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 권태응(1918~1951), 「감자꽃」 전문
권태응 시인은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1935년 5월 투옥되었고 폐결핵으로 이듬해 6월 출옥을 합니다. 귀국한 후에 병세가 계속 나빠져 고향 충주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동요와 동시를 썼는데, 안타깝게도 병을 이기지 못해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은 일제 강점기 때 창씨 개명에 저항하려는 의도로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 동시지요. 여기서 자주색 감자는 왜놈을 뜻하고, 하얀 감자는 조선 사람을 뜻한다네요. 감자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 말씀처럼 자주꽃 피면 자주색 감자가 나오고, 흰색 꽃이 피면 하얀 감자가 나오는 특성을 지녔다네요. 감자꽃을 보면 뿌리를 알 수 있으니 콩 심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를 일깨워주지요.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있던 동업자
장철문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형, 감자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우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없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핀 마음 뚜우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을 기다린다
― 손택수, 「감자꽃을 따다」 전문
이 시의 본질은 감자꽃은 피는 즉시 따주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꽃으로 갈 양분을 뿌리로 가도록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너 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 앓고 있는데
불임의 女子, 내 길고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내 女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 이재무, 「감자꽃」 전문
이 시는 감자꽃은 따주지 않으면 꽃 지고 나면 열매를 맺지만 식용으로 하기엔 비릿하고 먹기 힘들다 하네요. 그래서 감자꽃은 피는 족족 따주야 감자 수확을 튼실하게 잘 자라게 할 수 있으니 감자꽃을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불임의 여자로 형상화 한 것이라지요?
충주 탄금대 공원에 가 보면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후 6.25 동란 중에 질병으로 작고한 33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위의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 동시비와 노래비가 서 있지요.
첫댓글 감자꽃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면
할아버지 활짝 피기도 전에
이랑마다 다니면서
꽃송이를 다 따셨다
모든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피우는 꽃
꽃에는 생명보다 소중한 꽃
꽃 좀 피워보자고
제발 꺾지 좀 말라고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속으로
주먹을 불끈불끈 쥐는
감자
그러는 거
다 알고 있다고
그러라고
꽃을 딴다는 할아버지.
해설이 첨부된 여러 색깔의 감자꽃 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