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5일
세상에 태어난 것을 참으로 환영받았던가?
대형 교회 목사님들과 정치인,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여 <출산장려>를 위한 모임을 거창하게 만들었다고 한 방송국에서 소개했습니다. 바벨탑을 사이사이 끼워 넣은 시낭독도 있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람을 창조하고 축복하신 말씀을 되풀이하는 시였습니다. 행사의 순서를 맡아서 단 위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작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면서 정부시책에 뒷북을 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아들 딸 구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외쳐질 때에는 창세기 구절을 덮어놓고 눈 감고 모른 척하며 지낸 분들이었습니다.
5남 8녀를 낳은 목사부부가 ‘다복상’을 받았습니다. 6명을 입양한 다른 목사 부부가 ‘화목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이 13 명을 낳은 가정은 금일봉과 제주도 여행기회를 부상으로 받았는데, 6명 입양한 가정은 금일봉과 공기청정기만 주어졌습니다. 입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만을 기르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아닐까요? 숫자로 순위를 먹인 것 같은 처사로 그들의 가치기준이 뻔히 보이는 듯해서 또 한번 씁쓸했습니다. 이제야 겨우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부 시책을 따라 뒤늦게 움직이는 <출산장려>하려는 곳에서 상을 받는 것을 그들이 거부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부 시책과 상관없이 스스로 원해서 아이들을 낳고, 입양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가 구강기라고 했던 아기 시절을 에릭슨은 젖 잘 먹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기의 태어남을 부모가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이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가 얼마나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대하며 그 때의 삶을 아기와 함께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머니 자신의 아기에 대한 잠재의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사회 공동체의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아기는 몸으로 받아들이는 젖을 먹는 것과 함께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의 조건 없는 풍성한 사랑과 사회가 용납하는 수준의 태도를 함께 받아들입니다. 일 처리하듯 젖 먹이는 어머니, 성의 없는 어머니, 고민에 찬 어머니, 우울한 어머니, 냉담한 어머니의 젖은 아이에게 “좋은 느낌”(what feels good)과 통합할 수 없습니다. 아기 눈을 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기분 좋고 편안하게 아기를 안고, 충분하게 젖을 주는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과 “좋은 느낌”을 통합할 수 있게 합니다 (incorporate).
행복하고 건강한 어머니가 원하는 아이를 (사회의 시책과 상관없이) 낳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경우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믿을 수 있게 충분히 잘 보살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남편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보고, 듣고, 촉감으로 느끼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불안해하게 됩니다. 혼자 자신을 거둘 수 없는 힘없는 아기는 안전에 불안을 느낍니다. 이런 아이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자신도 믿지 못합니다.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불신의 문제를 가진 이들이 보입니다. 초등학생에게 못할 일을 저지른 김수철은 “자기 속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범죄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잘 해나가는 듯 보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부모도 믿을 수 없으니 언제나 주어진 것만 수동으로 성취하고 “잘 한다” 칭찬 들으면서 홀로 지냅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니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자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짐작하면서 차질을 경험합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답답해합니다. 성취하는 면에서 아무리 우수해도 이런 젊은이의 불행은 남에게 고통을 안기는 범죄자들과 달리 자기 스스로를 참으로 아프게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함께 가슴 아파합니다.
첫댓글 이 글을 읽고 여러 사람이 떠올랐어요. 요즘 천명이가 젖 빨때 제 눈을 정말 뚫어져라 쳐다봐서(20분 동안 제 눈만 쳐다볼 때도 있어요) 가끔씩 무서울 때도 있어요. 제 감정을 다 읽고 있는 것 같아서요. 오늘 남편도 늦게 오고 천명이 젖만 여러 번 물려 힘들었는데 천명이한테 더 성의있게 젖 물려야 겠어요.
저는 셋째딸이고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우리 엄마는 과연 나를 낳고 기뻐했을까. 또 딸이라고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우리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기뻐해주었을까...남아선호사상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딸들이 (특히 딸딸딸.. 아들인 경우) 불쌍해집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