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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 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 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 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무한소) 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1절] 엘레아학파의 제논과 아리스토텔레스 Zénon d’Elée et Aristote 153
[2절] 아르키메데스 Archimède 156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La géometrie des indivisibles et l’algorithme leibnizien.
[3절] 비에뜨 와 케플러 Viète et Kepler 160
[4절] 카발리에리 Cavalieri 162
[5절] 파스칼 Pascal. 167.
[6절] 라이프니츠의 발견 La découverte leibnizienne 171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7절] 접선들의 위한 방법들 Les Methodes pour les tangentes 177
[8절] 무한 급수 Les séries infinies 182
[9절] 뉴턴의 분석, L’analyse Newtonienne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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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7절, 접선들을 위한 방법들 Les Methodes pour les tangentes 177
§106. [페르마의 새로운 방법: 기호(상징)의 사용으로 대수학과 추상방법으로]
인간 사유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기하학(1637) 발간의 다음날에, 페르마로부터 데카르트로 보내진 짧은 편지 구절만큼이 유명한 매우 짧은 줄의 글은 없다: 즉 최대와 최소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 여기 그 내용이 있다: 나는 문제의 방정식을 제시하고, 나는 이 방정식에서 양 A는, 내가 E에 의해 재현[표상]하는 어떤 양으로부터 증가되었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리고 나는 A + E라는 방정식을 형성한다. 이때에 방법의 비밀은, A 방정식과 A + E 방정식이 동등하다고 하며, 페르마에 의해 사용된 주목할 만한 표현에 따르면, 거의 동등하다(adégaler)고 한다. 이런 환원이후에, 사람들은 보조적인 양 E를 거의 무화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A라는 표현[방정식]을 얻는다. 방정식 A는 찾고자 했던 최대 또는 최소를 제공한다. (178)
점 B에서 나누어지는 직선 A가 있다고 하자. 이런 방식에서 AB와 BC라는 변들이 있는 직각형[장방형]은 최대(maxima) 면적을 갖는다. 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두 수에 참여하는(à partager, 나누어 가지는) 하나의 수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두 수의 생산은 최대(maximum)이다. 다른 한편 부분들의 하나를 A라고, 그리고 부분들의 합을 B라고 하자. 그런데 이 부분들의 생산은 A (B - A) = AB - A2 일 것이다. 나는 A 대신에 A + E를 대체한다. 그러면 나는 방정식, 즉
(A + E) (B – A - E) = AB – A2 –2AE + EB – E2를 얻는다.
나는 앞선 방정식들의 둘째 항들을 등가들로서 제시 한다:
AB – A2 = AB – A2 – 2AE + EB – E2.
EB = 2AE + E2
B = 2A + E
E의 무화(없는 것으로 만들면)가 찾았던 결과를 제공한다. 양 B의 두 부분의 최대 생산은 B2/4이다. 페르마가 덧붙여 말하기를, 이것은 가장 아름다운 질문들의 대부분에서 오류일 수 없고, 또 너비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곡선들의 접선들의 규정작업을 이 방법으로 끌어가는 것은 쉬울 것이다. 페르마가 데카르트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그는 축의 한 점으로 이끈 포물선의 접선을 예로서 들고서, 그 접선을 점과 포물선 사이에서 최대(maxima) 거리처럼 고려 한다. (178)
만일 페르마가 그의 방법의 단순성과 일반성에 대해 가장 말끔하게 의식했었다면, 미래는, 그가 미래를 그 자체로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훨씬 더 그의 신념을 정당화하였을 것이다. 확실히 라그랑쥬(Lagrange, 1736-1813) 같은 심판관들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페르마를 “새로운 계산들의 첫 발명자”로서 고려하기에는 과장과 불의(injustice)가 있다. 페르마의 방법은 라이프니츠 또는 뉴턴의 알고리듬들 실행하게 하는 계산 작업들의 장[영역]을 연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미분[차이] 사유는 전적으로 보조적인 상징기호 E의 개념작업 안에 있다. 이 상징 E는 문제에 상응하는 크기들[양들]의 연관의 둘째 표현을 제공하기 위하여 개입하며, 그럼에도 엄밀히 말자면, 그것[E]은 규정된 크기가 아니고, 결국에는 마치 0(제로)인 것처럼 제외된다. 이런 미분/차이 사유는 조건 없는 상태에서(dans sa nudité) 우리에게 맡기고, 그 사유는 전통적 논리학의 어떠한 형식도 참조하지 않는다. 거의 동등성(adégalité)은 동일성의 원리의 엄격한 틀을 벗어난다. 그 사유가 최대치의 주변들에 증가와 감소들에 대한 감각할 수 없는 정도의 변이들에 관하여 오레슴(Oresme, 1320년경-1382경)과 케플러(Kepler, 1571-1630)의 예견들을 상기하게 하는 결과들을 재발견하는 찰나에, 페르마의 사유는 공간적 직관에서 지지점을 찾지 못하였다. 특히 그의 사유는, 사람들은 이런 사유에서 미분/차이 용어들의 기원을 보기를 원했지만, 운동과 시간의 고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었다. 그 사유는 대수학의 지평 위에서 태어났고, 비에트(Viète, 1540-1603)의 작품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사유는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Πάππος, 290경-350경)를 통해 전해진 최대 또는 최소(maximum ou minimum)의 문제들에게 방정식들의 변환의 법칙을 적용하였다. 그 사유는 추상적 사유이다. 이 추상적 사유는 지성의 내부 발전을 뒤 따라간 것이고, 그리고 제기된 난제들의 해결에 의해 발전의 법칙을 정당화한다. (179)
§107. [페르마의 개념작업, 데카르트의 원주에서 접선과 달리 곡선들에서 접선의 방정식을 만들었다. 데카르트는 제한적이고 페르마는 대수학(미래의 알고리듬)으로 해결한다.]
페르마의 개념작업의 독창성은 또한 데카르트의 저항에 의해 강조되었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1628년 경 집필시작 미완성)의 저자는 헛되이 절대(l’absolu)를 찾았다. 그는 그 절대에, 마치 자기의 이법에처럼, 페르마에 의해 발명된 절차를, 즉 “명석 판명한 용어”를 결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용어에 의해 지성과 직관이 통합되리라고 여겼다. 페르마가 주장했던 보편성을 그는 순수하게 스콜라적인 의미에서 해석했다. 마치 포물선에서 접선의 정식이 어떤 곡선에서도 접선의 정식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페르마의 방법이 그의 눈에는 성공한 경우이기에, 그는 거기서 임시방편만을, 즉 거짓 문제제기의 규칙(la règle de fausse position)에 대한 적용만을 보기를 바란다. 이 규칙은 “증명하는 방식으로 토대가 이루어져 있으며, 이 방식은 불가능한 것으로 환원되고, 그리고 사람들이 수학들로서 이용하는 모든 방식들 중에 가장 덜 평가받고, 가장 덜 능란 방식이다.” (180)
데카르트에 따르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실한 방법은 선천적이다. 이 방법은, 마치 곡선의 자연[본연] 과 대수학적 표현의 형식 사이에서 연접(la conjonction, 순접)의 특별한 경우에서처럼, 기하학에 영감을 주었던 일반 개념작업으로부터 연역된다. 만일 사람들이 순서에 의해서 진행한다면, 만일 사람들이 원주라는 가장 단순한 곡선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거기에서 접선이 마치 반지름에 수직처럼 일률적인(uniforme, 획일적) 방식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페르마 규칙에 불운하게 적용했던 “기하학의 이런 형이상학”에 부합하여, 그러나 페르마는 데카르트를 위하여 수학적 발명의 비밀을 남겨두었는데, 원주에 접한 접선의 특성은 보편화될 것이다. 곡선들 일반에 접한 접선의 규정작업은 “사람들이 선택하고자 원하는 그것들의 점들 중에 이런 저런 것 위에 직각들에 속하는 직선들로부터 끌어낼 방식”에 부여하기에 이를 것이다. 데카르트가 덧붙이기를, “나는 감히 이것은 여기서, 내가 알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또한 내가 기하학에서 알고자 요망했던, 가장 유용하고 가장 일반적 문제이라고 감히 말할 것이다” (180)
해결의 일반적 방법은 문제의 항목들의 제시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곡선이 주어지면 곡선의 내부의 점으로 원을, 적어도 두 점에서 곡선에 만나는 원을, 그리자. 주어진 곡선에 그리고 보조적 원에, 분석적으로 두 방정식이 상응[대응]한다. 좌표의 동일한 체계에 연결되어있어서 두 방정식들은 적어도 두 개의 공통적 근들을 가질 것이다. 이제 원의 반지름을 축소해보자, 그리고 교차하는 점들 중에 둘은, 결국에는 점들이 하나의 점으로 일치하는 것에까지 서로 근접할 것이다. 이 점에서 반지름은 곡선에, 그리고 곡선에 연관하여 접선에, 직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일치하는 이 점은 한계점(point limite)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은 모든 무한소의의 고려에 독립적으로 규정된다. 그 점이 있고, 그 점에서 원의 방정식에 공통하는 가치들은 동등하다. 그리고 비결정된 계수들의 방법(la méthode des coefficients indétermunés)은 문제의 대수학적 해결을 제공할 것이다. (180)
이리하여 단 한 순간에 데카르트 사유가, 지성과 직관이 서로 상호지지를 얻는 영역의 바깥으로,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 영역에서 상응[대응]은 대수학과 기하학 사이에서 어느 정도로는 문자적으로 입증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왜냐하면 데카르트 사유가 대응의 법칙들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그 방법의 적용은, 데카르트 그 자신의 마지막 인정에 따르면, 제한되고 힘든 일로 남아있었다. (181)
§108. [접선에 대한 지성의 방법적 분화(분열) 세 가지: 데카르트의 원의 접선 방법, 페르마의 거의 동등성의 방법, 로베르발의 역학적 방법.]
원리들 속에서 동일한 단순성은, 또한 적용들을 좀 더 멀리 밀고 나갈 동일한 복잡성은, 로베르발(Roberval, 1602–1675)이 이를 발전시켰으며, 게다가 토리첼리(Torricelli, 1608-1647)와 협력하여 발전시킨, 역학적 방법(la méthode mécanique) 속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어떻게, 그의 영감 아래에서 작성된 글에서, 즉 「운동들의 조성에 관한 그리고 접선을 발견하는 수단들에 관한 관찰」에서, 로베르발의 방법에 근거한 “발명의 원리의 공리”가 표현되었겠는가. “곡선을 묘사하는 한 점의 운동 방향은, 저쪽 점의 각 위치에서 곡선의 접선이다.” 이것에 단순한 단어들이 보태진다. “원리는 충분히 지적일 수 있으며, 그리고 사람들은, 원리를 약간의 주의로도 고려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 원리를 쉽게 일치시킬 것이다.” 이 원리로부터 “일반 규칙”이 나온다. 로베르발은 이 규칙을 계속해서 원뿔의 절단들의 “접선들”에, 그리고 새로운 잡다한 선들에 적용할 것이다. “곡선(이 곡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의 특수한 성질들에 의해서, 당신이 접선을 끌어들이고자 원하는 그 장소에, 곡선을 그린 그 점을 갖는 잡다한 운동들을 검토하세요, 조성되었던 이 모든 운동들로부터 단 하나의 운동으로, 조성된 운동의 방향을 지닌 선을 그려보세요. 당신은 곡선의 접선을 갖게 될 것이다.” (181)
데카르트는 역학적 직관을 기하학적 직관에 환원했으며, 그는 로베르발의 방법 속에서 자기 자신의 방법의 변장[위장]만을 보고자 원했다. 이렇게 그는 새로운 요소를 오해했는데, [말하자면,] 운동의 운동체가 활성화된 것으로 가정된 운동으로부터, 보다 단순하고 방향뿐만 아니라 속도에서도 다른 운동으로, [운동의] 분해(la décomposition)가 그 새로운 요소를 문제의 고려에 덧붙였다는 점이다. 이런 [정]역학적 분해는 세분화(différenciation)의 절차들의 발전을 위해서, 교차점(point d'intersection)의 점진적 접근보다 덜 풍부한 것이 아니다[그래도 풍부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와 뉴턴의 예가 이것을 증거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서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위치되어 있는 관점으로부터, 역학적 분해는 특히 미분적 사유의 연결을 더 잘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미분적 사유는 자연의 경과 자체와 더불어 세 가지 경쟁적 방법들 중에 각각에서 명시적인 것으로 또는 막으로 가려진 것으로 재발견된다. 로베르발은 이행 자체 속에서 연결의 감정을 가졌다. 그런데 이 [동역학에서] 이행에서 소위 말하는 수학의 영역 바깥에서 접선들의 문제를 옮겨놓고 실행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방법을 말하면서 페르마에게 쓰기를 “이 방법은 당신의 방법 또는 데카르트의 방법만큼이나 매우 미묘하고 또 깊이있는 기하학으로 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방법은 덜 인위적으로 나타난다. 그 대신에 그 방법은 나에게 보다 단순하고 보다 자연적이고 보다 간단한 것 같습니다.” (182)
코엔(Hermann Cohen, 1842-1918)은 그의 연구 저서인 미분소 원리와 그 역사(1883)에서, 라플라스(Laplace, 1749-1827)가 라크르와(Lacroix, 1765-1843)에게 무한소 계산의 여러 방법들의 종합적 진술에 관하여 1792년에 쓴 편지의 매우 주목할 만한 구절을 알렸다. “당신이 행하고자 고려한 방법들의 접근은 방법들을 상호적으로 밝히는 데 쓰인다. 그리고 이 방법들이 공통으로 갖는 것은 방법들의 진실한 형이상학을 매우 자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왜 이런 형이상학이 거의 항상 사람들이 발견한 마지막 것[사물]이라고 하는지 이유이다.” 라플라스의 반성은 그 만큼 더 많은 정확성으로 접선들을 위한 방법들에 적용될수록, “공통적” 요소가 접선들의 재현의 자료들로부터 더 멀어진다. 데카르트의 곡선들이 잘려진 두 점의 일치에서, 그리고 운동의 속도의 방향으로부터 주어진 한 점으로 로베르발에 의한 규정작업에서, 마치 페르마에 기인하는 근사치 동등성(l’adégalité)의 용어에서처럼, 그것이 참여한 것은 지성의 동일한 역동적 과정이다. 또한 라이프니츠가 분명성과 일반성의 가장 높은 정도[차원]으로 가져갈 것이 바로 새로운 논리학의 원리이다. 그 때에 라이프니츠는 그의 「일상적 대수학의 계산에 의한 무한소들 계산의 정당화(1702)」에서, 그는 수학적 근본 관계, 즉 동등성을 가지고 “비동등성의 특별한 경우를 만들 것이다.” 그가 아르노에게 썼듯이, “비동등성(무한히 작음)이 동등성이 된다.” (182)
8절, 무한 급수 Les séries infinies 182
§109, [무한 계열과 무한에서 미분소의 사라짐: 포물 곡선과 쌍곡선에서. - 라이프니츠(1646-1716) 이전에 월리스(1616-1703) 견해.]
적어도 프랑스 수학자들이 접선들의 문제에 기울였던 주의에 의해, 그들은 무한소 계산의 구성작업을 위하여 본질적 관계를 말끔하게 깨달았으며, 그 본질적 관계 자체에서 사람들은 가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발견의 비밀을 본다고 믿었다. 미분(différentiel) 계산이 될 것인 것과 적분(intégral) 계산이 될 것 사이의 연관은, 접선들의 규칙을 위하여 “역(une converse)”으로 탐구에 의해 표시되었다. 이리하여 적분작업에 동등가인 계산작업들이 고대에서 실행되었던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세분화(différenciation)에서 적분작업(l’intégration)으로 이끄는 길이며, 이 길은 전자(la première)를 인정했다. (183)
프랑스 수학자들이 효과적으로 이런 길을 거쳐 가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런 것을 위하여 추상적 분석의 지평위에 문제들을 제시해야만 했는데, 그 문제들은 지금까지는 역학적 방법들 또는 적분의 기하학적 방법들에 의해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17세기의 초반에 과학자들의 방편들(les ressources)을 넘어섰다. 그들은 회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원 기능들의 인식은 로가리듬들의 발견이래로 실재 상으로 과학에 획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 또는 브릭스(Henry Briggs, 1561–1630)의 목록들에서 실천가의 작업을 보았을 뿐이다. 그 실천가의 작업은 퓌타고라스 시절에 산술학의 이론가들을 위한 논리추리(la logistique)이었던 것에 비교할 만한 유용한 기술이었으며, 그 산술학은 논리추리가 발견 또는 검증작업을 위해 유용했던 것과 동일한 그림자 속에 그 당시에 남아있을 운명에 처해져 있었다. (183)
여기서, 무한 계열들의 연구가 무한소 계산의 발견을 위하여 결정적이 되었던 이유이다. 무한 계열의 총합(la sommation)이 이미 적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 라이프니츠가 퐁뜨넬(Fontenelle, 1657-1757)에게 쓰기를, “나는 면적들의 합계에, 또는 무한에 의해 곡선들의 정정(la rectification, 수정)에, 오는 두 방식들이 있다고 관찰했다. 한 방식으로, 무한히 작은 것들에 의해서, 또는 기본적 양들에 의해서, 사람들은 이것들의 합을 찾는다. 다른 방식으로, 일상적 용어들의 진행에 의해서, 사람들은 그것[진행]의 합 또는 끝점(la teminaison)을 찾는데, 그 때는 무한을 감싸고 있는 것에서 결국 끝난다. … 그리고 이런 방법은 차이들에 대한, [또는] 합들에 대한, 우리들의 계산으로부터 전적으로(toto genere) 차이 있다.” - 계열에 의한 방법은 수학자들에게 확실성에 기여했고, 사람들이 공간적 이미지의 우회를 통하여 통과하지 않고서, 무한(l’infini)은 확실성이 다루어질 수 있기를 허용하였다. 뽈 딴느리(1843-1904)가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는 계열들의 사용 없이 전개되었고 적용되었던 라이프니츠의 표기법을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에 사정은 가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함수의 일반적 개념이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대수학적이 아닌 관계들이 기하학적으로 또는 역학적으로 도형으로 그려질 없는 만큼이나 개념은 도입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공백이 있는데, 월리스(Wallis, 1616-1703)는 이 공백을 귀납법(l’induction)의 실행[실천]에 의해서 채우기 시작했다 - 수학적 연역법의 특수한 형식인 “완전한 귀납법”의 실행이 아니라 – 오히려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된 물리학자들의 귀납법의 실행에 의해서이다. (184)
월리스의 귀납법은 직접적으로 실재성에 근거한다. 귀납법은 특별한 경우들의 관찰로부터 보편적 규칙을 끌어낸다. 무한소 산술학(1655)의 첫 명제에서부터 월리스가 주목하기를, “Simplicissimus invetigandi modus est rem ipsam aliquousque praetare, et rationes prodeuntes observare atque invicem comparer ; ut inductione tandem universalis propositio innotescat.” [가장 단순한 조사 방법은 사물 자체를 어느 정도 실행해 보고 그리고 생산하는 이유(rationes, 논리)를 관찰하며, 또한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결국 귀납법(induction)을 통해 보편적 명제가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모든 애매함과 모든 비규정[비결정] 작용을 배제하면서, 실재성(la réalité)은 이런 방법적 관찰의 특권적인 질료(la matière)가 된다. 이것이 바로 수적 관계들이다. 월리스는 사각형화의 기하학적 문제들을 산술학적 항목들로 번역한다. 뷔퐁(Buffon, 1707-1788)의 행복한 표현에 따르면, 월리스는 실재적으로 산술학을 무한의 관념들에 적용한다. 가장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분수들의 계열이 있다고 하자. 분수들의 분자(le numérateur)는 0(제로)로부터 쓰여진 자연수들 중에 사각형들의 합이며, 분수들의 분모(le dénominateur)는 이 항들의 수에 의해 곱해진 분자의 항들 중에 마지막 항이다.
0+1/1x2 ; 0+1+4/4x3 ; 0+1+4+9/9x4 ; 0+1+4+9+16/16x5.
이 여러 분수들은 각각 다음에 등가로서,
1/3 + 1/6 ; 1/3 +1/12 ; 1/3 + 1/18 ; 1/3 + 1/24. .
이 결과들의 고찰이, 동일한 절차에 따라서 계속해서 형성된 분수들의 합계들을 제공하는 규칙을 분간하게 허용해 준다. 항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1/3에 관한 합계들의 초과량은 규칙적 법칙에 따라서 줄어든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만일 분자와 분모가 이제 막 지적된 규칙의 법칙에 따라 제시된 항들의 무한성을 허용한다면, 그거들의 연관은 분수 1/3에 의해 표현되었을 것이다. 월리스가 말하기를, ““Facto einem experimento patebit rationes inductione repertas ad has [c’est-à-dire aux valeurs limites] continue propius accedere, ita ut differentia tandem evadat quavis assignabilis minor; adeoque in infinitum continuata evanescet.” - [실험적 사실을 통해 귀납적으로 발견된 비율들(rationes)이 이 수치들[한계 값들]에 계속해서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마침내 주어진 어떤 값보다도 작아지며, 무한히 계속된다면 결국 사라질 것이다.] (185)
§110. [기하학적 소진법에서 대수학적 무한소: 페르마의 대수학적 해명, 즉 무한계열. - 가장 잘 표현한 수학자는 메르카토르이다.]
이리하여 산술학적 방법의 핵심에 극한으로[한계로] 이행의 동일한 절차가 다시 있게 된다. 이 절차는 기하학적 방법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기하학적 항목들로 제기된 문제들을 오직 기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설명하기를, 그럼에도 페르마가 귀납법을 발견의 수단처럼 실행하는 경향에 강하게 끌림에도 불구하고, 페르마는 무한들의 산술학(1657)에서 무용한 복잡성만을 보았다. 그는 월리스에 관하여 쓰기를 “그가 증명하려는 방식은 아르키메데스의 양식에 따라 추론 위에 근거한다기보다 귀납법 위에 근거하며, 그 방식은 시작에서 끝까지 증명하는 삼단논법을 원하는 초보자들에게 약간의 수고[노력]를 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명제들은 그의 책이 포함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말들 사용하여 일반적이고 합법적이며 아르키메데스적인 방식(via ordinaria, legitima, et Archimedea)으로 증명될 수 있다. 나는 왜 그가 고대의 방식보다 대수적 노트[표기]들에 의한 방식을 선호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고대의 방식[기하학적 방식]은 보다 설득력 있고 그리고 보다 우아하다.” 그 찰나에서 페르마는 이유[근거]가 있다[타당하다]. 월리스는 아르키메데스 또는 카발리에리의 무한소 고찰들이 근거하였던 지평을 이동시켰다. 그러나 이론을 위하여 이런 지평의 이전[이동]에게 진보가 상응하는데, 페르마 그 자신은 완성했던 진보의 자연[본연]으로부터 이동하였다. 이때에 그는 접선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분석적 순서로 된 알고리듬에 근거했다. 이런 진보 덕분에, 기하학적 직관의 도움으로, 그러나 너울을 관통하여, 지금까지 다루었던 정사각형화(quadrature)의 문제들이 지성의 추상적 과정에 묶여있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185)
이런 결론은 유명한 메르카토르(Nicolas Mercator, 1620-1687)의 로그의 기술(1668)(로그 계산법)의 유명한 구절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쌍곡선(l’hyperbole)의 사각형화(quadrature)를, 다시 말하면 직각 쌍곡선(hyperbole équilatère)과 대각 쌍곡선(hyperbole asymptote) 사이에 포함된 선분의 표면[면적]을 찾으면서, 메르카토르는 분수 1/1+a에 의해 (순서로) 배치를 표현하는 좌표들을 만드는 선택에 의해 끌어왔다. 그런데 그는 계산의 일상적 규칙들에 따라서 분모(le dénominateur)에 의해 분자(le numérateur)의 분할을 직접적으로 실행했다. 그는 조작계산의 연속작업에 의해서 무한 계열(une série infinie)을 얻는다. “Ita, continuata operatione[이와 같이, 연속적인 작업에 의해], 1/1+a = 1 – a + aa + a3 + a4 (etc.)” 이런 정식과 더불어, 우리는 어느 정도로 무한의 산술학(l’arithmétique)으로부터 무한의 대수학(l’algèbre)으로 이행한다. 성질들의 바깥에서 그것들에 대해 관찰하기 위해 규정된 양들을 다루는 대신에, 메르카토르는 형성작업의 법칙을 직접적으로 부여한다. 이 형성작업에서부터 양들의 무한 계열이 파생한다. 이런 형성작업의 [주기적] 규칙성(la régularité)은 양들의 무한성을 표현하기 충분하다. 1/1+a라는 분수(la fraction)는 출발점이고, 무한 계열(la série infinie)은 도착점이다. a가 단위(l’unité)보다 작다는 경우에서, - 사실상 우리가 메르카토르의 작품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지적이다. 그러나 수렴(convergence)의 용어와 표현은, 원과 내접하는 다각형들 사이의 연관에 적용되어있으며, 1667년 파도바에서 출판된 [스코틀랜드 수학자인] 그레고리(James Gregory, 1638–1675)의 저술인 원과 쌍곡선의 진실한 구적법(1667) 안에서 [도형을] 그렸다. 분할의 두 항들을 재현하는 분수와 계열에 의해 표현된 계수(quotient 係數 또는 급수) 사이에 평가할 수 있는 차이는 없다. 분석적 용어의 형식 하에서 무한의 용어는, 정확하고 인식할 수 있는 표현의 자격으로, 과학에서 도시[국가]의 권리를 획득한다. 엘레아학파의 제논의 역설은 인간 정신을 위하여 결정적으로 해결된다. 길은 계열들에 의해 함수들의 표상[재현]들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칸토어(Cantor, 1829–1920)의 호기심 많은 표현에 따르면, 메르카토르의 계산작업이 특징짓은 순진성(la naïveté)은 사람들이 가장 확실하게 천재의 표시를 잘 인정하는 순진성이다.(186)
§ 111, [메르카토르(1620-1687)의 로그 계산법(1668)과 더불어 콜린스와 배로우로 이어지는 새로운 계산법의 제시, 뉴턴의 독창적 방법의 일반화(1687)에 성공. ]
역사적으로 메르카토르의 로그의 기술(1668)(로그 계산법)의 무매개적인 범위는 의미 있는 지표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 지표란, [한편] 배로우(Isaac Barrow, 1630-1677)가 그의 제자인 뉴턴(1642–1727)의 주제에서 메르카토르의 출판으로부터 생각했던 불안이었으며, [다른 한편] 배로우가 콜린스(John Collins, 1625-1683)에게 [뉴턴의] 논문 「무한한 항을 가진 방정식에 의한 해석에 관하여(1669년 7월 31일)」을 곧바로 보낸 발송(l’envoi)이었다. (187)
마치 메르카토르의 쌍곡선의 사각형화(la quadrature)처럼, 뉴턴의 초기 작업들은 [월리스의] 무한 산술(1656)(무한들의 산술학(Arithmétique des infinis, 1657)에서 파생되었다. 이런 작업들의 발생은 1676년 10월 24일에 라이프니츠를 위한 올덴버그(Oldenburg, 1619경-1677)에게 쓴 편지 속에서 뉴턴 자신에 의해 다시 다루어졌다. 뉴턴은 월리스(Wallis, 1616-1703)에 의해 제안된 삽입의 방법들(les methodes d’intercalation) 다시 다루면서 시작했다. 그는 발전을 다음과 같은 표현들의 계열로 고려했다.
다음: (1-x2)1/2 (1-x2)2/2 (1-x2)3/2 (1-x2)4/2 (1-x2)5/2 , [편미분방정식]
그리고 동일한 열(列)의 항들을 통합하는 관계들을 탐구하면서, 그[뉴턴]는 비슷한[상사(相似)] 이명법들(binômes)의 전개로부터 계속적인 곱하기 계수들의 형성(la formation pour les coefficients successifs)의 일반적 법칙을 얻는다.
(1-x2)1/2 = 1 – 1/2x2 - 1/8x4 – 1/16x6 , etc.,
(1-x2)3/2 = 1 – 3/2x2 + 3/8x4 – 1/16x6 , etc.,
(1-x2)1/3 = 1 – 1/3x2 –1/9x4 – 5/81x6 , etc. (187)
이런 결과들은 통속적 수학의 도움으로 검증의 관념을 자연적으로 암시한다. (1-x2)1/2에 동등가인 계열[급수]를 그 자체로 배가해보자. 두 항목들인 1 과 –x2만이 존속하고 있다. 모든 다른 항목들은 계산의 일상적 규칙들의 적용에 의해 제거된다. 3승으로 높이는 계열[급수](1-x2)1/3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때부터, 왜냐하면 [제곱]승들로 높이는 것이 성공하기 때문에, 근(根) 구하기(l’extraction, 추출)가 동등하게 성공할 것이다. 조절[제어]의 수단이 되었던 것은 직접적 계산 작업에 길을 연다. 뉴턴은 메르카토의 분할법을 재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사각형화의 성공에 응용하는데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그것으로 추상 계산에서 사용되었던 여러 다른 절차들의 연결에 지지를 받는 일반방법을 만든다. 그는 그 일반 방법을 마치 새로운 분석의 독창적 토대로서, 즉 더 근본적인 토대(Fundamenta magis genuina)로서 소개한다. 여기에서 무한급수들의 계산 작업들은 항들의 유한 수에 관한 계산작업과 동일한 실천적 편리함과 동일한 내속적 명석함을 얻는다. (188)
9절, 뉴턴의 분석, L’analyse Newtonienne 188
§112, [뉴턴의 독창적 발명: 양들의 생성작용 관념(방법). - 유율의 단위는 찰나라기보다 순간이며, 분할된 수라라기보다 흐르는(운동하는) 연관의 기호이다.]
무한급수들의 고찰은 무한소 문제의 직접적인 연구에서 17세기의 수학자들에 의해 준비되었으며, 이런 고찰은, 뉴턴의 천재성의 초기 진행 방식으로부터, 뉴턴 사유의 특성있는 특징을 수집하게 해준다. 이런 고찰[뉴턴의 사유]은 실천에 그리고 실재성에 집착하였고, 특별한 경우의 검토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고찰이 일반 법칙을 정식화하기 위하여 얻어진 결과들 위에 미리 참여하면서부터, 이 고찰은 절차들에 의해서 일반화를 검증하는 것이 요구되는데, 절차들은 다른 영역에서는 모든 이의제기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세워진 건축은, 사람들이 그에게 새로운 토대를 요청할 것이라는 이런 점에서, 바깥에 완전히 새롭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상으로, 그는 옛 건축물들을 넓혀진 평면 위에 이해할 것이다. 그는 고대 건축물들이 이미 감당했던 시험[시련]을 그것의 고체성[견고성]을 보증으로 삼을 것이다. 188)
바로 그러한 것이 「무한[급수] 방정식의 분석(1669)」를 통해서 나타나는 사유의 진보들의 본연[자연]이다. - 분석학 발전을 위한 편지교환(1712)의 서두에 실린 [뉴턴의] 「검토(Recensio)」에 따르면, - [월리스의] 「무한 방정식의 분석(1669)」에서 이미 무한소 계산의 기술(technique)이 발견된다. 출발점은 [월리스의] 무한들의 산술학이다. (참조 도형 9) 어떤 곡선으로부터 x[축]를 가로좌표(l’abscisse) AB라 하고, y[축]를 세로좌표(l’ordonnée) BD라 하자. 그 곡선의 방정식은 axm/n = y이며, 이때에 m과 n은 완전수이다. 면적 ABD는 아래 정식에 의해서 주어진다,
na/m+n x m+n/n . (188)
도착점은 찰나들(des moments)의 방법에 의해 동일한 관계의 일반적인 증명작엄일 것이다. 찰나(le moment)는 – 그레고리(Gregory, 1638–1675)에게 빌려온 표기법에 따라서 0(제로)이란 글자에 의해 지칭되었고 – 여기서는 어떤 양의 점[진적] 증가이며, 그 양에 대해 사람들은 선이든 면이든 균일적[일률적인]인 증가를 가정한다. 따라서 문제의 방정식 위에 사람들은 초기의 양 대신에 이런 양의 합을, 즉 그것의 찰나의 합을 대체할 것이다. 그러면서 옛 사람들이 유한의 기하학에서 기여했던 완전한 정확성을 가지고, 어떠한 어림짐작 없이, 조작[계산]할 것이다. 찰나가 무한으로 줄어들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방정식 위에서 행해진 모든 환원들 이후에, 단지 추론의 둘째 부분 속에서이다. 그러나 [뉴턴의] 「검토(Recensio)」에 따르면, 증명의 방법보다 오히려 탐구의 방법을 따르는 분석학 발전을 위한 편지교환(1712)에서, 요약[축약]하기 위하여 뉴턴은 무한히 작은 찰나를 가정하며, 그는 논술들 속에서 그것을 무시하고, 근사치의 모든 양태들을 이용하며, 그는 결론 속에서 그 양태들이 어떠한 오류도 도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189)
여기에, 증명작업이 옷을 입힌 형식이 있다. 일단 면적의 척도에서 y의 규정작업으로 간다. na/m+m = c, m + n = p 라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cxp/n = zn, 또는 cn xn = zn을 얻는다. 이제 한편으로 x 대신에 x+o을, 다른 한편 z 대신에, z + ov를, 또는 뉴턴이 말하듯이, 동일한 것에 귀착하지만 z + oy를 대체하자. 우리는 방정식 cn(x + o)v = (z + oy)n앞에 있게 되며, 이 방정식의 발전을 이항정리(le théorème du binôme)가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중에 o= 0 제기할 때 결국에는 사라지게 될 o의 제곱승들을, 포함하는 항들을 옆으로 젖혀두면, 아래와 같이 남으며,
cn xv + cn poxp-1 = zn + noyzn-1
그런데, 왜냐하면 각 수의 두 초기의 항들이 동등하기 때문에,
cn + pxp-1 = nzn-1 y[이다]. (189)
이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다음의 변환들을 허락하는 표현을 얻는다.
y = cn pxp-1 / nzn-1 = cn pxp-1 z / nzn = cn pxp-1 z / ncn xp = pz/nx = pcx/nxp/n ;
그리고 우리는 초기의 기호들을 되살릴[재정립할] 수 있다.
y = (m+n) na/m+n xm+n/n/nx 또한 axm/n. (189)
뉴턴이 월리스에게 보탠 것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분석의 단위로서 파악된 증가 요소(l’élément d’accroissement)의 고찰 즉 찰나(le moment) o의 고찰이다. 이어서 이것은 세분화(différenciation, 미분화)의 방법의 반대로서 적분의 방법을 구성하게 허락하는 회귀의 길이다. 결국 그것은 [뉴턴의] 「무한 방정식의 분석(1669)」 속에서 아직도 암묵적인 관념이다. 그러나 그 관념은 1670-1671년경에 구성된 「유율 방법」 속에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뉴턴은 이 관념을 자신의 발명의 명석한 표시들 중의 하나, 즉 “양들의 생성작용의 관념”으로서 유지할 것이다. (190)
§113 [뉴턴의 미분소: 유량과 유율, 움직이는 찰나(최소값)에 대한 표현. - 유율들의 방법(la methode de fluxions).]
1670년에 출판된 [배로우의] 기하학 강의들(1670)에 의해서 그 관념을 판단하건데, 이 개념작업들은 배로우의 교육 속에서 서로 만났다. 페르마와 로베르발의 접선들을 위한 방법들에 대해 우리가 말했던 것 이후에, 특히 우리가 특성있는 삼각형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졌던 것 이후에, 우리는 접선들의 방법으로 새로이 되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접선들의 방법은, 기계적이고 기하학적인 고찰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리고 문제의 모든 요소들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접선들의 문제와 반대 문제의 연결성을 분명하게 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로운 저술의 첫 「강의」를 알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배로우는 그 강의에서 시간의 이론을 마치 시간 경과의 획일성에 의하여 특징 지워진 수학적 크기처럼 제시한다. 순간(l’instant)을 마치 비한정하게 작은 부분처럼 고려하는 가능성으로부터, 시간을 재구성하는 가능성으로, 계속적인 찰나들(les moments)의 단순한 합산에 의해서이든 간에, 말하자면 유일한 찰나(un seul moment)의 연속적인 흐름(le flux)에 의해서이든 간에, 배로우는 결론을 내린다: velut ex simplici supervenientium momentorum additamento vel ex unius momenti quasi continuo fluxu. [마치 그저 덧붙여지는 찰나들의 단순한 추가처럼, 또는 우리가 그것을 마치 연속적인 흐름처럼 단 하나의 찰나로 구성된 것으로 상상한다.] (190)
그런데, 뉴턴 자신의 것으로 남게 될 언어에서[용어법에서] 이미 표현된 관념들을, 뉴턴은 월리스의 작업들에 [등위적으로] 배치하였다(coordonner). 뉴턴은, 배로우가 역학과 기하학의 규정작업들의 도움으로 재현[표상]했던 차이[미분]요소들에게, 지성을 위하여 요소들로 하여금 독립적인 대상을 만드는 분석적 표현을 부여했다. 이때 그 세분화(différenciation)는, 마치 그것이 페르마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요소적 계산 작업이 되었다. 단지 지난 30여년 과정에서 수학적 사유에 의해 완수된 진보들을 이유[근거]로 해서, 이런 요소적 계산작업은, 특별한 의문들의 해결에 유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적 진행과정의 토대가 되었다. 이 지적과정은 사각형화 또는 곡선의 직선화에 대한 문제에 참여되었고, 그리고 이것은 적분작업의 과정이다. 무한소의 계산은 구성되었고, 말하자면 연결(la connexion)은 반대되는 수학자들이 발견했던 방법들 사이에 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근본적 동일성은 이 방법들이 적용되었던 잡다한 영역들 사이에서, 즉 산술학 또는 대수학, 기하학, 역학 사이에서 인정되었다. 그리고 뉴턴의 분석은, 수학의 다른 분야들의 수렴점에 위치되어 있어서, 마치 라이프니츠의 분석처럼, 분할불가능하게 과학 전체의 증진[촉진]이 된다. (191)
이로부터 다음의 형식이 결과로 나온다. 이 형식을 뉴턴에서 무한소 계산의 원리들의 진술이 다룬다. 뉴턴은 특별한 영역 속에 갇혀있지 않았고, 고정된 언어에 제한되지 않았다. 다. 「곡선의 넓이계산 입문(1704)」에서 그는 수학적 양들의 발생에 관한 고찰들로부터 출발하며, 그는 이 고찰들을 고대인들의 기하학적 구축들에 결부시켰다. “Lineae describuntur ac describendo generantur non per appositionem partium, sed per motum continuum punctorum … Hae geneses in rerum natura locum vere habent et in motu corporum quotidie cernuntur.” [선은 부분들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점들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통해 그려지고 그려짐으로써 생성된다. 이러한 생성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며, 물체의 운동 속에서 매일 관찰 된다.] 따라서 생성작용의 요소는 증가하는 운동의 속도가 될 것이다. 가능한 만큼 짧은 시간의 간격 동안에 크기의 증가를 다루면서, 그리고 독립적인 변수로서 간주되는 시간의 최소간격에서 “태어나는[생겨나는]” 증가의 “초기[첫] 연관”을 규정하면서, 이런 요소를 파악하는 것과 계산 속에 이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쉽다. 이렇게 생성된 크기는 경험 속에서 공통적으로 주어진 크기이다. 반면에 라이프니츠가 적분의 기호(le signe)를 그것의 합(ses somme: 인테그랄)로서 발명하는 반면에, 또한 뉴턴은 대수의 일상적 기호들을 이런 생겨난 크기, 즉 흘러가는(fluente) 크기[유량]로서 만족한다. 크기 요소[기본], 즉 유율(fluxion)은 철자의 그 위에 점을 찍음으로써 표시되었다. - [그 표기법은,] 유율들의 유율들(des fluxions de fluxions)을 구성하도록 허락하는, 그리고 또 상징들이 진행하여 깔끔하게 [순열]조합들을 지적하는 상징들의 연속에 의하여 계신이 끝나는 근사치의 차원이 나타나도록 허락하는, 방식으로 선택된 표기법이다. 마치 뉴턴이 지적 했던 대로, 그리고 마치 블로쉬(Léon Bloch, 1876-1947)가 그의 뉴턴의 철학에 관한 주목할 만한 저술에 힘차게 그것을 제시했던 대로, 그것은 유율들의 방법(la methode de fluxions)의 특성이다. (192)
유량(fluente)과 유율(fluxion)은 상관관계의 용어들이다. 무한소 계산은 마치 규정될 것이다. 미분소의 계산은, 유율들과 유량들의 용어들 자체들은 명시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관계들의 계산처럼 규정될 것이다.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에서 뉴턴은 유율의 단어를 발설하지 않고서, 또한 새로운 알고리듬(l’agorithme, 기호계산)을 사용하지 않고서, 계산의 규칙들은 제안한다. 그는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불합리에 의한(par l’absurde) 증명작업들의 복잡화를 회피할 것을, 그리고 불가분적인 것들의 가설의 “견고함”에 대책을 세울 것을 스스로 제안한다. 따라서 그는 불가분적인(양) 것들 대신에 사라지는 양들을 대체하는데, 규정된 양들의 합들과 연관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이 양들에의 합들과 연관들에게 할당할 수 있는 한계들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대체한다. 이 때는 사람들이 이것들[양들의 합들과 연관들]을 태어나거나 또는 사라지는 그것들의 상태로 고려할 때이다. 한계들의 표현들 속에서 관계하는 항[목]들인 양들은, 그리고 유한한 양들의 무한소 요소들을 구성하는 양들은 뉴턴에 의해 찰나들(des moments)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계산 속에 개입하는 찰나들의 크기가 아니고, 이것은 태탄생[생성]에서 그것들의 초기 비례이다. “Neque enim spectatur in hoc Lemmate magitudo mometorum, sed prima nascentium proportio.” (192)
§114 [뉴턴의 수학주의는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주의도 아니고, 영국 경험론의 전통과도 거리가 있다.]
뉴턴이 원리들을 조성[구성]했을 때 그가 유율들의 계산(son calcul des fluxions)을 소유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 부정하기에 이른 개인적 논쟁들을 개입시키지 않고서, 사람들은 이런 진술들의 간략함과 명백한 다양성이 새로운 분석의 해석을 위하여 난점들을 일으키게 되어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18세기에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에 관하여, 뉴턴은, 다른 면에서 보면 마치 라이프니츠처럼, 통째로 이해하기에 이르지도 못했고, 아마도 완전히 설명하기에 이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철학은 인류가 막 정복했던 사유의 형식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틀[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 철학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만을 인식할 뿐이었다. 그리고 인류는 합리주의를 실재론적 요청(une exigence réaliste)에 의해서 정의하였으며, 그 요청은 선천적(a priori)이란 용어를 가지고 지적인 직관을 만들었다. 이런 요청에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만족했었다. 데카르트에 대립에 의해서 뉴턴의 방법이 특징이워진다. 그 뉴턴의 방법은, 선천적으로 주장된 단순한 자연[본연]들이 아니라 경험의 자료들(les données)에 관하여, 실행된 분석의 잔여를 출발점으로서 취급하고, 그리고 그의 방법은 가설적인 것 대신에 실재적인 것을 대체한다. 거의 회피할 수 없는 관념들의 연합은, 수학의 영역에서 그리고 물리학의 영역에서 마치 경험주의의 도래를 표시하는 것처럼, 뉴턴 정신의 성공을 해석하는 데로 인도해야 한다. (193)
우리는 이 연구의 끝에서, 전통적 단순화에 어떤 수정[정정]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1687)은 대부분의 정신들[과학들]의 소유로 있는 데카르트주의를 발견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의심스럽지 않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다음 사실이 진실로 남아있다: 즉 철학의 원리들의 특권들을 파괴하면서, 그리고 소설들의 나라에서(au pays des romans) 회오리들(les tourbillons)을 몰아내면서, 그들은 17세기 전반에 끊어지지 않고 있었던 태도에서에서 지적 세계를 다시 원래상태로 되돌려 놓으려했다는 것이다. 그가 살아있던 시기부터, 데카르트는 그의 나라에서 예언자가 전혀 아니었다. 아카데미(학술원)들에서, 메르센(Mersenne, 1588-1648)의 주위의 과학자들이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페르마(Fermat, 1600?-1665), 로베르발(Roberval, 1602–1675), 가상디(Gassendi, 1592-1655), 에띠엔(Etienne Pascal, 1588-1651), 블레즈(Blaise Pascal, 1623-1662)들은 결단코 반-데카르트주의자들(anti-cartésiens)이였으며, 형이상학 그 자체만큼이나 데카르트의 기하학과 물리학을 비판하고 있고, 그리고 동일한 근거들로서 비판하는데, 왜냐하면 데카르트주의가 이들에게는 추상적 연역법과 구체적 검증에서 영속적 혼란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학적 지평에 관해서, 마치 사람들이 그들의 방법에 대해 자연적으로 지평을 보는 것처럼, 수의 이론에서부터 접선의 역학적 규정작업에까지, 과학자들은 경험을 넘어서기 위해 필연적 자원들을 경험에서 빌려오려고 전념하였다. 과학자들은 귀납법으로 연역적 추리작업의 서두를 만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확립된 과학적 관계들의 현실적 교환은 이런 연관들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갈릴레이의 실험적 수학주의(le mathématisme expérimental)에 집착하였으며, 이들은 이것을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수학주의(le mathématisme métaphysique)에 대립시켰다. 이것이 경험적 수학주의의 전통이다. 뉴턴은 이것을 멋지게 새로 회복하였다. 그리고 이런 논평은 과학적 철학의 진화를 위하여 본질적이며, 특히 칸트의 비판론의 형성작업을 위해서도 본질적이다. 그런데 실험적 수학주의는 수학적 경험주의(l’empirisme mathématique)와 아주 다른 것이다. 데카르트주의자들과 뉴턴주의자들 사이에 생생한 논쟁들에도 불구하고, 특히 만일 우리가 전설의 도식적인 데카르트 대신에 진실한 데카르트를 대체한다면, 또 만일 우리가 데카르트의 방법이 분석적 퇴행을 위해 유보했던 지위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데카르트가 표출하였던 경험에 대한 영속적 근심을 생각한다면, 뉴턴의 수학주의로부터 데카르트의 수학주의까지 벌어진 거리가 소위 말하는 경험주의까지보다 덜 크게 무한히 벌어져 있다. (194)
§115, [뉴턴의 영향: 뉴턴의 유율에 대한 경험주의(버클리)의 대립개념.]
이 마지막 관점[경험주의와 거리]이 객관적으로 정립될 수 있기 위하여, [수학의] 역사는 우리에게 뉴턴의 수학을 경험주의의 권위 있는 해석과 대치하게 해야만 한다. 여기서 상황들은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사용된다. 경건한 의도에서, 천문학자 헬리(Halley, 1656-1742)에게 부여했던 불신의 선언들이 생산할 수 있었던 결과를 파괴하기 위하여, 버클리(Berkeley, 1685-1753)는 뉴턴의 무한소 계산을 자신의 검토에 종속시켰다. 그 무한소 계산에서 버클리는 우주의 과학적 정복을 위하여 주저하지 않고 열쇄를 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품인, 「분석가, 불신 수학자에게 보낸 담론(1734)」의 8절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일차원, 2차원, 3차, 4차원 등 차원에 따라서, 유율들과 무한소들의 위하여 표현들이나 표기법들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차원의] 진행은 종말(fin) 없이 또는 한계(limite) 없이 동일한 규칙적 형식 안에서 추구된다. … 그러나 만일 우리가 뒤로 처다보기 위하여, 또한 만일 이런 표현들을 제껴두고서, 이미 표현된 것으로 가정되었거나 또는 그 자체로 지적되었던 사물들을 그 자체로 우리가 고려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한 계열의 공허한 것들(d’inanités), 한 계열의 모호한 것들, 한 계열의 혼동된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오용하지 않는다면, 한 계열의 직접적 불가능성들, 한 계열의 모순들을 발견할 것이다.” (194)
이렇게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문제는 필연적으로 무매개적인 자료들(les données)의 철학이며 표상된 대상의 철학인 경험주의에 의해서 달리 제기 될 수 없었다. 새로운 수학은, 만일 상징들이 구체적 경험의 내용에, 즉 감각적 이미지들에 대등하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으로부터, 그리고 이런 관점을 근거로 하여, 난점들과 불가능성들은 곧 배가 되어 갈 것이다. 유율은 속도(vitesse)이다. 사람들은, 시간 없이 또 공간 없이, 귀결로서 유한한 길이 없이 또 유한한 지속 없이, 속도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미 초기의 유율들은 이해하는 인간의 역량을 넘어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유율들은 유한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첫 유율이 이해될 수 없다면, 사람들은 둘째, 셋째 유율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누가 시작의 시작을, 유한의 유한을 생각할 수 있는가?” (195)
또는 [다른 한편] 사람들은, 뉴턴의 원리들을 가지고, 주어진 양들의 증가들 사이에 현존하는 연관(les rapports)[비례]들의 한계를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확실하게 증가가 현존하는 한에서, 증가들은 측정할 수 있고, 그리고 증가들은 정해진 비례(une proportion)을 갖는다. 그러나 한계[극한]은 아직 뉴턴에 의해 고려되었던 한계가 아니다. 증가들이 사라질 때, 이 한계는 도달되었을 것이다. 버클리가 관찰하기를 “확실하게 증가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가정하면, 우리는 다음을 가정해야만 한다: 즉 그것들의 비례들, 그것들의 표현들, 그것들의 현존의 전제로부터 도출된 모든 것들이 그것들과 더불어 사라진다.” (195)
이러한 논리적 불가능성들로부터 버클리는 새로운 계산을 단죄하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경험주의의 깊이 있는 영감을 엄격하게 신뢰한다. 버클리가 이의 제기하는 것은, 그의 곡선의 적분법(1704)의 「입문」에서 서술한 것을 뉴턴에게 부여되었던 권리이다. “In rebus mathematicis errores quam minimi non sunt contemnendi” -[수학에서는 가장 작은 오류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이 공리(l’axiome)를, 버클리는 뉴턴의 몇 가지 정리들(théoremes)의 역설적이고 결함있는 성격과, 그리고 그의 언어에 대한 변이들과 대립시킨다. 수학자들이 원리들 안에서 명증하게, 증명들 안에서 엄격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 그에게는 충분하다. 그리고 수학자들이 자신들의 오류불가능성의 이름으로 세속적인 것들을 좌지우지하고자 원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 그에게는 충분하다. 그런데, 버클리는 새로운 계산의 실천적 가치를 재인식할 것이고 동시에 그는 계산의 진실한 자연(본연)을 지적할 것이다. 무한소 분석의 인위적인 것 모두는, 양들 안에서 분석이 고려했던 몇 가지 요소들을 무시하는데 있고, 그리고 접근된 값들을 서로서로 연관하면서 근사값에 기인한 오류들이 중성화되는 방식으로 배열되는데 있다. 버클리는 이렇게 라이프니츠와 더불어 [참여한다.] - 라이프니츠는 통속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으로 무한소 분석을 소개해야할 운명에 처한 편지에서 이런 종류의 이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었다. - 보정된 오류들(les erreurs compensées)의 이론을 정식화하는 존경에 참여한다. 이런 이론을 카르노(Lazare Carnot, 1753-1823)는 새로이 발견했고, 그리고 그의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에 관한 반성들(Réflexions sur la métaphysique du calcul infinitésimal 1797)에서 1797년에 대중화하게 되었다. 그의 이론에 대해 철학적 미약함이 어떤 것일지라도, 카르노의 저술은 18세기에 혼란하게 했던 무한소 계산의 토대에 관하여 적어도 이론적 토론을 끝장내었다는 장점을 가졌다. 카르노는 라이프니츠의 대중적 진술과 동시에 버클리가 채택했던 “실용적” 태도를 회고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는 버클리가 경험주의적 철학의 표현에서 도달했던 투명성을 꿰뚫어 밝혔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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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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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디오판토스(Diophante d'Alexandrie, Διόφαντος ὁ Ἀλεξανδρεύς, 250년활동),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수학자. 산술학(Les Arithmétiques: Arithmetica)
290 파포스/파푸스(Pappus d'Alexandrie, Πάππος ὁ Ἀλεξανδρεύς, 290경-350경), 고대 수학자.
1320 오레슴(Nicole Oresme, ou Nicolas Oresme, 1320년경-1382경) 카톨릭 주교, 박식자.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경제학자, 음악학자, 신학자. 번역자.
1532 킬란더(Wilhelm Xylander, Wilhelm Holtzman, 1532–1576), 독일 고전문헌학자, 인문주의자. 하이델베르크 대학 학장(1564).
1540 비에뜨(François Viète ou Viette, en lat. Franciscus Vieta, 1540-1603), 프랑스 수학자,
1550 네이피어(John Napier of Merchiston, lat. Ioannes Neper; 1550–1617), 스코틀랜드 지주,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1614년 로가리즘들(logarithms) 발명.
1561 브릭스(Henry Briggs, 1561–1630), 영국 수학자, 네이피어의 독창적 로가리듬들을 완전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1564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일흔여덟], 이탈리아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1633년 종교재판. 케플러보다 12년을 더 살았다.
1571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의 수학자, 천문학자.
1581 바셰(Claude Gaspar Bachet, Méziriac, 1581–1638), 제수이트, 프랑스 수학자, 시인, 번역가.
1588 메르센(Marin Mersenne, 1588-1648), Marinus Mersenius, 프랑스 물리학자, 수학자, 음악학자, 철학자, 미님 수도원(L'ordre des Minimes, O.M.)
1588 에띠엔 빠스깔(Étienne Pascal, 1588-1651), 프랑스 신사. 재정담당 공무원, 블레즈 빠스깔(Blaise Pascal, 1623-1662)의 아버지.
1592 가상디(Pierre Gassendi, 1592-1655),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신학자, 천문학자.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01?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0?-1665), 프랑스 사법관, 수학자. 별명 E.T. Bell « le prince des amateurs ». - 평평한 장소와 고체에 관한 입문(Isagoge ad locos planos et solidos("Pour les lieux plans et solides"). (평면과 고체의 장소에 관한 입문)
1602 로베르발(Gilles Personne de Roberval, 1602–1675), 수학자, 물리학자, 무게를 재는 평행저울 발명(la balance Roberval).
1603 디그비(Kenelm Digby, 1603–1665), 영국 궁정인, 외교관, 철학자, 천문학자, 작가.
1608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기압계(baromètre) 발명. Opera Geometrica, 1644.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별칭 le Grand Arnauld, 신부, 신학자, 철학자, 수학자. 쟝세니스트.
1616 존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영국의 수학자. 영국 목사, 미분계산에 기여. 월리스의 저서 무한소의 산술학(1656)는 뉴턴의 미적분에 영향을 줌.
1619 올덴부르크(Oldenburg, Henry Oldenburg, 1619경-1677), 독일출신 영국 과학자, 철학자, 영국 왕립학회 사무총장. 1676년 10월, 라이프니츠가 올덴부르크의 산술 기계를 자기의 완전하게 된 전형으로 소개했다.
1620 메르카토르(Nicolas Mercator, deu. Niklaus Kauffman, Nicolaus Mercator, 1620-1687), 독일 수학자. 말년에 베르사이유 성의 연못들 건설에 참여하였다. 로그의 기술(Logarithmotechnia, 1668)(로그 계산법)
1625 콜린스(John Collins, 1625-1683), 영국 기하학자, 수학자. 왕립학회 회원.
1630 배로우(Isaac Barrow, 1630-1677), 영국 문헌학자, 수학자, 신학자. 무한소 계산 선구적 역할, 뉴턴의 스승이었다.
1638 그레고리(James Gregory, 1638–1675), 스코틀랜드 수학자, 천문학자. 원과 쌍곡선의 진실한 구적법(Vera circuli et hyperbolæ quadratura, 1667)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54 바리뇽(Pierre Varignon (1654-1722),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1688년 과학 왕립아카데니의 기하학부분으로 회원 선출. 라이프니츠, 뉴턴, 베르누이 형제와 서신교환.
1656 헬리(Edmond Halley, 1656-1742) 영국 천문학자, 기술자. 1682년 핼리 혜성 76년 주기성 발견.
1657 퐁뜨넬(Bernard Le Bouyer de Fontenelle, 1657-1757), 프랑스 작가, 극작가, 과학자. 라이프니츠와 편지교환. // [69 Lettre de Fontenelle à Leibniz du 18 novembre 1702, A II, 4, 96. 70 Lettre de Leibniz à Fontenelle le 12 juillet 1702,]
1667 쟝(Jean Bernoulli, 1667-1748): 수학자 집안 출신.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 쟈끄 베르누이(Jacques ou Jakob Bernoulli, 1654-1705)의 동생이다. 다니엘(Daniel II Bernoulli, 1700-1782)과 니꼴라(Nicolas Bernoulli. 1695-1726)의 삼촌이다.
1677 콘티(Antonio Schinella Conti, 1677-1749), l’abbé Conti, “빛들세기” 전반세기에서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철학자.
1685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아일랜드의 철학자, 성공회 주교이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1707 뷔퐁(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 자연학자, 수학자, 생물학자, 우주론자, 철학자, 작가. L’Histoire naturelle, générale et particuliére, avec la description du Cabinet du Roi, 1749-1804. Newton의 “Méthode des fluxions, 1740”을 번역,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철학자. 3대 비판서를 쓰면서 비판철학을 정립하다.
1736 라그랑쥬(Joseph Louis de Lagrange, en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1749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 marquis de Laplace, 1749-1827),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정치가.
1753 까르노(Lazare Carnot, 1753-1823)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장교, 정부요인.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에 관한 반성들(Réflexions sur la métaphysique du calcul infinitésimal 1797). [열역학자 사디(Sadi Carnot, 1796-1832)는 라자르의 아들이고, 제3공화정 대통령이며 암살당한 사디 까르노(Sadi Carnot, 1837-1894), 열역학자의 조카이다.]
1765 라크르와(Sylvestre-François Lacroix ou De la Croix, 1765-1843), 프랑스 수학자, Traité du calcul différentiel et du calcul intégral(3 vol., 1797-1798).
1774 비오(Jean-Baptiste Biot, 1774-1862), 프랑스 물리학, 천문학자, 수학자
1793 미셸 플로레알 샬/샤스레(Michel Floréal Chasles, 1793-1880), 프랑스 수학자. 특히 투영 기하학 전문가.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1805 그라트리(Alphonse Joseph Auguste Gratry, 1805-1872), 프랑스 카톨릭 신부, 철학자. 오라트와르 수도회 재건자. Logique, 2 volumes(1855)
1809 르포르(Francisque Lefort, 1809–1888), 프랑스 기술자, 관리직 공무원.
1816 게르하르트(Carl Immanuel Gerhardt, 1816-1899),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저술의 편집자. Die Philosophischen Schriften von G. W. Leibniz, éd. C. I. Gerhardt, Berlin, 1875-1890.
1819 세레(Joseph Serret, 1819-1885),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미분기하학 정식화. 1850년 몽쥬(Gaspard Monge) 전집을, 1867년부터 라그랑쥬의 전집을 편집했다.
1819 마리(Maximilien Marie, 1819-1891), 폴리테크니 출신, 프랑스 수학자. Histoire des sciences mathématiques et physiques(12권, 1883-) 이 책에서 대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브룅슈비끄 이전에 수학사가 있었다.]
1819 캠벨 프레이저(Alexander Campbell Fraser, 1819-1914), 스코틀랜드 신학자, 철학자.
1826 푸세 드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 프랑스 작가, 외교관, 정치가. Réfutation inédite de Spinoza par Leibniz, Paris, 1854. Nouvelles lettres et opuscules inédits de Leibniz, précédés d'une introduction, Paris, 1857.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만하임 출생 하이델베르크에서 별세,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Mathematik. 4 Bände. Leipzig: B. G. Teubner, 1880–1908: t. I, 3e édit, 1907, Leibzig (que nous désigneraons par Cantor I3), p. 11. (chap. 1, die Babylonier, p. 19 et suiv.) /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셍페테스부르그 태생 할레에서 별세. 독일 수학자, 집합론 탄생에 큰 역할. “실수들(les nombres réels)은 자연수 전체보다 더 많다.” 기수와 서수를 정의하였다.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 열거 기하학(the enumerative geometry of conic sections, algebraic surfaces, and history of mathematics.)
1842 코엔(Hermann Cohen, 1842-1918), 독일 유대인 철학자. 마르부르크의 신칸트학파 철학자(avec Paul Natorp). Das Princip der Infinitesimal-Methode und seine Geschichte. Ein Kapitel zur Grundlegung der Erkenntnisskritik. 1883)
1843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 프랑스 과학사가, 수학사가. 쥘 딴네리(Jules Tannery, 1848-1910)의 맏형. L’Education platonicienne, III, Digression sur un passage du l’Epinomis, Revue Philosophique, 1880, t. II, p. 529. La Géometrie grecque, 1887, p. 111. / Sur un point de la méthode d’Aristote, Archiv für Geschichte der Philosophie, t. VI 1893, p. 468 et suiv.
1844 망지옹(Paul Mansion, 1844-1919). 벨기에 수학자, 과학사가. 벨기에 강대학 교수.
1845 로젠베르거(Ferdinand Rosenberger, 1845 †1899), 프러시아(독일) 자연학자, 물리학자, 과학사가. Isaac Newton und seine physikalischen Principien; ein Hauptstück aus der Entwicklungsgeschichte der modernen Physik, Leipzig, J. A. Barth, 1895.
1846 리아르(Louis Liard, 1846-1917), 프랑스 철학자, 행정가. Descartes, 1882
1859 앙리(Charles Henry, 1859-1926) 프랑스 사서, 예술 비평가.
1869 구르그(Raymond Gourg, 1869-?)프랑스 철학자, 영어(특히 버클리) 번역가.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출신 유태계 독일 철학자, 나토릅, 코헨과 같은 마르부르크학파. Das Erkenntnisproblem in der Philosophie und Wissenschaft der neueren Zeit, 2권, 1906, 1907.
1876 블로쉬(Léon Bloch, 1876-1947), 프랑스 철학자, 물리학자. 뉴턴의 철학(La philosophie de Newton, 1908).
1881 발너(Carl Raimund Wallner, 1881–1934), 독일 수학자. 1905년 학위논문 Die Verteilung der Primzahlen nach neuen Gesichtspunkten behand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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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에서, 원시 대양(l’Océan primordial)은 눈/누누(le Noun, ou Nouou, Nwn)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눈을 신이라기보다 개념으로서 고려할 수 있으리라. 그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대양(l’Océan)이다. 창조자 없이 대양을 세계 주위로 펼쳐진다.
- 이 대양으로부터 첫 신인 아툼(le premier dieu, Atoum)이, 그리고 레 암몬, 토트, 파트 등등(Rê-Amon-Khépri, Thot, Ptah, Sokaris, Khnoum)이 나온다. - [fr.Wiki 서술에도 유일신앙이 선전제되어 있다. 원시 인간류에서 신이 먼저 있는 것도 개념이 먼저 있는 것도 아니라 일반화의 용어(la notion) 또는 소통할 수 있는 항목(un terme)이 먼저 있었을 것이고, 이것으로부터 일반 개념, 그리고 추상관념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 항목의 한계, 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진무한이고, 그 끝이 없다고 생각하면 가무한이다.]
- (fr.Wiki) 중국에서는 묵적(Mozi, Mö-tseu(墨子, 墨翟: 479-392)이, 공자와 노자와 달리, 무한의 용어를 제시했다고 한다.
- 고대 인도에서는 야유르-베다(Le Yajur-Véda: 고대 4종류의 베다 중의 하나, 전1500-전400)에서 수백억에 해당하는 용어가 등장하고, 수적으로 무한 개념에 해당하는 푸르나(pūrṇa)를 이용했다고 한다.
- 진무한(Actual Infinity, 실무한): 칸토어는 자연수 집합 대 실수의 집합의 크기 비교에서 무한의 크기 있다. 알레프(Aleph, aleph_0, aleph_1, aleph_2, ...)
- 가무한(Potential Infinity, 잠무한, 악무한), 완성되지 않는 무한
-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무한(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무한에 대해, 칸토어가 실무한(진무한)의 용어로서 알레프(너프널 A)의 용어를 사용했고, 이로부터 무한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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