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후부터, 정도령이 공주 계룡산에 나라를 건국한다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개경(개성)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조선의 도읍지로 공주 계룡산을 택하게 됩니다. 공주는 1932년까지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로서 계룡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계룡산 정씨왕국의 중심지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공주 연기지역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대전과 공주 연기 지역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성계는 현재의 삼군 참모본부가 들어선 계룡산 신도안지역에다 궁궐을 짓기 시작했으나, 도중에 정도전을 비롯한 신하들의 반대로 중단되고 한양으로 궁궐을 옮겨짓게 됩니다.
정도전의 혈심어린 도움으로 한양에 경복궁을 건립하고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등 조선왕실의 토대가 마련됐으나, 신권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하게 되자, 정도전은 하루아침에 만고충신의 사표에서 만고역적의 두목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공주 계룡산 정씨등극의 설화가, 지배층과 저자거리를 막론하고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합니다. 조선 왕실 측에서는 정도전에 동정적인 인사들을 역모로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 조정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조선건국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새왕조를 건국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였던 것입니다.
증산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시던 조선말기에는, 조선조정의 학정과 양반의 타락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드높였고, 결국 정도령의 건국설화가 기승을 부리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를 등지고 공주 계룡산 정도령의 나라를 찾아 나섰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금까지도, 자칭 타칭으로 공주 계룡산 정도령의 건국설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도령이 공주 계룡산에 건설한다는 정씨왕국은, 오늘날까지도 민중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다리고 희망하는 이상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증산상제님께서는 공주 계룡산 정도령의 기운을 거두어, 정씨왕국의 그림자도 나타낼 수 없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증산상제님께서 가라사대 "예로부터 계룡산의 정씨 왕국과 가야산의 조씨 왕국과 칠산의 범씨 왕국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영(影)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대순전경 p112)
@ 어떤 사람이 계룡산 정씨왕국에 대한 비결을 말하거늘, 가라사대 "일본사람이 모든 섬속을 샅샅이 뒤져보고 물밑까지 더듬었나니, 정씨가 몸붙여서 일을 벌일 곳이 어디가 있으리요. 그런 생각은 다 버리라." 하시니라.(대순전경 p172)
앞으로 증산상제님을 태조로 하는 세계일가통일정권인 대시국(大時國)이, 천하의 어머니 산인 김제 모악산에 들어서게 되기 때문에, 계룡산에 정씨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매양 구릿골 앞 큰 나무 밑에서 소풍하실 새, 금산안과 용화동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곳이 나의 기지라. 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인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천황지황인황후(天皇地皇人皇後) 천하지대금산사(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씀하시고, 또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 도술운통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라고 외우시고, 또 "세계유이차산출(世界有而此山出) 기운금천장물화(紀運金天藏物華)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를 외우시니라.(대순전경 pp158-159)
@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만신이 하나같이 원하여 추대하니, 나는 후천의 당요(唐堯)이니라. 국호는 대시(大時)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0)
@ "나는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와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을 수도의 도성으로 삼나니, 한양보다 일곱배나 넓은 도성에서 문무백관이 정사를 보게 되리라. 부서 한 장이면 산 하나를 옮기리니 내세상에서는 서해로 땅을 넓히노라. 내가 거하는 대시국 수도의 북문은 전주에 세워지노라. 때가 되면 금산사는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17)
@ 하루는 어떤 사람이 계룡산 건국의 비결을 물으니, 가라사대 "동서양이 통일하게 될 터인데, 계룡산에 건국하여 무슨 일을 하리요." 가로대 "언어가 같지 아니하니 어찌 하오리까." 가라사대 "언어도 장차 통일하게 되리라." 하시니라.(대순전경 p177)
증산상제님께서는 공주 계룡산 정도령 기운과 더불어 배씨기운을 거두시는 천지공사를 다음과 같이 보셨습니다.
@ 하루는 정읍 대흥리 거사막 술집에서 술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느닷없이 도령 하나가 나타나 술상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라. 상제께서 술을 다 잡수시고 차경석의 집으로 가시니, 그 도령도 또한 따라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만 있거늘,
저녁때가 되여 경석에게 이르사 저녁밥을 주신후에, 상제께서 그 도령에게 가라사대 "마음을 잘 가지라." 하시며 훈계하시매, 도령은 공손히 대답하고 있더니, 그날밤 상제님 처소에서 재워 보내시니라.
다음날 종도들이 그 도령이 누구이며 무슨 연유로 왔는지를 물어보니 가라사대 "정도령이 찾아 왔느니라." 하시며, 이어서 공사를 행하실세, "충청도 계룡산 정씨 등극이나 합천에 가야산 조씨 등극이나 전라도 칠산에 범씨 등극설화를 모두 허사로 돌리노라." 하시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p 65-66)
@ 하루는 공사를 보실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세상에서 이르기를 충청도 계룡산이 정씨의 도읍지라 하며, 그 때에 배(裵)씨가 개국공신이 된다고 하니, 세상에서 이르는 대로 될진대 어찌 부당하지 아니하랴. 이조의 개국공신이 배씨거늘 정씨세상에서 또 개국공신이 된다함은, 배(裵)로써 배(倍)하려 하는 바라. 세상을 불균하게 함이니 이를 바루워야 되리라." 하시며 이도삼(李道三)을 불러 앞에 앉히시더니, 도삼에게 가라사대 "너는 배도삼이라 부르면 대답하겠느냐." 하시며 응답을 받으신후, 이도삼에게 "배도삼이!" 하시니 도삼이 "예!"하고 대답하거늘, 가라사대 "이로써 충청도 계룡산 정씨의 운을 걷어 버리니라." 하시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