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적인 언어
처량하다와 밝은 초롱
어휘 자체가 갖는 감상적 요소, 즉 감탄사나 형용사 등이 지니는 정서적 기능이나 언어의 반복성이 야기하는 음악성, 감정을 표시하는 단어들을 선택하여 시를 도모하는 일이 있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로만 기술된 과학적 문장에 비하여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의 많은 시의 어법을 보면 이처럼 정서적인 성격을 가진 언어를 선택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를 처음 쓰는 경우, 또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를 사용하려는 일부 시인들의 경우 감정의 구체적인 형상화보다 격정적인 감탄이나 호소나 수식어의 어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시를 시답게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어법은 이러한 정서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해결된 수가 없다. 훌륭한 음악가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훌륭한 연기자는 관객을 울리고 웃긴다. 자신이 우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울어야한다는 말이다. 이는 시인의 겅우도 그렇다. 시인이 또는 시적 화자가 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는 독자가 울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상상적인 시적 언어의 장치가 요구된다.
(1)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김형준 「봉선화」에서
(2)
그 푸른 잎새 속에
층층이 밝은 초롱을 걸었다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잠자던
여인의 피가
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
사나이의 채취같은
더위를 안아
꽃은 저리도 붉었다
잎 뒤 주변의
그 뭇 풀들이
너에게로 부득모득 기어 오르고
이 계절에 지친 마음 속에 핀 젊음은
진정 너 같이 아름다운 것.
꽃은 뉘에게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
그 마음으로 피어있다
-이석 「봉선화」
인용한 두 작품을 보면 봉선화란 소재를 가지고 글을 T는 것이다. (1)의 글은 우리가 잘 아는 김형준의 노래 가사다. 어법을 보면 화자는 봉선화에 대한 특별한 경험과 입장을 가지고 노래하고 있다. 우선 첫 문장을 보면 ‘울 qlxdp 선 봉선화야’로 시작하는데 ‘울 밑에’는 물론 봉선화가 피는 장소를 지시한 말이고 ‘봉선화야’에서 ‘야’는 부름이나 호소, 또는 감탄적 의미를 내포한 조사다. 그리고 문장 끝에는 형용사인 ‘처량하다’로 연결되어 봉선화의 상태를 처량한 것으로 묘사한 문장이다. 다음엔 봉선화 꽃을 ‘아름답게’로 수식했다. 아가씨들도 ‘어여브신’이란 형용사로 수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감탄 겸 호격을 나타내는 ‘~야’와 사물에 대한 화자의 입장을 밝히는 처량하다, 아름답게. 어여쁘신 이란 형용사를 다수 동원하여 서글픈 감정을 화자 스스로 토로하고 있는 노래다. 말하자면 정서적 효과나 감정적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는 언어를 장식품처럼 선별하여 토로한 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2)의 문장을 보면 우선 첫 부분에서 봉선화에 대한 화자의 시각이 (1)과는 전혀 다르다. (1)에서는 처량하다는 직겁적인 감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2)에서는 “그 푸른 잎새 속에/층층이 밝은 초롱을 걸었다.” 즉 봉선화를‘층층이 밝은 초롱’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직접 감정을 서술하지 않고 ‘초롱’이라는 다른 사물로 대신하여 봉선화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봉선화일지라도 ‘처량하다’와 ‘층층이 밝은 초롱’[이라는 시어가 주는 시학적 의미는 ‘말하기’와 ‘보여주기’의 차이다. 다음 도표를 보자.
봉선화 | 처량하다 | 밝은 초롱 |
구별 | 관념어 추상어 불가시어 직설적 형용사 정서어 막연함 자기표출 감정의 주관화 관습어 | 사물어 구체어 가시어 상상적 이미지 상상어 분명함 공감 감정의 객관화 창조어 |
(1)의 ‘처량하다’는 분명히 봉선화에 대한 화자의 감정이며 주관적 입장이다. 그래서 청자로 하여 비록 처량하게 느끼지 않는 경우라도 처량한 감정으로 동의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정서적 또는 시적 언어의 비실재성이 있다. 그러나 ‘밝은 초롱’은 봉선화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가 명백히 구체화되고 실재화 되어 감정을 실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시적 생명력, 예술적 창조의 신비로움이 있는 것이다. ‘봉선화’가 ‘밝은 초롱’으로 변신하는 일은 봉선화란 존재가 초롱이라는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것인데 이처럼 어떤 개념이나 사물을 직접 관념적인 언어로 서술하지 않고 그와 유사하거나 동일성을 지닌 다른 사물로 바꾸어서 본래의 의미와 성격을 구체화하거나 새롭게 하는 것을 상상(想像)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물을 대신한 사물어를 이미지 또는 상상의 언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상상의 언어는 앞서 언급한 정서적 언어들보다 ㅎ숼씬 분명하고 새롭게 정서적 감동을 준다. 인용한 시의 다음 구절에서도 (1)의 시에서는 ‘아름답게 꽃 필 적에’라는 말에서처럼 꽃을 ‘아름답게’라는 말로 수식했다. 그러나 (2)의 시에서는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잠자던/ 여인의 피가/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로 되어 있어 ‘아름답게’라는 막연한 수식어보다 ‘여인의 피’라는 구체적인 사물어로 봉선화의 개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화자가 먼저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면서 감동하게 하는 시어법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감정의 강요가 아니라 유발이며 정서의 자기 표출만이 아니라 정서의 새로운 창조인 것이다.
포엠과 포에트리
현대는 포엠(poem)은 있어도 포에트리(poetry)는 없다고 한다. 외형적으로 시와 비슷한 모양을 한 글은 많아도 시 정신, 즉 포에트리의 어원이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말처럼 시적 창조성을 내포한 시는 드물다는 뜻이다. 행이나 연을 가르기만 하면 시가 되고 3장 6구 형식에 맞춰 단어만 배열하면 시조가 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언어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다운 시란 외형적인 단어의 배열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의 미학을 창조하기 위한 상상과 열정과 삶에 대한 성실함과 경건함으로 엮어지는 영혼의 노래다. 다음 예문에서도 산문과 시적인 것과 정말 시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그동안 잔악한 일제의 압제에서 고생하다가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광복을 맞게 되었다.
(2)
아아, 얼마나 기다렸던 그날인가!
파도처럼 솟아나는 광복의 기쁨이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아름답게 피어라 민주주의 꽃
영원히 빛나라 조국강산아.
(3)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차일을 둘은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서정주 「밀어」
인용한 세 문장은 모두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각각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글감, 동일한 소재라 할지라도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말하는 화자가 어떤 어법을 사용하는가에 의해서 시와 산문은 구별되는 것이다.
(1)의 문장은 광복의 시간을 사실대로 기술한 문장이다. 화자의 주관이 배제된 객관적인 문장이다. 화자는 독자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 문장에서 광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그만이다. 물론 감동도 없다.
(2)의 문장은 말을 산문처럼 이어쓰지 않고 시처럼 행을 갈랐다. 거기다가 ‘아아’, ‘기쁨이여’, ‘강산아’ 등의 감탄적인 어휘와 ‘얼마나’, ‘아름답게’, ‘영원히’ 등 부사로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은 독자로 하여 감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먼저 감격스런 입장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파도처럼’이란 비유는 늘 들어온 일상적인 것이며, ‘화려강산’, ‘민주주의 꽃’ 등도 상투적이며 개념적인 것이어서 웅변조의 호소문 같은 느낌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장은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의 창조물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시 비슷한 어법이다.
그러나 (3)의 문장을 보면 전혀 차원이 다르다. 잔악한 일제의 압제라는 개념적 낱말도 없고 자유와 독립과 광복이라는 정치적 용어도 없다. 여기서는 일제의 압제를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이라 했다. 감격과 희망에 벅찬 감정을 ‘하늘가에 머무는 꽃봉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광복의 기쁨을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리’로 표현한 것이다. 광복의 감격과 기쁨이 지상인의 것이 아니라 하늘 끝까지 퍼져 있는 것이다. 죽은 아이의 재생을 기원하는 시라는 설도 있지만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어법을 초월한 시인의 일상적인 것이다. 더구나 이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법은 과거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독창적 어법이다. 여기에 시의 창조적 위대함이 있고 시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있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 독창적인 어법, 그러면서도 놀라운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상상적 어법이며 포에트리의 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홍문표<시창작원리>에서 발췌
첫댓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필독정독할게요
감사드려요
유익한 글 고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