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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 제 13시집 : 소원의 종
제1부 :최상의 선물
거 울
감나무
가 시
밥
부부의 길
부부 행복 법규
소원의 종
최상의 선물
엄마
엄마 사랑
엄마가 그립다
할머니 생각
잡초
모과
내 나이
기생충 같네요
동물농장 통신
신부님의 답
제 2 부: 별빛 풍경
진 주
얼 굴
침 묵
하루는 31시간
인생의 짐
참 고맙소
떡대 친구
고 백
별빛 풍경
애마의 푸념
척과 체 형제의 반란
한파주의보
못 당할 사람
바이러스 전쟁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봄은 또 옵니다
아들 재판
제 3 부 :흔들리는 세상
국 민
낮 달
길
면접 시험
춤추는 전봇대
오줌 값
숙맥(菽麥) 세상
알 몸
정(情)
책갈피
아버지의 일생
배 추
인연의 법칙
흔들리는 세상
버려야 얻는다
설해목(雪害木)
民譚.32 : 자린고비와 달랑곱재기
民譚.33: 바보와 고추
제 4 부: 가슴꽃 피운 사연
인생길
멸 치
비싼 고구마
이 름
호박꽃
농부 마음
신기한 나라
황금 다방
까치 설날
꿈 해몽
오 늘
행복한 사람
생신 축하 딱지
쪽방촌
매축지 마을
가슴꽃 피운 사연
늦은 성찰 (省察)
제1부 :최상의 선물
거 울
웃는 사람 보며 울지 않았고
우는 사람 향해 웃지 않았다
너 안에 내가 있어 행복했던
한 번도 배반하지 않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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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이치인데
감씨 묻은 곳에
고욤나무 태어나고
본가에 감나무 생가지 양자 보내야
혈손 닮은 자손, 감이 열린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사람다운 인간이 다 되는 건 아니다
생가지를 칼로 베어 뽑은 핏줄로
접붙이는 아픔을 겪으며 환생한
감나무에서 인간도 배워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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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시
잠자리에 들 때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하루
아무 쓸모도 없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과 괴로움의 가시
용서받기를 원하면서
용서하기는 어려운 까시
마음밭 가시가
미움과 분노다
손에 박힌 가시는
쉽게 뽑을 수 있지만
마음에 박힌 살뼈 까시는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아
뽑아 내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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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삶은 밥의 역사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밥을
누구와 언제 함께 먹었는지
어떤 마음과 기분으로 먹었는지
네 밥의 역사는 네 삶의 역사고
내 밥의 역사는 내 삶의 역사다
식구는 한솥밥을 먹는다
한솥에 소복하게 쌓인 정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아침밥 한 그릇 속에
사랑의 온기가 솔솔 배어있는
밥은 삶의 생존이자 사랑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정감 어린 대화의 인사치레로
정해진 날짜는 비록 없더라도
언제 우리 만나 밥 한번 먹자
비록 빵이나 커피를 먹더라도
빈말이라 할지라도 밥 한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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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길
고속도로에는
오름과 내림차선이 있다
생명선인 차선의 경계는
냉정하고 확실할수록 좋다
도로에 진입한 차들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야 한다
삶의 현장인 가정에도
부부간의 길, 점선이 있다
쌍방통행인 부부의 길에는
경계선보다는 조심선이 있다
부부의 길도 한 방향을 향하여
동감하며 동행함이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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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행복 법규
부부가 살아가는 길에도 법이 있고
무인 카메라가 촬영을 하고 있다
딱지를 떼어야 할 일방통행은 물론
안전거리 확보도 항상 준수해야 한다
크랙션은 음량을 최대한 낮추어 놓고
배우자의 주파수 파고를 상황에 따라
빨강, 파랑, 노란색인지 확인해 보며
때로는 기다릴 아량도 있어야 한다
부부간 너무 가까우면 추돌우려가 있고
너무 무심하면 끼어들기에 당한다
신뢰 신호 위반은 사고의 첫걸음이다
부부는 영원한 동반자임을 철칙으로
자기 차선을 지키며 동행해야 한다
독자적인 질주는 일단 멈추어야 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부간에 무시와 경쟁은 사고의 원인
사소한 자존심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생명줄은 개성을 존중해야 잡는다
들어가고 나와야 할 곳과 때를 알라
정기적으로 부부 면허증 검사를 받으며
사고 나기 전에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
목적지 행복역까지 안전운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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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종
옛 유고 땅, 슬로베니아
통통 쪽배를 타고
거울 호수를 건너
율리안 알프스의 진주
천혜의 휴양지
절벽 위의 블래드성
99 계단을 올라
고풍스러운 성당 안에서
아내 안나의 72회 생일날
종 치는 동아줄을
둘이 꼭 잡고서
소원의 종을 세 번 울렸다
우리 부부
건강하게 잘 살며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나라는 바른 길로
사회는 조용하게 해달라고
12유로의 종치는 값을 먼저 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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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선물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이사 가신 뒤
찬장에는 한 번도 쓰지 않은 접시
허름한 장롱 속에는 입지 않은 한복
호주머니마다 찢어진 휴지 조각처럼
꼬깃꼬깃 접어둔 신사임당 몇 장씩
아껴두다가 언제 쓰시려고 모았을까
이승보다 저승 세상을 준비하셨나
가장 좋은 그릇은 귀한 분 오실 때
새 옷은 먼저 가신 아버지 해후할 때
예쁘게 보이시려고 아껴 놓으셨나 보다
어머니가 이승 가꾸시며 사시던 88년
그 후로의 미래는 욕심도 아니었지만
내일은 어머니의 것으로 남지 않았는데
현상의 오늘이 최고의 선물이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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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마
화재에 휩싸인 닭장에서
수탉들은 다 빠져나갔는데
병아리를 품속에 꼭 껴안은 채
어미 닭만 까맣게 모두 타 죽었다
사람이나 동물나라에서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말
나직이 말하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물컹해지는 엄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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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
튀르키예 대 지진 직후
폐허가 된 건물 밑에서
신에게 기도를 드리듯
무릎을 꿇고 웅크린 여인을
흙더미 속에서 찾아냈다
목과 허리는 골절이 된 채
죽어서 몸이 굳은 상태였다
시체의 팔 아래
흙더미 담요 속에 잠든
3개월 된 아기와
엄마의 핸드폰이 아직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아가가 살아남았을 때는
엄마는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는 문자와 함께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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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립다
팔십 줄에 들어서면서
치매기가 조금씩 나타나
자식과 피붙이들을 만나도
그 누구시냐 묻는 어머니는
본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으셨을 때의 엄마는
그 어느 친구의 엄마보다도
정이 많으시어 자식 걱정
손주들 사랑, 이웃과도
사이좋게 어울리셨는데
정월 명절이 지난 어느 날부터
맏며느리 노릇 너무 힘드시다며
교회로 피신해 출근하신 후부터
동네 교회 권사 직책도 맡으시고
성경책도 간간이 읽으시면서도
집안의 큰 행사인 기제사는
빼놓지 않고 정성껏 챙기시다
치매 양로원에 입원하신 후부터는
자식과 손주들, 이웃까지도
영육과 물질까지 모두 다
기억 속에서 빼어 팽개치시고
하늘나라로 이민 가버리신
무소유의 우리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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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각
할머니는 새벽녘마다
장손자 눈치채지 않게
가슴을 쓸으시며 우셨다
6.25 전쟁터에 전사하신 삼촌이
보내주는 연금봉투를 받으러
읍내 보훈청에 다녀오신 날은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할 때는
TV 앞을 홀로 지키며 사셨다
큰 딸 소식을 행여 들을까 해서
유족 연금 몇 천 원 타다가
장손자 눈깔사탕 사주시는 재미로
세월 엮으며 사시던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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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초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
논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차지할 자리를 가리지 못해서
뻗어 나갈 내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하늘 바라보다가
잡초가 돼 뽑혀 버려진 인간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무명초도 소중한 인간이 된다
산삼도 태생은 잡초
애초에 잡초는 없었듯
뽑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태양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우리는 산삼보다도 더 귀하고
태양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
나 만의 타고난 자질을 맘껏 펼쳐
지상에 풀꽃 향기롭게 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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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과
과일 좌판에서도 밀려나고
식탁 멤버에는 끼지도 못하는
목과(木瓜), 본명은 나무 참외
못생긴 외모에 놀라고
떫은맛에 다시 놀라고
은은한 향기에 빠지며 놀라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
새벽 산책길 공원에서
모과나무 아래를 지나다
신비로운 향기의 유혹에 취해
못생긴 모과 한 알을 주워다
책상 모서리에 던져두었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과일전 망신을 시킨다지만
가을향기의 위신을 세워준다
벌레 먹은 상처가 시커멓게
변색되며 한참 늙기 시작한
노파 닮은 푸른 모과 한 개
노랗게 잘 익은 모과도
누렇게 썩어야 향기를 낸다
썩으면 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
늙어가면서 더 향기로운 모과
나이가 더할수록 더 성숙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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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내 나이가
조금 젊었을 때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돈과 명예를 찾기 바빠
풍요로운 삶의 여유와
활기찬 하루의 즐거움을
모르면서 살아왔다
눈 깜짝할 어느새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
젊음과 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억과 통장을 뒤져보았지만
잔고는 찾지 못한 채
내일의 벼랑길 위에
오뚝이 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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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같네요
악동 바이러스
친구 코로나19가
내 몸에 잠입, 기식하다가
아내에게로 옮겨
동숙하기 3일째
부부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자식들이 걱정하여
하루는 아들네가
다음날은 딸네가
삼시 세끼 마련하며
과일과 먹거리를 사다
현관문에 걸어놓고 간 후
소파 위에서
멍 때려 창밖이나 바라보며
며칠을 무위도식하며
구호물품 칼날같이 들여와
끼니 맞춰 때우며
아내의 말, 꼭 기생충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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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통신
소, 돼지, 염소, 닭, 개가 함께 사는
수도권의 어느 집단 동물농장에서
새벽 알림을 포기한 수탉 3 마리와
경비를 책임 맡던 진돗개 2마리가
처음에는 옥신각신 토론을 하더니
점심 식사 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수탉은 내가 할 일은 이른 아침에
날개를 퍼득이며 꼬꼬댁을 소리쳐
일터로 내모는 것이 맡은 일이었고
진돗개는 도둑놈이 들어오지 못하게
큰 소리로 무차별 멍 멍 짖어대며
달려들 듯 위협하는 것이 임무였지요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백수가 됐는데
늦잠 자는 자유를 막을 필요도 없고
집주인부터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고급 도둑님들인데 뭐 하러 짖어요
일생을 밥 주는 주군에 충성했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 행동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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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답
-프레임(frame)의 법칙
동네 청년 셋이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면서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
신부님께 한번 여쭤보자꾸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가 기도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
신부님은 정색을 하면서
질문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신부님의 말씀을 들은
다른 청년이 다시 질문했다
신부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하면 안 되지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신 신부님은
주님에게 드리는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어요
담배를 피우는 중에라도
기도는 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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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 별빛 풍경
진 주
몸통 속으로 찾아드는 불청객이
연약한 속살밑으로 파고들 때
동정녀는 고통의 밤을 지새웠다
모두가 공주가 되는 것도 아닌데
침략군을 아주 무시해 버릴까
도전을 받아들여 싸워 이길까
조개는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생명의 즙으로 포진을 막으며
진주층을 감싸온 고통의 2년여
고통의 아픔이 더하면 더할수록
값지고 큰 선물의 주인공, 진주
내일의 영광은 오늘의 눈물
세월의 진통이 공주를 탄생한다
시집살이 3년이 참기 힘들 때
진주 속 모래의 고통을 이겨내고
공주가 되어 화려하게 견뎌내라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선물로 주는 보석함이 있었다
얼어붙은 눈물이 그대, 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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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세월이 나이를 업고 갈수록
아침 햇살처럼 맑고 고운 얼굴
언제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더 추레하고
성깔은 꼬불어진 꽈배기처럼
비틀어져 어울려 살아가기 힘든
이웃 사람들도 혹 간은 있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밝아지고
강직함에 온화한 품성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아주 잘 그려놓은 화첩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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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묵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새싹이 승화해 꽃이 피고
한 알의 결실을 맺기까지
말없이 기다리던 농부와 같이
고요한 물은 속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일수록
말없이 얼마간 기다려 보면
잊힌 소중함을 찾을 수 있다
말은 몇 년이면 다 배우지만
침묵은 평생을 배워야 안다
진리를 찾아 오늘도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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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31시간
언제든 한 번쯤은
가서 밟아보고 싶던
오스트리아, 항거리 ,체코
한국이 하루 7시간 앞서 달리지만
헐떡이며 7년쯤
그들이 뒤쫓아 오고 있다
비행기로 12시간
지구를 달려, 오고 가고
또 버스로 6시간
해가 저무는 9시
한국은 해가 떠오르는 4시
물 한 병 1유로
화장실 찾아 또 천오백 원
하루 31시간도
이제 다 써가고 있는데
지구를 등에 지고 걷는
오늘은 고달픈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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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짐
사람들은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무거운 짐을 진 채 그냥 걸어간다
가난, 재물, 질병, 건강도 짐이고
의무, 책임, 명예, 권력도 짐이고
사랑, 증오, 만남과 이별도 짐이다
짐을 내려놓을 때 짐의 무게만큼
행복의 무게는 가볍게 찾아온다
지고 갈 바에는 즐겁게 지고 가자
지고 가야 할 짐을 다 벗어 놓으면
이승을 떠나 이사 가는게 인생이다
헛바퀴가 마구 돌아가는 화물차에다
일부러 적절하게 짐을 싣기도 하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급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돌덩이를 일부러 지고 건넌다
주어진 짐을 지고 인생길을 걷다 보면
눈높이도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눈 치켜 떠보려 하지 않고
걸음 거리도 매우 조심스러워지고
허리까지 굽혀 고개도 절로 수그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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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맙소
사람들과 동식물
눈치 볼 것도 없이
상쾌하게 받아들이는
청정한 아침 공기
인연의 끈을 맺어준
고마운 친지와 이웃
직장과 문단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동료
조상님의 은혜받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한 가정을 함께하며
한평생을 동행한 아내
새 가지처럼 뻗어 자라준
소중한 자식과 피붙이들
나는 복 받은 인생
오늘의 삶 참 고맙소
비와 눈이 내리고
바람이 찾아와 손잡은 지구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풀꽃 그리고 바위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과
마을을 안고 흐르는 시냇물
사계절이 펼쳐주는
자연현상 모두가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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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대 친구
몸집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비대하고 무식하게 커서
함부로 대하기엔 거북하고
속알머리는 좁아터저
사소한 일에도 끼어들어
작은 아이들만 위협하니
친구로 말하면 대국은 못되고
소국이라 쉽게 말할 수도 없네
그저 중간쯤에 머뭇거리는 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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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
나이가 좀 들어가면서
내 마음밭 옥탑방을
수시로 드나드는
수상한 남녀는
내 친구와 연인이다
눈치 꼬치가 없는
좋은 사이라 해도
항상 곁에 눌어붙어
있으려 하는 친구의 이름은
참 미련하군 이고
신발을 감춰놓고
옷깃을 잡으며 애원해도
내 곁을 떠나려고
발버둥 치는 그대
연인은 나영광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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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풍경
파란 하늘 아래
싸리나무 사립문
허물어 내린 굴뚝
댓돌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검정고무신
푸른 보리밭이 물결치며
시냇가의 피라미
버들피리 따라 춤추고
유년의 추억이
들락날락 숨 쉬고 있는
비록 먹을 것은
넉넉하지 않아도
이웃 친지들과
조금씩 나누어 베풀며
입은 옷은 너무 촌스러워도
서로 견주며 비웃지 않고
고향의 훈훈한 인심이
모락모락 해오름 하다
노란 초가지붕에 내려와
별빛 풍경을 그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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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의 푸념
몸뚱어리가 성할 날이 없어요
외출하는 날도 별로 없이
매일같이 마당에서만 쉬는데
옆 말이 툭툭 치며 도망가고
앞 말도 발길질로 한번 차보고
주군을 그렇게 정중하게
여기저기 모시고 다녔어도
위로의 말 한마디 듣지 못했어요
어쩌다 실수로 상처를 냈다고
고백하는 옆의 차 젊은 주인에도
그쪽 편만 두둔해 눈감아주더니
내가 조금 성급히 달려갔다고
지나다가 다른 차 몸 스쳤다고
상대방이 나에게 눈길도 쏘고
어떤 때는 목소리 크게 높여도
늘, 네가 참아라, 참아야 한대요
싸움질하거나 맞고와도 혼만 내던
어렸을 때 우리 엄마들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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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과 체 형제의 반란
가진 것 별로 없어도 있는 체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지만
괜찮은 사람은 별로 없다
아프지 않은 척하며 살아가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도 별로 없다
아는 것 별로 없어도 아는 체
힘들지 않은 척하며 이겨내지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형제간에 보기 싫어도 좋은 체
'척'과 '체'도 초록이 동색이다
여태껏 시치미 떼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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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주의보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겨울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지면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고
밖에서 들여다보는 안채도
안갯속에 먼지 없는 세상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
손쉽게 풀고 뛰처 나와도 좋고
꿈꾸다 산타할아버지도 만나는.
혹한에 또 제설 주의보
잠시도 버티기 힘든 빙판길
하루벌이 일용 노동자
고시 델의 독거노인들
지하 단칸방의 신혼부부
대출 이자만 눈처럼 쌓이는 상공인
미끄러지면 낭떠러지 힘든 세상
매일 TV는 사람 잡는 영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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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당할 사람
설운도는 서해의 섬인데
으악새가 날아다닌다
청남대는 대학이고
안중근 의사는 내과 의사다
몽고반점은 중국집이고
복상사는 절 이름이다
공모주는 술 이름이고
세발낙지의 발은 세 개다
달마도는 섬
대주교는 큰 다리
노점상은 밥상이다
갈매기살은 갈매기의 살이고
노숙자는 여친 이름이다
구제역은 지하철역이고
곡선미는 쌀이라 우기는 사람
6.25는 북침이고
사회주의는 천국이다
이 땅에 종북은 없지만
공산사회에 종교는 있다
주사파는 상처 난
자유민주주를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북한에 퍼주면 고맙게 생각하며
북핵은 포기할 거고
사정사정하며 만나 달라
애걸복걸하면 만나 줄 거다
감옥에 간 정치인은
국민만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다
파렴치 정치인도
제정신 가진 정상인이라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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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전쟁
철통 같은 현대식 무기로도
아무리 돈이 많은 강대국도
착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도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달려들어
인간의 폐만 공격해 숨통을 조이고
맛도 냄새도 차단시켜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환 태생의 악동
못된 놈, 19 코로나 바이러스균
날개나 발도 없으면서
국경을 무시하고 마구 넘나들며
비행기나 선박 자동차까지도
꼼 짝 못하게 무용지물로 만들고
지구상 살아 있는 생명체 중에
제일 강한 인간만 찾아든 불청객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라 하며
집안으로만 자꾸 몰아넣는 괴물체
최적지는 자유롭게 모여 사는 곳
혐오하는 나라는 불통의 독재국가
철석같이 믿어온 대만과 북한까지
그를 꺼리며 받아주려 하지 않을 때
숙식을 제공하며 안방도 허락해 주던
한국도 검문이 심해저 곧 떠나야겠다
앞으로의 재앙은 핵보다도 더 무서운
바이러스 전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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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만 떨어집니다
온 세상 밤은 어둡고
집집마다 환하던 등불조차
떠올릴 수 없습니다
일생 빛을 찾았습니다
스스로 반짝인다 자랑했습니다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하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는 부두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눈송이가 눈가를 적십니다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고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왕관을 쓴 치명적인 황후는
동화 속 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려
속세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천하는 다시 북적거렸습니다
우리는 천 송이 만 송이 눈보라
대지에 송이송이 흩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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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또 옵니다
-코로나19 전사자의 기도
겨울이 가고 강물이 다 녹으면
보고 싶은 얼굴들 만나리라 기대했다
그때가 오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송이 눈송이처럼 바라보며
하루를 들뜬 마음으로 보내리라 여겼다
어젯밤에 싸락눈이 다시 내렸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이 말했다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떨어졌어
귓속말에 가슴이 멈추는 줄 알았다
비록 영혼은 따뜻한 곳에 존재한다 해도
햇빛을 받아 살며 인생을 노래하고
소나무 잣나무를 찬미하고 싶었다
지구 가족 이 땅의 모두를 사랑했다
바람은 춤추고 눈은 티 한 점 없다
고향의 검은 땅과 하얀 구름을 떠올린다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다
태평한 세상에 소란 피우지 말라며
당신들이 모두 동트는 새벽을
내가 산마루 건너기를 기다릴 것임을
알고 있지만 너무 피곤하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바라지도
태산보다 무겁기만 한 이번 생애
두렵고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겨울은 가고 얼음과 눈이 녹으면
대지를 사랑하는 봄은 또 옵니다
----------------
아들 재판
원고와 피고가 법정에서
눈빛을 쏘며
피 터지는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집 팔아 강남으로 이사가
고액 학원 보낸 뒤
미국 유학을 보내
박사 아들 만들어
대기업에 입사하고
결혼도 시켰는데
명절이 돼도 10년간
찾아온 적이 없어요
아내가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손자 손녀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피고에 퍼부은 돈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피고를 향해
저분은 누구냐고
재판장이 묻자마자
아들은 원고라고 답했다
유학을 가서 개인주의를 배웠습니다
부모를 찾아가고
안 찾아가는 것은
내 자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정해 방문은
허락을 받아야지요
손자 손녀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공양계약을 원고와
처음부터 맺은 적이 없습니다
원고와 피고의 항변이 끝난 뒤
재판장이 저의 아버지는
개인택시 운전사입니다
아버지를 한 집에서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힘들게
일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 오늘도
법원에 출근하기 전에
가족의 생계를 돕고
저를 공부시켜 준 은인
늙은 택시를 깨끗하게
목욕시켜 놓고 왔어요
아무리 황금만능
개인주의 시대에 산다 해도
부모와 자식이
법정에 마주 서있어야 합니까?
==============
제 3 부:흔들리는 세상
국 민
할인 상품이 아니요
헐값으로 팔지 마시오
가판대 위에 내어놓고
국민이 원한다면 하면서
간 빼놓고 할인 행사하는
정치인들, 시위대 무리들
국민은 땡처리로 가볍게
함부로 세일 상품이 아니요
이제 특상품이 장사치들을
교체 떨이 할 작정이라오
-----------------
낮 달
병풍을 쳐놓은
시간의 암막 안
높다란 무대 위에
거침없이 등장할 때는
주인공은 나 자신뿐이라
공주가 된 듯 착각하여
레이스 달린 옷에 황금 여왕관도
빌려 쓰고 있다가
공연이 끝나는 여명의 빛줄기 속
지정석 관객 맨 뒷줄을 서성이다
언제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도 ...
화려했던 이력서 한 두장
엉덩이 아래에
접어 깔아 놓고
추억의 안개 장막으로 자욱해진
머나먼 고향 하늘이나
그려보다가
누렇게 변한 기억의
수첩이나 넘기고
큰 어깨라도 옆에 다가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떠서
어디로 잠시 가버렸다가 돌아와서
기약 없는 미래나 기다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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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사람들은 한평생을
길 위에서 살아간다
인생이 곧 길이고
삶의 한 방법이다
속도와 방향의 조절
삶, 그 자체가 길이다
큰길로 달리다 보면
막다른 골목도 나오고
급히 오르다 보면
내리막 길도 있고
방향 전환, 속도 조절
온길 되돌아서도 가야 한다
똑같은 길은 없다
유혹의 길로 잘못 들어
일평생을 헤매는 사람
하나의 길로 꿋꿋이
혼자서 걸어가는 사람
주어진 길을 걷는 몫의 길
목적지에 일찍 가려고
쉽게 앞질러 가는
지름길보다는 좁지만
정겨운 외움 길을 찾아
푸른 하늘 아래 꽃구경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으며.
-----------------
면접 시험
어느 회사 입사 면접에서
얼굴에 비해 코가 유난히 큰 수험생에게
여자 면접관이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지금 마치 엉뚱한 생각을 하며
불확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얼굴에 코의 비중이 매우 크네요
머저리와 바보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청년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할 줄 알았는데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례되는 질문을 불쑥하는 쪽이
머저리이고 그런 질문에
대답을 곧바로 하는 쪽은 바보입니다
문제에 정답을 말한 응시자는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고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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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전봇대
불금의 퇴근길에
거나하게 술에 취한듯한
한 노년의 신사가
문화동 오거리를 지나다가
길가의 전봇대를 붙잡고
빙글빙글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에게
한 학생이 달려와 어디 아프세요
좀 부축해 드려도 될까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볼일이 너무 급한데
키 큰 친구가 춤을 추자네
저 전봇대 좀 잡아주게나
나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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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값
고향집 유년의 뒷간은
찬바람에 엉덩이가 얼고
이슬비에 왕비 맞던 초가
텃밭거름 저축통 묻어 놓은
발아래 널빤지 밑에서
밤엔 몽당귀신이 나올까 봐
입 벌린 큰 독에 빠질까 봐
엄마는 등불 들고 보초서고
화장실이라는 말이
진짜 화장하는 방이라고
생각하던 유년의 기억
추억 속의 뒷간도 화장실로
세월은 현대화하였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불편 없이 주인으로 맞으며
기다려 주는 서구의 호텔급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냉. 온수도 마음껏 쓰고
여름에는 빵빵한 에어컨
겨울에는 훈훈한 온풍기
우리 보다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 가보면
소변 한 번 보는데
티켓 끊어 오줌값 1500원 지불
-------------------
숙맥(菽麥) 세상
옳고 그른 것을
상식과 비정상, 욕설과 평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관념이 현실
이념이 사람을 잡고
이성은 침묵하며
거짓이 참이 되고
변명이 사과로
빨려들어 가는 시대
콩과 보리를
구별 못하는 사람을 숙맥((菽麥)
쑹맥이라 발음한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해를 보고 달이라 하고
달을 보고 해라고 하며
낮과 밤을
분별 못하는 시대
언론은 기름을 부으며 춤추고
권력은 위에서
난세를 즐기는 시대
크기나 모양으로
다른 곡식,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쑥맥
숙맥의 세상을
침묵파로 살아가기에
너나 할 것 없이
갇혀 사는 버거운 시대.
------------
알 몸
지닌 것 없이 알몸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이승 떠나는 인생
다 벗어놓고 알몸으로 간다
외출복 수의에는 아무것도 없다
용돈을 넣을만한 주머니가 없다
돌아올 리 없으니 욕심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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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연인 간의 사랑은
헤어지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정으로 굳혀진 인연은
가슴 깊이 잦아들며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을 더웁히며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사랑은 세월이 흐를수록
유통기간이 지나면서
체중이 야박해지며
달콤함보다는
시큼, 비릿한 맛으로 변하고
정은 뼛속으로 잦아들어
세상을 꽃향기로 감돈다
----------------
책갈피
멎지 않는 비가 없고
지지 않는 꽃이 없듯
잠들지 않는 바람도 없다
젊은 시절의 사랑까지도
세월 따라 변화해 간다
끝없이 이어질듯한 기쁨도
헤어 나올 수 없던 고통도
영원한 것은 없다
곱게 물든 가을을 잡아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단풍잎이 꽃보다 더 예쁘다
진눈깨비가 몰아친다 하여
하루가 너무 힘들다 해도
젊음은 아름다운 추억
세월은 피할 수 없는 과정
펼쳐 본 날들은 꽃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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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생
팔순 가까이 까지는 건강하시더니
무릎 아파 침대에 누워 지낸 8년여
고통과 무기력한 노년시대 보다 더
한참 꿈도 많았을 청장년 시절에는
향유할 자유도 일제 치하에 빼앗겨
징용으로 징집된 군노무자로 사셨다
그래도 아버지 일생 중 최 전성기는
황무지에 옥토 몇 평 손으로 개간해
아들 딸 낳아 기르시며 손주도 보고
밭에다 수박과 딸기 심어 돈도 모아
자식들 학비와 용돈도 마련하시던
40부터 70대까지가 최 전성기이셨다
나도 이제 80에 접근한 노년기 인생
아버지의 일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
배추
다섯 번이나 죽어야
배추는 김치로 환생한다
밭에서 팽 당하며 죽고
뱃살에 칼날이 갈라 치면서 또 죽고
잘린 몸통에 소금을 뿌려 다시 죽고
고춧가루와 젓갈에 범벅돼 또 죽고
장독에 담긴 시체로
땅에 묻히거나 김치통에 갇힌 채
냉장고에 수장되어 죽은듯 살아나야
양반 본래의 김치맛을 낸다
우리 인간의 생애도
배추의 일생과 비슷하다
맛깔난 김치처럼 숙성된 삶을 위해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편견과 고정관념도 죽여야 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챙기는
허망한 욕망도 죽여야 하고
지신만 손해 본다는 생각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도 죽여야 한다
수시로 욕망의 분출구를 닫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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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법칙
38세의 젊음에 요절한
중국 절강성의 갑부
왕쥔야오 회장의 부인이
수천억 원을 유산으로
졸지에 갑자기 물려받고
왕회장 부부를 모시고 다니던
부인보다도 훨씬 젊은
운전기사와 재혼을 하였다
젊은 운전기사는
행복에 겨워 말하였다
내가 오직 왕회장님을 위해
근무하고 있다 늘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왕회장님이 나를 위해
재산을 모으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네
언제나 아무도 모르는
인연의 법칙에 맡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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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나무와 바위가 흔들린다
세월과 인생도 흔들린다
지상의 나무와 바위는
안개, 바람, 허영에 의해서
세월 속의 인생은
꿈과 욕망으로
파도치는 우주에서
흔들리다가 다시
지구에 내려와 나래를 접는다
기쁨과 흔들리다가
슬픔도 만나고
행복과 흔들리면서
아픔도 만난다
많은 인연과의 만남과 평화
자연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사람끼리 상호 받은 상처로 흔들다가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삶이다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길이다
흔들리지 않는 자연은 없다
흔들림이 없는 인생도 없다
부와 명예 권력에
흔들릴 수도 있고
살아가는 아픔과 즐거움일 수도 있다
태어나 선택한 길을 따라
비틀거리다가 흔들리다가
사랑과 행복도 찾아낸다
자연이나 인생
사는 것 자체가 흔들림이다
------------------
버려야 얻는다
한 어린이가
커다란 간장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을 가져와라
요란법석을 떨고 있는데
독에 빠진 어린이는
숨이 넘어갈 절명위기에 있었다
바라만 보고 있던
어느 어린이가
옆의 돌덩이를 주워 들고
커다란 간장독을 깨트려 버렸다
동네 어른들의 잔머리로
간장과 독 값 책임소재 따지며
시간 낭비하다가
어린 생명을 잃게 할 번 했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깨부수어야 할 것은
많기도 하고 실행이 어렵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조금 덜 소중한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천 년 전의 송나라 시절
어린 사마광의 실화다.
---------------------
설해목(雪害木)
수피의 나무 군단이
도열하여 서성이는
겨울나무들의 가장행렬 총연습인가
세차게 몰아치던 태풍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폭설 혹한에
너무도 많이 무너져 내렸다
눈을 이겨내지 못한
느티와 참나무들이
긴 다리를 늘어뜨리고
골짜기마다 쓰러져 있다
참나무 고목이 쓰러질 때는
몇 KM 밖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신음소리로 울부짖는다
폭설에 부러진
산벚과 상수리나무 가지
쩍 벌어진 물관 가득
살얼음이 차올라 있다
나무들 옆구리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완전히 속을 비워버린
검은 형해 속
상처 둘레로
진액을 내뿜어 서서히
상처를 감아가는
살갗이 팽팽한 설해목
잔설에 바짝 얼어붙은
텅 빈 나뭇가지 속
짙은 겨울의
살얼음판 투우장이다
나무 틈새 눈이 녹으면
새 가지엔 움이 트고
새 가지들 잎잎이
뿜어 올리는 세찬 기운
고목의 나이테를 보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한
기록을 열심히 하였음을
찬찬히 엿볼 수 있다
좀 더 큰 상처의 틈이
벌어진 나무들도 있다
자신의 상처를 감아쥔
애틋한 고목의 모습은
인간이 흘려보낸
세월의 박피가 찾아와서
내면의 공동을 메워가는 것
------------------------
民譚.32
자린고비와 달랑곱재기
자반고등어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아들아 물 썰라, 그만 쳐다봐라.
며느리가 생선 만진 손을 씻어 국을 끓였더니 그 손을 우물에다 씻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생선국을 먹을 수 있을텐데 그 보다도 더 지독한
자린고비는 강 동편에 달랑곱재기는 강 서쪽에 살았었지
자린고비가 겨울날 새벽에 등덜미가 오슬오슬해서 잠을 깨보니 문짝에 발라 놓은
창호지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났네그려. 자린고비가 새벽 내내 추워 오들오들 떨다가
날이 밝자마다 길바닥이고 남의 집 근처를 샅샅이 뒤지면서 종이 조각을 찾는구나
혹 누가 쓰다 버린 종이조각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주워다 문을 바르려는 거였지.
다 찢어진 종이 조각을 하나 주워와 문구멍에 맞춰 보니 작아서 구멍을 다 못 막네.
자린고비가 온갖 궁리를 다하다가 무슨 좋은 수를 냈는지 무릎을 탁 치더니
작은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쓰는데 내 긴히 쓸 일이 있어서 그러니
편지로 달랑곱재기에게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일진을 적어서 보내 주게나
답장을 써 보내주면 그것으로 뚫어진 문구멍을 바르고도 남을 게 아닌가
편지를 보내 놓고 이제나 저제나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뚫어진 문구멍을 찬바 람은
자꾸 새어 들어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없어 이런 고얀 친구가 있나
귀한 종이에 쓴 편지를 받았으면 그만한 종이에라도 답장을 보내야 진정 친구지
자린고비가 그 길로 강을 후딱 건너 달랑곱재기네 집으로 찾아 가자마자
다짜고짜,이 사람아, 남의 편지를 받았으면 답장을 보내야 할 것 아닌가
달랑곱재기가 하는 답이 나도 답장을 보내고 싶지만 집에 마침 종이가 없어서
그 편지라도 되돌려 주게나 그 종이라도 되찾아가야 손해를 안 보겠어서 말했는데
달랑곱재기는 그 편지 말인가. 우리 집에 문구멍 뚫어진 데가 있어서 발라 놨네
질긴 것이 문구멍 바르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더군
자린고비가 달랑곱재기네 문구멍에 발라 놓은 편지를 달려들어 잡아 떼어
가지고 막 나오려는데 따라 나오면서 자네 편지를 자네가 도로 떼 가는 거야
말릴 일이 아니네만, 그 편지에 붙은 밥알은 떼 놓고 가게. 밥알이 세 알이나 들었다네
-------------------
民譚.33
바보와 고추
아내는 시집을 와서야 남편이 바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래도 친정에다가는 남편이 바보 천치라는 사실을 숨겼지요
처갓집에 가서 밥상이 들어오면 아버님께 진지 많이 드십시오
식사를 다 하고 밥상을 물리면 담배를 태우십시오라고 꼭 말하세요
연습을 시켜 보았으나 남편은 밥상이 들여왔을 때는 담배를 태우십시오
밥상을 내어 가면 진지 많이 드십시오 하지를 않나 엉망진창이었어요
.
아내는 꾀를 내어 가느다란 실로 남편의 고추에 잡아매었지요
한 끝은 자기 손가락에 붙들어 매고 몇 번씩 연습을 시키었어요
실을 한번 잡아당기면 진지 많이 드십시오라고 말하고
두 번 잡아 당기면 담배 태우십시오 라고 말하는 거예요
남편이 처갓집에 와서 장인과 함께 식사를 다시 하게 되었지요
부엌에서 남편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재빨리 실을 당겼습니다
아이구 아파 진지 많이 드십시오. 장인은 허허 자네도 많이 들게나
식사를 마치고 밥상을 물리자, 남편은 멀뚱멀뚱 앉아 있었습니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재빨리 실을 두번 잡아 당겼습니다.
아이구 아파 담배 태우십시오 , 장인은 우리 사위 예절도 바르네
아내가 급해서 북어 대가리에다 실을 매어 놓고 볼일을 보러 갔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부엌에 들어와 북어를 물고 도망을 치려 했지요
묵어놓은 실 때문에 움직이지를 않자, 북어를 물고 마구 흔들어 대었어요
방안에 있던 남편은 고추에 신호가 올 때마다 울부짖듯 말했습니다
진지 많이 드십시오. 아이구 아파 , 담배 태우십시오. 아이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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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가슴꽃 피운 사연
인생길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해보려 노력해 봐도
안 되는 게 있기도 하지만
산을 오르지도 않고 바라보며
정상을 말하는 것은 풍선이다
노력하지 않은 정상은 없다
산의 봉우리에 오른 뒤에야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듯
인생의 참 맛도 느낄 수 있다
인생길과 등산은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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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 치
체구는 비록 왜소할지라도
넓고 푸른 바다에서
더 약한 물고기를 어르며
상어등에 업혀 호가호위하지 않고
사기 쳐서 등쳐먹진 않았다
머리통부터 똥뱃살까지
몸통 전부를 아낌없이
인간에 베푸는 뼈대가 있고
족보가 있는 어(魚)가문
척추동물의 왕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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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고구마
고희(古稀)가 지나고부터는
승용차 몰고 나가기가 겁이 나
운전대를 잘 잡지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 모시고 나갔다가
30Km 더 찍혀 범칙금 6만 원
손주들 과일 한 상자 사다 주려다
11km 초과로 감면받아 4.8만 원
고구마 사러 가자고 아내가 졸라대서
유성장에 모처럼 차를 몰고 갔다
고구마 10kg에 2.5만 원 두 박스 값 5만 원
좁은 길 돌다 길가에 잠에 든 차 스쳐서
상처 난 치료비 30만 원 주고난 후
보너스 벌점 다시 6만 원 셈해보니
고구마 1박스에 20만 원이 넘네
우리 부부 참, 비싼 고구마 먹고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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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주름살이 늘어나고
나이가 많다 해도
이름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얼굴의 나이테
그대의 얼굴과 이름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감정
쓰나미처럼 훑고 지난 세월
얼굴을 바라보는 것보다
영혼을 찾아가는 길
현재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는 이름 속의 향내
이 세상 다하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이삿짐 보석함 속에
숨겨 가고 싶은 이름
가슴속 색깔은 퇴색됐지만
떠오르는 얼굴이
아름다운 추억의 흔적이
이름 속에 그녀처럼
다시 들어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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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봄을 깨고 나온 싹
희망의 줄기를 뽑아
새벽이슬에 촉을 다듬고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기 넝쿨은 토담을 넘고
햇순이 꺾인다 해도
훤칠한 목을 과감히 빼어
빗물 한 바가지에 만족하며
시선은 당당히 높은 곳에만
고향집 흙 담장 위에
노란 별로 내려앉은
인심 후덕한 시골 엄마
좋고 기름진 땅 가리지 않고
햇빛 한줄기 찾아주는 곳
허락된 한 뼘의 땅
자갈밭, 풀숲 마다하지 않고
장벽, 허공 가리지 않으며
탱자나무 울타리라도 터 잡는
꽃의 여왕 장미꽃은
도회의 숙녀, 열매는 왕거지
백합꽃향은 못 닮았어도
촌티 나는 순한 외모에
포근함의 산골 아낙
황금 열매를 낳는 호박꽃
수수함만이 멋인 꽃
노란 꽃 담장 무대에서
황금 열매로 여름잔치
---------------
농부 마음
한 알은
땅 속의 주인, 벌레 몫
또 하나는
땅 위의 새와 짐승의 몫
한국 농부가 밭에
콩씨를 심을 때엔
한 구멍에 세 톨씩 넣는다
마지막 하나가
단지 사람 몫이다
들에서 일하다
음식 먹기 전에 하는 고수레
풀벌레들에게 인사를 하고
뜨거운 물을
밖에 버릴 때에도
워이 워이 벌레들아
어서 빨리 피하거라
감나무 꼭대기에 남긴 홍시
까치밥
---------------
신기한 나라
식당 ,나이트클럽, 커피숍 카페 숫자, 고속도로, 지방도로, 옷가게 ,신발가게
음식 소비량 ,커피 수입, 반려동물 숫자, 핸드폰과 컴퓨터, 자가용, 아파트 보급률
중.고.대학 유학율 ,공무원 숫자 ,의료보험,기초연금, 장애인 복지,국회의원 보수
출산율 저하, 청소년 범죄, 자살률, 미혼 세대, 미혼모,독거노인 수,고령화 속도
해외여행, 입양아, 외국인 건물과 토지 매입 ,대학졸업자 미취업률,청년 실업자
교회, 사찰 숫자 ,무당 무녀 주술사 ,지방 ,국회의원, 기업 사장님 고액탈세자
전과자들도 많고, 권력과 돈만 있으면 슬그머니 무혐의 처리, 애국 애족심 붕괴
암 사망, 교통사망률 증가, 교사들도 노동자라며 데모하고 , 비행 청소년 탈선
불법 집회 난동도 민주화 운동이라 큰소리 ,여적죄 지은자도 국립묘지 안장되고
세계 최고 기록을 해마다 추월, 경신하는 비상하고 신기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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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다방
시골 황금다방은
할아버지, 아버지들의 사랑방
삼촌 고모 이모 또래들의
만남과 이별의 장소
첫사랑이 싹튼 추억이
머물고 있는 맞선 장소
부스에는 유명 DJ가
이국풍인 팝송이나
귀에 익숙한 가요도 들려주며
알림판을 든 아가씨는
주인공을 찾으며 전화 왔어요
김 사장님 이여사님
한복 입은 마담은 카운터
미니스커트 아가씨는
눈웃음치며 옆자리에
계란 노른자를 올린
황금 모닝커피 2잔 값에
지폐 몇 장도 아깝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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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설날
거동조차도 불편해 보이는 허름한 노인이
보자기에 싼 국그릇을 가슴에 품어 안고
저녁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된 횡단보도를
신호등에 맞추어 건너려다 넘어저버렸어요
지나던 아가씨가 달려와 노인을 도우려다
함께 미끄러져 국물로 옷이 얼룩 젔어요
떡국이라도 같이 먹으며 한 살 챙기려고
치매 병원에 아내를 보러 가던 길이었어요ᆢ
홍시처럼 열린 감나무 가지 위에 흰 눈송이
까치부부가 날아와 까악,오늘은 까치설날
까악,어제는 대설, 내일은 설날,인사를 하네요
아내는 나를 몰라봐도 아내를 나는 알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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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몽
천장에 무와 배추를 다 심고는
우비에 우산까지 쓰고
빗속을 걷다가
짝사랑하던 연인을 맞나
등 대고 누워있는 꿈
신 선비가 과거시험을 치르기
이틀 전에 여관에서 세 번이나
연거푸 꾼 꿈이었다
이름난 점쟁이가 꿈을 푸는데
천장에 채소를 심었으니
헛된 수고일 뿐이고
우비에다 우산까지 쓰고
빗속을 걸으니 불필요
사랑하는 연인과 등을 졌으니
역시 헛일이네
일찍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단다
과거시험 보는 날이
바로 내일인데
짐을 왜 싸느냐고
여관 주인이 물었다
꿈 이야기를 듣던 주인이 해몽을 한다
천장에 채소를 심었으니
높은 성적으로 합격이요
우비와 우산을 쓰고
비를 맞으니 완벽한 준비로
몸만 살짝 돌리면
연인을 품에 안을 수 있으니
뜻을 쉽게 이뤄
이번은 합격이 틀림없단다
선비는 돌팔이 점쟁이
여관 주인의 말에 용기를 얻어
과거시험을 무사히 치렀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비록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관 주인이 선비에게
둘러대 한말을 듣고 나서지만
시각에 따라 성공의 열쇠는 열린다
긍정의 힘은 새로운 창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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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오늘 고백하자
내일을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오늘이다
사랑은 오늘뿐, 내일은 핑계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불러봐도
메아리가 없을 때가
가장 가슴 아프다
내일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대상은 없다
베풀 수 있는 사랑은
미루지 말고 오늘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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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굶주림의 고통을 건너
다행히 피해 살아왔고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아픈 곳 없이
건강한 모습이네
앞으로 며칠을 버티고 버티다
생을 마감할 사람들에 비해
축복받은 인생을 사는 셈이죠
학대와 협박 두려움
감옥 갈 체포 위험 없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거나
어깨에 손을 얹어
아픔을 덜어주며 위안을 받는
신앙의 자유도 있고
감사할 줄 알고 있으니
우리는 행복한 사람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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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신 축하 딱지
생신 축하상을 받은 칠십 노인이
급성 복통으로 차를 몰고 병원을 찾았다
큰 도롯가에 잠시 주차를 한 후
치료를 받고 허겁지겁 나오는데
경찰이 주차위반 딱지를 떼어
노인은 사정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내가 70회 생일인데
새벽부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법을 준수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법규위반 훈장까지
생일날 받게 생겼네요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다시는 위반하지 않을게요
오늘은 70 평생
가장 부끄러운 생일날이 되네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교통경찰이 법과 인정 사이에서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한 번만 봐달라 애원하는
노인의 하소연에도
경찰은 표정 변화 없이
고지서를 기록한 후
노인에게 건네주고 돌아섰다
사람들은 각자 판단을 하며
법이 우선이지
그래야 세상이 굴러가는 거야
아무래도 인정미가 있어야
세상 사는 맛이 나는거야
젊은이들은 법을
장년과 노인은 인정미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노인은 고지서를 받아 들고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기 전에
범칙금 고지서를 펼쳐 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고지서 금액란에는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르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멀리 멀어져 가는 경찰에
노인은 손을 가볍게 흔들고
경찰은 거수경례로 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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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동네 구석구석마다
떠난 이들의 흔적이 너풀거린다
요양원에 갔다가
다시 오지 못한 김 노인의 집
방치된 폐가들마다
빛바랜 집기들이 쌓여 있다
경로당에 매일 출석해
외로움을 이기며 살아온 노씨는
벽에 걸린 주민들 사진을 바라보며
저기 있는 할배들은
나 빼고 다 세상 떠나버렸지
안 씨는 더우면 덥게
추우면 춥게시리 사는거라
2년 뒤엔 철거
예 살다 죽으면 성공한 거지, 뭐
월세 팔천 원을 내고 살다
120만 원에 사들인 내 집
김 할머니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쪽방에
반려견 바둑이와 같이 산다
2.5평 남짓한 방에
무료 급식 행사 때
배급받은 급식과 반찬들
빵 조각과 컵라면 옆에는
이동 변소, 요강 등이 방안 가득
물건이 채워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이 쪼매만 집에만 항상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골목에 앉아
바둑이와 노는 것이 하루 일과다
장마 때면 되면 빗물은
문턱을 넘어 들이닥치고
집 앞에 놓인 연탄 보관 통도
힘없이 넘어진다
집안 벽지와 방바닥엔
온통 곰팡이가 판치고 눅눅한 습기도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익숙하다
비가 잠시 멈추는 날에는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널린 빨래를 처마 위에서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야겠노. 이렇게 언제까지 살랑가도 모르겄다
고추, 가지, 상추를 심은
작은 화분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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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축지 마을
일제 때 바다를 메워
마구간을 세웠던 곳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밀물처럼 몰려와
기존의 마구간을
칸칸이 나눠 방으로 쓰며
판자촌 마을을 이룬 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매축지 마을은
최초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
골목길에 집들은 다닥다닥
전봇대 곳곳에 화재 경보종들
수호종을 울려
화재경보를 주민에 알린다
매축지 마을 쪽방촌
곳곳엔 칙칙한 냄새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어두컴컴한 날엔
고인 물이 풍기는 습기찬 악취
담벼락 앞에는
싱크대, 의자, 연탄 통 등
처마 끝 빗물이
쏟아지는 곳마다 드럼통
비 내리는 날엔
화장실 가는 게 두렵다
공용화장실까지는 100여 미터
보행 보조 장치에
우산까지 들어야 한다
쪽방촌의 공용 화장실에는
꽃 벽화가 그려져 있어
장미호텔이라 한다
남녀 화장실이
가벽 하나 사이에 맞붙어 있다
20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칸막이는 없었다
지팡이를 짚은 할배
구루마 끌고 가는 할망
큰 거는 빨리빨리 할 수도 없고
미안해서 사람들이 잘 때나
새벽에 몰래 갔다 왔는데
살다 보니 화장실 없는 집도
불편함은 별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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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꽃 피운 사연
공과대학의 가난한 학생과
고관집 딸은 서로 사랑하였다
두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딸을 멀리 친척 집에 격리시켰다
남학생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몇 달을 찾아다니다가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의 집 앞에서 우연히
반갑게 만나 기뻐했지만
여자는 힘없이 말을 했다
나 내일 결혼해요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만
곁에 있어 달라고 사정했다
종이에 말아 피우는 담배는
몇 모금을 빠니 다 타버렸다
애절한 시간은 다 흐르고
둘 사이의 사랑은 너무 짧았다
공대를 졸업한 후 취업하여
세계 최초로 필터담배를 개발하여
남자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빈민촌에서 병든 몸으로
살고 있는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초 겨울
하얀색 벤츠를 탄 남자가
그녀를 찾아가 청혼했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오겠다 하고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는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옆에는 정성 들여 쓴 작은 글씨로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쪽지에 쓰여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경영하는
담배회사의 필터 담배에
말보로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눈이 오는 날에는 그녀 생각에
빨간 장미꽃을 들고 산소를 찾았다
Man /Always/Remember/Love
Because/Of/Romance /Over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언제나 사랑을 기억한다
MARLBORO의 사랑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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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성찰 (省察)
인생 팔십 가까이 살다 보니
사는 거 참 별거 아니 더라
돈과 인연 없는 시나 쓰다가
끼니 챙기며 사는 게 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