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은 각도
이동아
열두 해째 아들의 가슴에서
서걱이는 모래바람
칠순의 노모가
온몸으로 받아내는 문지방
천장 치받던 기도의 두 손은
이제
휠체어의 좁은 쇠틀에 접혀 있다
마른 장작으로 갈라지는 근육
소리 없이 마모되는 연골
말 잃은 방 안 젖은 숯처럼
깜빡이는 눈동자가
문밖 세상의 안부 묻는다
살보다 무거운 절망 끊어내야
비로소 숨이 열린다는 것
담장 너머 악보 없는 소리가
마른 뼈 사이로 스며들 때 알았다
기우는 햇살 속
휠체어 미는 노모의 신발
바깥쪽으로 닳아 평평해진 밑창
한 사람 끝까지 붙들기 위해
자신의 중심 조금씩 문지르며
덜어낸 바깥쪽 닳은 밑창의 각도
그 비스듬한 기울기가
말보다 오래 남는 기도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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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창
칠순의 어머니가 미는 휠체어
그 바깥쪽으로 문드러진 신발 밑창
한 생명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자신의 중심 허물어뜨린
기울어진 기도의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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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흔히 휠체어에 접힌 사지와 노모의 마른 가슴을 보며 고통과 절망이라는 단어에 갇히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고통의 표면적 진술을 걷어내고 노모가 매일 밀고 나가는 휠체어 바퀴와 신발 밑창이라는 물질적 언어로 익숙한 관용적 슬픔의 해석을 뒤집는다
그런데 이 시는 여기서 비극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에 바깥쪽으로 닳아 평평해진 밑창의 각도를 클로즈업하며 이 지점에서 거룩한 반전을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40년 목회적 기도의 형태를 노모의 신발 밑창이 닳아 기울어진 구체적 각도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의 힘은 추상적인 거룩함이나 종교적 관념어를 단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닳아버린 신발 밑창이라는 지극히 낮고 concrete한 사물을 통해 헌신과 생명의 숭고함을 증명하는 데 있고, 끝내 남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연민의 시선에서 벗어나 닳아진 신발 밑창 앞에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존재의 이동에 있음을 체험으로 알아차리게 한다
모래바람의 숨
이동아
그의 숨은, 고통이 아니라
버티는 기도의 리듬이었다
열두 해째
아들의 숨은
모래바람처럼
젖은 가슴을 스치며
거칠게 지나간다
칠순의 몸으로
그 바람을 받아내는 자리
그곳에서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천장을 향해 솟구치던 몸
두 손이 공중을 가르며
빛을 잡던 시간은
이제
휠체어의 좁은 각도 안에
접혀 있다
근육은
마른 장작처럼 결이 갈라지고
꿈의 연골은
소리 없이 닳아
몸 깊은 곳에서
조용히 부서지고 있다
말을 잃은 자리에서
눈동자 하나가
남아
젖은 숯처럼
깜빡이며
세상의 안부를 묻는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자신의 팔을 끊어내며
살아 나오던 이야기를 보았다
아들은
움직이지 않는 사지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
날을 세운다
살보다 더 무거운 절망을
잘라내야
비로소
숨이 열린다는 것을
병원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래
악보 없이 흘러와
마른 뼈 사이를 지나
조용히 스며든다
그 소리는
설명이 아니라
버티는 자들에게만 들리는
숨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알게 된다
우리를 묶고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식어버린
가슴의 온도라는 것을
기우는 햇살 아래
휠체어를 미는
노모의 발걸음
바깥쪽으로 닳아
평평해진 밑창
그 기울어진 각도는
한 사람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
자신의 중심을
조금씩 내어준
시간의 모양이었다
그것이
말보다 오래 남는
기도의 형태라는 것을
여백이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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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축시
아들의 숨은
고통이 아니라
버티는 리듬이었다
무너진 것은 몸이 아니라
식어버린
가슴이었다
닳아간 것은 신발이 아니라
한 사람을 향해
기울어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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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공감
우리는 고통을
몸의 문제로 이해한다
병이 있고
움직이지 못하고
무너진 육체
그러나 이 시의 반전은 깊다
진짜 문제는
몸이 아니라
온도라는 것
가슴이 식어버릴 때
사람은 무너진다
그래서 이 시는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온도를 지켜낸 한 사람을 말한다
노모의 닳아버린 밑창은
단순한 노동의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중심을 기울여온
시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울어짐이
곧 기도였다
굽은 무릎의 복음
이동아
열두 해째
아들의 숨소리는
모래바람이다
칠순 노모의 젖은 가슴팍
거칠게 할퀴며 지나가는 바람
2미터가 넘는
거구의 농구선수
천장 찌르던 그 기세는
이제 휠체어의 좁은
각도 속에 구겨져 있다
링을 향해
솟구치던 근육은
마른 장작처럼
결이 갈라지고
꿈의 연골은 소리 없이
마모되어 간다
소리 내지 못하는 혀 대신
눈동자만이 젖은 숯처럼
깜빡이며 세상의 안부 묻는 아침
한 남자가
바위에 눌린 제 팔
무딘 칼로 도려내던
127시간의 사투
그 영화 보며
아들은 마비된 사지 대신
희망의 날 세운다
살점보다 무거운 절망 잘라내야
비로소 숨이 트인다는 것을
병원 담벼락
너머로 번지는 콘서트
희망은
악보 없는 노래가 되어
마른 뼈들 사이로
흐르는 복음이다
적은 몸 옥죄는 질병이 아니라
식어버린
가슴의 온도였다는 사실을
기우는 햇살 아래
휠체어 미는
노모의 신발 밑창이
바깥쪽으로 닳아 평평하다
그 마모된 각도가
바로
아들 지탱해온
가장 낮은 기도였음을
여백의 공기가
조용히 증명한다
루게릭 병으로
아들의 거친 숨소리가
열두해 칠순의
노모의 가슴을 후빈다.
2m 2cm 키에
농구선수인 승일씨
선수로 코치로
꿈 한번 펴지 못하고
꿈이 마비되어 간다.
ㅊ ㅓ ㅇ ㅊ ㅜ ㄴ ㅇ ㅣ
ㅇ ㅏ ㅍ ㅏ ㅇ ㅛ
ㅁ ㅏ ㅇ ㅡ ㅁ ㄷ ㅗ
ㅇ ㅏ ㅍ ㅏ ㅇ ㅛ
눈으로만 세상과 소통한다.
등반하다
떨어진 바위에 팔이 짓눌려
127시간동안 사투를 벌이다
팔을 자르는 영화를 보면서
희망의 끈을 붙들고 일어선다.
하늘이 준 생명 다할 때까지
병원설립을 위한
희망 콘서트를 갖는다.
자기와 같이 아픈 세상에
희망의 복음으로 울려 퍼진다.
질병이 적이 아니라
절망이 적임을
육신의 마비가 적이 아니라
희망이 마비가 죽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