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으로 고백한다
렘 18:1-23(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손으로 고백한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손으로 고백한다는 말은 손으로 말한다 speaking with hands 라고 하는 말을 조금 패러디한 것입니다.
손으로 말한다는 것은 전시회의 제목이에요. 미국 뉴욕의 자선가이자 사회사업가이시기도 하고 아주 유명한 수집가가 한 분 계십니다. 헨리 불(Henry M, Buhl)이라고 하는 분인데 이 분은 한 가지 주제로 오랜 세월 수집활동을 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수집한 것들을 전 세계에 다니시면서 전시회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봄에 전시회를 하셨습니다.
이 분이 수집하는 단 한 가지 주제가 바로 손이에요. 1,100여점의 손을 수집합니다. 1,100여점의 손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시겠는데, 언젠가 독일의 루터의 종교개혁 자취를 돌아보면서 루터의 동료였던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을 독살한 하녀의 정말 손목이 잘라진 그 손이 약품처리를 해서 썩지 않게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봤습니다마는 헨리 불의 수집은 이러한 사람의 진짜 손이 아니라 사진이나 조각으로 이루어진 손입니다.
작년 봄에 speaking with hands 손으로 말한다 라고 하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대림 미술관에서 150여점의 작품이 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듣고 또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보면 1940년대 헤비급 챔피언 조 루이스의 주먹 쥔 손이 있는가 하면, 유네스코 본부 건물 앞에 조각상《옆으로 누운 사람》헨리 무어 (Henry Moore) 의 작품인데 반농반광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각 공부를 해서 유명한 조각가가 된 헨리 무어의 손이 있는데 그 손은 손톱 밑에 까맣게 때가 끼고 열 손가락 손톱 끝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다 갈라져 있고 온 손에 상처투성이인 그런 조각가의 손, 또 주름이 잔뜩 진 깍지 낀 마더 테레사의 손, 피카소의 손이라든지 여러 사람들의 손을 보면서 그 손이 누구의 손인가를 알면 대충 그 손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이 인생의 축약본이라고 하는 말도 있나 봅니다.
손의 생김새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를 들어 손톱이 다 닳아서 없어지다 시피 했다면 심한 농사 일 같은 것을 하시는 우리 시골의 어머니들의 손 할머니들의 손 할아버지들의 손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손을 보면서 우리가 그 사람의 생애를 얘기하고 또 짐작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1,100가지의 손. 그 손으로 각자가 자기 인생을 빚어간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기장이의 손으로서 비유되어 나타나요. 진흙을 마음대로 빚어서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에게 가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있어라. 그러면 내가 너한테 말씀을 주겠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녹로(물레)를 돌려가면서 양손으로 빚어갈 때에 그만 잘못되어서 그릇의 모양이 찌그러졌다든지 아니면 터져버리면 그 흙을 부수어 버립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민족과 국가뿐만 아니라 각 사람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 마음 속에 토기장이와 같이 어떤 그릇으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겁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식을 보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토기장이로서 내 아이라는 진흙을 가지고 그 아이의 인생을 빚어 가시려고 하는 마음의 밑그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생애의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손으로 빚어가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 가시려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겨요.
특별히 선민에 대해서 하나님은 강한 의도성을 가지고 토기장이가 만들고 싶은 토기를 imagination하듯이 마음 속에 그림을 갖고 계시는데 문제는 유다 백성의 죄가 뭐냐 하면 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을 선민인 나를 빚어 가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손을 거부한다는 겁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어 갈 때에 그 그릇이 터져서 그 진흙을 다 으께 버리고 다시 다른 것을 해야 되는 것처럼 내 인생을 빚어가는 하나님의 손을 거부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헨리 불이 손의 모습을 수집할 때에 하나님의 손이 있었을까 생각이 들고 또 하나는 선민의 손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는 선민의 손. 그것이 바로 이 선민들이 망하게 되는 이유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는 선민의 손. 그 손이 헨리 불의 작품 중에 하나가 있었으면 아니 화가가 그림을 그려서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손과 선민의 손. 어떻게 하나님의 손과 선민의 손이 화합하고 맞잡는 것인가? 어떻게 뿌리치는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어요.
헨리 불의 수집한 작품 중에서 멕시코 조각가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있습니다. 이 오로즈코가 자기의 양 손을 자기 스스로 사진을 찍은 다음에 <나의 손은 나의 마음이다> 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는 선민의 손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어떤 마음이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는 선민의 손일까?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우리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 계획이라는 게 뭡니까?
우리 인생에 대해서 손을 대는 거예요.
왜 계획을 갖습니까?
내 마음에 소원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자기의 손이 자기의 마음이라고 한 것처럼 결국 우리가 우리 인생에 손을 댄다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소원하고 있고 그래서 계획하는 거예요. 내 인생에 손을 대는 것이고 내 인생을 빚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악한 대로 라는 이 말이 바로 소원입니다. 끈질기게 바랍니다. 백번 망하고 백 한 번째 일어나서 또 돈을 벌려고 그래요. 백번 실패하고 백 한 번째 일어나서 또 자식을 내가 어떻게 한번 주물러서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이끌어 가보려고 그래요. 이게 완악함입니다.
이 세상 것에 대해서 내가 좋은 방식대로 내가 좋다고 느끼는 대로 소원하고 그것을 계획하고 행하는 것 이게 바로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내 손이 내 마음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내 인생에 손을 대는 겁니다.
내가 내 인생에 손을 대면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을 뿌리칩니다.
제 아이가 이제 12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저희가 자랄 때보다도 잘 먹어서 그런지 신체적인 발육이 아주 빨라요. 그래서 벌써 호르몬 작용이 나타나는 것인지 코 부분에 여드름 같은 게 나요. 저도 그런 여드름 나본 적이 없고 집사람도 청장년 시절에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수습을 해야 될지 하도 답답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여자 분인 것 같은데 자기의 경험을 살려서 여드름의 흉터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서 다섯 가지 단계를 올려 놨더라구요.
그런데 여자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가지고 하는 거라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단계는 제가 잘 못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첫 번째 단계가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단계 : 지금 당장 얼굴에서 손을 떼세요.
그 이유는 손을 대면 댈수록 여드름의 상처는 깊어간다는 겁니다.
제가 이걸 집사람에게 얘기를 해주었어요.
왜 그러냐면 여러분 그런 사람이 있지요? 손톱이 뾰족한 사람이 있지요. 입술 뜯기 좋아하고 하여간 얼굴이고 몸이고 뭐 하나만 있으며 짜지 않으면 내 것이건 남의 것이건 견디질 못하는 거예요. 뭔가 짜고 싶은 게 눈에 보이면 반드시 짜야만 됩니다.
그래서 저한테 허락받고 짜요. 그거 안 짜면 밥도 못 먹어요.
그렇게 우리 아들의 코를 쥐어짜서 완전히 단풍나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상처가 더 깊어졌어요. 그래서 알려 주었어요. 지금 당장 얼굴에서 손을 떼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선민이십니까?
그러면 선민의 손은 조 루이스의 챔피언 손을 만든 손, 헨리 무어의 유네스코 본부 건물 앞에 있는 조각품을 만든 손, 피카소의 손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의 손이 되어서는 안 돼요.
선민의 손은 헨리 불의 컬렉션 안에 분명히 없을 거라고 느껴지는데 모르겠어요. 선민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여러분 한번 알아 맞취 보세요.
토기장이 손이신 하나님의 손을 우리가 모셔 들일 수 있는 선민의 손 어떤 손입니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십자가 나무에 딱 붙어버린 손이에요. 그게 바로 선민의 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는 손으로 고백해야 참 신앙이 된다는 겁니다.
헨리 불 수집품의 전시회의 이름이 speaking with hands 였어요.
그럼 우리 선민들의 신앙에 해당되는 내용이 뭡니까?
confession with hands 라는 겁니다.
그것도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만이 아닙니다. 손으로 고백하라고 그러니까 손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손들고 통성 기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 바로 내 손이라고 하는 이 고백을 예배 때뿐만 아니라 자식 앞에서 하라는 거예요. 사업 앞에서 하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선민의 손이고 이 선민의 손이야말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으로 내 인생을, 내 아들과 딸의 인생을 빚어가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내 사업을 빚어가도록 만드시게 하는 선민의 손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신앙은 입으로 고백하는 단계를 넘어서 반드시 손으로 고백해야 되고 그 고백의 장소는 삶의 현실 속에서, 내 자식 앞에서, 내 사업 앞에서, 내 건강 앞에서 내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손이 뭡니까?
가브리엘 오르즈코가 고백한 대로 내 손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본문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계획과 끈질긴 내 마음의 소원을 따라 내가 행한다. 그게 바로 내 인생에 대해 손대는 겁니다.
손댄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해서 소원을 갖습니다. 그 소원이 완고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판단대로 이것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소원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에 따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행동합니다.
이게 바로 내 인생에 손을 대는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 그만 풀려 내려와서 내가 내 인생을 조각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역시 하나님을 잘 드는 조각칼 정도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조각을 섬세하게 잘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조각칼 정도로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조각칼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조각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토기장이이십니다. 내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세요. 내가 손대면 하나님의 손은 뿌리쳐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드리잖아요.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며 바리새인들이 비난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인정하면 안 믿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으니까요.
마귀의 왕의 힘을 빌어서 졸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빌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천국이 너희에게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육신의 손이 있어요. 우리 몸이 있으니까 우리 손으로 만지면서 일을 합니다. 우리 몸이 이 땅에 살아 있다는 자체가 무슨 일을 해야 살아 있는 거니까 사실은 몸 전체가 손이에요. 일에 손대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주님의 모습을 보면 이 하나님의 손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냈다는 원문이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 전체가 손은 손인데 장갑이더라 이거에요. 하나님의 손가락이 들어와 있으니까.
주님은 당신의 인간으로서의 소원과 인간으로서의 계획을 이미 마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신 겁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순간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동안 당신의 생각을 벌써 십자가에서 죽이신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손이 그분의 몸을 장갑삼아 끼신 겁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해요.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손을 빌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이미 너희에게 하늘나라가 임한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세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자녀가 있다고 합시다. 신앙고백하세요. 손으로 고백하세요. 내 손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손이다. 그럼 자녀에 대해서 손을 못 댑니다. 자녀가 내 눈 앞에서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나 손을 못 대요. 그러면서 우리 마음은 이제 하나님께로 향하는 거예요.
어제 말씀 드렸듯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감나무를 흔들어서 감을 떨어뜨리려는 행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 있는 것을 십자가에 죽는 거라고 생각해요. 감이 떨어졌으면 하고 감에 대한 소원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그리고 흔드는 행동만 안 하고 있는 게 십자가에 못 박힌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지요.
자녀에 대해서 손을 안 대고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손이 해주시겠지 라며 바라는 것을 다 바라고 있어요. 그거 십자가에 못 박는 거 아니에요. 가브리엘 우르즈크가 말처럼 내 손은 내 마음인 것이에요.
그러므로 손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자식에 대한 내 소원 내 계획 내 바람을 못 박는다는 겁니다.
조각가가 하는 말 우리는 못하겠습니까? 우린 더 잘해야 되지요. 내 손은 내 마음이다. 그렇잖아요. 자식에게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 마음을 대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대고 있으면 마음이 자식에게 죽는 거예요.
자식에게 손을 안 댄다는 것은 마음이 못 박혀 죽은 것을 말해요.
그럼 자식에 대해서 죽은 마음은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께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소원하는 겁니다.
“하나님, 자식 때문에 불평이 생긴 마음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소원하는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을 소원할 때 비로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이 들어오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직도 자식이 부모 슬하에 있으면서 부모의 가르침과 양육을 받아야 될 그때에 하나님이 내 자식을 빚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업에 대해서도 인생 전반에 걸쳐서 다 적용되는 얘기에요.
어떻게 하라? 손으로 고백하라!! 내 손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런데 그 손이 뭐라구요?
소원하는 것이 손이요, 계획하는 것이 손이요, 계획을 실천하고 싶어하는 것이 손입니다.
이런 완악한 내 소원이 있어요. 끈질기게 내 소원이 있어요.
이 손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되는 손입니다. 이게 선민의 손이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내 육신 전체를 당신의 장갑으로 삼으세요. 그래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 같아요.
하나님이 장갑 삼으시고 내 인생을 빚어가십니다.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내 자식에 대해서 내 사업에 대해서 내 건강과 내 배우자에 대해서 손을 대긴 댑니다. 그러나 장갑이에요. 나는 장갑일 뿐이에요.
철저하게 손으로 고백하면 십자가에서 못 박혔습니다. 내 손은 못 박혔습니다. 가브리엘 오르즈코처럼 내 손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내 손이 못 박혔다는 것은 자식에 대해서 내 마음이 못 박힌 것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내 마음이 못 박힌 것입니다. 마음이 못 박혔으니까 아무 것도 하질 못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음은 하나님만 소망합니다.
아예 감을 바라지 말아요. 누워서 바라건 흔들어서 바라건 감을 바라지 않는 것이지요.
헨리 불의 수집된 작품 중에서 권투선수의 손이 있고 헨리 무어의 손, 마더테레사의 손,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워홀 이런 사람들의 손이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갔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누가 만들어 가야겠어요?
당연히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이 만들어 가야 될 것이에요.
그러려면 손으로 고백하세요.
“하나님, 내 손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힌 손입니다. 내 마음은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오직 내 마음은 하나님만을 소원합니다. 하나님으로 지금 자식을 만나기 전에, 내 인생을 만나기 전에, 사업을 대하기 전에 그 보다 앞서 계신 하나님으로 온전히 만족한 삶이 되게 해주세요.”
이래서 하나님으로 기쁘고 만족한 삶이 되면 하나님이 나를 장갑으로 끼셨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 마음에 일어나는 소원은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으로 만족한 다음에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 완전히 만족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장갑삼아서 끼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종일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일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손으로 나의 손을 삼아서 고백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장갑으로 끼시고 오늘 하루를 빚어 가실 것이에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손으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인 것을 내 눈 앞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 앞에서 못 박힌 손으로 고백함을 통하여 진정으로 주님으로 모셔들이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이 마음껏 끼실 수 있는 장갑되어 오늘 하루가 진행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