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길만 우선 올리고 오는 길은 좀더 다음어서 올리겠습니다. 기본은 써놨는데 좀 꺼끌꺼끌한 부분이 있어서요.
남도 끝자락에 붙은 보석 같은 땅이 진도다.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많은 유,무형 옛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땅. 지도를 펼쳐 보면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삐죽 튀어나온 좁은 땅이라 1 박 2 일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꼬박 1 박 2 일을 보낸 지금, 설익은 경험만큼 한 데 엉킨 지식이 너무나 거대하게 다가온다. 한 데 엉킨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충격 받은 순으로 쉬미항의 유람선부터 얘기해야겠다.
진도에서 낙조 하면 세방낙조다.
태양이 가사군도 너머로 지기에 아름다운 곳이다.
가사군도란 아기자기한 섬들이 한 데 모여 있는 섬나라 별천지다.
쉬미항 유람선은 이런 가사군도 내 아름다운 섬 몇 곳을 뽑아 구석구석 누빈다.
진도의 서쪽 끝 쉬미항에서 유람선에 올랐다. 곧 해가 질 테니 모르긴 몰라도 그 시각 많은 사람들이 세방낙조 전망대에 모여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다. 쉬미항을 떠난 유람선은 작도도를 찍고, 광대도(사자섬)를 지나 가사혈도(구멍섬)를 반환점으로 빙 돈 후 주지도(손가락섬)와 양덕도(발가락섬)를 거쳐 방고도를 끝으로 쉬미항에 돌아왔다. 이들 섬이 유람선 관광의 주이긴 했지만 배경이 되어 주는 가사도, 장도, 하의도 등도 보통 섬은 아니었다. 진도 땅 아니던가. 하다못해 이순신장군 졸병이 노 저어 가던 바다고, 내려서 쉰 땅이다.
제일 먼저 지나간 섬은 작도도다. 지금 한창 개발 중인 섬으로 그 유명한 거제의 외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꽃, 새, 잠자리의 섬으로 이미 광고까지 하고 있는 걸로 봐서 진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개발이 다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은 듯했다. 배로 섬의 3 분의 2 를 돌면서 본 공사 구간은 크게 선착장에서 섬 위로 올라가는 지그재그(Zigzag) 인도와 해안가 암반 위에 자갈을 깔아 만들고 있는 산책로와 해변과 섬 위를 바로 이어주는 또 하나의 인도 등이었다. 기왕 시작한 일, 잘 됐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섬 이곳 저곳을 쭉쭉 그어 가며 내놓은 길이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착장 쪽만 그렇지 그 반대쪽으로는 섬의 원형이 그대로 있었다. 초록빛 숲을 머리에 인 절벽의 향연이 무척 아름다웠다. 조만간 유람선이 작도도에 배를 댈 것 같다. 잘 하면 외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섬 속 정원이 하나 탄생하는 거다. 바다에 덩그러니 떠 있는 외도보다 세방낙조라는 커다란 후광을 지닌 작도도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여기서 언젠가 한 번 낙조를 보고 싶다. 중이 고기맛을 보면 절간에 파리가 안 남아돈다고, 이 날 최고 경지의 낙조를 한 번 즐겼다고 또 보고 싶어 몸에 안달이 날 지경이다.
작도도를 돌아 배가 곧장 달려간 곳은 광대도(사자섬)다. 가는 동안 11 시 방향에 떠 있는 주지도(손가락섬)과 양덕도(발가락섬)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섬 이름이 손가락이고 발가락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씩 떼어 놓았을 때 얘기고 둘이 나란히 세워 놓고 보니 이건 영락없이 여자 젖가슴이었다. 그것도 젖꼭지가 도드라지게 서 있는 …(아, 쪽팔려)… 기왕 이렇게 된 것 물귀신작전 좀 쓰자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묘사는 유도 아니다. 함께 탄 해설사님이 해준 설명의 명사는 죄다 거시기고, 조사는 죄다 머시기고, 동사는 죄다 거시기와 머시기가 하는 작업이었다. 주지도의 암봉은 누구의 거시기고, 혈도(구멍섬)의 구멍은 누구의 머시기인데, 옥황상제가 거시기를 맨날 보고, 선녀가 자기 머시기를 떼 놓고 가고, …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인상을 찌푸렸음에도 나는 좋기만 하던 걸? 귀에 쏙쏙 들어오고 좋던 걸? 지금 어떻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겠는 걸? 은영이 앞에서 인상 찌푸리는 척 하느라 고생했다.
광대도에 가까이 다가가자 해설사님이,
“사자가 보여? 저게 숫사자의 거시기여. 암사자가 보여?”
스스로 신명 나서 설명을 마구 해댔지만 내 눈에는 하나도 안 보였다. 그러다 잠시, 각도를 어떻게 맞추니 정말 포효하는 숫사자의 두상이 나타났다.
‘아하~ 이런 착시를 위해 해설사님이 저렇게 정성 들여 주문을 넣는구나…….’
숫사자의 두상은 그렇다 쳐도 거시기는 반대다. 아무리 봐도 그게 거시기로 보이지 않았다. 내 영혼이 너무 순수해서일까? 배가 좀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자꾸 암사자를 보란다. 이것도 반대다. 아무리 봐도 없었다. 하긴 그 유명한 단양팔경 구담봉에서 거북이를 찾지 못 한 나이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는 길에 구경한 광대도는 별로 닮지 않은 숫사자의 두상과 숫사자의 거시기와 암사자가 다인데 실제 광대도의 진정한 가치는 나중에 배가 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올 때 발휘됐다. 반대편 저 멀리에서 보니 정말 웅크린 한 마리의 사자 같았다. 완벽했다.
가사혈도(구멍섬)는 말 그대로 섬을 관통하도록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 바위섬이다. 그 구멍이 어찌나 좁고 깊은지 해설사님이,
“자, 보세요! 보세요! 보입니다!”
하는 그 순간에만 바위섬이 뚫려 반대편 숲이 보였다. 거기서 배가 아주 조금 더 나아가자 이내 구멍이 막혔다. 배에서 내려 한 번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었다. 어느 정도 큰 구멍일까? 사람이 통과할 순 있을까? 걸어서 통과해 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던데……. 사람이 사는 집도 있는 섬이었다.
혈도를 끝으로 배가 귀로에 올랐다. 앞 섬에 가려 보이지 않던 광대도가 배가 나아감에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와~ 일부러 이렇게 연출하려 해도 힘들 것 같다. 앞 섬 뒤에 숨어 있다가 서서히 머리부터 드러내는 한 마리의 사자… 진짜 사자 한 마리가 섬 뒤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해설사님의 설명은 사자가 제 몸을 모두 내보였을 때 끝났어야 했다. 맨날 마지막에 한 마디씩 더해서 문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설사님의 한 마디는 이것이다.
“자세히 보세요. 사자가 수달로 변합니다.”
그냥 소설을 쓰세요. 주지도나 양덕도에 붙는 손가락이니 발가락이니 하는 것 모두 같은 맥락이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자가 수달로 변하는 건 너무 과욕이에요, 과욕. 차라리,
“사자가 하품을 하다 턱이 빠지고 이빨이 나갔습니다.”
어때요, 좋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 해설사님이 해준 설명에서 거시기를 빼고, 야한 얘기를 빼고, 소설을 빼니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첫댓글 깔끔한 포스팅... 늘 충만한 파워맨...역마살 님의 정열이 보입니다 조상 일? 때문에 못한 진도 팸투어 대신합니다
울산에 오시잖아요. 그 때 뵈요. 히히히...
지금부터 노을사진인가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