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의 힘
청소년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이슬, 진휘 청소년은 머리를 맞대었다. 아카데미를 위해 만들고 있는 자료엔 마카롱과 해리포터 사진이 있었다. 나는 “저 사진은 뭐예요?”라고 물어봤다. 그들은 “자기소개를 하는데 꼭 다니는 학교와 나이만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재미있게 각자 좋아하는 것으로 소개하려구요.” 라고 답했다. “처음 오는 청소년들에게 종이만 주고 글을 쓰라고 하면 엄청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해보자”라며 프로그램 방향을 찾아갔다. 이 두 청소년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떠올렸다. 작년 월명동에 위치한 동네책방인 ‘마리서사’에서 열린 여행에세이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했다. 그때 작가님께서 여행에세이는 ‘묘사’가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고 두 청소년들도 ‘묘사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예시를 쓰고 있었다. “읽었을 때 ‘아 이게 묘사라는 거구나’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슬 청소년이 예시를 만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를 적으면 묘사가 없으니까 글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안좋을 때가 어느 때일까 생각해봤어요.”라며 묘사의 힘을 발휘한 결과를 읽어주었다. “밀린 학원 숙제가 내 머리를 꾸욱꾸욱 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로 묘사한 글은 머리 속에서 떠돌아 다녔다. 학원숙제도 별로인데 게다가 밀린 학원숙제이며 그것들이 머리를 꾹 누른다고 생각하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분이 좋지 못했다.’에 대한 묘사, 성공한 것이다. 또래 청소년들에겐 더 잘 통할 것이다. 이렇게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단 청소년들은 아카데미를 통해 알리고 싶어했다.
작가말고 여행가이드?
이슬 청소년은 “봄을 주제로 은파호수공원에 핀 벚꽃을 보면서 시를 썼을 때 재미있었지 않아?” 하며 시각적인 것과 분위기 마련이 글쓰기에 도움을 될 것이라고 했다. 여행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각자 여행을 간 경험을 토대로 쓰는 방법도 있다. 생각해보니 달그락 근처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디 멀리갈 필요가 있나, 우리가 떠나는 곳이 여행지이니 월명동으로 여행을 가기로 기획했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군산에 사는 청소년들은 사실 월명동의 거리와 풍경을 관찰하며 걸어본 적이 드물었다. 늘상 있는 것이니 군산에 왜 여행오는지 조차 의문이 들었던 청소년도 있었다.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에게 알찬 여행을 제공하기 위해 마치 여행가이드처럼 월명동 코스를 짰다. 코스를 짜기 위해 답사도 떠났다. 월명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보지 않았던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보이는 일본식 가옥들과 작게 그려져 있는 벽화, 돗자리 펴고 소풍가기 좋을 공원들을 발견해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장소들이었다. 또한, 작가단 청소년들이 쓴 에세이집 <일어나기 5분전>이 첫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했던 월명동 동네 책방 ‘마리서사’에도 들렀다. 이곳을 들어온 이유는 마리서사에 실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군산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하나 더 이유가 있다면 마리서사 대표님과 작가단의 인연이 깊다. 지난 여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서점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대표님이 주시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과 책을 주인공으로 미춰주는 조명 탓에 작가단 청소년들의 방문은 잦아졌다. 꾸준히 이어오던 인연으로 월명동 여행 시에 잠시 이곳을 들려 구경하고 가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대표님께선 “얼마든지요. 들러주면 정말 고맙죠.”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허락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빵집 사장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근처 작가단 청소년들 중 금광초등학교 졸업생은 초등학교 앞 계단이 무지개색으로 입혀진 것을 보았다. “많이 바뀌었다. 나때는...”하며 추억을 꺼냈다. 달그락에 돌아온 그들은 귀와 볼은 추위 덕분에 빨개졌었다. 글쓰기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그들처럼 월명동 여행을 재미있게 느꼈으면 한다며 여행 코스를 완성했다.
지역사회를 쓰다.
“문을 활짝 열자마자 눈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월명동 탐방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시멘트 가득한 도로에서 헤매다가 나무로 지어진 건물 속 골목을 헤매다 보니 왠지 모를 세월 속 따스함이 느껴졌다. 거리 곳곳마다 추위를 견디는 식물들이 기특해보이기도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동네책방이다. 문제집이 없는 책방을 처음인 듯하다. 신비로운과 아늑함이 느껴지는 책방이었다. 여러모로 추위 속 따뜻한 감정이 느껴지는 월명동 거리이다.”
<청소년, 쓰다>글쓰기 아카데미에 참여한 한 청소년이 쓴 월명동 여행 에세이다. 가보지 않았던 월명동 골목길, 책방,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초원사진관 옆 나무도 여행을 통해서 보았다. 여행가이드가 된 희온 청소년은 “이곳은 초원사진관 가는 길에 있는 일본식 건물이에요. 작은 공원도 있구요.”하며 자신들이 발견한 거리와 건물을 소개했다. ‘달그락 탐험대’라는 깃발을 들고 떠난 여행을 마치고 청소년들은 글을 쓰기 위해 둘러 앉았다. 원고지에 여행에세이를 쓰고 다 같이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작가단 청소년들은 평소 글을 쓰고 함게 피드백한다. 롤링페이퍼를 쓰듯 시계 방향으로 글을 돌리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글을 읽어보며 글이 쓰인 종이 아래 빈 공간에 글에 대한 의견과 수정했으면 하는 점을 적곤한다. 아카데미에선 이처럼 함께 글을 읽는다. 하지만 글을 ‘평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줄 수 있게 때문이다. 오늘 여행을 통해 풍경에 대한 묘사와 그로인해 들었던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부담없이 풀어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글을 읽고있는 청소년들의 귀로 음악이 들어갔다. 음악 BGM은 유튜브에서 찾은 ‘혼자 카페에서 듣기 좋은 음악 Best50’이다. 잔잔한 분위기에 서로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느낌도 적었다. ‘그냥 서있는 나무일 수도 있고, 골목이 그저 그런 풍경일 수도 있는데 부드럽게, 개성을 가진 글을 잘 표현해주었네요. 잘 잀었어요.’라며 고쳐야할 부분을 부각하기 보다는 글의 특성을 살린 글에 대한 느낌을 주고 받았다.
“월명동이 제 마음 속에 간직되었어요. 오늘 탐방을 뒤돌아보니 군산에 볼거리가 많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를 보지 못한 것 같아요.”라며 여행과 글쓰기를 통해 지역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그들과 <청소년, 쓰다>를 마무리했다.