를 자세히 보도하여 격렬한 배일언론(排日言論)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선교부에서는 과도한 항일논조(抗日論調)에 반대가 있었으며, 재정난도 겹쳐 1910년 1월에서 7월까지 휴간하였다가 속간하여 1912년 1월 20일 종간함으로써 약 3년 동안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