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필기 강의
하련거 거사 지음
황념조 거사 강설
송찬문 번역
1. 반야심경 제목에 대한 하련거 선생님 법문의 연역
다음은 하 선생님이 해방(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역주) 이후 저의 집에 오셔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법문[開示]입니다. 당시에 때로는 잠시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마다 통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 여(余) 씨 댁과 제(齊) 씨 댁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의 집에서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 선생님이 오시자마자 저는 자전거를 타고 이 두 분의 집으로 돌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때로는 참가하였는데, 한 번만 참가한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하 선생님이 강의한 반야심경을 위주로 하겠다는 것이, 하나의 내용입니다. 하 선생님의 반야심경 강의는 화룡점정(畵龍點睛) 식이었고 전체 반야심경을 강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최후에는 또 반야심경에 대해 화룡점정 하기를, 정토 법문에 점을 찍어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 선생님의 이 법문을 여러분에게 모아서 보고 하겠습니다.
저의 이 필기는 무엇을 기록함에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부분이 선생님 말씀 그대로인 원래의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또 속기를 못 하는데, 어떻게 원래의 말씀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 선생님이 여러 마디 말씀을 하면, 제가 그중 한 마디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것은 원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저 이렇게 기록만 했는데도 한 마디 한 마디 뽑아서 되돌아보니 좋은 한 편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모두 하 선생님의 정화(精華)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이 필기를 듣는 것도, 선생님이 직접 강의하고 있는 것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원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요한 곳은 절대로 원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인연은 특별합니다.
부처님께서 아함부 경전들을 12년간 설하시고, 이어서 방등부 경전들을 8년간 설하셨으며, 그런 뒤에 반야부 경전들을 22년간 설하셨다.
佛說阿含十二年, 繼說方等八年, 然後說般若廿二年.
무엇보다 먼저 하 선생님은 말씀하기를, 부처님이 이 경을 설하실 때 부처님은 그전에 이미 아함부 경전들을 12년간 설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화엄부 경전들을 설하셨어도 다들 이해하지 못해서, 부처님은 반열반(般涅槃)에 들고 싶어 하셨고, 그러자 범천이 부처님께 법륜을 굴리시기를 청하니, 부처님이 약속하시고는 아함부 경전을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 선생님의 이 몇 마디 말씀을 읽어봅시다.
“부처님께서 아함부 경전들을 12년간 설하시고, 이어서 방등부 경전들을 8년간 설하셨으며, 그런 뒤에 반야부 경전들을 22년간 설하셨다.” 이것은 하 선생님의 말씀인데, 이에 대해 제가 약간의 해석을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반야를 설하신 시간이 길었습니다. 부처님이 아함부 경전들을 설하신 것은 소승, 소학(小學)을 위해 설하신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방등부 경전들을 설하시어 전환하고자 한 것은, 바로 소승을 꾸짖어 배척하고 대승을 찬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방등부의 정신입니다. 뒷날 설하신 대승이 바로 반야부 경전들을 설하시는 것이었고, 최후에 원돈교(圓頓敎)를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반야부 경전들은 대단히 중요하고 설하신 시간도 길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 선생님이 한 말씀을 다시 한 단락을 읽어서 구별하겠으니, 제가 해석하고자 하는 것과 한 데 뒤섞지 말기 바랍니다.
반야심경 3백자는 《대반야경》 전부를 포괄한다. 반야심경의 번역본은 청나라 이전에 고증할 수 있는 것으로는 7종이 있다. 일반적으로 독송하는 것은 현장 대사의 번역본이다.
《心經》三百字, 包括《大般若經》全部. 《心經》譯本在清以前可考者有七種。常讀是玄奘大師所譯.
이 단락을 보면 말씀하기를, 반야심경은 단지 3백여 자에 가까울 뿐이지만 대반야경 전부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반야경은 6백 권이고, 화엄경은 단지 80권입니다. 80화엄이 가장 많고, 이 밖에 60화엄과 40화엄이 있습니다. 화엄경은 80권에 불과했지만, 뒷날 보현행원품이 더해져 81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야부 경전은 6백 권입니다. 즉, 22년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야심경 3백 자가 반야부 경전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는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야심경을 연구한다면, 반야부 경전 전체를 연구한 것 아니겠습니까? 22년간 부처님이 설하신 법문을 말입니다.
반야심경의 번역본은 청나라 이전에 고증할 수 있는 것이 7종이 있습니다. 이 중에 현장 대사가 번역한 것이 가장 간단합니다. 이 모든 번역본 원본을 제가 다 보았는데, 대부분은 보통 경전처럼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고 법회에 얼마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며, 그들은 누구누구이고, 그런 뒤에 관세음보살이 나오고 그런 다음 사리불이 질문합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관세음이 나서서 사리불에게 말하게 되는데, 이런 단락이 중간입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이런 단락도 있습니다, “모두 크게 환희하며, 믿고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하고, 예배하고 물러갔다 [皆大歡喜, 信受奉行, 作禮而去].”입니다. 그래서 경의 머리와 꼬리가 역시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 대사의 것은 가운데 단락만 번역하였고, 구마라즙 대사의 것도 그렇습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다들 경전 염송은 모두 구마라즙 번역본을 염송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의 염송은 현장 대사가 번역한 것을 염송하기 좋아합니다. 이것은 하 선생님이 말씀한 한 단락인데, 우리가 이를 좀 해석했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다시 한 단락을 읽어 보겠습니다.
현장 대사가 인도에 가서 경전을 구하여 오려고, 옥문관(玉門關)을 나섰을 때는 3백여 명이 있었으나 돌아올 때는 겨우 한두 명이었다. 현장 대사가 옥문관을 나선 이후 곤란은 겹겹이어서 전진할 수 없었다. 어떤 노인이 이 경을 말로 전해주고 나서야 곤란을 극복하고 인도에 도달하였다.
玄奘大師取經時從玉門關出, 有三百餘人. 歸時僅一二人. 玄奘出玉門後, 困難重重, 無法前進. 有老人口授此經, 乃克服困難, 到達印度.
여기서는 현장 대사의 번역본과 현장이 이 경을 얻은 인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국할 때는 수백 명이었으나, 돌아오는 길에서는 모두 살아있지 못하고 다들 떠나갔으니 그 어려움은 극심했습니다. 그가 옥문관을 통과한 뒤 곤란에 처해 있을 때 어떤 노인을 만나게 되어 이 경을 얻었습니다. 훗날 어떤 책에 기록되어 있기를, 현장 대사가 그곳에 또 가보고 싶어서 그 사원이나 그 노인을 찾아보았지만, 그곳을 찾지 못했으며 그 사원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 경의 유래는 대단히 수승(殊勝)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이 말씀을 보면, 현장 대사는 곤란을 극복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그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경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하 선생님의 원문입니다.
현장 대사의 번역이 가장 완벽하며, 문자는 적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많다.
玄奘大師所譯最完善, 文字少而攝義多.
이것도 다들 염송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경을 강해 서술하는 눈앞의 법회는 정말로 대단히 희유하다.
今日講述是經, 當前之法會, 實甚希有啊.
하 선생님이, 당시에 저의 집에서 이 경을 강의한 모임이 정말로 희유하다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서는 경의 제목을 강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